동물농장 - 조지 오웰

<잉글랜드의 짐승들>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그런 세상을 꿈꾸던 동물들은 '메이저'가 말한
'반란'을 예상외로 쉽게 성공합니다. 압제와 착취의 손에서 벗어나 모두가 평등한 농장이 되길 바라며 동물들은 계명을 정합니다. 정확하게는 영리한 돼지들이 정하고 다른 동물들은 동의하는 정도죠.


일곱 계명

1.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2.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p. 26)


그런데 우유의 행방이 묘연해지는 것을 시작으로 삐걱대기 시작합니다.
나폴레옹이 강아지를 몰래 교육시킵니다.
반대자 스노볼은 축출되고, '회의'는 폐지됩니다.
인간과 거래를 트기 시작하고, 침대에서 자는 동물이 생겨나고, 동물들을 죽이는
일이 벌어집니다. 해서 처음의 계명은 모르는 새 바뀝니다. 아래처럼요.


4계명 어떤 동물도 '시트를 깔고' 침대에서 자면 안 된다.
6계명 어떤 동물도 '이유 없이'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반란'에 성공했고, 사람도 없는 농장에 다른 것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반대자들에게 으르렁대고, 처형하는 사나운 개들이요,
나폴레옹의 말을 반복해서 외쳐대는 양들이요,
동물들을 의심스런 통계와 몰래 바꾼 계명으로 설득하는 '스퀼러'요,
나폴레옹을 찬양하는 '미니무스'요

결국 '복서'는 신념에 차서 기쁨으로 헌신하며 일하지만 몸뚱이 마저 팔리며 죽음을 맞이
합니다. 다른 동물들은 이상하게 삶이 고달프고, 무언가 처음과는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반란' 후에 또 다른 반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소설과 당시 소련의 현실과의 상관관계를 넘어서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권력은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권력은 항상 부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책을 읽는 것처럼 간단하면 좋을 텐데, 현실에서는 돼지는 머리가 너무 좋습니다.
어쩌면 돼지가 되고 싶은 마음 굴뚝인 저는 아는 바도, 정보의 접근성도 그들과 차원이 다릅니다. '복서'같이 살면 모지즈에게 칭찬은 듣겠지만 억울할 테고요, 아직은 양들처럼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좋게 봐야 '벤자민' 정도의 미지근한 참여자 정도일 테지요.아래에 정리가 잘 된 <해설>의 부분을 인용해 봄으로 글을 정리합니다.


[ 우화로 읽었을 때의 <동물농장>은 특정의 풍자문맥과 연결된 <동물농장>과는 다른 의미론적 확장을 가능하게 한다. 우화로서의 <동물농장>은 소비에트 체제라는, 한 시대의 권력형식만을 재현대상으로 하는 역사적 정치풍자의 수준을 넘어 '독재일반'에 대한 우의적 정치풍자로 넓어지는 것이다. 이 경우 이를테면 나폴레옹은 반드시 스탈린을, 돼지들은 반드시 볼셰비키를 지시하는 것으로 파악될 필요가 없다. 부패한 독재자는 어느 시대에나 있을 수 있고 권력형 돼지들도 어느 시대에나 있다. 그러므로 나폴레옹은 모든 시대에 있을 수 있는 독재자의 알레고리이고 돼지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을 수 있는 교활한 정예주의 권력집단의 알레고리이다.

<중략>


복서나 클로버 같은 우직하고 성실한 동물들도 반드시 프롤레타리아트로 제한되지 않는 광의의 피착취 대중을 포괄하는 알레고리로 읽힐 수 있다. 소비에트 체제의 역사적 실체가 소멸하고  없는 지금 이 시대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여전히, <동물농장>이 강한 적절성과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 정치사회의 권력 현실을 부패시키는 근본적 위험과 모순에 대한 항구한 알레고리이기 때문이다. 오웰이 그린 동물농장은 지금의 세계에도 있고 미래 세계에도 있을 것이다.  (p. 150) ]

Posted by 로처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밤의추억(Nightmemory) 2009.10.06 2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는 반복 된다고 하죠. 비슷한 역사가 반복될 때마다 아마도 이런 풍자적인 책은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악기들의 도서관 - 김중혁

우리 고장의 도서관에서 김중혁 작가를 초청한다기에 읽어보았어요.
작가는 밤 새 읽을 만한 책은 아니라고 하셨지만, 강연 전에 읽고 싶은 맘은 굴뚝이고 시간은 모자라기에 밤 새 읽었죠.

단편 여덟 트랙으로 된 소설집입니다.
읽다보니 자꾸 이야기 속 인물을 작가와 동일시하게 되네요.
그리고 그 인물들이 제가 되기도 하고요. 그게 소설 읽는 재미겠죠.
읽으면서 표시해 두었던 부분을 강연 후에 다시 보니 영락없이 작가의 모습들이 보이고, 또
닮고 싶어 하는 제 모습도 보입니다. 이어지는 이런 저런 생각들도 있고요.


1. 뒷수습의 상상력


첫 문장을 써놓자 나머지 문장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매뉴얼을 쓸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 있던 문장들이 눈치를 보면서 슬그머니 나타나는 거 같다. 매뉴얼을 쓴다는 것은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발굴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는 문장 위에 덮인 먼지를 조심스럽게 툭툭 털어내기만 하면 된다. 고고학자가 된 기분이다.  (p. 46 <매뉴얼 제너레이션> 중에서)


강연회에서 작가가 한 말이 있어요.
'뒷수습의 상상력' 첫 문장을 써놓고, 연이어 수습을 하다보면 어느 새 소설이 완성되노
라고 하시네요. 그럼 위에 인용한 부분은 어김없이 작가의 경험이네요.


2.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는다는 건 억울하다

<악기들의 도서관>의 첫 문장입니다.
제가 요즘 느끼는 바를 콕 찌르는 문장이라 되뇌어 봐요. 처해있는 상황이나 지위 책임이 각각 달라도, 저 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 돌이켜 후회하고 아쉬워하며 생각에 잠기게 하는 문장 아닌가 싶습니다.

마침 제가 즐겨듣던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에도 비슷한 의미의 가사가 있어요.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신해철 <민물장어의 꿈> 중에서)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는다는 건 억울하다.' <악기들의 도서관>
그리고'몸속에 저장해뒀던 돌덩이를 내려놓기 위해'
'아직은 무른 내 손가락 끝'을 여물게 해야겠습니다. <나와 B>


3. 침 흘리며 공상하듯, 휘적거리며 악몽을 꾸듯

<무방향버스>에서는 끔찍한 악몽을 꾸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엄마가 사라진다는 것은 어릴 적부터 머리가 다 커버린 지금까지 무서운 일입니다. 생각하기 싫은데 가끔 머리에 떠오를 때면 그렇게 끔찍할 수 없어요.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을 때처럼 눈물 흘리고 싶지 않아 긴장하고 있는데 '무방향버스'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아! 꿈이구나.' 싶습니다.


4. 5 Cm 공중부양의 SF작가

제가 강연회에서 제대로 들었다면 작가는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았음에도 확언하지는 못하겠지만요. 8개의 단편소설들을 다시 생각해보면 위의 표현이 참 기막힐 정도로 어울립니다.

저는 8개 트랙의 이 소설을 읽으면서
톡톡 튀는 소재의 소리를 들었어요<매뉴얼 제너레이션>
침울함 속에서 웃음소리를 듣고요 <유리 방패>
어긋날 수도 있는 목표를 삶에 끼워 맞추는 소리 <악기들의 도서관>
그리고 무서운 꿈을 깨우는 "밥 먹어라." 하시는 엄마의 소리도 들었습니다. <무방향버스>

이제는 <펭귄뉴스> 읽어봐야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강연회 후 사인해주시는 김중혁 작가>
Posted by 로처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밤의추억(Nightmemory) 2009.10.06 2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는것은 억울하다'를 읽으니 버나드 쇼의 비문에 적혀있는 '우물쭈물하다가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라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저에게는 참 마음에 와 닿는 글귀입니다. 우물쭈물하다가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으면 너무 억울하니까요.

    • 로처 2009.10.07 19: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억울할것 같습니다.

      전 같은 맥락으로 가정을 이룬 친구들이 부럽더라고요.
      역사에 길이남을 무언가를 남기지 않아도 세상의 맥을 잇는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으니까요.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 신경림 에세이

제목부터 구수해서 인터넷에서 소식을 듣자마자 읽고 싶었던 책이었죠.
읽기 시작해서는 재미있는 내용이었지만 한 호흡으로 읽어내기엔 쉼표가 많은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쉼표가 많다는 것은 제가 읽다가 덮어두고 스스로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보게 하기도 하고, 한 숨도 쉬어가며 읽었다는 것을 말함이에요.
 
이 책을 보시면 크게 두 부로 나누어져있어요.


1 부는 신경림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입니다.

일제강점기에 다니던 초등학교시절 이야기 말예요.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와지마' 순사가 해방 후에 정주임이라는 이름으로 경찰노릇을 했다는 추억, 제일 먼저 맞아 죽을 것 같다던 교장은 해방 후 국수주의 교장이 되었다가 문교부차관에서 국회의원 까지 지내더라는 씁쓸한 추억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달리기를 못해 맨날 꼴찌만 한다고 '맨꼴'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실실 웃게 만드는
추억들도 있지요.

작가의 추억담들 가운데 선생님에 대한 기억들도 제법 있는데요.
그 가운데 인상 깊었던 구절을 아래에 인용해 봅니다.


[ 이 선거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그 선거의 뒤치다꺼리를 우리가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거 연설은 대개 면내의 유일한 광장인 학교 운동장에서 했는데, 끝나고 나면 운동장은 버려진 유인물은 둘째로, 먹다 버린 음식물이며 배설물들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이것을 다 5, 6 학년 아이들이 청소해야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선거 뒤에는 우리가 다니며 장터 여기저기 붙여진 벽보들을 떼고 닦았다.
이에 대해서 담임 앞에서 제일 먼저 불평을 제기한 것은 반장이었다. 담임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고만 대답했다.

우리는 의논 끝에 교장한테 직접 항의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장터를 돌며 벽보를 떼다 말고 반장과 부반장이 앞장을 서고 교장한테로 몰려갔다.
 얼결에 얘기를 듣고 난 교장은 당황해서 뒤따라 들어온 담임을 향해 버럭 화부터 냈다.
'아니,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쳤기에 이렇게 버릇없이 굴게 하는 거요! 면장과 지서장이 부탁해서 하는 건데 일 좀 한다고 아이들 어디 덧나요?' 담임이 내몰았기 때문에 우리
는 교실로 돌아왔지만, 이 일로 해서 담임은 지역 사회에서 싸가지 없는 교사로 평판이 돌았고, 선생들 사이에서도 저만 잘난 체하는 사람으로 왕따를 당했다는 후문이었다. (p. 124) ]



초중등학교에 다닐 적에 선생님의 전령 또는 수금원 역할에 불과했던 형식적인 반장에 비하면 아이들의 당돌함도 놀랍지만, 작가의 추억 속 선생이란 사람도 참 인상 깊었어요.
당시 사회나 교장의 지시에 대한 반발로 인해서인지, 사람이 순진하고 이상적이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적어도 아이들에게 꾸밈없이 솔직한 점이 좋아 보입니다.
물론 아이들하고 같은 수준으로 솔직하기만 한 것이 선생으로 모자란 점이 된다고 하시면
달리 반박하지는 못하겠지만요.


2 부는 작가가 만났던 작가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소설은 물론이고 시는 더더욱 읽지 않는 저로서는 모르는 이름의 작가도 많이 등장하죠.
추억 속 그들의 가난이 서글프기도 하고, 그들의 우정이 따뜻하고 낭만적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작가들의 생활담에 제가 느낀 감상은 '부러움'과 '혐오'의 짬뽕입니다.
고교시절만 하더라도 좋게 봤을지 모르지만 작가들의 경제적 무능에 거울을 보듯 느끼는
감정은 혐오이고요, 그럼에도 놓치지 않는 작가들의 자긍심이나 지조, 우정에 느끼는 감정은 부러움 입니다.
아래에 그 일화 중 하나를 짤막하게 인용해 봅니다.


[ 집에 가서 한잔 더 하자는 취한 그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버스를 타고 집까지 간일도 여러 번 있다. 버스에서는 다리가 불편한 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이 없지 않았으나 그는 앉는 일이 없었다. 

<중략>

바로 집 앞에 어린이 놀이터가 있어, 집에 닿으면 그는 큰소리로 아이들을 불러내었다.
사 들고 들어온 과자 봉지를 내밀며 아이들 들으란 듯이 내게 말했다. '따로 정원이 있을
필요가 뭐 있어, 여기가 다 우리 정원인데.' 그러고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한다며 내게 인사를 시켰지만, 늘 술이 취해 들어오는 아버지가 불만인 듯 아이들은 과자 봉지만 받아들고 들어가 버리고, 우리는 이웃한 구멍가게에서 소주와 오징어를 사다가 그의 정원 벤치에 앉아 마셨다. (p. 180 구자운 시인 편) ]



그리고 신경림 작가가 만난 작가들과의 일화들 중에서 이문구 작가의 일화를 특히나 기억해 두고 싶네요. 일화를 통해 본다면 이문구 작가는 말만 앞서는 얼치기가 아니기에 본 받고 싶어서 아래에 인용해 봅니다. 그리고 생소한 사투리와 단어때문에 읽기를 그만 둔 '관촌수필'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 김지하 시인이 '오적' 사건으로 구속되어 있을 때였다. 젊은 작가들 몇이 모여 데모를 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처음 이문구는 극구 반대했다. 다 잡혀 가고 끌려갈 걸 뻔히 알면서 그 짓을 왜 하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기로 결정이 나자 이문구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피켓을 만들고 플래카드를 만들었다. 마침내 거사일이 되었다. 조태일은 막상 겁이 나서 한 삼십 분쯤 늦게 약속장소로 나갔다. 내심 데모가 끝났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한데 현장에는 이문구 혼자만이 피켓과 플래카드를 싸들고 나와 서 있더라는 것이다.

결국 그날의 데모는 모두들 한두 시간씩 늦게 나오는 바람에 불발로 그치고 말았다.
'말로만 진보주의를 내세우는 사람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조태일의 이문구 평이었다.
이런 사람이었으므로, 70년대 중엽 진보적인 문인들이 표현의 자유를 위해 자유실천문협회를 만들었을 때 처음에는 글쟁이가 글을 써야지 무슨 단체를 만드느냐고 탐탁해하지 않던 그였지만, 일단 만들어진 뒤에는 조태일, 박태순과 등과 더불어 내내 가장 적극적이고 열성적으로 집회며 시위를 주도했다. (p. 214) ]




 

[ 1980년대 중엽 그가 한 신문에 전국을 도는 기행문을 연재하고 있을 때다. 벽초 홍명희의 출생지인 충북 괴산을 가게 되었다. 아직 '임꺽정'이 금서에 묶여 있을 때다. 그는 사진기자와 함께 벽초의 생가를 찾았고 벽초의 선영에 성모도 했다. 뿐만 아니라 동네에서 낫을 하나 빌려 벌초까지 했다. 이것이 말썽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동네 사람조차 빨갱이네 집이요, 무덤이라고 해서 피하는 터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주민의 신고를 받고 달려온 형사한테 그는 눈을 부라리고 호통을 쳤다.
벽초의 부친 홍범식이 금산 군수로 계시다가 일본의 강제 합병에 항의하여 자결한 사실을 알기나 하냐고, 그런 애국자의 산소가 잡초가 무성하게 그냥 두었으니 너희들이야말로 빨갱이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그의 기에 눌려 형사들도 그냥 물러가고 말았다. 이문구를 제쳐놓고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작가가 없다고 나는 단언했다. 이러니까 그는 북한의 체제를 비판할 자격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마침내는 내 이 말까지 시빗거리가 되었고, 그의 선친이나 형의 얘기까지 끄집어내졌다. 그의 부친과 형은 6.25 당시 좌익으로 몰려 희생되었던 것이다. (p. 220) ]

Posted by 로처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한방블르스 2009.09.26 14: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참전에 이 책을 읽고 몇 자 적은 것을 공개를 안하고 있습니다.
    말씀처럼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진한 감동을 준다기 보다는 나를 돌아보고 살아온(얼마되진 않지만요...) 날들을 돌아보고 다시 살아갈 날을 돌아보는 시간을 주었습니다.

    신경림 시인에 대해서는 농무의 시인과 시를 찾아서(?)만으로 알고 있던 분이지요.
    첵에서 제가 좋아하는 조태일과의 일화를 보고 다시금 그를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덧_
    얼마전부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모두 읽기(사실 모으기가 먼저이지만요..)에 들어갔습니다. 리뷰 올리신 것을 보니 무척 부럽습니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하였습니다.

    • 로처 2009.09.26 20: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앗 벌써 읽으셨다니 리뷰 기다릴게요.
      쓰시면 냉큼 가서 트랙백 달아야지.

      제가 민음사판 세계문학을 조금씩 읽기 시작한 이유는요, 좋은 문학을 보는 눈이 없기에 공부차원에서 선택했어요. 다른 사람들의 안목과 평가에 기대어 제 스스로 선택의 어려움을 떠맡기는 면이 없지 않답니다.

      이 역시, 한방블루스님의 감상 기다릴게요.

  2. 밤의추억(Nightmemory) 2009.10.06 2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책은 좋은 것입니다. 로처님의 블로그를 오면 이런 저에겐 생소한 책들을 소개 받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 책은 제목부터 진짜 정겹군요. 순수문학의 소양이 없지만 찜해놓고 한 번 읽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로처 2009.10.07 19: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제목과 저자이름만으로 선택한 책이에요.

      학창시절 국사선생님과 국어선생님의 야사 듣기를 좋아하셨다면 그런 얘기 듣는 기분으로 읽으시면 재미있어요.

  

쿠오 바디스(Quo Vadis) - 헨릭 시엔키에비츠


10년 전 지금은 유물이 되어가고있는 비디오대여점에서 <쿼바디스>라는 테잎을 본 적이 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의 뜻이라고 하는데 이 한 마디가 감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시계추신자였던 저는 '오래된 영화'와 '뻔 한 내용'일거라는 생각에 보는 것을 미뤄두었습니다. 이제야 민음사의 책으로 읽어보았죠.

읽어보니 좋았습니다.
여전히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말은 저에게 울림을 줍니다.
저에겐 이렇게 들리거든요

'주여 제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주여 저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여전히 응답은 들리지 않고, 절반 이상 포기한 상태인 저에게도 이 책은 충분히 좋았습니다.

역자인 최성은 교수는 이 책의 대결구도 중에서 로마의 전통사상과 새로운 신앙인 기독교사상의 대립을 얘기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품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의문들을 페트로니우스와 그 외 등장인물들의 말을 인용함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1. 기독교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종교인가


[ 살인을 금하고 있으니 도둑질이나 사기, 위증도 허용하지 않겠지. 그렇다면 교리를 지키며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겠군. 그 종교는 스토아학파처럼 올바르게 죽어야 한다는 걸 가르칠 뿐 아니라 올바르게 살라고 가르치고 있다. 나도 재산을 모아 이런 저택에서 이정도 숫자의 노예들을 부리고 살 수 있게 되면, 경우에 따라서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될 수도 있을 것 같군. 부자는 무엇이든지 못할 일이 없으니까. 덕을 쌓고 싶으면 덕도 쌓을 수 있겠지.....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그 종교는 부자들을 위한 것인데, 그렇게도 가난뱅이들이 신자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 도무지 알 수가 없군. 덕이라는 이름으로 두 손을 묶어 놓는 것이 가난뱅이들한테 대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1권 p. 306) - 킬로 킬로니데스의 독백 ]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공공연한 진리가 되고 있는 세상입니다.
비교적 깨끗한 사람들의 죄는 '준법'의 다른 이름이 되어버린 '법치주의'의 칼날아래 찢어발겨지고 잊지 말아야 할 죄를 지은 사람들은 '용서와 화합'을 들먹거리며 도닥이는 세상입니다.  부자들에게 면죄부를 팔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세를 파는 꽤나 괜찮은 비즈니스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적지 않습니다.


2. 기독교는 지키지 못할 교리로 사람을 억누르는가


[ 게다가 악을 선으로 갚고, 적에게 사랑을 베풀라고 권고하는 교리는 군인 비니키우스에게는 미친 짓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광기 속에는 여태까지 알고 있던 모든 철학을 능가하는 강력한 힘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광기가 내포되어 있으니 이 교리를 따를 수 없기 때문에 신성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1권 p. 324)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듣는 비니키우스의 생각 ]



 

[ "구세주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만약에 너희들의 형제가 너희에게 죄를 범하면 타일러라. 하지만 회개하면 용서하라. 가령 하루에 일곱 번 너희에게 죄를 짓고, 일곱 번 용서를 빌며 돌아온다 해도 너희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그를 용서해 주어라."
(1권 p. 384) - 킬로는 글라우쿠스를 죽이려 했고 그의 처와 아이를 팔아넘겼다. 글라우쿠스에게 베드로가 권하는 말 ]



소설 속에서 또는 성인 대접을 받는 사람들은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의 진리 앞에서 무력합니다. 과연 누가 일곱 번씩 일흔 번을 용서할 수 있으며, 왼 뺨을 때리는 자에게 오른 뺨을 내밀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게 인지상정이죠.
소설 속 '크리스푸스'처럼 약한 사람들을 죄인이라 윽박지르며 자신의 필요성을 정당화하는 목회자가 없기를 바랄 뿐 입니다.


3.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

아직 내용을 모르시는 분을 위해 사기꾼 킬로의 부분을 인용하지는 않을게요.

지키기 힘든 교리, 따르기 어려운 명령은 모두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에서 용서도 자비도 사랑에서 연유되기 때문이죠.
그리고 없는 사람, 눌린 사람, 슬픈 사람이 기독교에 끌리는 것도 사랑이 이유일 겁니다.

사랑하지 못해도 사랑받고 싶고,
용서하지 못해도 용서받고 싶고,
평안주지 못해도 평안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닐까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주기도문을 해 봅니다.

그리고 극 중의 네로같이 약함에서 오는 잔인함을 없이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크리스푸스처럼 정죄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바울과 베드로처럼 순교의 길을 걷고 싶지도 않으니 어찌합니까.
Quo Vadis Domine?

Posted by 로처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Greenbea 2009.09.27 1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들릅니다. ^^

    음..예전에
    어린이용 요약본으로 봐서, 위에처럼 깊이 있는 내용은 미처 보지 못했는데요.

    저도 일단 리스트에 추가를 해 놓아야 겠습니다. !!

  2. 밤의추억(Nightmemory) 2009.10.06 2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쿠오바디스를 아직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로처님과 비슷한 이유이지요. 명작이라고는 알고 있지만 당장 눈앞에 끌리는 문구 당장 나에게 필요한 서적에만 눈이 가는 탓입니다. 아무래도 세속적인 것에서 눈을 정화할 필요가 느껴지는 요즈음 한 번 읽어줘야 할 책인 것 같습니다.

    • 로처 2009.10.07 1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거요거 재미있어요.
      근래에 드물게 강추하는 책입니다. ^___________^

      허나 제가 번역을 잘 몰라서요.
      번역이 더 잘된 책이 있다면 그걸 읽으시면 더 좋을지도 몰라요.



테메레르 - 나오미 노빅


책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아서 책소화불량에 걸린 기분입니다.
제가 직접 구입한 책들을 읽지 않는 요상한 위인인지라 주로 빌려서 봅니다.
그런데 요즘 빌리는 책들도 그대로 반납하기 일쑤여서 '죽'을 먹는 기분으로 읽은 책입니다.

09년 9월 5일 현재 5권까지 출간됐습니다.
거기까지 읽은 느낌은 재미있어요. 유치하다는 감이 없지 않은데요.
판타지의 효시이자 대작이라는 '반지의 제왕'도 그런 느낌이 있었으니, 유치하다는 느낌은 판타지에 익숙지 않은데서 오는 감상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얘기로 넘어갈게요

1. 18C 초 영국과 프랑스의 교전 시기가 배경입니다.
2. 용들은 크기와 비행능력 지적수준 그 외 불이나 독액을 분사하는 능력이 다릅니다.
3. 지적수준이 다르지만 용들은 사람과 말을 할 수 있습니다.
4. 그 용에 안장을 채우고 승무원이 탑승해서 용들은 공군복무를 합니다.
5. 영국과 달리 중국은 신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처럼 경제활동을 하고 대접받습니다.
6. 테메레르는 중국황실의 용으로 고귀한 혈통이고 지능이 높습니다.
7. 용과 조종사는 강한 애정 또는 소유의 연대의식을 갖고 살아갑니다.
8. 테메레르의 조종사 로렌스는 귀족이며 해군다운 자존감과 꼬장꼬장한 원칙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입니다.

읽은 지 좀 지났지만 1권부터 5권까지 중요한 틀이라 생각되는 것만 적어 봤어요.
이 틀에서 테메레르와 로렌스 그리고 많은 인물들이 유럽, 중국, 아프리카, 터키 등을 다니며 좌충우돌하는 얘기가 꽤나 재미있습니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시리즈, 드래곤라자 외에는 판타지를 읽어 본 적이 없어서, 판타지를 좋아하시는 분들의 이 책에 대한 평가가 궁금합니다.
어떠셨나요?


애매모호한 생각, 삐걱대는 머리

이 책에서는 용이 사람과 말을 합니다.
그런데 용끼리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없어요. 교미만 있을 뿐.
대신 용은 자신이 결정한 조종사와 '애정과 소유의 복합'인 듯 한 감정을 나눕니다.

정리해 보면요.
'로렌스'는 어려서부터 군복무를 해 온 베테랑 해군장교였고, 결투를 마다않는 전형적인 남성입니다. '테메레르' 도 수컷입니다.
그런데 '용과 용이 선택한 조종사의 밀접한 관계' 라는 설정 덕분에, 로렌스와 테메레르의 관계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연인 사이의 사랑 같은 분위기 말이죠.
거대하고 강한 용이 상대인지라 로렌스가 여성인 듯한 느낌을 받아요.
이 부분에서 제 머리는 약간 삐걱대더라고요.
처음 보는 관계가 무척이나 생경해서 그런가봅니다.

누군가가 개를 사랑하거나 고양이를 사랑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아마 '용이 말을 한다.' 는 것이 다른 느낌의 이유일 테죠.


써놓고 보니, '책소화불량' 뿐 아니라 다른 문제도 있어 보여 씁쓸하네요.
그래도 이것 또한 기록이라 생각해서 남겨두렵니다.
전투와 전쟁 이야기가 자주 나와서 그런지 '난중일기' 읽기에 다시 도전해봐야겠다는 의욕이 들긴 합니다.

Posted by 로처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밤의추억(Nightmemory) 2009.10.06 2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은 예로부터 영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으니 인간과의 대화는 저에겐 그다지 생소하지는 않습니다. 숀 코너리가 용의 목소리를 맡은 '드래곤 하트'라는 영화가 문득 생각이 나는군요. 저한테는 오히려 18C 초라는 시대적 배경이 판타지 장르에는 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시기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란드가 그레이트 브리튼을 이루던 시기라서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배경과 비스무리한 시기이며 1776년도에 미국이 영국으로 독립을 쟁취했으니 불과 미국이 독립전쟁을 하기 6-70년 전에 용이 날아다니며 프랑스와 전쟁을 벌였다는 설정이니... 쫌 뭔가.. 어색하다는... 저만 그런가요?

    • 로처 2009.10.06 22: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용을 좋아해서 '드래곤 하트' 재미있게 봤어요.
      영화를 다시 보는 대신 블로그를 찾아다녀서 고 녀석 이름이 Draco 였다는 것도 다시 알아냈죠.

      '드래곤 하트'에서는 Draco가 마지막 용이라 용들이 사회를 이룰수 없었고요, 이 책에서 용이 말을 한다는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용들이 무리를 이루어 땅에 살기 때문이에요. 음.... 이를테면 닭이 말을 한다면 치킨을 비위좋게 먹기는 다 글러버린 상황이 될테고, 닭들과 전쟁을 치르게 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 것처럼요.

      네 17C 말~18C초에 이르는 배경이 요상하기도 신선하기도 한 거죠. 나폴레옹이 용을 타고 다닌다는 상상을 해보세요 ㅎㅎㅎ 맙소사. 책에서는 용들이 드랍쉽을 운송하기도 한답니다.

정답은 말하지 못해도, 자신만의 분명한 느낌과 생각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그 학교의 역사시간에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의 만행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학생이 묻습니다.


"왜 그들은 침묵했나요?"



 

 "독일 사람들은 전부 나치였나요?"
에이미가 물었다.

벤 로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독일사람 중에 나치 당원이었던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퍼센트도 안 돼."

<중략>

"당시 독일인들의 행동은 사실 역사의 수수께끼야.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모두 수수방관할 수 있었을까?
뿐만 아니라 그런 끔찍한 일에 대해 자기네는 몰랐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데, 우스운 일이지만, 그 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p.26~ 28)



왜 그들은 침묵했을까?
그 침묵의 이유를 알기 위해 학생들과 교사는 실험을 시작합니다.
체험학습의 목적이었던 그 실험은 희망의 선전, 공동체 강조, 구호, 상징, 친위대부터 지도자의 제복에 이르기까지 주도면밀하게 진행됩니다. '파도'란 이름의 단체에 소속감을 느끼며 황홀해한 학생들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스워 보이던 구호와 상징들은 이론을 벗어나 살아 움직이며 세력을 키웁니다.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면, 너도 당연히 좋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죠.
기계적 평등과 우리에 열광하면서 '나'를 찾을 수 없는 '우리'가 등장합니다.
'나'는 '우리' 속에 묻히고, '나'가 없는 '우리'의 모습에 소속감의 기쁨 보다는 배제될까 하는 두려움이 자리 잡습니다. 당연히 반대나 다름을 말하는 것조차 두려워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죠.
그들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요?
결말은 말씀드리지는 않을게요.

로버트 O. 팩스턴은 그의 책 <파시즘(The Anatomy of Fascism)>에서 '파시즘'은 정적으로 쉽게 정의 내리기 힘든 만큼 그 단어사용의 남용을 경계하며, 군부독재나 권위주의정권과도 구별해야 함을 말합니다.
그의 의견대로라면 <파도> 속 아이들의 행동에 '파시즘'이라는 단어를 들이대기는 어려울지도 몰라요. 그런데 실험 속 아이들의 행동이 어찌나 섬뜩한지 그 단어 외에 다른 무엇으로 설명하기도 어렵기도 합니다. 나치즘을 제대로 벤치마킹하기도 했고요.

생각해보면 <파도>에서 토드 스트래서는 일상속의 파시즘이나, 우리 안의 파시즘에 대해 말한다고 생각해요.
우열감과 경쟁의 불안을 벗고자 하는 자기연민이 스스로를 '우리'라는 이름으로 무장하게 하고, 그 '우리'에 결국 자신마저 먹히는 '파시즘'의 매혹적인 수렁에 대해 얘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곳도 관용이 넘치는 토론과 비판이 풍성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우리'로 '다수'로 무장시키지 않아도 자기성찰과 자기결정, 스스로의 목소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저부터 말이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는 속담을 가운데가 최고라며 복지부동의 자세로 웅크려야함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을 볼 때 씁쓸했습니다.
씁쓸함의 진짜 이유는 저 역시 나만의 목소리 없이 우리라는 무리 뒤에 웅크리고 앉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P. S 재미있는 부분이 있어요.
책 속에서 교사 '벤 로스'는 '자유와 책임' 보다는 '규율과 질서'를 중요시 하게 된 학교에 복잡한 감정을 느낍니다.
말 잘 듣게 된 아이들 덕분에 수업이 편해진 데서 오는 안도가 첫째 감정이고 자신을 거치지 않고 머리에서 바로 추출되는 도식화된 정답을 뱉어내는 아이들에 대한 불안이 둘째 입니다.

비틀어진 기억일지 모르지만 제가 다닌 학교에서는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말하는 것은 시끄러운 아이로 낙인찍히는 지름길이었고, 오직 정답만 있는 질문에 답을 말해야 착한 아이였죠. 자기성찰과 자기결정의 능력을 함양하기보다는 단답형 시험의 성과와 진도가 최고선이었던 학교였지 싶습니다.

구체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지나치게 주관적인 <P. S> 부분을 빼야 마땅한데, 지금의 제 생각을 기록하자는 의미에서 남겨놓습니다. 정말로 사족인지라 주객전도가 무지무지 걱정되네요.

Posted by 로처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아디오스 2009.04.07 0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틀러의 달콤한 말에 속아 넘어가 동조하게 된게 아닐까 싶네요
    강대국에 대한 욕망을 잘 꺼내줬다고나할까?? ^^

    • 로처 2009.04.07 18: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면이 있겠죠?
      그래도 <파도> 이 책에 나와 있는 의문에 놀랐어요.

      왜 그들이 침묵했는가?
      어쩌면 적극적인 동참에 대한 의문보다 더 풀기 어려운 질문인지도 몰라요.

  2. 밤의추억(nightmemory) 2009.04.08 18: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쩜 그 해답은 좀 더 단순할지도... 단순히 무관심과 객관화의 산물이 아닐런지요.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기와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히틀러의 시기의 독일인들도 살인을 지지하지는 않았을겁니다. 독일 내에서 벌어지는 살인에는 분명 관대한 처벌이나 지지를 하지는 않았을껍니다. 분명 전쟁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을테고요.

    전쟁은 스포츠나 장기와 같은 게임들 처럼 승부를 정하는 방법이 정해져 있지않은 처절한 살육의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전쟁을 객관화 하는 순간 전쟁은 그 승과 패만으로 대변되는 하나의 게임으로 전락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 게임을 주도하는 것은 각 국가의 권력층의 일부이기에 일반인들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 되어버려 이겼냐 졌냐만 관심을 가질 뿐 그 내용에 대해서는 방관하게 되고 말았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내 자식에게 밥을 먹이기위해 군수공장일 지라도 돈을 준다면 일을 해야한다" 내지 하찮게는 "2000만원짜리 새 차를 갖고 싶다. 어디가 더 할부금과 이자를 싸게 해주지?" 와 같은 좀 더 그들에게 실질적인 관심사가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과거의 독일인들과는 전혀 다른 소위 좀 더 나은 인격을 가진 존재일까요?
    우리는 대중 매체를 통해서 우리 주위에 살인을 비롯하여 부조리 그리고 인권 침해가 난무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현상에 대해 어떤 행동을 취하셨나요?
    알고는 있으되 당신도 그들처럼 침묵하고 있지는 않나요?
    당신의 침묵은 현재의 옳지못한 현상에 대한 암묵적인 정치적 지지의 표현인가요?
    좋은 의도 그리고 생각 그리고 비판 만으로는 변화가 없습니다. 변화를 만드는 것은 행동입니다.
    저는 히틀러 시대의 독일인들을 두둔할 생각도 없지만 오늘날의 우리도 큰 차이가 없음에 비판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로처 2009.04.08 18: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얘기를 참 구체적으로 잘 하십니다.
      제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들이 많아서 듣고 빨리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그래서 많네요.

      저도 당시의 독일대중을 비판할 마음은 없습니다.
      먹고 살기위한 투쟁을 하기 바쁘거든요.
      그래서 이 책 읽은 소감이 나치즘이나 파시즘 보다는 저만의 목소리를 내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주가 됩니다.

1. "맙소사!"

'맙소사!'로 시작한 책입니다.
제니 필즈의 결혼부터 가아프와 헬렌의 결혼생활을 보고 있자면
<아내가 결혼했다>의 설정은 아름다운 동화책으로 여겨질 정도입니다.
존 어빙의 소설을 처음 접하는 것이라 그런지 몰라도 처음엔 많이 당혹스럽습니다.
첫 느낌을 가아프의 성격대로 표현하면 이렇게 할 수 있겠네요.

"맙소사, 이건 무슨 개수작이야!"


2. 그런데도 재미있네요.

"좆이나 빨아라." 같은 막말의 기막힌 사용에 즐거워하는 제가 별난 것일 수도 있지만요.
이 책은 이것 뿐 아니라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아요. 이를테면 '똥대가리 선생'이라 부르며
비난하는 편지를 보낸 독자에게 대응하는 방식이라던가, <그릴파르처 하숙>, <감시> 같이 소설 속 소설을 읽는 재미라던가, '로버타 멀둔'이나 '앨리스' 같은 인물의 우스움도 재미에 한 몫 합니다.


3. 위화의 <인생>, 그 책의 미국판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영화와 책 모두 <인생>을 참 좋아합니다.
<가아프가 본 세상>이라는 책 '미국판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섹스, 강간과 간통, 폭력과 살인, 그리고 죽음이 넘쳐나는 가운데, 유머가 넘치는 별난 주인공 가아프와 그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얘기들이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비계스튜' 처럼 부자이든,
'제니 필즈' 처럼 존경받는 유명인 이든,
'로버타 멀둔'처럼 강건한 몸을 가진 운동선수이든,
'엘렌 제임스파'처럼 타협을 모르는 극단적인 단체이든,
종국에는 모두 같은 운명을 맞이합니다.
죽음 그리고 잊힘.


"언젠가는 말이에요. Meine Frau, 당신도 결국 죽어요." (1권 p. 211)


살기 위해 아등바등 대며 살고 있지만 언젠가 죽어요.
바로 지금이 될 지, 7년 후일지, 70년 후일지 모르지만.
그리고 이름을 남기든 흔적 없이 사라지든 모두가 같은 운명입니다.
괴테가 묘비조차 없는 무덤의 주인보다 생전에 행복했을지는 모르는 일이죠.
그러니 이름이나 명분에 집착 말고 즐겁게 살아야겠어요.
실컷 사랑하면서 살아야겠어요.


4. 마지막으로 '가아프'가 생각하는 소설을 인용할게요.
'상상과 기억'의 경계를 애써 구분하지 말고, '상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말고,
소설처럼 살고, 현실처럼 쓰고 그렇게 살았으면 싶습니다.


<소설을 쓰는 행위란 (2권 p. 350) >

"그건 마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히 살아가게 하려는 투쟁 같아요. 끝에 가서는 죽어야 하는 사람들까지도 말예요. 살아나가야 할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그들이죠." 결국 가아프는 흡족하게 느껴지는 그런 방법으로 이 개념을 표현했다.

"소설가란 가망이 없는 환자들만 보게 되는 의사나 마찬가지에요." 가아프가 말했다.

하지만 가아프가 본 세상에서는 우리 모두가 가망이 없는 환자들이다. (2권 p. 400)
Posted by 로처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아디오스 2009.04.07 06: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삼관매혈기 읽고 있는데... 인생도 그 작가분 작품인가 봅니다..

    요책보다는 위화의 인생을 읽어봐야겠군요

    • 로처 2009.04.07 18: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허삼관매혈기 재밌죠?
      <인생>도 전 재미있었어요.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제목으로도 출간된 모양이더라고요. 공리 주연의 영화도 있어요. 굳이 비교하자면 포레스트 검프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인터넷에서 감동적인 글을 읽었습니다.
제목이 '축의금 만 삼천 원' 이었죠.
작가를 알고 싶은 마음에 인터넷을 뒤적여보니 출처가 바로 이철환 작가가 지은
이 책 <곰보빵>이었네요. 그래서 읽었지요.

저는 이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얘기는 좋아하지 않아요.
현실은 이외수 작가가 추천사에 쓴 '동물의 왕국' 이나 '오물의 제국'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 얘기는 동화와 현실 사이에 어디쯤에 있을까요?
나는 어디쯤에, 여러분은 어디쯤에 살고 있을까요?

폐지할머니의 손수레를 밀어주는 택시기사의 훈훈함과 복잡한 길에서 접촉사고가
있으면 할머니의 아들이 합의금을 왕창 뜯어낸다는 무시무시한 소문 사이에서 우리는
어디쯤 살고 있을까요?

전화 부스 안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눈물 닦는 외국인 노동자의 짠한 모습과 외국인
노동자의 범죄 기사에 흥분하며 강도 높은 처벌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우리는
어디쯤 살고 있을까요?

제 의문이 어리석었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깜빡이면서 살고 죽는 세상이 딱 떨어질 리가요.
음......그래도 어디쯤 살고 있는지 한 번 읽어보세요.
저 같이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가 흘리는 눈물로 안구건조를 치료하는 셈 쳐보세요.
그래도 밑지지는 않을거에요.

다만 지금 겪고 있는 문제보다 더 큰 걱정에 깊이 빠지신 분들은 읽기 어려우실지도 몰라요.
나와는 거리가 너무도 먼 얘기일지도 모르거든요.

마음에 들어 인용하고 싶은 글이 '축의금 만 삼천 원' 외에도 '아버지의 생일', '사랑아 ...너는 얼마나 아팠니...' 등 많아요. 인터넷에서 이미 보았던 글들도 많네요. 그 중에서 작가의 마지막 말을 인용함으로 마무리 할게요.


 아름다움의 원래 모습은 아픔이었다.

기름때 찌든 작업복을 입고 있을 때도
나는 프란츠 카프카를 읽고 있었다.
아무도 사 가지 않는 그림 옆에 서서 고개를 들 수 없을 때도
나는 알베르 카뮈를 읽고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말라르메, 스타니슬라프스키와
헤르만 헤세가 있어,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계셨기에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풀무야간학교에서 4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밤잠을 설쳐 가며 죽을힘을 다해 책 원고를 준비했다.
책 한 권을 준비하는 데 꼬박 7년이 걸렸다.
이제는 됐다 싶어 원고를 들고 출판사로 갔다.
정확히 다섯 군데 출판사에서 거절당했다.
글은 괜찮은데, 무명 필자의 글이라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원고가 한 번씩 거절당할 때마다 새로운 원고를 써 넣었다.
원고는 점점 더 좋아졌다.
어긋남도 조화가 될 수 있다는 걸, 그 어름에 알게 되었다.

원고를 다섯 번째 거절당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 출입문 쪽에 서서, 나는 울었다.
2개월 동안 책 속에 넣을 그림을 그렸다.
아픈 몸으로 밤을 새워 가며 그림 31컷을 완성했다.
아름다움의 원래 모습은 아픔이었다.


<곰보빵 p. 152, '아픔, 별이 되다' 중에서>


Posted by 로처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제노몰프 2009.04.07 1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한때는 마음을 정화시키고자(?) 감동적인 책들을 몇권 들춰본 기억이 있어요. 시도는 나쁘지 않았는데 몇권 읽다보니 역시 효능이 떨어지더군요. 나중에 생각해봤는데 다른 이들의 힘든 삶 이야기를 마치 효과좋은 약처럼 소비해버리려는 제 자신이 참 부끄럽더라구요.

    요즘도 그런 이야기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것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그 이야기 안에 담긴 진정성만큼은 존중하려고 해요. 그때마다 내 자신이 얼마나 삶을 쉽게 살아왔나 반성도 해보구요.

    <곰보빵>을 읽지 못해서 적절한 비유가 될지는 모르겠는데, 아주 가끔 '인간극장'을 볼 때가 있어요. 종종 주인공들의 삶과 그들의 노력을 보면서 울컥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마다 나 자신을 바라봅니다. 과연 저들의 모습에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저 상황에 스스로를 투영해서 그러는 것인지를요.

    • 로처 2009.04.07 18: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인간극장> 속 주인공들을 보며 무엇을 투영하길래 울컥하셨는지 짐작도 할 수 없네요. 제노몰프님을 아직 모르니까요. 그래서 저는 왜 울컥했는지 생각해 봤지요.

      그들처럼 나도 독사같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처럼 살려고 노력한다는 '동일시' 인 것으로 생각해요. 더불어 그런 진실한 삶에 대한 응원도 함께요.

      현실과 이상의 차이만큼이나 동화같은 얘기들을 소비하셔도 좋다고 생각해요. 몸에 좋은 음식 먹는 것처럼 말이죠.


아직 나이가 많지 않은 덕분인지 아니면 고달픔을 덜 겪어서인지 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제법 생생합니다. 그렇지만 기억은 기억일 뿐, 그 시절의 기분은 잊은 지 오래인듯 합니다.

예를 들면,
유리창을 깨고 들켜서 혼이 나기 전까지의 식은땀이라던가,
받아쓰기 100 점 맞았다고 부모님이 웃으실 때의 날아갈 듯한 기분이라던가,
용돈 100원을 받고 50원짜리 깐돌이를 사먹고 남은 50원의 풍족한 기분들은 제 아무리
사실을 기억한다고 해도 다시 느껴보기는 힘든 감상들입니다.

가끔은 <행복한 고물상>같은 책을 읽는 것이 그래서 즐겁습니다.
다시 만나기 힘든 어릴 적 기분들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꿈결같이 어릴 적 세상을 다녀올 수 있습니다.

작가이자 주인공인 '철환'이는
친구가 좋은 성적을 받을 것이 배 아파서 심술부리는 못된 짓도 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를 위해 용감하게 연탄재를 집어 드는 착한 일도 하고요,
시르죽은 아버지를 등 뒤에서 안아주는 따뜻한 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빵 사달라고 노래 부르다 매를 벌기도 하지요.

이제는 꿈이 아니고는 만날 수 없는 그 시절의 나와 동무들 그리고 사건들을 꿈꾸는 것처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책입니다. 위기철 작가가 지은 <아홉 살 인생> 같은 작품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이 책도 좋아하실 거라 생각해요.


P. S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많아 놀랐어요.
    그래서 퀴즈 내드립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아실지 궁금하네요. 한 번 맞춰보세요.


1. 꼭뒤를 긁다.
2. 어진혼이 나간 얼굴로
3. 지윤이의 얼굴이 오련했다.
4. 시르죽은 얼굴이셨다.
5. 별쭝맞다.
6. 껑더리되었어요.
7. 나는 선득거리며 흥뚱항뚱 그들을 바라보고만.
8. 웅숭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9. 수꿀한 생각이 들었지만.
10. 서름한 낯빛으로
11. 푼더분하게 생긴 얼굴로
12. 봉구가 만일의 경우 저지레를 할까봐
13. 객쩍은 소리 그만해
14. 입찬소리 하는 거 아냐
15. 은근짜를 부리던 뱀장수 흉내
16. 생게망게한 얼굴로 기가 막힌다는 듯.


Posted by 로처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밤의추억(Nightmemory) 2009.03.28 2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처님의 퀴즈를 보니 명확해지는군요. 제가 작가가 될 수 없고 글쓰는게 어려운 이유가....ㅠ.ㅠ 당췌 저런 표현은 어디서 배우는 건지....쩝

    • 로처 2009.03.30 20: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밤의 추억'님 답지 않은 엄살이십니다.^_________^
      저는 모른 척하는 우리 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몇 차례 봤는걸요.

      제가 읽은 소설, 산문집들 중에서 모르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한 책입니다.
      조그만 녀석이 어려운 단어를 잔뜩 안고 있네요.

  2. 아디오스 2009.03.29 0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물장수와 추억이라...
    고물가져다줬더니.. 엿 쬐끔 주길래 싸웠던 기억이 납니다..ㅋㅋ

    • 로처 2009.03.30 19: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워 ^____________^
      그런 추억이 있으시군요. 달콤살벌한 아디오스님이신가요.

      만화 '검정고무신' 같이 가난하지만 넉넉한 이철환 작가의 어릴적 이야기를 담은 책이에요.

  3. 하아암 2009.03.30 1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지레'말곤 딱 떠오르는 게 없네요. ^-^;;
    친절하게 사전 검색 결과까지 붙여놓으셨네요. ^-^

    • 로처 2009.03.30 19: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와 '저지레'를 아시다니
      저는 사전의 설명을 봐도 이해도 안되고 입에 붙지도 않네요.

      결혼 준비로 한참 바쁘실텐데 알콩달콩 행복하세요~!!

  4. Greembea 2009.03.30 2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5번하고 13번...이거밖에 모르겠네요 ^^::

    밑에 사전검색까지 붙여놓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

    • 로처 2009.03.30 2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별쭝맞다를 아시다니요.
      저는 거의 빵점이거든요. 제가 모르는 단어들을 주욱 적어놓았으니 빵점도 당연하지요.

      사전내용을 첨부한 것은 제가 기억해두기 위함도 있고요, 퀴즈 내놓고 답이 없으면 답답해 하실것 같아서 올렸지요.

1. 이 기발한 소설 창작의 힌트

아기가 흰 수염을 바람에 날리는 노인으로 태어난다면?
그리고 나이를 거꾸로 먹어 아기로 삶을 마친다면?

기발하고 재미있어서 읽게 된 책입니다.
민음사가 출간한 <피츠제럴드 단편선>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음울함 보다 재미있고 유쾌한 점은 좋네요.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마크 트웨인에게 받은 하나의 힌트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물론 힌트로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의 '마음 밭'이 있었겠지요.
아래에 이 단편소설의 시작이 된 힌트를 옮겨보겠습니다.


[ <재즈 시대의 이야기들>에 부치는 조롱 투의 글에서 피츠제럴드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 벤자민 버튼이라는 인물의 탄생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네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이 맨 처음에 오고 최악의 순간이 마지막에 온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에 영감을 받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집필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세상에서 한 남자의 인생만을 놓고 행한 실험인지라 공정한 시도였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당시 피츠제럴드가 쓴 편지들을 참고로 앤드루 크로스랜드(And-rew Crosland)가 기록한 바에 따르면, 피츠제럴드는 앨버트 비글로 페인(Albert Bigelow Paine)의 <마크 트웨인의 전기Mark Twain : A Biography>(1912)를 읽던 중 마크 트웨인이 남긴 다음과 같은 글을 접했다.

트웨인은 노년의 노쇠함을 인생에서 불필요한 부분으로 간주했다. 그는 자주 이런 말을 했었다.
"전지전능한 신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적에 내가 그분을 보조할 수 있었으면 인간이 지금과는 정반대로, 즉 늙은 몸으로 삶을 시작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늙은 몸으로 태어나 노년의 비탄과 무분별로 삶을 시작하는 것이 훨씬 나을 테니까요! 시간이 갈수록 젊어진다면 나이 먹는 것을 꺼려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늙어가는 게 아니라 젊어지는 삶을 살게 되니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여든이 아니라 열여덟 살의 상태로 나아가는 삶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맞습니다. 신께서는 일을 해내지 못한 겁니다. 지금이라도 내 도움을 받아주시면 좋을 텐데 말이죠."
] (p. 194)


기발한 소재와 이 소설 탄생의 힌트에 대한 감탄 외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네요.
'상류사회 사람들의 평판 의식'에는 여전히 메스꺼움을 느끼지만, 서평에서 말하고 있는 '재즈시대의 사회상' 이라든가 '전쟁을 통한 부와 성공', 등은 별로 의식하지 못하겠어요.

2. 영화를 볼까 말까

저는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이유를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속내를 좀 들여다보자는 것에서 찾습니다. 심지어 <트랜스포머>나 <스타쉽 트루퍼스>같은 영화라도 말이죠. 그래서 저는 중학생 시절 본 <인생>이라는 영화를 아직도 잊지 않고 좋아합니다.
그런데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망설여지네요.

'지루한데다 길기까지 하다.'는 주위 사람들의 평을 들은 것도 이유가 되고요.
더 중요한 이유는 남들 사는 얘기에 관심이 적어진 것입니다.

만약에 제목이 <벤자민 버튼의 사업지침> 이라거나, <벤자민 버튼의 주식투자> 이었다면 벤자민 버튼의 삶이나 그의 말에 더 관심을 기울였을지도 모르겠군요.

P.S  이 책은 그래픽 노블(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나 만화입니다.)과 번역 소설, 소설 원문으로 이렇게 크게 셋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Posted by 로처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Greenbea 2009.03.26 0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영화를 볼까 말까 갈등하셨을까요...::

    . 전 나중에 책으로 읽어 보고 싶군요.

    추천. 꾸~욱 누르고 갑니다!!

    • 로처 2009.03.26 20: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영화가 지루하다는 평이 영화보는 것을 망설이게 해요.
      워낙 극장에 잘 가지 않기도 하지만요.

      만화를 좋아하신다면 이 책으로 보시고요.
      민음사판을 좋아하신다면 <피츠제럴드 단편선2>가 나온 모양이니 그것으로 보시면 되겠어요.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____________________^

  2. okto 2009.09.26 0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영화로 봤는데 이거 참 괜찮았습니다.
    남 사는 이야기이긴 한데요-_- 또 형식도 평범하기는 한데;;
    이 영화의 재미는 영화적인 연출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장르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데서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원작을 읽어보진 않았습니다만 영화에서 보여지는 벤자민의 심경이나 행동에는 쉽게 넘겨짚기에는 조심스러운 성찰이 보이더군요. 신선한 내러티브의 감상만으로도 이 영화가 돈아깝진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더욱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것은 주연배우들의 연기와 분장술이구요. 지루한데 길기까지 하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는 바람에 안보셨군요. 어차피 지금은 보기 힘드니 DVD라도, 기회가 되시면, 접해보... 굳이 거부하진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 로처 2009.09.27 15: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앗 okto님이 괜찮다고 하시니 봐야겠어요.
      개인적으로 브래드피트를 좋아하기도 하니 말예요.

      추천 감사합니다 ^_____________^

연이은 사업의 실패와 파산으로 자살을 결심한 '온니 렐로넨'은 별장 근처의 헛간을 결심의 장소로 택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목을 매려고 하는 대령 '헤르만니 켐파이넨' 대령을 만납니다. 이 기막힌 우연으로 둘은 우정을 느끼고 잠시나마 위안을 얻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혼자가 아니었다!' (p. 18)




그리고 이 둘은 우정과 위안을 즐기면서 쉬다가, 기발하고도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죠.


"오늘 하루 자네와 함께 지내다 보니 떠오른 생각인데, 자네하고 나, 우리 두 사람이 함께 뭔가 일을 계획할 수 있지 않을까?"
온니 렐로넨이 신중하게 의견을 내놓았다.

<중략>

렐로넨이 말을 이었다.
"나한테 방금 떠오른 생각인데, 자살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들 말이야, 이 사람들을 전부 한자리에 집합시키면 어떨까.
함께 만나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공동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야.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자산의 걱정거리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으면, 아마 죽으려는 계획을 연기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그러니까 우리 두 사람이 여기에서 이틀 동안 한 것처럼 말이야.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우리 둘 다 기분이 훨씬 좋아졌잖아."  (p.27~31)



이 책의 시작이 이렇습니다.
사업의 실패, 알콜중독, 틀어져버린 애정, 가난, 직장생활의 실패, 등으로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재미있는 가정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렐로넨의 말대로 서로에게 위안을 얻으며, 자살을 예방하게 될지, 아니면 켐파이넨의 걱정대로 확실한 자살에 이르게 될지 결과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습게도 그들 중 서른 명 남짓한 자살결의자들은 자살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 와중에 겪는 헤프닝들이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죠.
결말은 말씀드리지 않을게요.
그렇지만 이 대사는 인용해야겠어요.

"그렇지요,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가고 있지요." (p. 257 모텔 주인장의 말)

'스스로 목숨을 끊을 필요가 없었다. 죽음은 알아서 수확을 거두어간다.
(p. 329 랑칼라 수사반장)

p. s 개인적으로는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를 추천합니다.

      아주 재미있고 가슴 짠한 영화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로처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OLEG 2009.06.05 0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년전인가.. 꽤 재밌게 읽었는데 결말이 기억이 안나네요ㅠ 중간까지만 흥미롭게 읽다가 학기가 끝나버려 도서관에 반납하고 그냥 집으로 왔나봅니다. 어쨋든 기발한 발상이긴합니다. 자살여행이라 ..
    아마 핀란드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요..?

    • 로처 2009.06.21 17: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답글이 늦어 죄송합니다.

      책도 두껍지 않고 기발하기도 하고요, 편하고 재미있는 책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기억이 벌써 가물하긴 하지만 핀란드 맞는 것으로 알고 ..... ^.^;

      방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