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안 보여요."
사람이 하얗게 눈이 먼다.
그렇게 하이얀 채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백색질병'이 전염까지 된다.
발병이유도, 감염경로도, 치료방법도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이 질병으로 눈 먼 자들은 격리수용 되지만,
결국 모든 사람의 눈이 먼다. 단 한 사람 '의사의 아내'만 제외하고.

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렇게 얘기를 해줬더니, 친구는 시큰둥하게 "공포영화야?"라고 묻습니다.
폭력과 기아에 노출되어 생존을 두려워하며 걱정해야 하니 공포도 있고, 공포 외의 것도 있으니 아니기도 한 것 같다는 말은 미처 해주지 못했습니다.

1. 공포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몸서리 칠만큼 두려운 일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부모님은 어쩌지?', 등 고민이 많겠죠.
그런데 이 책의 공포는 그리 심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첫째 이유는 모든 이가 눈이 멀기에 같은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들과 소수자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사회가 공포를 가중시키긴 합니다.
지하철역의 높은 계단과, 고장이 잦은 리프트는 무엇보다 큰 위협이 될 겁니다.
그러나 모두가 눈이 머는 상황에서 이 점은 개선되겠죠. 아주 많이.

굶주림과 무질서에 대한 공포가 눈앞의 문제인데, 사람들은 나름의 규칙을 세우고 거기에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으며, 폭력은 눈멀기 전의 사회에서도 있었다는 것이 둘째 이유입니다.
책 속에서도 눈 먼 사람들은 조직, 정부, 사회를 얘기하면서 살아갑니다.

결국, 갑작스러운 변화 속에서 새로운 질서가 생기기 전까지 혼란기 동안의 생존만이 문제될 뿐입니다.
생존을 가벼이 여겨서가 아닙니다.
눈멀기 전의 소설 속의 세상 뿐 아니라, 지금 제가 사는 세상도 여전히 '사람답게 사는 생존'이 문제이기 때문에 소설 속의 공포가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별, 이혼, 실직, 취업, 물가, 교육, .........
어떠세요? 책 속의 공포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이것 외에 눈 뜨고 있는 우리들은 서로 다른 것을 보면서 편 가르는 공포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칭 보수논객 이라는 지만원의 문근영 양에 대한 궤변이 그랬죠.
그리고 사람들의 자유와 대화를 두려워하는 대통령의 '미디어관련법 법률안' 과 '일제고사 파문에 대처하는 그들의 태도'는 현실을 하얗게 가려버립니다. 눈 먼 것과 다를 바가 있나요.


2. 같은 것을 보고 다른 것을 말한다

의사는 약국 직원을 향해 말을 이었다, 사실 눈은 렌즈에 지나지 않죠.
실제로 보는 일을 하는 것은 뇌입니다, 어떤 상이 필름에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죠.
 (p. 95,96)


일제고사에 대해 교육수요자에게 선택권을 주었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중징계를 가하는 사태를 보면서 참 많이 슬프면서도 화가 납니다.
아래에 기사의 일부를 발췌해 보았습니다.

김인봉 교장이 일제고사 반대하는 이유인즉 -views&news 김혜영 기자 <출처>

그는 서울지역의 교사 7명 해임-파면에 대해선 "나는 그걸 보고 우리나라가 30여 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다.
그때 유신헌법에 대한 반대나 비방을 못했잖나. 100%찬성을 강요했던 유신시절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다."며 "일제고사의 경우도 100%찬성하라는 것 아니냐. 우리 학교 61명 중에서 53명이 봤으니까 87%가 응시한 거다. 8명은 13%다. 이 13%의 반대마저 포용하지 못하고 징계한다는 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천박한가. 야만스러운가를 드러낸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서울교육청을 꾸짖었다.


그리고 오늘 언론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자율과 창의 다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다들 입을 모으는데 통제와 획일을 향해 달리는 법률안들을 보면서 할 말을 잃습니다.

미디어관련법안들도 경제 논리로 바라봐야한다는 이명박대통령의 얼굴 위로 '갱제를 외치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그나라당들의 97년 외환위기가 겹쳐지는 것에 이 책의 설정보다 훨씬 큰 공포를 느낍니다.

요즘 <눈먼 자들의 도시> 이 책보다 현실은 더 큰 공포이고 분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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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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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듯 한 표지그림과 같은 책입니다.

이 책은 저로서는 좀체 정리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첫째는, 마음에 와 닿는 기사들이 있고, 기억해두고 싶은 구절들이 많아서 좋기도 하고요,
소설이 아니라 도덕책처럼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너무 노골적으로 얘기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감도 들고 그러네요.

둘째는, '자아의 신화'를 이루려는 삶을 응원하는 것도 좋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표지를 잘 살피라는 얘기들이 좋았습니다. 반면에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팝콘장수의 삶이나 크리스털 상인의 익숙함에 대한 안락을 너무도 안쓰럽게 바라보는 것에는 동감하기 힘들더군요. 아마도 저 자신과 너무도 닮아있는 그들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책이든지 두 번 읽기를 싫어하는 저로서는 두 번 읽은 후에 좋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좋은 이유는 저도 꿈을 자주 꾸게 되어서이지요.
비록 '꿈은 이루어진다'는 그 꿈도 아니고 '비전'도 아닌 유치찬란한 꿈들이지만 기분 좋은 꿈을 자주 꾸게 되더군요.

제 얘기는 여기서 접고, 등장인물 위주로 책을 정리해 보려 합니다.

# 1 양

'양들은 스스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일이 전혀 없겠지. 그렇기 때문에 항상
나와 함께 있는 걸 테고.'
양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물과 먹이뿐이었다. 자신들의 양치기가 안달루시아의 맛있는 목초지들을 많이 알고 있다면 양들은 언제까지나 그의 친구로 남아 있을 것이었다.
(p. 25)


# 2 산티아고 - 아브라함과 같이 아비 집을 떠나다


산티아고는 열여섯 살 때까지 신학교를 다녔다. 그의 부모는 그가 신부가 되어 단지 먹을 것과 물을 얻기 위해 일하는 생활을 벗어나 보잘것없는 시골 집안의 자랑이 되어 주기를 바랐다. 그는 라틴어와 스페인어, 그리고 신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그는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싶었다. 그것은 신이나 인류의 죄악에 대해 아는 것보다 중요한 일 같았다. 어느 날 저녁, 집에 다니러 왔다가 그는 용기를 내어 아버지에게 신부가 되는 길을 포기하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 저는 세상을 두루 여행하고 싶습니다."

<중략>

"그 사람들은 돈이 가득 든 주머니를 가지고 여행을 다닌단다.
하지만 우리 중에 떠돌아다니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양치기밖에 없어."

"그렇다면 전 양치기가 되겠어요."   (p. 27~28)


이렇게 양치기가 된 산티아고는 두 번 연이어 꾼 보물 꿈, 그리고 집시의 해몽과 우연히 만나게 된 왕인지 사이코인지 알 수 없는 멜기세덱의 조언을 듣고 양들을 처분하고 피라미드를 향한 여행을 떠납니다.


# 3 팝콘장수

조연이라 대사 한 마디 없습니다.
멜기세덱 왕과 산티아고의 대화 속에 그의 인생은 까발려집니다.
사실 여부를 전혀 알 수 없음에도 그는 아래처럼 멋대로 해석됩니다.
이 부분에선 좀 동감하기 힘들더라고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표지'를 놓치지 않으면서, '자아의 신화'를 향해 변화하고 모험하는 삶은 물론 멋집니다, 그러나 '마음의 소리', 나 '자아의 신화' 역시 주위의 시선이나 평판, 인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팝콘 장수를 '자아의 신화'로부터 도망친 사람으로 몰기에는 너무 가혹한 평이라 생각합니다.


"자네는 무엇 때문에 양을 치나?"

"세상을 여행하고 싶어서요."

그러자 노인은 광장 한 구석, 빨간 손수레를 끌고 다니는 팝콘 장수를 가리켰다.

"저 사람도 어릴 때 떠돌아다니기를 소망했지. 하지만 팝콘 손수레를 하나 사서
몇 년 동안은 돈을 버는 게 좋겠다고 결심한 모양이야. 좀 더 나이가 들면 한 달 정도
아프리카를 여행하게 되겠지. 어리석게도 사람에게는 꿈꾸는 것을 실현할 능력이 있음을
알지 못한 거야."

"저 사람은 차라리 양치기가 되는 길을 선택해야 했어요."

산티아고가 소리 높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저 사람도 그 생각을 했었다네. 하지만 팝콘 장수가 양치기보다는 남보기 근사하다고
생각한 거지. 양치기들은 별을 보며 자야 하지만, 팝콘 장수는 자기 집 지붕아래 잠들 수 있잖아. 또 사람들도 딸을 양치기보다는 팝콘 장수와 결혼시키려 하지."

<중략>

"결국, 자아의 신화보다는 남들이 팝콘 장수와 양치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린 거지."  (p. 48)


# 4 도둑

멜기세덱 왕은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돕는다고 했습니다만, 이 도둑은 2시간 거리를 1년으로 연장시킨 장본인입니다. 그 결과 크리스털 상인과의 1 년 동안 많은 것을 배우게 되지만요.

"마크툽" 입니다.

# 5 크리스털 상인

꿈에 대한 동경으로 삶의 원동력 삼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이루어지는 순간 삶의 이유를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면서 꿈을 이루지 않는 사람으로
그에게 꿈은 동경의 대상일 뿐, 성취의 대상은 아닙니다. - 나랑 똑같군 ......


"그런데 아저씨는 왜 지금이라도 메카에 가지 않는 거죠?"
산티아고가 물었다.

"왜냐하면 내 삶을 유지시켜주는 것이 바로 메카이기 때문이지. 이 모든 똑같은 나날들. 진열대 위에 덩그러니 얹혀 있는 저 크리스털 그릇들. 그리고 초라한 식당에서 먹는 점심과 저녁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바로 메카에서 나온다네. 난 내 꿈을 실현하고 나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질까 두려워, 자네는 양이나 피라미드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고 그걸 실현하길 원하지. 그런 점에서 자넨 나와 달라. 나는 오직 메카만을 꿈으로 간직하고 싶어 마음속으로는 벌써 수천 번 사막을 가로질러 성스러운 반석이 있는 광장에 도착하고 , 율법에 따라 그 바위를 만지기 전에 광장을 일곱 바퀴 돌고 있는 나 자신을 눈앞에 그려보았지. 나는 이미 내게 일어날 일이며 내 앞에 기다리고 있는 일, 그리고 함께 나눌 대화와 기도까지 상상해보았어. 다만 내게 다가올지도 모르는 커다란 절망이 두려워 그냥 꿈으로 간직하고 있기로 한 거지."  (p. 94)


그리고 장사가 잘 되지 않아도, 익숙함에 길들여져 변화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이 책 속의 낙타몰이꾼이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건강, 생명, 가족, 등 가진 것을 잃는 두려움" 에 대해서 말이죠

자신이 가진 것이 점점 작아지고, 적어지고, 늙어가고, 엷어지고 있을 때가 변화해야 할 시점이라고 세상은 말합니다.
그러나,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소박한 일상에서 지금 갖고 있는 행복마저 잃을 수도 있는 모험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은,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또 다른 금언과는 모순된다고 생각합니다. 역시나 선택은 어렵습니다. 목자가 있는 양들이 아닌 다음에야 선택을 해야 하지만요.

여기서도 "마크툽"을 외치는 수밖에요.


"난 삼십 년 동안 이 가게를 운영해왔네. 어떤 크리스털이 좋고 어떤 크리스털이 나쁜지, 어디에 쓰면 좋은지 모든 것을 자세히 알고 있지. 나는 내 가게와 그 규모, 그리고 손님들에게 익숙해져있어. 자네가 그리스털잔에 차를 담아 팔면 가게 일은 더 잘 될 거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난 내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해."

"좋은 일 아닌가요?"

산티아고가 물었다.

"다시 말하지만 난 내 삶에 무척 익숙해져 있네. 자네가 오기 전에 나는 내 친구들이 파산도 하고 가게를 키우기도 하며 변화하는 동안 그저 같은 장소에서 세월만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었네. 그리고 그것 때문에 항상 우울했지. 그러나 지금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 지금의 이 가게가 내가 바라던 꼭 그만큼의 가게라는 걸 알게 된 거지. 난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도 모르고, 또 달라지고 싶지도 않네. 난 지금 이대로의 내 상황이 만족스러워."   (p. 98)


# 6 영국인 연금술사 지망생 - 한 번 해보라니까!

납을 금으로 변하게 하는 연금술을 배우기 위해 사막의 연금술사를 찾아 여행하는 사람입니다. 연금술에 대해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하고 연구해 왔으면서도, 정작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이죠.


"그는 첫별이 뜰 때 나타났지. 이제껏 당신을 찾아다녔노라고 말했지. 그러자 그가 납을 금으로 변하게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묻더군.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게 바로 그거라고 대답했지. 그랬더니, 직접 한번 해보라는 거야. 그게 다였어."

<중략>

"이것이 작업의 첫 번째 단계야. 불순물이 섞인 유황을 분리해내야 하지. 실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 돼.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야말로 이제껏 '위대한 업'을 시도해 보려던 내 의지를 꺾었던 주범이지. 이미 십 년 전에 시작할 수 있었을 일을 이제야 시작하게 되었어. 하지만 난 이 일을 위해 이십년을 기다리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행복해." (p. 161, 166)


# 7 사막의 연금술사 - 산티아고의 멘토

산티아고가 마음의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산티아고가 눈 앞에 보이는 '표지'들을 더 잘 살필 수 있도록,
그래서 산티아고의 보물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멘토 입니다.

'마음의 소리'에 대해 이런 멋진 말을 합니다.


"마음은 제가 이대로 계속 가는 걸 원치 않아요."

"바로 그걸세. 그건 그대의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일세. 그대가 마침내 얻어낸 모든 것들을 한낱 꿈과 맞바꾸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지."

<중략>

"아무도 자기 마음으로부터 멀리 달아날 수 없어. 그러니 마음의 소리를 귀담아듣는 편이 낫네. 그것은 그대의 마음이 그대가 예기치 못한 순간에 그대를 덮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야." (p.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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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처

'아내가 결혼했다' 라 무슨 내용일까?

책을 읽기 전에 잠시 짐작해 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가 결혼을 했다면 이혼한 후에 결혼을 했을 것이고, 이혼을 했다면 아내가 아닐텐데.....

어떻게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을까?

책을 읽고 난 후에야 알았습니다.

그리고 알고 난 후에는 '작가의 말'에서 박현욱 작가가 나무라는 글이 생각이 나네요.


"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벗어나야 하는 것은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어 왔던 견고한 아집들이다."

이미 아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아내가 결혼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일부일처제의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폴리아모리(polyamory) 입니다.

아래에 이 책과 신문기사를 참고해서 잠깐 정리해 봅니다.


모노가미(monygamy)

일부일처제, 단혼

시리얼모노가미(serial monygamy)

사별이나 이혼 후 재혼하는 식의 연이은 모노가미

폴리가미(polygamy)

일부다처(polygyny)

일처다부(polyandry)

폴리아모리(polyamory)

비독점 다자간 사랑, 떼사랑

<인용 : 중앙일보 2008년 10월 18자 '분수대' 양성희 문화 스포츠부문 차장>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해 온 '일부일처의 결혼'에 대해 의문을 품어보라니요.

일부일처를 채택하고 있는 사회가 의외로 많지 않다는 근거 외에 생물학적, 논리적 근거를 합리적으로 나열한다고 해도, 머리 아픈 의문임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런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냅니다.

두 명의 남편을 원하는 것 말고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아내와, 두 명의 남편이라는 발칙한 소재를 그들이 좋아하는 축구로 풀어냅니다. 저 역시 축구를 좋아해서 키득거리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이유는 '남의 얘기' 라서 입니다.

만약 제가 소설 속 '덕훈'의 입장이라면 절대 웃을 수 없을 겁니다.

아마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웃음은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일부일처제도가 신이 내린 완벽한 제도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해봅니다.
'폴리아모리'가 사랑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인식될 날이 오기는 할까 싶기는 하지만요.

Posted by 로처

# 1

선생님 쉬~ 하면서 화장실을 재촉하는 아이들부터
영악한 7살 아이들까지 잠깐이지만 가르쳐 본 적이 있습니다.
가르쳤다기보다는 같이 놀아주었고, 같이 놀아주었다기보다는 아이들이 저랑 놀아주었죠.
 
저의 정신연령이 딱 그 수준이었더랬죠.
선생이면 아이들보다 나아 먼저 살피고 북돋아주고 그래야 할텐데.
애들보고 웃고, 삐지고, 당황해하고 그랬습니다.

정말이지 영악한 아이들은 제 머리 위에 있습니다.
빤히 제 얼굴을 쳐다보며 제 속을 넘겨짚기도 하죠.
그랬던 아이들이 벌써 중학생이 되었겠네요.

이런 저에게 딱 좋은 책이었어요.

'전형적이다', '지나친 설정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조사가 부족하다'는 날카로운
비평이 담긴 서평들도 감사히 잘 읽어봤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책 읽는 짧은 시간동안 좋았습니다.
비교하기가 뭐하지만, 황석영 작가의 '개밥바라기별' 보다는 '완득이'를 읽는 것이 저는
더 좋았습니다. 황석영 선생의 글 속의 주인공이 공활을 하고 노가다판을 전전해도 '선비입네' 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완득이'의 표현을 빌자면

"가난한 사람이 부자인척 하는 것만큼이나 부자가 가난한 척 하는 것이 재수 없다." 는 정도일 겁니다.


# 2

한번은 중학교 선배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청년을 봤나!"

이렇게 말해주었지만, 이 말과 같았을 겁니다.

"이런 아름다운 새끼를 봤나."
"세상 참 속편하게 산다."

세상물정 모르고 순진하고, 이상적인 저를 꼬집는 말이죠.
제 감정과 생각 없이, 교과서적인 말들을 주워섬기는 저를 이름입니다.

# 1과 같이 맹하고 # 2 와 같이 어리버리해서인지 전 이 책이 좋았습니다.
적어도 책을 읽는 3시간은 근래에 어떤 영화를 보는 것 보다도 좋았네요.


# 3 책 얘기

책을 읽는 시간동안 재미있고, 행복했습니다.
몇 시간 안 되는 시간동안이지만 웃고, 글썽이고 그랬죠.
어디에 털 날 것처럼 말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완득이도 대견스럽고,
자신을 부정하면서, 자식에게서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던 아버지가 스스로를 찾아가는 이야기도 행복합니다. 똥주선생은 예뻐서 안아주고 싶을 정도구요.

스스로를 부정하는 부모님을 보는 자식의 심정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작가가 이 부분을 그려주었더라면 더 좋았겠다 싶습니다.

"넌 나처럼 살지 마라"

라고 말하는 부모님을 대하는 심정은 참담할 겁니다.
이 꽉 다물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 보다 힘빠지고 눈물 나는 그 심정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무슨 일을 하든지, 스스로부터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 분위기들이 넘쳐났으면 좋겠습니다.


# 4 인용 - 친구, 가르친다는 것

"그 영감이 '네 몸땡이는 멀쩡한데, 네 정신 상태가 문제야.' 했을 때는 처음으로 대들었다.
당신이 내 몸 같았으면 그렇게 말했겠냐고. 그랬더니 내가 숙소에서도 안 나오고, 남하고 어울리지도 않으니까 내 모습도 볼 수 없다고 혀를 차더라."

"예?"

"너도 잘 모르겠지? 그 영감이 그렇게 말을 어렵게 한다니까. 끼리끼리 만난다고 하잖아.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도 있고. '친구도 없는 인간이, 제 모습이 어떤지 알기나 하겠어.' 그러는데, 그때 좀 알겠더라."
(P. 200)


 

Posted by 로처

요즘 시간이 있어도 책을 읽기가 버겁네요.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해서 책장에서 집어든 이 책도 그렇습니다.

성장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등장인물들이 영화처럼 멋지게 살지 않습니까?
저 같은 범생이(?)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요?

친구의 친구 얘기 마냥 멋지지만, 멀게만 들립니다.
영화처럼 멋지지만, 그렇게 살라고들 하면 모두 고개를 돌려버릴 낭만이지 싶습니다.
고교시절 좋아했던 문학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그리워하던 낭만 말이죠.

90년대 학번으로, 80년대 학번 선배들의 전설적 낭만과 대학생활을 답습하면서 생활했던 것에 대한 쓴웃음만 지어집니다. 피해망상에 찌든 사람들만 외치는 단어인지 몰라도 '끼인 세대'라고 느끼면서 말이죠.

글 속의 유준처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저도 찾고 또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네요.
일단 '늪'이라도 만났으면 싶은 오늘입니다.

그저 기억에 남는 구절이나 적어보고 쓴 것도 없는 글을 마치려 합니다.


거기 나오잖아. 물이 맑으면 갓끈을 빨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맑고 흐린 세상풍파를 다 받아들이는 거야.

준이는 여태까지의 대화가 못 참겠다는 듯이 툭 잘라버렸다.
넌 왜 쑥스럽게 만나기만 하면 책 읽은 얘기만 하는 거냐?

뭐가 쑥스러운데?

네가 지금 행동하고 살고 그런 거 중심으로 얘기하면 안 되니?

지금 생활이 싫으니까.

우리는 그런 식으로 대화가 끊긴 뒤에는 그냥 말없이 걷거나 음악을 건성으로 귓전으로 흘리면서 앉아 있거나 했다.(p. 243)

Posted by 로처

1. 책의 전반적 내용

가늘고 긴 섬광과 함께 찾아온 재난.
세상의 모든 것이 불 타 버렸고, 하늘에선 눈처럼 재가 내린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
당장에 마실 물과 먹을 양식을 찾기가 힘든 상황.
무엇보다 사람들이 서로를 경계하고 무서워해야 하는 절망적 상황이 닥칩니다.


열렬하게 신을 말하던 사람들이 이 길에는 이제 없다.
그들은 사라졌고 나는 남았다. 그들은 사라지면서 세계도 가져갔다.
질문 :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라고 해서 앞으로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달의 어둠. 이제 밤은 약간 덜 검을 뿐이다.
낮이면 추방당한 태양은 등불을 들고 슬퍼하는 어머니처럼 지구 주위를 돈다.

반쯤 산 제물로 바쳐져 옷에서 연기를 피우며 새벽 보도에 앉아 있는 사람들.
자살에 실패한 종파처럼.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도우러 오겠지. 일 년이 지나지 않아 산마루에 불이 붙었으며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성가를 읊조렸다. 살해당하는 사람들의 비명.
낮이면 길을 따라 말뚝에 박혀 죽은 자들. 이들이 무슨 짓을 했을까? 세상의 역사에는 죄보다 벌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자는 거기에서 약간의 위로를 받았다.
(p. 40)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 그 남자의 아내는 자살을 택합니다.
남자가 살아가는 이유는 아들인 '소년' 뿐.


남자가 아는 것이라고는 아이가 자신의 근거라는 것뿐이었다.
남자가 말했다. 저 아이가 신의 말씀이 아니라면 신은 한 번도 말을 한 적이 없는 거야.
(p. 9)


그리고 남자와 소년은 오로지 살기 위해, 남쪽으로 가는 길을 걷습니다.
약탈과 살인은 물론이고 사람을 먹기까지 하는 세상 속에서,
다른 사람을 피하고, 위협하고, 때론 죽이면서 말입니다.


2. 그냥 드는 의문들

남자의 소년은 재앙의 시작 즈음에 태어납니다.
남자가 가진 사람 사는 세상의 추억들은 알지 못합니다.

이스마엘 베아가 쓴 <집으로 가는 길>의 소년들은 사람 사는 추억을 갖고 있음에도,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상황에서 짐승의 길을 걷습니다.

그런데, 이 책 속의 '소년'은 사람의 추억이 없음에도 동정과 연민을 갖고 남자에게 칭얼대기 일쑤입니다.
조금은 비현실적이지 싶습니다. 극한 상황에서도 '남자'가 '소년'을 사람답게 키우고
있구나 하는 말로 변명이 될까요?


3. <드래곤 헤드>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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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헤드 영화> - 이미지출처 다음 영화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만화가 있네요.
바로 <드래곤 헤드> 랍니다. 꽤 오래 전에 봤기에 이 책보다 먼저 나왔을 겁니다.

이 만화의 시작도 비슷합니다.
원인도 알지 못하는 재앙으로 소수의 사람들만 생존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제가 읽을 당시에는 완결이 채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10권으로 완결도 되고 영화도 나왔다니, 만화책을 한 번 봐야겠습니다.

제가 이 책 <로드>를 읽는 내내 <드래곤 헤드>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떠올랐을 뿐이니까요.

Posted by 로처


휴게실에서 여러 명의 여자들이 둘러 앉아있습니다.
넉살좋게 생긴 한 여자 분이 자신의 외국체류의 경험담을 풀어놓고 있네요.
어찌나 목청이 좋고, 넉살이 좋은지 모두 웃으며 듣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맞장구 칠 뿐,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입담이 가히 수준급 인가 봅니다.
근대이전의 사회였더라면, 우물가 토크왕 이었을 겁니다.
기분이 좋을 때라면 아마 저도 배시시 웃으며 같이 앉아서 들었을 테지만,
당시에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그냥 웃으며 곁을 지나왔을 뿐이네요.

빌 브라이슨의 이 책이 이와 비슷합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유럽 여행담> 입니다.


1. 주의 : '여행 정보가 아닌 여행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유럽산책'이라는 제목만 보고 덜컥 책을 집어 들었던 저는 '유럽사이야기'를 기대했었습니다. '유럽사이야기'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오스트리아 편에 잠시 언급되는 정도로 말이죠. 이건 책을 꼼꼼하게 살피지 않은 저의 잘못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잘 말해주는 정보가 책의 뒤표지에 이런 문구로 있습니다.


'여행 정보가 아닌 여행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여행정보는 찾지 마시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적어도 저처럼 '유럽사 이야기'나 '여행정보'를 찾으시는 분은 다른 책을 찾아보셔야 합니다. 위에 적어놓은 것처럼 '주의'라고 적어놓지 않으면 '정보뿐 아니라 재미까지 있는 책'이라고 오해하는 것은 저만의 잘못인가요?

유럽사이야기도 여행정보도 없는 책이지만, 유쾌하고 기분 좋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으니까요


2. 고개 젖혀 웃게 만드는 입담

저와 같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요즘처럼 해야 할 일도 책도 손에 잡히지 않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더불어 '집이 주는 안락함'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분들에게도 말이죠.
방바닥에 배 깔고 엎드린 채로 빗소리라도 들으면서 이 재미있는 책을 읽는다면,
빗속에 숙소를 찾아다니는 여행객을 떠올리며 더더욱 '집의 안락함'을 사랑하게 될 겁니다.

이렇게 써 놓으니 '너 자꾸 그러면, 커서 삼촌처럼 된다.' 라고 조카를 타이르는 것 같아 기분이 요상합니다.
아무튼 그의 농담과 표현이 제게는 무척이나 재미있었습니다.

여행지 사진 한 장 없는 책,
해박한 유럽사의 배경지식을 줄줄 늘어놓지도 않은 책,
도움이 될 만한 여행정보도 없는 책,
빌 브라이슨의 개인적 감상만 주~욱 늘어놓은 책.

그런데도
이 책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그의 재미난 입담 속에 녹아 있는 그의 감상들 때문일 겁니다.
심지어 집근처 '와이 낫'이라는 식당에 대한 향수나, 자신의 친구들에 대한 추억들조차 공감할 수 있는 여행담이 됩니다.
많이 팔렸다니, 저만의 유별난 기호는 아닐 겁니다.


3. 나도 그 성당에 가고 싶다

많은 재미있는 구절들을 모두 인용하고 싶은 마음을 자제하고, 저도 '집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찾아가고 싶은 곳이 생겼습니다. 아마도 집의 안락함에 젖어 있는 저에게는 정말 찾아가고 싶다는 목적의식이 아니라, 가고 싶은 목적지가 있기는 하다는 위안의 표지일 가능성이 크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인용해 봅니다.


마지막 날에는 번잡한 바르베리니 광장으로 가, 산타 마리아 델라 콘체치오네 성당 안에 있는 카푸친 수도회의 납골당을 찾아갔다. 일명 해골 성당이라고 불리는 이곳에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때는 16세기, 어떤 수도사가 동료 수도사들이 죽은 후 그들의 해골로 장식을 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참으로 기발한 착상이 아닌가? 성당 한쪽 벽면에 자리 잡은 방 대여섯 개는 흉곽으로 만든 제단, 두개골과 다리뼈로 세심하게 만든 묘소, 팔뚝 뼈로 장식한 천장, 등뼈로 꾸민 벽 장식, 손과 발의 뼈로 만든 샹들리에 등으로 가득 차 있다. 한쪽 구석에는 후드가 달린 저승사자 복장을 한 어느 카푸친(프란체스코 회의 세 분파 중 하나) 수도사의 전신 해골이 서 있다. 다른 쪽 벽면에는 6개 국어로 아주 발랄한 어조로 이렇게 쓰인 표지판이 늘어서 있다.

"우리도 여러분 같았지요. 여러분도 우리처럼 될 겁니다."


Posted by 로처


위그든씨의 사탕가게 - 폴 빌리어드
Growing pains - The autobiography of a young boy


아무 생각 없이 서가에서 그냥 집어든 책입니다.
책 제목에 사탕가게가 있고, 표지그림에도 예쁜 사탕가게 그림이 있는데도 몰랐어요.
몇 장 읽다보니 비로소 까까머리 중학교 시절 국어시간에 읽었던 '체리씨 이야기'인줄 알겠더군요.
<연연>님 블로그 에서 보니 제목이 '이해의 선물' 이었다네요.

이 책은 '이해의 선물' 같이 예쁜 아이적 추억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미운 7살' 개구쟁이들의 말썽들도 빠지지 않습니다. 아니 외려 말썽들이 더 많아요.


자~!
그럼 어릴 때 저질렀던 말썽들을 주제로 진실게임 해볼까요?
비록 남자들은 이렇게 얘기를 시작해도 결론은 군대얘기로 끝나겠지만 말입니다.

첫째, 야구하다가 유리창 깨기
유리창 깼노라고 말해서 혼나느냐, 부모님께 알려져 혼나느냐 사이의 시간이란 참 힘든 시간입니다.
워싱턴 전기에서 워싱턴은 솔직하게 말하면 용서받았는데, 위인전 읽고 비웃기는 그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둘째, 불장난 하다가 마른짚더미에 옮아 붙을 뻔 했는데 때마침 지나가던
       할아버지께서 놀라시며 불을 끄신 일.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흐르는 일입니다.

셋째, 지하수 파겠다고 마당 이곳 저곳을 헤집어 놓은 일
만화 과학 도서를 보고 땅만 파면 지하수가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삽과 괭이로 외가댁 마당 이곳저곳을 파 놓았더랬죠.
외손자를 예뻐해주셔서 그다지 혼나지 않았습니다.

넷째, 달걀 구워먹겠다고 달걀을 다 태운 일.
아궁이에 감자나 고구마를 구워먹다가, 달걀도 구워보겠노라고 했다가 태우기만 했습니다. 많이 혼났습니다. '먹을 것 가지고 장난치면 혼납니다'. 예쁜 외손자도 예외란 없습니다.

다섯째, 조용필이 TV에 자주 나와서 노래하던 시절에 막내 이모의 나이키 신발에 오줌을 누었더랬죠.아마 이모가 미웠었나봅니다. 결과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마무지하게 맞았을 겁니다. 괄괄한 막내이모의 가장 아끼는 나이키신발에 소변을 보다니 말이죠.


이 정도가 일단 저의 진실게임 고백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제가 일으킨 말썽들과 부모님이 겪은 속상함은 비례하겠죠?
얼마나 속을 까맣게 태워드렸는지 상상도 하지 못할 겁니다.
부모님을 웃게 해드린 말썽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스스로 위안삼아 보기도 합니다.

말썽의 추억 속에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동무들이 살고 있고,
언제나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안내를 부탁합니다>에 나오는 말대로 '아직도 노래 부를 또 하나의 세상' 에 계십니다.

이 책을 덮고 나니, 뜬금없이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집니다.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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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일이 살고 싶은 아이들

 

고등학교의 졸업보다 18살까지 살아있기만 하면 좋겠다는 아이들

 

이혼, 가정폭력, 성폭력, 갱단의 위협, 총격사건, 가난, 마약, 인종차별, 친구의 죽음, 의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 그저 살아남고자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스스로가 폭력의 피해자이면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폭력을 택하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폭력과 가난의 악순환이 그들과 함께합니다.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영화 <위험한 아이들(Dangerous mind)>이나 <프리덤 라이터스(The freedom writers)>를 보면서 그들을 조금이나마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도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입니다.

인종 별로 무리 짓고, 싸우고, 사회에서처럼 학교에서도 무시당합니다.

교육의 목적이나 자기계발은 TV <비버리힐즈의 아이들> 만큼이나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이들에게 초보교사 에린 그루웰이 수업을 시작합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등장하는 캡틴 키튼 선생 같이 말이죠.

 

 

2. 초보교사 그루웰의 수업 문학읽기와 일기쓰기

 

그루웰 선생은 문학작품 읽기 수업을 합니다.

과목이 English이니 당연한 수업과정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게는 따분하고 읽기 어려운 고전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아이들은 감동합니다. 그리고 <안네의 일기>, <즐라타의 일기>, <더 컬러 퍼플> 등을 읽고 진솔은 글들을 일기로 풀어냅니다..

 

스스로의 세계로 문학을 읽을 줄 알고, 일기를 통해 진솔하게 생각할 줄 아는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일기를 교정해 주면서,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스스로도 위로 받습니다.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어서 공감이 될 것이고, 몰랐던 놀라운 상처에 같이 분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학 읽기와 일기쓰기는 방법일 뿐 입니다.

 여느 선생님도 하시는 일입니다.
무엇이 이들의 학교를 교육의 현장으로 바꿨을까요?

 


3.
그루웰 선생에 대한 믿음

 

제 멋대로 결론을 내리자면, 결론은 선생에 대한 아이들의 믿음 입니다.

그루웰 선생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불굴의 신념으로 아이들을 사로잡습니다.

여기에서는 구체적 일화를 통해 그루웰 선생을 잠시 들여다 보겠습니다.

 

그루웰 선생은,

 

1. 아이들의 현장학습 비용을 대기 위해 메리어트 호텔에서 일을 합니다.

2. 아이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경우에는 동료교사에게 따지기도 합니다.

3. 아이들과 밤늦게 일기교정을 하다가 도둑으로 오해 받아 아이들과 함께
   경찰 에 체포당 할 뻔 하기도 합니다.

4. 아이들의 의견을 불가능하다며 현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 아니라, 초청하여
   안네를 숨겨주었던 미프 기스(Miep Gies)씨를 초대하고 즐라타(Zlata)
   종군기자 피터 마스(Peter Maass)를 초청하여 좋은 시간을 보냅니다.

5. 난독증으로 고통 받는 아이에게 집에서 소설쓰기 숙제를 냅니다.

    이 아이는 컴퓨터의 도움으로 자신감을 얻습니다.

6.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은 주위의 도움을 받습니다. 존 투씨의 컴퓨터 기증이나
   만찬과 같이 말이죠.

7. 고교졸업도 꿈이었던 아이들에게 대학 진학을 위해, 일손이 부족하자 자신이
   강의하던 교육대학원 원생들을 2 1조로 아이들의 진로상담 멘토로 연결시
   켜 줍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속편으로 <그루웰 선생의 일기>가 출간되면 좋겠습니다.

 

 4. 현실과 교육제도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영화에서 그루웰 선생은 이혼을 합니다.

어디까지가 사실일지 모르지만, 충분히 개연성 있다고 생각합니다.

150명 아이들의 엄마 역할을 하려면 누군가의 자식, 배우자, 부모 역할을 하기가 힘이 들 것입니다.

모든 교사들이 그루웰 선생이나 <미즈타니 오사무 선생>처럼 일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 아닐까 싶어요.

 

선생이 아닌 사람들이 선생에게 이 정도의 요구를 한다면, 그것은 성인의 경지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책갈피)
책의 인용문 보기

 

그루웰 선생님 동료 교사와 마찰

 

 

부당한 차별에 항의

 

 


난독증 학생의 자신감 회복

 

 


경찰에 도둑으로 오인받다

 


홀로 코스트 박물관에서

 



대학원생과 자유의 작가들 진로지도 멘토 맺어주기

 

 

Posted by 로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1. 상실의 시대

88만원 세대
2080의 시대
신자유주의
고용 없는 성장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진 비극적인 말들
초등학교부터 시작한 줄 세우기는 사회에 나와서도 어김없이 적용되어서,
자신이 밑바닥에 속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위를 보며 살아갑니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밑에서 끔찍한 가난이 입을 벌리고 기다립니다.

이렇게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성공의 시대' 이면에는 더 많은 실패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실패의 향연>의 지은이가 말하는 것처럼, 실패에 익숙해지면서 실패를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자세를 갖는 것이 성공을 다룬 책을 읽는 것보다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아래에는 토크빌의 글을 저자가 인용한 부분 입니다.
당시의 유럽에 비해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 미국,
그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에서 사람들이 왜 행복하지 못할까? 하는 의문에 대한 토크빌의 해석입니다. 저는 <실패의 향연>의 주제와 같은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연예인의 화려한 생활을 동경해 자식이 그 길로 가겠다고 하면,
부모님들은 그 이면의 어려움을 짐작해서 말리는 것으로 비유가 될까요?

삶을 비관하자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서 또 성공하기 위해서, 과장된 부분과 실패의 함정들을 제대로 살피자는 의미일 것입니다.


[ 토크빌은 1830년대에 '무한한 가능성의 나라' 미국을 여행한 경험을 토대로 <미국의 민주주의>(1835~1840)를 집필했다.
이 책에서 그는 민주주의적인 평등한 사회 체제의 허점을 분석하고, 특히 과거 어느 때보다 오늘날 더 절실해 보이는 문제를 진지하게 제기했다.

"출생과 소유의 모든 특권이 폐지되고 누구나 모든 직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되면, ..... 사람들은 마음 놓고 무한히 야심을 펼칠 수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자신들이 위대한 것을 이루라는 소명을 타고났다고 즐겨 상상한다. 그러나 그것은 날마다 경험을 통해 수정되는 잘못된 생각이다. ..... 불평등이 일반적으로 사회를 지배하는 법칙인 경우에, 극심한 불평등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대체로 모든 것이 평등한 경우에는, 아주 미미한 차이도 마음을 상하게 한다. ..... 이것은 민주주의의 주민들이 풍요 한가운데서 기이하게도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다. ..... 나는 부자들이 누리는 것을 희망과 부러움의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는 가난한 시민을 미국에서 단 한 명도 만나 보지 못했다."

토크빌은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위대한 자유주의자였다. 그러므로 봉건적인 불평등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토크빌은 평등주의 시대에 인간을 괴롭히는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했다. 성공의 사다리를 타고 맨 꼭대기까지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이 은연중에 계속 우리에게 불어넣어진다.

"이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 덕분에 특히 처음에 젊은 사람들은 피상적인 만족감을 느끼고,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과 행운아들은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절망한다. 그들의 영혼은 비통함에 숨이 막힌다." ]
(p. 188)



2. 상실에 익숙해지기

필요가 수요를 낳고
필요가 발명을 낳는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리고 마케팅이 수요를 낳고,
상품이 수요를 낳는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 책의 지은이는 풍요의 시대에 사는 우리가 현재 소비하는 것들 중 많은 부분이 '없어도 그만'일 수도 있노라고 말 해줍니다.

'레스토랑에서의 외식', '고급 승용차', '휴대폰', '예술작품', '넘쳐나는 정보' 들 중에서 진정 내 삶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것을 권합니다.
혹시나 유행처럼 소비하지는 않는지, 소외되지 않기 위한 소비를 하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3. 다시 생각나는 권정생 선생

지은이는 '자신의 중심'을 잡고 '유행하는 소비'나 '소외되지 않기 위한 소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권할 뿐, 무소유의 삶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냉소적인 말투 때문에 그런 오해를 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마 그에게 권정생 선생 같은 삶을 살라고 하면, 이 책을 대폭 수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존경하고, 동경하지만, 선생의 삶을 따라가기는 버겁습니다.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을 돌려대라거나,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주라는 말씀은 외면한 채,
스스로에게 유리한 하나님만 찾아서 믿을 뿐입니다.
그나마 부끄러움을 안다면 감사할 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권정생 선생의 <우리들의 하느님>을 다시 읽고 싶어졌습니다.

Posted by 로처

잘 살아 보세
  - 민들레처럼


이것이 이 책에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 아닐까 합니다.
삼전도의 굴욕도 있고, 주전과 주화의 말(言) 먼지도 있고, 서날쇠의 지혜로움과 나루의 생명력도 있습니다만, 저는 이 책의 주제를 "잘 살아 보세"로 이해했습니다.



인조 14년(1636년 12월)
말(言) 먼지가 일고, 군량과 더불어 시간이 말라가는 곳,
그 곳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

남한산성에 임금이 있고,
체찰사로서 난국의 해결을 시간에 맡기는 영의정 김류가 있고,
의로움과 충성심으로 주전을 말하는 예판 김상헌이 있고,
매국의 오명을 뒤집어쓰더라도 임금이 살길은 화친이라 하는 이판 최명길이 있습니다.

주화파 이판 최명길을 목 베라는 주청을 올리면서, 강력히 주전을 외치다가 뒷구멍으로 달아나는 당하들도 있고, 자신들의 목숨으로 임금의 목숨을 살리는 당하관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영특하고 부지런히 살아가는 서날쇠와 나루가 있죠.

모두가 나라를 지켜온 사람들입니다.
충성으로 죽은 자도, 살아남은 자들도 말이죠
반만년의 역사동안 많은 외침과 내란이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이름 아래 한글을 쓰면서 살 수 있게 해준 선조들입니다.

백성을 버리고 강화도로 피난 가는 고려의 왕도,
도성을 버리고 몽진을 떠나는 임진년의 선조도,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이 건너고 있음에도 한강다리를 폭파시킨 정부도,
그리고 모질게 살아온 이름 없는 국민들도,
살아있어 우리가 있는 것일 테죠.

부끄러운 역사도 있고, 치욕적인 삶도 있었겠지만,
살아있어, 오늘이 있는 것일 테죠.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고, 논의해야 할 것은 말 먼지를 일으키더라도,
민들레처럼 살아가야겠습니다.
보다 즐겁게 말이죠.

끝으로 최명길의 말을 인용함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 온조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최명길의 이마가 차가운 돗자리에 닿았다. 왕조가 쓰러지고 세상이 무너져도 삶은 영원하고, 삶의 영원성만이 치욕을 덮어서 위로할수 있는 것이라고, 최명길은 차가운 땅에 이마를 대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치욕이 기다리는 넓은 세상을 향해 성문을 열고 나가야 할 것이었다. 최명길은 오랫동안 엎드려 있었다.  (p. 236)


PS. 참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 있습니다.

청나라 칸이 쓴 편지에 대해, 인조가 네 명의 신하에게 답서를 쓸 것을 명합니다.
내용인 즉, 청군이 그대로 돌아가 달라는 것입니다.

최명길은 화친을 주장해 오던 터라 문제가 없었지만,
나머지 세 신하는 만고의 역적 불명예와 어명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정육품 수찬은 몸이 아파 쓸수 없다는 글을 씁니다.
결과는 피똥싸게 장을 맞아 쓸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정오품 교리는 고민 고민 하다가 지병인 협심증이 도져 죽습니다.

정오품 정랑은 임금부터 주전파 주화파의 신하들은 물론이고, 군병들과 노복까지 모두가 살고자 한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살 길을 찾습니다.
바로 간택되지 않을 글을 지어서 바치는 것입니다.

남한산성과 고구려의 안시성은 비교할 수가 없을진대, 이 둘을 비교하는 글을 지어 바침으로 만고의 역적과 매국의 불명예와 임금의 어명 사이에서 죽을 위기를 면합니다.

여기에서도 교훈은 "잘 살아 보자" 인가 봅니다.

Posted by 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