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메레르 - 나오미 노빅


책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아서 책소화불량에 걸린 기분입니다.
제가 직접 구입한 책들을 읽지 않는 요상한 위인인지라 주로 빌려서 봅니다.
그런데 요즘 빌리는 책들도 그대로 반납하기 일쑤여서 '죽'을 먹는 기분으로 읽은 책입니다.

09년 9월 5일 현재 5권까지 출간됐습니다.
거기까지 읽은 느낌은 재미있어요. 유치하다는 감이 없지 않은데요.
판타지의 효시이자 대작이라는 '반지의 제왕'도 그런 느낌이 있었으니, 유치하다는 느낌은 판타지에 익숙지 않은데서 오는 감상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얘기로 넘어갈게요

1. 18C 초 영국과 프랑스의 교전 시기가 배경입니다.
2. 용들은 크기와 비행능력 지적수준 그 외 불이나 독액을 분사하는 능력이 다릅니다.
3. 지적수준이 다르지만 용들은 사람과 말을 할 수 있습니다.
4. 그 용에 안장을 채우고 승무원이 탑승해서 용들은 공군복무를 합니다.
5. 영국과 달리 중국은 신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처럼 경제활동을 하고 대접받습니다.
6. 테메레르는 중국황실의 용으로 고귀한 혈통이고 지능이 높습니다.
7. 용과 조종사는 강한 애정 또는 소유의 연대의식을 갖고 살아갑니다.
8. 테메레르의 조종사 로렌스는 귀족이며 해군다운 자존감과 꼬장꼬장한 원칙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입니다.

읽은 지 좀 지났지만 1권부터 5권까지 중요한 틀이라 생각되는 것만 적어 봤어요.
이 틀에서 테메레르와 로렌스 그리고 많은 인물들이 유럽, 중국, 아프리카, 터키 등을 다니며 좌충우돌하는 얘기가 꽤나 재미있습니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시리즈, 드래곤라자 외에는 판타지를 읽어 본 적이 없어서, 판타지를 좋아하시는 분들의 이 책에 대한 평가가 궁금합니다.
어떠셨나요?


애매모호한 생각, 삐걱대는 머리

이 책에서는 용이 사람과 말을 합니다.
그런데 용끼리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없어요. 교미만 있을 뿐.
대신 용은 자신이 결정한 조종사와 '애정과 소유의 복합'인 듯 한 감정을 나눕니다.

정리해 보면요.
'로렌스'는 어려서부터 군복무를 해 온 베테랑 해군장교였고, 결투를 마다않는 전형적인 남성입니다. '테메레르' 도 수컷입니다.
그런데 '용과 용이 선택한 조종사의 밀접한 관계' 라는 설정 덕분에, 로렌스와 테메레르의 관계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연인 사이의 사랑 같은 분위기 말이죠.
거대하고 강한 용이 상대인지라 로렌스가 여성인 듯한 느낌을 받아요.
이 부분에서 제 머리는 약간 삐걱대더라고요.
처음 보는 관계가 무척이나 생경해서 그런가봅니다.

누군가가 개를 사랑하거나 고양이를 사랑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아마 '용이 말을 한다.' 는 것이 다른 느낌의 이유일 테죠.


써놓고 보니, '책소화불량' 뿐 아니라 다른 문제도 있어 보여 씁쓸하네요.
그래도 이것 또한 기록이라 생각해서 남겨두렵니다.
전투와 전쟁 이야기가 자주 나와서 그런지 '난중일기' 읽기에 다시 도전해봐야겠다는 의욕이 들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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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밤의추억(Nightmemory) 2009.10.06 2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은 예로부터 영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으니 인간과의 대화는 저에겐 그다지 생소하지는 않습니다. 숀 코너리가 용의 목소리를 맡은 '드래곤 하트'라는 영화가 문득 생각이 나는군요. 저한테는 오히려 18C 초라는 시대적 배경이 판타지 장르에는 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시기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란드가 그레이트 브리튼을 이루던 시기라서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배경과 비스무리한 시기이며 1776년도에 미국이 영국으로 독립을 쟁취했으니 불과 미국이 독립전쟁을 하기 6-70년 전에 용이 날아다니며 프랑스와 전쟁을 벌였다는 설정이니... 쫌 뭔가.. 어색하다는... 저만 그런가요?

    • 로처 2009.10.06 22: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용을 좋아해서 '드래곤 하트' 재미있게 봤어요.
      영화를 다시 보는 대신 블로그를 찾아다녀서 고 녀석 이름이 Draco 였다는 것도 다시 알아냈죠.

      '드래곤 하트'에서는 Draco가 마지막 용이라 용들이 사회를 이룰수 없었고요, 이 책에서 용이 말을 한다는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용들이 무리를 이루어 땅에 살기 때문이에요. 음.... 이를테면 닭이 말을 한다면 치킨을 비위좋게 먹기는 다 글러버린 상황이 될테고, 닭들과 전쟁을 치르게 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 것처럼요.

      네 17C 말~18C초에 이르는 배경이 요상하기도 신선하기도 한 거죠. 나폴레옹이 용을 타고 다닌다는 상상을 해보세요 ㅎㅎㅎ 맙소사. 책에서는 용들이 드랍쉽을 운송하기도 한답니다.

정답은 말하지 못해도, 자신만의 분명한 느낌과 생각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그 학교의 역사시간에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의 만행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학생이 묻습니다.


"왜 그들은 침묵했나요?"



 

 "독일 사람들은 전부 나치였나요?"
에이미가 물었다.

벤 로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독일사람 중에 나치 당원이었던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퍼센트도 안 돼."

<중략>

"당시 독일인들의 행동은 사실 역사의 수수께끼야.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모두 수수방관할 수 있었을까?
뿐만 아니라 그런 끔찍한 일에 대해 자기네는 몰랐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데, 우스운 일이지만, 그 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p.26~ 28)



왜 그들은 침묵했을까?
그 침묵의 이유를 알기 위해 학생들과 교사는 실험을 시작합니다.
체험학습의 목적이었던 그 실험은 희망의 선전, 공동체 강조, 구호, 상징, 친위대부터 지도자의 제복에 이르기까지 주도면밀하게 진행됩니다. '파도'란 이름의 단체에 소속감을 느끼며 황홀해한 학생들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스워 보이던 구호와 상징들은 이론을 벗어나 살아 움직이며 세력을 키웁니다.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면, 너도 당연히 좋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죠.
기계적 평등과 우리에 열광하면서 '나'를 찾을 수 없는 '우리'가 등장합니다.
'나'는 '우리' 속에 묻히고, '나'가 없는 '우리'의 모습에 소속감의 기쁨 보다는 배제될까 하는 두려움이 자리 잡습니다. 당연히 반대나 다름을 말하는 것조차 두려워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죠.
그들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요?
결말은 말씀드리지는 않을게요.

로버트 O. 팩스턴은 그의 책 <파시즘(The Anatomy of Fascism)>에서 '파시즘'은 정적으로 쉽게 정의 내리기 힘든 만큼 그 단어사용의 남용을 경계하며, 군부독재나 권위주의정권과도 구별해야 함을 말합니다.
그의 의견대로라면 <파도> 속 아이들의 행동에 '파시즘'이라는 단어를 들이대기는 어려울지도 몰라요. 그런데 실험 속 아이들의 행동이 어찌나 섬뜩한지 그 단어 외에 다른 무엇으로 설명하기도 어렵기도 합니다. 나치즘을 제대로 벤치마킹하기도 했고요.

생각해보면 <파도>에서 토드 스트래서는 일상속의 파시즘이나, 우리 안의 파시즘에 대해 말한다고 생각해요.
우열감과 경쟁의 불안을 벗고자 하는 자기연민이 스스로를 '우리'라는 이름으로 무장하게 하고, 그 '우리'에 결국 자신마저 먹히는 '파시즘'의 매혹적인 수렁에 대해 얘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곳도 관용이 넘치는 토론과 비판이 풍성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우리'로 '다수'로 무장시키지 않아도 자기성찰과 자기결정, 스스로의 목소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저부터 말이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는 속담을 가운데가 최고라며 복지부동의 자세로 웅크려야함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을 볼 때 씁쓸했습니다.
씁쓸함의 진짜 이유는 저 역시 나만의 목소리 없이 우리라는 무리 뒤에 웅크리고 앉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P. S 재미있는 부분이 있어요.
책 속에서 교사 '벤 로스'는 '자유와 책임' 보다는 '규율과 질서'를 중요시 하게 된 학교에 복잡한 감정을 느낍니다.
말 잘 듣게 된 아이들 덕분에 수업이 편해진 데서 오는 안도가 첫째 감정이고 자신을 거치지 않고 머리에서 바로 추출되는 도식화된 정답을 뱉어내는 아이들에 대한 불안이 둘째 입니다.

비틀어진 기억일지 모르지만 제가 다닌 학교에서는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말하는 것은 시끄러운 아이로 낙인찍히는 지름길이었고, 오직 정답만 있는 질문에 답을 말해야 착한 아이였죠. 자기성찰과 자기결정의 능력을 함양하기보다는 단답형 시험의 성과와 진도가 최고선이었던 학교였지 싶습니다.

구체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지나치게 주관적인 <P. S> 부분을 빼야 마땅한데, 지금의 제 생각을 기록하자는 의미에서 남겨놓습니다. 정말로 사족인지라 주객전도가 무지무지 걱정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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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디오스 2009.04.07 0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틀러의 달콤한 말에 속아 넘어가 동조하게 된게 아닐까 싶네요
    강대국에 대한 욕망을 잘 꺼내줬다고나할까?? ^^

    • 로처 2009.04.07 18: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면이 있겠죠?
      그래도 <파도> 이 책에 나와 있는 의문에 놀랐어요.

      왜 그들이 침묵했는가?
      어쩌면 적극적인 동참에 대한 의문보다 더 풀기 어려운 질문인지도 몰라요.

  2. 밤의추억(nightmemory) 2009.04.08 18: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쩜 그 해답은 좀 더 단순할지도... 단순히 무관심과 객관화의 산물이 아닐런지요.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기와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히틀러의 시기의 독일인들도 살인을 지지하지는 않았을겁니다. 독일 내에서 벌어지는 살인에는 분명 관대한 처벌이나 지지를 하지는 않았을껍니다. 분명 전쟁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을테고요.

    전쟁은 스포츠나 장기와 같은 게임들 처럼 승부를 정하는 방법이 정해져 있지않은 처절한 살육의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전쟁을 객관화 하는 순간 전쟁은 그 승과 패만으로 대변되는 하나의 게임으로 전락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 게임을 주도하는 것은 각 국가의 권력층의 일부이기에 일반인들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 되어버려 이겼냐 졌냐만 관심을 가질 뿐 그 내용에 대해서는 방관하게 되고 말았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내 자식에게 밥을 먹이기위해 군수공장일 지라도 돈을 준다면 일을 해야한다" 내지 하찮게는 "2000만원짜리 새 차를 갖고 싶다. 어디가 더 할부금과 이자를 싸게 해주지?" 와 같은 좀 더 그들에게 실질적인 관심사가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과거의 독일인들과는 전혀 다른 소위 좀 더 나은 인격을 가진 존재일까요?
    우리는 대중 매체를 통해서 우리 주위에 살인을 비롯하여 부조리 그리고 인권 침해가 난무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현상에 대해 어떤 행동을 취하셨나요?
    알고는 있으되 당신도 그들처럼 침묵하고 있지는 않나요?
    당신의 침묵은 현재의 옳지못한 현상에 대한 암묵적인 정치적 지지의 표현인가요?
    좋은 의도 그리고 생각 그리고 비판 만으로는 변화가 없습니다. 변화를 만드는 것은 행동입니다.
    저는 히틀러 시대의 독일인들을 두둔할 생각도 없지만 오늘날의 우리도 큰 차이가 없음에 비판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로처 2009.04.08 18: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얘기를 참 구체적으로 잘 하십니다.
      제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들이 많아서 듣고 빨리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그래서 많네요.

      저도 당시의 독일대중을 비판할 마음은 없습니다.
      먹고 살기위한 투쟁을 하기 바쁘거든요.
      그래서 이 책 읽은 소감이 나치즘이나 파시즘 보다는 저만의 목소리를 내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주가 됩니다.

1. "맙소사!"

'맙소사!'로 시작한 책입니다.
제니 필즈의 결혼부터 가아프와 헬렌의 결혼생활을 보고 있자면
<아내가 결혼했다>의 설정은 아름다운 동화책으로 여겨질 정도입니다.
존 어빙의 소설을 처음 접하는 것이라 그런지 몰라도 처음엔 많이 당혹스럽습니다.
첫 느낌을 가아프의 성격대로 표현하면 이렇게 할 수 있겠네요.

"맙소사, 이건 무슨 개수작이야!"


2. 그런데도 재미있네요.

"좆이나 빨아라." 같은 막말의 기막힌 사용에 즐거워하는 제가 별난 것일 수도 있지만요.
이 책은 이것 뿐 아니라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아요. 이를테면 '똥대가리 선생'이라 부르며
비난하는 편지를 보낸 독자에게 대응하는 방식이라던가, <그릴파르처 하숙>, <감시> 같이 소설 속 소설을 읽는 재미라던가, '로버타 멀둔'이나 '앨리스' 같은 인물의 우스움도 재미에 한 몫 합니다.


3. 위화의 <인생>, 그 책의 미국판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영화와 책 모두 <인생>을 참 좋아합니다.
<가아프가 본 세상>이라는 책 '미국판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섹스, 강간과 간통, 폭력과 살인, 그리고 죽음이 넘쳐나는 가운데, 유머가 넘치는 별난 주인공 가아프와 그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얘기들이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비계스튜' 처럼 부자이든,
'제니 필즈' 처럼 존경받는 유명인 이든,
'로버타 멀둔'처럼 강건한 몸을 가진 운동선수이든,
'엘렌 제임스파'처럼 타협을 모르는 극단적인 단체이든,
종국에는 모두 같은 운명을 맞이합니다.
죽음 그리고 잊힘.


"언젠가는 말이에요. Meine Frau, 당신도 결국 죽어요." (1권 p. 211)


살기 위해 아등바등 대며 살고 있지만 언젠가 죽어요.
바로 지금이 될 지, 7년 후일지, 70년 후일지 모르지만.
그리고 이름을 남기든 흔적 없이 사라지든 모두가 같은 운명입니다.
괴테가 묘비조차 없는 무덤의 주인보다 생전에 행복했을지는 모르는 일이죠.
그러니 이름이나 명분에 집착 말고 즐겁게 살아야겠어요.
실컷 사랑하면서 살아야겠어요.


4. 마지막으로 '가아프'가 생각하는 소설을 인용할게요.
'상상과 기억'의 경계를 애써 구분하지 말고, '상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말고,
소설처럼 살고, 현실처럼 쓰고 그렇게 살았으면 싶습니다.


<소설을 쓰는 행위란 (2권 p. 350) >

"그건 마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히 살아가게 하려는 투쟁 같아요. 끝에 가서는 죽어야 하는 사람들까지도 말예요. 살아나가야 할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그들이죠." 결국 가아프는 흡족하게 느껴지는 그런 방법으로 이 개념을 표현했다.

"소설가란 가망이 없는 환자들만 보게 되는 의사나 마찬가지에요." 가아프가 말했다.

하지만 가아프가 본 세상에서는 우리 모두가 가망이 없는 환자들이다. (2권 p.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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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디오스 2009.04.07 06: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삼관매혈기 읽고 있는데... 인생도 그 작가분 작품인가 봅니다..

    요책보다는 위화의 인생을 읽어봐야겠군요

    • 로처 2009.04.07 18: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허삼관매혈기 재밌죠?
      <인생>도 전 재미있었어요.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제목으로도 출간된 모양이더라고요. 공리 주연의 영화도 있어요. 굳이 비교하자면 포레스트 검프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인터넷에서 감동적인 글을 읽었습니다.
제목이 '축의금 만 삼천 원' 이었죠.
작가를 알고 싶은 마음에 인터넷을 뒤적여보니 출처가 바로 이철환 작가가 지은
이 책 <곰보빵>이었네요. 그래서 읽었지요.

저는 이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얘기는 좋아하지 않아요.
현실은 이외수 작가가 추천사에 쓴 '동물의 왕국' 이나 '오물의 제국'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 얘기는 동화와 현실 사이에 어디쯤에 있을까요?
나는 어디쯤에, 여러분은 어디쯤에 살고 있을까요?

폐지할머니의 손수레를 밀어주는 택시기사의 훈훈함과 복잡한 길에서 접촉사고가
있으면 할머니의 아들이 합의금을 왕창 뜯어낸다는 무시무시한 소문 사이에서 우리는
어디쯤 살고 있을까요?

전화 부스 안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눈물 닦는 외국인 노동자의 짠한 모습과 외국인
노동자의 범죄 기사에 흥분하며 강도 높은 처벌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우리는
어디쯤 살고 있을까요?

제 의문이 어리석었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깜빡이면서 살고 죽는 세상이 딱 떨어질 리가요.
음......그래도 어디쯤 살고 있는지 한 번 읽어보세요.
저 같이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가 흘리는 눈물로 안구건조를 치료하는 셈 쳐보세요.
그래도 밑지지는 않을거에요.

다만 지금 겪고 있는 문제보다 더 큰 걱정에 깊이 빠지신 분들은 읽기 어려우실지도 몰라요.
나와는 거리가 너무도 먼 얘기일지도 모르거든요.

마음에 들어 인용하고 싶은 글이 '축의금 만 삼천 원' 외에도 '아버지의 생일', '사랑아 ...너는 얼마나 아팠니...' 등 많아요. 인터넷에서 이미 보았던 글들도 많네요. 그 중에서 작가의 마지막 말을 인용함으로 마무리 할게요.


 아름다움의 원래 모습은 아픔이었다.

기름때 찌든 작업복을 입고 있을 때도
나는 프란츠 카프카를 읽고 있었다.
아무도 사 가지 않는 그림 옆에 서서 고개를 들 수 없을 때도
나는 알베르 카뮈를 읽고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말라르메, 스타니슬라프스키와
헤르만 헤세가 있어,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계셨기에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풀무야간학교에서 4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밤잠을 설쳐 가며 죽을힘을 다해 책 원고를 준비했다.
책 한 권을 준비하는 데 꼬박 7년이 걸렸다.
이제는 됐다 싶어 원고를 들고 출판사로 갔다.
정확히 다섯 군데 출판사에서 거절당했다.
글은 괜찮은데, 무명 필자의 글이라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원고가 한 번씩 거절당할 때마다 새로운 원고를 써 넣었다.
원고는 점점 더 좋아졌다.
어긋남도 조화가 될 수 있다는 걸, 그 어름에 알게 되었다.

원고를 다섯 번째 거절당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 출입문 쪽에 서서, 나는 울었다.
2개월 동안 책 속에 넣을 그림을 그렸다.
아픈 몸으로 밤을 새워 가며 그림 31컷을 완성했다.
아름다움의 원래 모습은 아픔이었다.


<곰보빵 p. 152, '아픔, 별이 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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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노몰프 2009.04.07 1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한때는 마음을 정화시키고자(?) 감동적인 책들을 몇권 들춰본 기억이 있어요. 시도는 나쁘지 않았는데 몇권 읽다보니 역시 효능이 떨어지더군요. 나중에 생각해봤는데 다른 이들의 힘든 삶 이야기를 마치 효과좋은 약처럼 소비해버리려는 제 자신이 참 부끄럽더라구요.

    요즘도 그런 이야기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것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그 이야기 안에 담긴 진정성만큼은 존중하려고 해요. 그때마다 내 자신이 얼마나 삶을 쉽게 살아왔나 반성도 해보구요.

    <곰보빵>을 읽지 못해서 적절한 비유가 될지는 모르겠는데, 아주 가끔 '인간극장'을 볼 때가 있어요. 종종 주인공들의 삶과 그들의 노력을 보면서 울컥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마다 나 자신을 바라봅니다. 과연 저들의 모습에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저 상황에 스스로를 투영해서 그러는 것인지를요.

    • 로처 2009.04.07 18: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인간극장> 속 주인공들을 보며 무엇을 투영하길래 울컥하셨는지 짐작도 할 수 없네요. 제노몰프님을 아직 모르니까요. 그래서 저는 왜 울컥했는지 생각해 봤지요.

      그들처럼 나도 독사같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처럼 살려고 노력한다는 '동일시' 인 것으로 생각해요. 더불어 그런 진실한 삶에 대한 응원도 함께요.

      현실과 이상의 차이만큼이나 동화같은 얘기들을 소비하셔도 좋다고 생각해요. 몸에 좋은 음식 먹는 것처럼 말이죠.


아직 나이가 많지 않은 덕분인지 아니면 고달픔을 덜 겪어서인지 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제법 생생합니다. 그렇지만 기억은 기억일 뿐, 그 시절의 기분은 잊은 지 오래인듯 합니다.

예를 들면,
유리창을 깨고 들켜서 혼이 나기 전까지의 식은땀이라던가,
받아쓰기 100 점 맞았다고 부모님이 웃으실 때의 날아갈 듯한 기분이라던가,
용돈 100원을 받고 50원짜리 깐돌이를 사먹고 남은 50원의 풍족한 기분들은 제 아무리
사실을 기억한다고 해도 다시 느껴보기는 힘든 감상들입니다.

가끔은 <행복한 고물상>같은 책을 읽는 것이 그래서 즐겁습니다.
다시 만나기 힘든 어릴 적 기분들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꿈결같이 어릴 적 세상을 다녀올 수 있습니다.

작가이자 주인공인 '철환'이는
친구가 좋은 성적을 받을 것이 배 아파서 심술부리는 못된 짓도 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를 위해 용감하게 연탄재를 집어 드는 착한 일도 하고요,
시르죽은 아버지를 등 뒤에서 안아주는 따뜻한 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빵 사달라고 노래 부르다 매를 벌기도 하지요.

이제는 꿈이 아니고는 만날 수 없는 그 시절의 나와 동무들 그리고 사건들을 꿈꾸는 것처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책입니다. 위기철 작가가 지은 <아홉 살 인생> 같은 작품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이 책도 좋아하실 거라 생각해요.


P. S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많아 놀랐어요.
    그래서 퀴즈 내드립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아실지 궁금하네요. 한 번 맞춰보세요.


1. 꼭뒤를 긁다.
2. 어진혼이 나간 얼굴로
3. 지윤이의 얼굴이 오련했다.
4. 시르죽은 얼굴이셨다.
5. 별쭝맞다.
6. 껑더리되었어요.
7. 나는 선득거리며 흥뚱항뚱 그들을 바라보고만.
8. 웅숭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9. 수꿀한 생각이 들었지만.
10. 서름한 낯빛으로
11. 푼더분하게 생긴 얼굴로
12. 봉구가 만일의 경우 저지레를 할까봐
13. 객쩍은 소리 그만해
14. 입찬소리 하는 거 아냐
15. 은근짜를 부리던 뱀장수 흉내
16. 생게망게한 얼굴로 기가 막힌다는 듯.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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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밤의추억(Nightmemory) 2009.03.28 2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처님의 퀴즈를 보니 명확해지는군요. 제가 작가가 될 수 없고 글쓰는게 어려운 이유가....ㅠ.ㅠ 당췌 저런 표현은 어디서 배우는 건지....쩝

    • 로처 2009.03.30 20: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밤의 추억'님 답지 않은 엄살이십니다.^_________^
      저는 모른 척하는 우리 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몇 차례 봤는걸요.

      제가 읽은 소설, 산문집들 중에서 모르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한 책입니다.
      조그만 녀석이 어려운 단어를 잔뜩 안고 있네요.

  2. 아디오스 2009.03.29 0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물장수와 추억이라...
    고물가져다줬더니.. 엿 쬐끔 주길래 싸웠던 기억이 납니다..ㅋㅋ

    • 로처 2009.03.30 19: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워 ^____________^
      그런 추억이 있으시군요. 달콤살벌한 아디오스님이신가요.

      만화 '검정고무신' 같이 가난하지만 넉넉한 이철환 작가의 어릴적 이야기를 담은 책이에요.

  3. 하아암 2009.03.30 1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지레'말곤 딱 떠오르는 게 없네요. ^-^;;
    친절하게 사전 검색 결과까지 붙여놓으셨네요. ^-^

    • 로처 2009.03.30 19: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와 '저지레'를 아시다니
      저는 사전의 설명을 봐도 이해도 안되고 입에 붙지도 않네요.

      결혼 준비로 한참 바쁘실텐데 알콩달콩 행복하세요~!!

  4. Greembea 2009.03.30 2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5번하고 13번...이거밖에 모르겠네요 ^^::

    밑에 사전검색까지 붙여놓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

    • 로처 2009.03.30 2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별쭝맞다를 아시다니요.
      저는 거의 빵점이거든요. 제가 모르는 단어들을 주욱 적어놓았으니 빵점도 당연하지요.

      사전내용을 첨부한 것은 제가 기억해두기 위함도 있고요, 퀴즈 내놓고 답이 없으면 답답해 하실것 같아서 올렸지요.

1. 이 기발한 소설 창작의 힌트

아기가 흰 수염을 바람에 날리는 노인으로 태어난다면?
그리고 나이를 거꾸로 먹어 아기로 삶을 마친다면?

기발하고 재미있어서 읽게 된 책입니다.
민음사가 출간한 <피츠제럴드 단편선>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음울함 보다 재미있고 유쾌한 점은 좋네요.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마크 트웨인에게 받은 하나의 힌트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물론 힌트로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의 '마음 밭'이 있었겠지요.
아래에 이 단편소설의 시작이 된 힌트를 옮겨보겠습니다.


[ <재즈 시대의 이야기들>에 부치는 조롱 투의 글에서 피츠제럴드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 벤자민 버튼이라는 인물의 탄생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네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이 맨 처음에 오고 최악의 순간이 마지막에 온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에 영감을 받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집필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세상에서 한 남자의 인생만을 놓고 행한 실험인지라 공정한 시도였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당시 피츠제럴드가 쓴 편지들을 참고로 앤드루 크로스랜드(And-rew Crosland)가 기록한 바에 따르면, 피츠제럴드는 앨버트 비글로 페인(Albert Bigelow Paine)의 <마크 트웨인의 전기Mark Twain : A Biography>(1912)를 읽던 중 마크 트웨인이 남긴 다음과 같은 글을 접했다.

트웨인은 노년의 노쇠함을 인생에서 불필요한 부분으로 간주했다. 그는 자주 이런 말을 했었다.
"전지전능한 신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적에 내가 그분을 보조할 수 있었으면 인간이 지금과는 정반대로, 즉 늙은 몸으로 삶을 시작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늙은 몸으로 태어나 노년의 비탄과 무분별로 삶을 시작하는 것이 훨씬 나을 테니까요! 시간이 갈수록 젊어진다면 나이 먹는 것을 꺼려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늙어가는 게 아니라 젊어지는 삶을 살게 되니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여든이 아니라 열여덟 살의 상태로 나아가는 삶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맞습니다. 신께서는 일을 해내지 못한 겁니다. 지금이라도 내 도움을 받아주시면 좋을 텐데 말이죠."
] (p. 194)


기발한 소재와 이 소설 탄생의 힌트에 대한 감탄 외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네요.
'상류사회 사람들의 평판 의식'에는 여전히 메스꺼움을 느끼지만, 서평에서 말하고 있는 '재즈시대의 사회상' 이라든가 '전쟁을 통한 부와 성공', 등은 별로 의식하지 못하겠어요.

2. 영화를 볼까 말까

저는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이유를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속내를 좀 들여다보자는 것에서 찾습니다. 심지어 <트랜스포머>나 <스타쉽 트루퍼스>같은 영화라도 말이죠. 그래서 저는 중학생 시절 본 <인생>이라는 영화를 아직도 잊지 않고 좋아합니다.
그런데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망설여지네요.

'지루한데다 길기까지 하다.'는 주위 사람들의 평을 들은 것도 이유가 되고요.
더 중요한 이유는 남들 사는 얘기에 관심이 적어진 것입니다.

만약에 제목이 <벤자민 버튼의 사업지침> 이라거나, <벤자민 버튼의 주식투자> 이었다면 벤자민 버튼의 삶이나 그의 말에 더 관심을 기울였을지도 모르겠군요.

P.S  이 책은 그래픽 노블(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나 만화입니다.)과 번역 소설, 소설 원문으로 이렇게 크게 셋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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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reenbea 2009.03.26 0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영화를 볼까 말까 갈등하셨을까요...::

    . 전 나중에 책으로 읽어 보고 싶군요.

    추천. 꾸~욱 누르고 갑니다!!

    • 로처 2009.03.26 20: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영화가 지루하다는 평이 영화보는 것을 망설이게 해요.
      워낙 극장에 잘 가지 않기도 하지만요.

      만화를 좋아하신다면 이 책으로 보시고요.
      민음사판을 좋아하신다면 <피츠제럴드 단편선2>가 나온 모양이니 그것으로 보시면 되겠어요.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____________________^

  2. okto 2009.09.26 0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영화로 봤는데 이거 참 괜찮았습니다.
    남 사는 이야기이긴 한데요-_- 또 형식도 평범하기는 한데;;
    이 영화의 재미는 영화적인 연출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장르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데서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원작을 읽어보진 않았습니다만 영화에서 보여지는 벤자민의 심경이나 행동에는 쉽게 넘겨짚기에는 조심스러운 성찰이 보이더군요. 신선한 내러티브의 감상만으로도 이 영화가 돈아깝진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더욱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것은 주연배우들의 연기와 분장술이구요. 지루한데 길기까지 하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는 바람에 안보셨군요. 어차피 지금은 보기 힘드니 DVD라도, 기회가 되시면, 접해보... 굳이 거부하진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 로처 2009.09.27 15: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앗 okto님이 괜찮다고 하시니 봐야겠어요.
      개인적으로 브래드피트를 좋아하기도 하니 말예요.

      추천 감사합니다 ^_____________^

연이은 사업의 실패와 파산으로 자살을 결심한 '온니 렐로넨'은 별장 근처의 헛간을 결심의 장소로 택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목을 매려고 하는 대령 '헤르만니 켐파이넨' 대령을 만납니다. 이 기막힌 우연으로 둘은 우정을 느끼고 잠시나마 위안을 얻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혼자가 아니었다!' (p. 18)




그리고 이 둘은 우정과 위안을 즐기면서 쉬다가, 기발하고도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죠.


"오늘 하루 자네와 함께 지내다 보니 떠오른 생각인데, 자네하고 나, 우리 두 사람이 함께 뭔가 일을 계획할 수 있지 않을까?"
온니 렐로넨이 신중하게 의견을 내놓았다.

<중략>

렐로넨이 말을 이었다.
"나한테 방금 떠오른 생각인데, 자살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들 말이야, 이 사람들을 전부 한자리에 집합시키면 어떨까.
함께 만나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공동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야.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자산의 걱정거리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으면, 아마 죽으려는 계획을 연기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그러니까 우리 두 사람이 여기에서 이틀 동안 한 것처럼 말이야.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우리 둘 다 기분이 훨씬 좋아졌잖아."  (p.27~31)



이 책의 시작이 이렇습니다.
사업의 실패, 알콜중독, 틀어져버린 애정, 가난, 직장생활의 실패, 등으로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재미있는 가정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렐로넨의 말대로 서로에게 위안을 얻으며, 자살을 예방하게 될지, 아니면 켐파이넨의 걱정대로 확실한 자살에 이르게 될지 결과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습게도 그들 중 서른 명 남짓한 자살결의자들은 자살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 와중에 겪는 헤프닝들이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죠.
결말은 말씀드리지 않을게요.
그렇지만 이 대사는 인용해야겠어요.

"그렇지요,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가고 있지요." (p. 257 모텔 주인장의 말)

'스스로 목숨을 끊을 필요가 없었다. 죽음은 알아서 수확을 거두어간다.
(p. 329 랑칼라 수사반장)

p. s 개인적으로는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를 추천합니다.

      아주 재미있고 가슴 짠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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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LEG 2009.06.05 0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년전인가.. 꽤 재밌게 읽었는데 결말이 기억이 안나네요ㅠ 중간까지만 흥미롭게 읽다가 학기가 끝나버려 도서관에 반납하고 그냥 집으로 왔나봅니다. 어쨋든 기발한 발상이긴합니다. 자살여행이라 ..
    아마 핀란드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요..?

    • 로처 2009.06.21 17: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답글이 늦어 죄송합니다.

      책도 두껍지 않고 기발하기도 하고요, 편하고 재미있는 책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기억이 벌써 가물하긴 하지만 핀란드 맞는 것으로 알고 ..... ^.^;

      방문 감사합니다.

인도네시아 인근의 상공을 날던 비행기가 악천후 속에서 추락합니다.
48 명의 생존자는 운 좋게도 지상낙원 같은 섬에 안착하게 되고, 이런 익숙한 소재로 이 책은 시작합니다. 그리고 섬에서 생존자들이 겪게 되는 갖가지 일들의 조각조각 제시되죠.

진부할 정도로 익숙한 소재이고, 툭툭 끊어지는 듯 한 얘기들에도 불구하고 책은 재미있습니다. 생존을 걱정해야 할 상황에서도 언어주도권으로 다투거나 종교의례로 다투는 장면도 좋았고요, 성생활이나 가족관의 차이를 드러내는 장면이나, 팀 단위 조직을 운영해 가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어요.

일부는 자신이 있었던 섬생활을 유토피아 비슷하게 말하며 문명을 거부합니다.


TV나 라디오가 없어도, 술집이나 오락시설이 없어도, 대통령이나 시장이 없어도, 영화나 드라마가 없어도, 회사나 직장이 없어도, 신문이나 잡지가 없어도,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이 없어도, 회사나 직장이 없어도, 신문이나 잡지가 없어도, 판사나 변호사가 없어도, 경찰이나 119가 없어도, 전화나 우편배달부가 없어도, 전기나 석유가 없어도, 자동차나 비행기가 없어도 전혀, 진짜 전혀 불편하지 않았소. 오히려 우리가 저 문명세계로 돌아가면 그거야 말로 진짜 고통과 불행의 시작일 거요. (p. 229)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유토피아는 그다지 환상적이지 못합니다.
아니 믿기 힘듭니다.

그들 역시
생존을 위한 노동을 합니다.
여전히 술과 담배를 즐기고요.
육식을 주로 하는 식문화도 그대로입니다.
젊고 건강한데다, 의료서비스도 확실하고요.
소규모의 직접민주방식이긴 하지만, 리더와 조직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에 벌써 규칙과 법 그리고 형벌도 등장했습니다.

그들의 유토피아는 젊고 부족함 없는 사람들이 풍성한 자연을 소비하는 즐거움만 부각한 것입니다. 결국 그곳은 완벽한 휴양지에 다름없었죠.

만약에 그곳에 사람이 늘어나면,
조난 동료라는 신뢰는 무뎌지고 이상적이던 직접민주제는 운영하기 힘들 겁니다.
그들의 육식을 섬은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할테고 냉동육을 수입해야 할 겁니다.
태형이 등장한 것처럼, 형벌과 법률은 갈수록 늘어나겠죠.

저는 <스머프>라는 만화를 참 좋아했습니다.
그런 방식의 소규모공동체가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요.
그래서 이 책에서 지금까지의 욕심(대표적으로 육식)을 내려놓지 않고 유토피아를 얘기하는 모순이 보기 싫습니다.
어쩌면 작가가 노리는 것일지도 모르지만요.



P. S 그냥 뜬금없이 다음 글이 좋아서 인용해 봅니다.


[ 여러 신문에 수많은 기사를 썼으나 그때만 반짝했을 뿐, 시간이 지나버리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시간에 묶인 글은 눈 속의 오솔길처럼 겨울 한때만 쓸모가 있다. 봄이 오면 녹아버리고 여름이 되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더 이상 필요 없으면 사람들은 잊는 법이다. (p. 12) ]


두고두고 곱씹어볼 좋은 글이 아니면, 의미가 없고 공해일 뿐이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겨울 한 철 쓰여도 의미가 있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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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디오스 2009.03.17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낯선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사상의 차이 같은걸 보여주는 책인가 봅니다.
    서바이벌+갈등이 가득담긴 ^^

    • 로처 2009.03.17 2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서바이벌 측면이 많이 약해요.
      예를들면 불을 어떻게 구했는지는 전혀 나와있지 않거든요. 그래도 재미는 있답니다.

악몽을 꿉니다.
자신이 두려워했던 것들이 이뤄지는 악몽.
어린 아이라면 귀신이나 유령이 등장할 것이고, 소년이라면 친구들과의 다툼일 수도 있고요. 학생이라면 시험에서 떨어지는 꿈일 수도 있고, 직장인은 해고당하는 꿈일 수도 있겠죠.
연인들은 이별하는 악몽을 꿀 수도 있겠네요.

지금 저는 저만의 악몽이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네요......
여러분은 어떤 악몽이 최악이셨는지요?

이 책에는 이런 악몽 중에서 주로 인간관계에 대한 악몽이 등장합니다.
- 저만의 생각으로 정확히 '외면' 입니다.
주인공들에게 사랑하는 연인이나 친구들로부터 외면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남들에게 비루하게 보이지 않을까, 바다 위에 떠다니는 부목(浮木)처럼 보이지 않을까 염려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가난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등장하지만(오월제의 고든).
<다시 찾아온 바빌론>에서 '찰리 웨일즈'는 돌이킬 수 없는 아내와의 화해 때문에 괴로워하고 처형부부의 자신에 대한 불신에 힘들어 합니다.
그리고 <광란의 일요일>에는 '남의 눈치 보기'의 한 대목을 볼 수 있습니다.

[ "모두 겁을 먹고 있어요, 안 그런가요?"
칵테일 잔을 멍하니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모두 다른 사람의 실수를 찾아내려고 하거나, 아니면 자신에게 명예가 될 만한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확신하고 있어요, 물론 당신의 집에서는 그렇지 않지만요." 그는 성급히 자신이 한 말을 덮어버렸다. (p. 105) ]



<부잣집 아이>에서 '앤슨'은 결혼으로부터 우정을 빼앗기고는 고독을 느낍니다.

[ 스물아홉 살이 된 앤슨에게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점점 늘어나는 고독감이었다.
그는 이제 영영 결혼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가 신랑의 들러리를 섰거나
안내를 맡았던 결혼식만 해도 벌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집에 있는 서랍 하나에는 이런저런 결혼 파티의 기념 넥타이로 넘쳐났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는 채 일 년도 넘기지 못한 몇몇 로맨스를 상징하는 넥타이도 있었고, 지금은 그의 삶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린 부부를 상징하는 넥타이도 있었다. 스카프 핀이며 금 연필이며 커프스 단추며 한 세대의
신랑들이 준 선물들이 그의 보석 상자에서 빠져나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결혼식에 참석할 때마다 그는 신랑의 위치에 서 있는 자신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 모든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해 주는 그의 감정 밑바닥에는 자신의 결혼에 대한 절망감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서른이 가까워지면서 그는 결혼이라는 것이 특히 최근에 와서 우정을 잠식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실망했다. 여러 그룹의 친구들이 안타깝게도 해체되어 사라져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p. 270) ]



결국 앤슨은 사랑하기보다는 사랑받는 쪽을 택하고 잠시나마 위로를 받습니다.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쇳가루가 자석에 달라붙듯 자신에게 반응을 보이고, 자신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그를 도와주며 그에게 무언가 약속을 해주는 누군가 말이다. 그 약속이 어떤 것인지 나는 잘 모른다. 어쩌면 그가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그 우월감을 보살피고 보호해 주기 위해 자신의 가장 찬란하고 신선하고 소중한 시간을 바칠 여성들이 이  세상에 언제나 존재할 것이라는 그런 약속일는지도 모른다. (p. 286) ]


<오월제>에서 고든의 참담한 경제력은 친구 '딘'의 외면을 낳고, 그 모습을 주절대자 옛 연인 '이디스'도 '손을 뺍니다.'

이 책에 있는 9개의 단편소설 중에서 <다시 찾아온 바빌론>에서 딸 오노리아와의 대화 장면 외에는 따뜻한 인간관계는 찾아보기가 힘들었어요. 눈치보고, 소외될까 두려워하고, 그렇다고 돌아가 쉴만한 유년의 추억이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즐겁고 따뜻한 추억은 잊은 지 오래고, 외로움에 떠는 주인공을 보면서 쓰라림도 평안함도 느낍니다. 쓰라림도 평안함도 모두 동질감에서 오는듯 합니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 가는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그 불행의 주인공이 '가상인물'이기에 양심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워서 더 평안한 것이겠죠.

P.S.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소설은 '속죄양'같은 역할도 해주는가 봅니다.
나만의 문제인 것만 같은 문제들, 현실로는 남에게 떠 넘길수 없는 고민과 불행을 대신 지고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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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노몰프 2009.03.13 2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쓰라림도 평안함도 모두 동질감에서 오는듯 합니다.' - 등장인물의 아픔이 내것처럼 생생해 쓰라리기도 하고, 또는 나와 같은 고민을 안고 있어 동질감의 평안을 느끼게 된다는 의미인가요? 그렇다면 굉장히 공감이 되네요. 이 책은 읽지 못했지만 간혹 그런 작품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굳이 경중을 따지자면 전 좀 씁쓸하게 느끼는 편이에요.^^

    • 로처 2009.03.15 0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뒤에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걸 느꼈어요.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가끔은 하찮고 바보같아 보이기도 하는 주인공에게 동질감을 느끼네요.

      요거 소설읽는 재미를 이제야 좀 알 것도 같아요.^___^

  2. 정철 2010.08.27 1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설의 제국 - 소설로 읽는 아메리카의 초상' 김욱동 교수님 강좌
    http://blog.daum.net/pangloss/6940330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
마을에서 유일하게 추천을 받아 시험을 본 '주 시험'에서 2등으로 합격해서 수도원 학교 생활을 합니다. 아버지부터, 교장선생님, 목사님, 마을 사람들의 관심과 부러움을 받으면서 성장해온 소년은 무언가 중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하죠.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던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라면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으로 소년시절을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본인도 납득하지 못하는 막연한 대의와 꿈으로 말이죠.

그렇게 파란색 옷의 노동자가 되고 싶지 않은 소년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알지 못한 채로 공부를 하다가 '헤르만 하일너'를 만나면서 의문을 품고 공부는 삐걱대기 시작합니다.
수영과 낚시, 등 유년의 즐거움이 제거된 소년에게 공부는 소년의 전부였는데 말이죠.

그리고 하일너가 학교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에 비해, 한스 기벤라트는 신경을 갉아 먹습니다. 의문을 품기 시작한 기벤라트에게 학교는 어떤 의미인지 아래에 인용해 봅니다.


[ 애당초 선생들에게는 하일너의 남다른 천재적 기질이 어쩐지 섬뜩하기만 했다.
예로부터 천재와 선생들 사이에는 깊은 심연이 있게 마련이다. 학교에서 보여지는 그런 학생들의 몸가짐은 처음부터 선생들에게는 혐오의 대상이다. 천재들은 선생들에게 전혀 존경심을 보이지 않는 불량한 학생들에 다름 아니다. 14살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고, 15살에 사랑에 빠지고, 16살에는 술집에 드나들게 된다. 그리고 금지된 책을 읽으며, 몰염치한 작문을 쓰고, 이따금 선생들을 조롱어린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한다.
그래서 선생들의 수첩에 금고형을 받게 될 후보자나 선동가로 기록되는 것이다.

학교 선생은 자기가 맡은 반에 한 명의 천재보다는 차라리 여러 명의 멍청이들이 들어오기를 바라게 마련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선생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절제한 인간이 아닌, 라틴어나 산수에 뛰어나고, 성실하며 정직한 인간을 키워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더 상대방 때문에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게 되는가!
선생이 학생 때문인가, 아니면 그 반대로 학생이 선생 때문인가! 그리고 누가 더 상대방을 억누르고, 괴롭히는가! 또한 누가 상대방의 인생과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더럽히는가!
 (p. 142) ]




의문의 여지가 없던 학업에 균열이 생기자 모든 것에 문제가 생기는 한스 기벤라트.

즐거웠던 유년으로는 돌아갈 수 없고,
마음을 터놓고 상담할 친구도 없으며,
잠시 가슴을 뜨겁게 한 사랑마저 실패로 돌아갑니다.

'작품해설'에 나오는 바대로 '돌파구'를 찾지 못합니다.
살아가는 이유는 살아가는 것 자체일 수도 있을 테고, 사랑, 가족, 친구,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일 수도 있을 텐데요.

오가는 길에 보게되는 플래카드가 떠오릅니다.

< 축! XX회 졸업생 XXX 고시합격>

본인과 가족의 자랑 외에 누군가의 자랑이며 희망이 될지 저로서는 의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당치도 않은 기준을 들이밀며 가슴 답답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요.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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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reenbea 2009.03.13 0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민음사 판을 보셨군요. 전 이걸 어렸을 때, K* 사 판으로 봤는데.
    요약을 좀 많이 해 놓아서.. 그리고.
    민감한 시기에 읽었는데도...(연결이 좀 안 되는 것 같습니다만...
    사춘기 때 읽었는데도 좀. 이해가 안 가더군요. )
    조금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 국민교육 헌장 세대가 아니라서 공감을 못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로처 2009.03.13 19: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도서관에 있는 책들 중에서 가장 깨끗해서 요걸 골랐죠.

      저도 실은 국민교육헌장 외워 쓰는 시대에 살진 않았습니다. ㅡ.ㅡ; 그래서 저 부분 외에는 기억에 없어요.

두 여자 이야기 입니다.

첫 번째 여자 마리암

'마리암'이라는 여자는 다섯 살 때 '하라미(후레자식)' 의 뜻을 알게 됩니다.
'나나'라는 이름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절망스러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말해줍니다.
어쩌면 현실보다 더 가혹할 수도 있는 말들을 내뱉습니다. 아래 같은 말들을.


< "내 딸아, 이제 이걸 알아야 한다. 잘 기억해둬라.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 바늘처럼,
남자는 언제나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단다. 언제나 말이다. 그걸 명심해라, 마리암." (p. 15) >

<나나는 눈송이 하나하나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고통 받고 있는 여자의 한숨이라고 했었다.
그 모든 한숨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어 작은 눈송이로 나뉘어 아래에 있는 사람들 위로 소리 없이 내리는 거라고 했었다. (p. 125) >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는 나나와 함께 살면서도 '파이줄라 선생'과 일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아버지 '잘릴 한'이 있어서 가슴 부푼 소녀시절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나의 저주는 현실이 됩니다.
'잘릴 한'의 사랑은 헌금으로 얻는 면죄부처럼 한정적인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극장에서 그의 가족들과 피노키오를 보고 싶다는 마리암의 소망이 거절되는 순간
나나의 저주는 현실이 되고, 오두막의 공주 같은 소녀시절은 끝이 납니다. 그리고 그 끝의 시작에는 폭력적인 남편 '라시드'가 함께 합니다.

마리암은 임신이라는 축복과 행복 속에서도 이런 기도를 합니다.

이 행운이 자신에게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해달라고 신께 빌었다. (p. 123)


두 번째 여자 라일라

같은 사회에 살면서도 라일라는 마리암과는 좀 다른 소녀시절을 보냅니다.
그녀에게도 전쟁에 참여한 두 아들이 마음을 차지한 어머니가 있지만요.
그녀의 아버지 '바비'는 이런 말을 해줍니다.


너는 아주 영리한 아이야. 정말로 그렇지.
라일라, 너는 원한다면 뭐든지 될 수 있어. 나는 알아. 그리고 또 한 가지, 전쟁이 끝나면
아프가니스탄은 남자들만큼이나 너를 필요로 할 거라는 사실도 알지. 어쩌면 더 필요로 할지도 모르지.
여자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면 사회는 성공할 수가 없는 거다. 그럴 수가 없지." (p. 155)


마리암과는 다른 가정 속에서 기대에 부푼 소녀시절을 보냈지만 결국 라시드의 아내가 됩니다.
개인의 차이, 가정의 차이, 교육의 차이를 넘어선 '사회제도의 억압적 틀'을 보여주려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마리암과 라일라는 그렇게 소녀시절의 꿈을 접고 라시드의 아내로 살아갑니다.


마리암과 라일라의 화해

마리암과 라일라의 화해는 한 남자(라시드)의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그가 행한 짓거리를 보면 "죽어도 싸다." 할 만합니다.
사람이하의 짓거리를 하는 것에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야만적인 억압의 사슬을 끊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해피엔딩을 그리기 위해 죽어야 하는 라시드는 사람이 아닌 악의 축이었고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그녀들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행복을 돋보이게 해주는 장치에 불과했네요.

라시드의 결말과 마리암의 희생으로 주인공 라일라과 타리크는 행복하게 살아간다.
너무나 미국영화 같은 이야기 아닌가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의 아들 '잘마이'를 생각한다면 아마 비극은 대를 잇지 않을까 합니다.

P. S
그나저나 마리암이 너무나 불쌍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생각나는 한국영화가 두 편이 있네요. 하나는 못 본 영화이지만요.

<두 여자 이야기> 와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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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디오스 2009.02.28 0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 케이블채널에서 다큐를 본 이후. 이 책이 참 궁금했습니다.
    서평들을 보니 정말 다양한 생각들 관점들로 책을 읽으셨더군요...
    현실에 대한 사실을 알게해주는 책이란 말이 제일 기억에 남는 서평문구였습니다...

    • 로처 2009.03.01 16: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실에 대한 시실을 알게해주는 책' 이 기억에 가장 남으셨다니 그 분 주소를 좀 알려주세요.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