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책이야기를 하렵니다. 여기에서는 <버드나무 길> 이라는 책에 쓰인 유일한 박사의 발자국을 살펴보려고해요. 유일한 박사를 다룬 다른 책들을 읽지 못해서, 비교나 검증을 하지는 못했음을 이해해주세요.
그가 존경받을 만한 이유를 책을 토대로 정리해 봤습니다.
1. 아홉의 나이에 홀로 미국유학생활을 통한 자수성가
(1) 신문배달을 시작, 그리고 미식축구팀에 가입 (2) 디트로이트 변전소에 근무하면서 대학등록금 저축, 고향에 생활비 송금 (3) 미시건 대학 진학 (4) GE 입사 (5) 숙주나물 판매하는 사업 시작 - 라초이 식품 회사 (6) 서재필, 정한경, 이희경 등과 합작하여 유한 주식회사 설립
2. 독립운동에의 관심과 참여
(1) 박용만이 설립한 헤이팅즈 소년병 학교에서 수학 (2) 미시간 대학의 한.중 학생회 회장 역임 (3) 1914년 4월 14일 한인자유대회에서 <한국 국민의 목적과 열망을 석명하는 결의문> 보고
3. 존경받는 기업
(1) 사회적 책임 - 농기계와 염료 수입판매 시 이윤제로 (2) 이승만 정권시절 자유당의 부당한 정치자금 요구 거절 (3) 정직한 납세를 하는 기업철학 - 일제, 이승만. 박정희 정권때의 보복성 세무조사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털어서 먼지하나 나오지 않았다는 일화 (4) 1963년 종업원 주주제 시행 1962년 최초로 기업공개를 하는 등의 선진경영
4. 장학금 사업과 학교설립의 육영사업
이 외에도 많지만, 우선은 이 여섯가지를 말해주는 책의 부분을 인용함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 1 일정시대 미국교민사회에서 교회
일본인들은 출신 현을 중심으로 한 현민회로, 중국인들은 종친회를 중심으로 한 반면에 한국인들은 한인교회를 중심점으로 삼았다. 더군다나 한국인들을 보호하고 대변해 줄 국가마저도 일제의 강점하에 들어가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린 상태에서 한인교회는 그들의 울분을 토로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이자 또 그들의 권익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단체였다. 따라서 한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도시마다 설립된 한인교회는 한인들의 가장 큰 목적이었던 조국 독립을 달성하기 위한 중요한 근거지 역할을 했다.
# 2 유한양행의 버드나무 유래
한국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인 작년 5월경에 일한은 서재필, 정한경, 이희경 등과 합작하여 한국 및 중국과 러시아의 토산품을 취급하는 유한 주식회사를 설립했었다. 유한 주식회사는 기반이 잡히면 수입뿐만 아니라 질병으로 고생하는 한국인들을 위해 미국 약품을 한국에 수출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이십일 년 만에 돌아간 한국에서 일한은 동포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은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다급한 것은 질병을 치료하는 약품이었다.
유한 주식회사의 설립에는 많은 재미동포들이 자본금을 투자했으나 최대의 주주는 일한이었다. 그래서 회사명도 일한의 성과 이름을 따서 '유한'이라고 했던 것이다.
<중략>
버들표 마크는 일한의 사업 계획에 찬동한 서재필이 선물로 준 것이었다. 서재필은 일한에게 버드나무 조각을 주며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자네의 성 유(柳)자가 버들 유 자가 아닌가? 그래서 자네의 성을 따 뜨거운 여름날 사람들이 햇빛을 피해 마음놓고 쉴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이 되라는 뜻에서 만든 걸세. 한국의 큰 버드나무, 내 뜻풀이가 어떤가? 꿈보다 해몽이 좋은지 모르겠네." 서재필이 일한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자네에게 고맙다는 인사나 듣기 위해 선물한 것은 아니니까 너무 그러지 말게. 내 딸이 손수 나무에다 조각을 한 건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 부디 무성한 가지를 뻗고 있는 이 버드나무처럼 어떠한 시련에도 굴하지 말고 뜻하고 있는 큰일을 이루게나."
일한은 그때 받았던 선물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가 유한 주식회사를 설립할 때 회사의 상징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 3 시말서와 보너스 일화
유한양행에는 사원들이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하는 요인이 있었다. 유한 양행에서는 매년 영업실적에 따라 연말이면 월급 이외에 보너스를 더 주었기 때문이었다. 보너스는 사원마다 차이가 났다.
어느 해 연말이었다. 일한은 전사원의 인사기록표를 참고해 가면서 보너스를 지급했다. 일을 잘못 처리해 시말서를 많이 쓴 사원들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시말서까지 썼는데 보너스를 많이 줄 리가 만무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보너스를 받고 나서 봉투를 열어보니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시말서를 많이 쓴 사람일수록 보너스가 더 많았던 것이다. 이유를 모르고 의아해 하는 사원들에게 일한이 설명을 해주었다.
"시말서를 많이 썼다는 것은 그만큼 열심히 일을 해보려고 했다는 증거입니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용기는 결코 시말서 몇 장과 맞바꿀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회사는 그저 적당히 일하고 월급이나 받아가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당장이라도 사직서를 제출하시오."
"그러면 내년에는 나도 시말서를 많이 써야겠는데."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일한이 대답했다.
"내년에도 시말서를 가지고 여러분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아니니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다간 정말 이 회사에서 쫓겨나는 수도 있습니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일한이 빙긋이 웃었다.
# 4 만년필 일화
"내가 19년 전에 이 만년필과 똑같은 것을 구입할 때 설명서를 보니까 고장이 나면 언제라도 수리해 준다고 쓰여 있더군. 그래 전번에 고장이 나 쉐퍼 회사에 수리를 해달라고 보냈더니, 그 회사에서는 자기네 제품을 19년 동안 사용하다가 수리를 해달라고 부탁한 사람은 아직 한 사람도 없었다면서 고장난 만년필을 기념으로 회사에서 보관하고 대신 만년필을 보내주겠다는 거야. 나야 얼싸 좋다고 했지. 새 만년필로 결재를 하니까 결재도 쉽게 되는구먼."
# 5 장학금 일화
일한은 그것뿐만 아니라 김명선 박사를 통해 유학을 가고 싶으나 여비가 없어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러한 행위의 결과로 일한은 연구기금을 기증한 연세대학교로부터 1965년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김명선 박사는 도움이 필요한 학생이 있으면 일한에게 들러 마치 맡겨둔 돈을 찾아가듯이 돈을 받아가곤 했다. 일한도 김명선 박사가 불현듯 나타나면 제자들의 여비를 받으러 온줄 알고 선뜻 돈을 내놓았다.
"세상에 강도가 따로 없지. 평소에는 얼굴 한번 내보이지 않다가 돈만 필요하면 나타나는 사람이 바로 자네야."
"이 세상에 나 같은 강도가 많아 보십시오.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겁니다. 그러니까 나는 강도가 아니라 의적인 셈입니다. 돈 많은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좋은 일에 쓰는 것이 뭐가 나쁩니까? 형님, 내 말이 맞죠?"
"알았어, 그만해. 자네에게 빼앗긴 돈을 벌려면 더 부지런히 일해야 하니까 그만 나가주시지."
시선이 마주치자 둘은 동시에 웃었다.
P.S
1. 역사적 인물들(서재필, 이승만, 박정희)의 평가가 예비독자분들의 정치성향에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 군대에서 체했다면 배에 발라준다는 빨간약 전설과 쌍벽을 이루는 <안티푸라민> 시골에서는 거의 만병통치약 대접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제가 우습게 여겼던 그 약 이제는 못 웃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