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대통령 링컨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링컨을 모르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만큼 '링컨'을 다룬 책도 많습니다.
데일 카네기 역시 같은 생각을 합니다. 링컨에 대한 책은 넘치고 넘치는데, 책을 쓴 이유는 무엇인지 들어봅시다.
물론 이미 많은 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이 링컨에 관한 책을 다수 발간한 시점에서 나까지 링컨에 대한 글을 써야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링컨에 관한 많은 책들을 읽고 난 뒤 알게 된 그의 새로운 생애를 단순히 접어버릴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그의 일생에서 흥미로운 사실만을 추려 내어 링컨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간단하게나마 말해 줄 수 있는 전기물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책을 어떻게 포스팅해야 할까? 워낙에 유명한 링컨이지만, 데일 카네기처럼 저 역시 처음 들어보는 일화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위대한 링컨의 우스꽝스러운 일화들을 너무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서가를 뒤지다가 <노무현이 만난 링컨> 과 <조선 바보 노무현>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직 읽지는 못했습니다만, 이 책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감이 옵니다.
저는 이 기사에서, 우스꽝스러운, 그래서 더 인간적인 링컨의 일화를 발췌하려 합니다.
완벽한 위인을 더 완벽하게 만들어 주는 도구로써의 결점이 아닌, 약하고, 인간적인, 그래서 더 사랑스러운 링컨의 일화들을 발췌하려 합니다. 너무도 완벽한 인격체로, 외경하고 숭상할 뿐, 어렵기만한 위인이 아니라, 사람다운, 사랑스러운 링컨을 잠깐 만나보고 가시기 바랍니다.
아래에는 그 일화들을 발췌합니다. # 제목 아래의 [] 부분이 인용부분 입니다.
# 1 바로 그 한 사람이 - 링컨에게 소중한 사람
[ 그 당시 뉴 세일럼에는 아내는 고생을 하며 하숙을 치는데 자신은 낚시를 하거나 바이올린을 켜거나 시를 읊조리며 무위도식하는 잭 켈소라는 사내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인생의 낙오자라고 경멸했다. 하지만 링컨은 그를 좋아했고, 돈독한 관계를 맺으며 그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잭 켈소와 가깝게 지내기 전까지 링컨은 셰익스피어와 번즈를 잘 알지 못했다. 오래 전 이미 셰익스피어 작품을 접하기는 했으나 이름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잭 켈소가 읽어주는 <햄릿>과 <맥베스>를 들으며 링컨은 처음으로 언어가 빚어내는 교향곡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았고 다음과 같이 감탄했다.
"언어가 빚어낼 수 있는 가없는 아름다움은 어찌 이리 오묘한 것이지! 감각과 감성을 어찌 이리도 한번에 휩쓸어버릴 수 있는 것인지!"
링컨은 셰익스피어에게 압도당했으나 바비 번즈에게서는 사랑과 공감을 느꼈다. 심지어 번즈에게서 혈육과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번즈도 링컨만큼이나 가난했다. 번즈 역시 오두막에서 태어났고, 농사를 지었다. 농사일은 번즈에게 들쥐의 보금자리를 일구는 일처럼 작은 비극이기는 했지만 시에 사로잡혀 불후의 명성을 얻게 된 밑거름으로 매우 뜻 있는 일이었다.
번즈와 셰익스피어의 시를 통해 링컨은 의미와 감정과 사랑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링컨이 가장 놀란 사실은 셰익스피어도 번즈도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들 역시 링컨처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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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그는 번즈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매달렸다. 그는 어떤 작가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많이 읽었고, 그래서 그의 문체는 셰익스피어의 영향이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다.
대통령이 된 후 남북전쟁으로 인한 고뇌와 번민으로 마음이 무거울 때에도 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즐겨 읽었고, 바쁜 와중에서도 셰익스피어 권위자들과 셰익스피어의 극에 대해서 토론을 벌였다. 뿐만 아니라 문제가 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그들과 서신을 주고받기도 했다. 암살당한 그 주에도 그는 일단의 사람들에게 2시간에 걸쳐 큰소리로 <맥베스>를 읽어주기까지 했다.
무능하고 게으른 뉴 세일럼의 어부인 잭 켈소의 영향은 결국 백악관에까지 미치게 된 것이다. ]
# 2 링컨, 그도 미래가 불안하다
[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처음 여섯 달 동안 다섯 건의 사건을 맡았을 뿐이다. 2달러 50센트짜리 한 건, 5달러짜리 2건, 10달러짜리 한 건, 그리고 다른 한 건은 오버코트로 수임료를 대신했다.
링컨은 너무도 낙담하여 하루는 목재소 앞에 멈춰 서서 변호사를 그만두고, 목수 일을 해 볼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몇 년 전, 뉴 세일럼에서 변호사 공부를 할 때에도 공부를 그만두고 대장장이가 되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
# 3 링컨도 완벽하지 않다.
[ 메리 토드는 뜰에 꽃도, 관목도 없고, 따라서 계절마다 바뀌는 자연의 색깔이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링컨은 마지못해 장미를 몇 그루 심었는데, 그는 화원을 가꾸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장미가 죽고 말았다. 그 후에도 메리는 정원을 만들자고 끈질기게 말했고, 링컨은 할 수 없이 정원을 꾸몄으나 정원에는 잡초만 무성할 뿐이었다.
육체적인 활동을 많이 한 편은 아니지만 링컨은 손수 '올드 벅'이란 말에게 먹이를 주고 빗질을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소를 기르고, 우유를 짜고, 목재도 손수 톱으로 잘랐다. 그리고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어 스프링필드를 떠나기 전까지 이 같은 일을 계속했다. 하지만 링컨의 육촌 형제인 존 행크스는
"에이브는 몽상하는 것 외에는 잘 하는 게 없었다."라고 했으며, 이 말에 메리 토드도 동의했다.
링컨은 정신을 놓고 멍하니 있는 경우가 많았고, 세상일에 초연한 듯 보이는 적도 있었다. 집 앞의 울퉁불퉁한 보도로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가다가 아이가 굴러 떨어져 큰소리로 우는데도 링컨은 땅에만 시선을 던진 채 계속해서 걸어가다가 아내가 소리를 지르면 그때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곤 했다.
<중략>
식사를 준비한 뒤, 아내가 식사를 하라고 몇 번이나 소리쳤지만 그는 아내가 소리치는 것을 전혀 듣지 못한 듯 보였다. 그리고 식탁에 앉아서도 멍하니 허공만 쳐다보고 있다가, 아내가 식사를 하라고 말해야 간신히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식사 후에 그는 30분 정도 뚫어져라 난로를 쳐다봤는데 그럴 때면 아이들이 기어가서 머리를 잡아 뜯고 말을 걸어도 그는 아이들이 있는 것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그리곤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농담을 던지거나 가장 좋아하는 시를 읊조렸다.
죽어야 할 운명의 인간이 어찌 이리도 당당한가? 눈 깜짝할 새 지나가는 유성처럼, 재빠릴 흘러가는 구름처럼, 번쩍이는 번개처럼, 부서지는 파도처럼, 인간은 죽어서 무덤에서 편히 쉬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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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대법원 판사와 체스를 두고 있을 때였다. 처음에 로버트가 와서 식사를 하시라고 했다. 링컨은 "그래, 알았다. 곧 가마."라고 하고는 체스에 빠져 식사를 하러 가지 않고, 계속 체스만 두었다. 다시 로버트가 와서 엄마가 빨리 오라고 한다고 하자 링컨은 다시 가마, 하고 말을 하고는 이내 까먹고 체스에 열중했다. 다시 로버트가 와서 재촉을 했지만 이번에도 대답만 하고는 다시 체스를 두었다. 그러자 갑자기 로버트가 뒤로 물러서서 체스판을 발로 냅다 찼고, 말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저 판사님, 아무래도 다음에 게임을 끝내야 할 것 같은데요." 링컨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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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토드는 좀처럼 사무실에 들르지 않았는데, 한번 들렀다 하면 기겁을 했다. 여기 저기 물건이 쌓여 있는 등 마치 돼지우리가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찾는 게 없으면 여기를 보세요.'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서류 꾸러미도 있었다.
스피드가 말한 것처럼 링컨의 습관은 '규칙적으로 불규칙적'이었다. 사실 링컨은 좀처럼 청소를 하지 않았다. 책장 위에는 먼지가 쌓여 곰팡이가 피어날 지경이었으니, 새삼 말해 무엇하랴! ]
# 4 메리 토드는 악처? 링컨은 공처가?
메리 토드는 하녀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녀가 소동을 일으키면 하녀들은 곧바로 짐을 싸고 떠났다. 그들은 그녀를 경멸했으며, 친구들에게 절대 그 집에서 일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결국 링컨의 집은 하녀들의 '블랙 리스트'에 오르고 말았다.
자신의 조카딸이 링컨의 집에서 싸우고 쫓겨나자 롱 제이크는 노새를 끌고 링컨의 집으로 와서 조카의 짐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메리 토드는 대뜸 화를 내면서 그와 그의 조카에게 욕설을 퍼붓고 만약집으로 들어오면 폭력을 쓰겠다고 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롱 제이크는 즉시 링컨에게 달려가 부인의 사과를 받아내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링컨은 그 이야기를 잠자코 들은 다음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정말 유감입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는데, 제가, 15년간 매일같이 겪었던 것을 조금만 참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롱 제이크는 링컨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링컨을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며 사과했다고 한다. ]
# 5 나는 정치적으로 자살했다
링컨이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미국은 멕시코와 20개월째 전쟁 중이었다. 그것은 국회에서 노예의 힘을 이용해 의도적으로 일으킨 수치스런 침략전쟁이었다. 노예제도를 발전시켜 노예제대를 지지하는 상원의원을 선출할 수 있는 좀더 많은 땅을 얻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미국은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두 가지를 성취했다. 멕시코에 속해 있던 텍사스가 그 전쟁으로 말미암아 멕시코에서 분리되었고 미국은 멕시코 정부에게 텍사스에 대한 권리를 모두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나아가 뉴멕시코, 애리조나, 네바다, 캘리포니아까지 멕시코 영토의 반을 강제로 빼앗았다.
링컨은 대통령이 '약탈과 살인, 불명예의 전쟁'을 시작했다고 대통령을 공격하기 시작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약자와 무고한 자를 보호하는 사실을 망각하고, 강력한 살인자무리와 지옥의 악마들이 어린이들까지 포함해서 사람을 살인하고 방관하고, 정의의 땅을 약탈하도록 방관했다.'고 연설을 마무리했다.
사실 워싱턴 정가에서는 링컨의 연설에 별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링컨은 무명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정작 격노한 곳은 워싱턴이 아닌 스프링필드였다. 일리노이에서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자유라는 신성한 명분을 앞세워 6천 명을 전쟁터로 보냈는데, 자신들이 뽑은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군인들을 지옥에서 온 악마에 살인자라고 비난했기 때문이었다. 격분하고 흥분한 사람들은 공공 집회를 열어 링컨을 '천하고, 비열하고, 파렴치하고, 게릴라 같다'고 거세게 비난했다.
링컨에 대한 증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으며 그 뒤로 10년이나 계속 되었다. 그로부터 13년 후에 링컨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을 때, 이러한 비난이 다시 쏟아졌다. 링컨은 이에 대해 동료 변호사에게
"나는 정치적으로 자살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
# 6 "넘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미끄러졌을 뿐이야."
[ 날이 갈수록 두 사람의 난타전은 치열해졌다. 링컨은 고삐를 늦추지 않고 더글러스를 공격했디만 그러한링컨의 노력은 결국 스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선거일 밤, 링컨은 전신국에서 자신이 패배한 개표 결과를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은 추적추적 비가 내렸고 집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어둡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리고 굉장히 미끄러웠다. 링컨은 갑자기 중심을 잃고 미끄러졌으나 이내 균형을 잡았다.
"넘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미끄러졌을 뿐이야." 그는 혼잣말을 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일리노이 주 신문에는 링컨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링컨 씨는 일리노이 주에서 출마했던 정치인 가운데 가장 불운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정치적인 일과 관련된 것에는 어떤 것이든지 실패할 운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보통 사람 같으면 완전히 헤어나지 못할 실패를 그는 밥 먹듯 하고 있다.
이렇게 킥킥대고 웃으면서도, 그에 대한 존경이 사라지진 않습니다. 존경에 사랑이 더해질 뿐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존경과 사랑을 담아 <게티즈버그 연설>과 <두 번째 대통령 취임연설>을 인용함으로 글을 마칩니다.
# 7 게티즈버그 연설
[ "지금으로부터 87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이 대륙의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신념 아래 새로운 나라를 탄생시켰습니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내전에 휩싸여있고 우리 선조들이 세운 나라가, 아니 그러한 신념에 의해 세워진 한 나라가, 과연 이 지상에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받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인 이 곳은 남군과 북군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던 자리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게 마지막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그 싸움터의 땅 일부를 헌납하고자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 큰 의미에서, 이 땅을 축성하며 신성하게 하는 자는 우리가 아닙니다. 여기 목숨 바쳐 싸웠던 그 용감한 사람들, 전사자 혹은 생존자들이, 이미 이곳을 신성한 땅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오늘 우리가 여기 모여 무슨 말을 했는지에 대해 주목하지도, 오래 기억하지도 않겠지만 그 용감한 사람들이 여기서 수행한일에 대해서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그토록 고결하게 지킨, 그러나 미완으로 남긴 일을 지켜나가는 것은 이제 살아 있는 우리들입니다.우리 앞에 남겨진 그 미완의 큰 과업을 다하기 위해 지금 여기 이곳에 바쳐져야 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입니다.
우리는 그 명예롭게 죽어간 이들로부터 더 큰 헌신의 힘을 얻어 그들이 마지막 신명을 다 바쳐 지키고자 한 대의를 지켜나갈 것이며,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하느님의 가호 아래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보게 될 것이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
# 8 1865년 두 번째 취임연설
[ "우리가 간절히 희망하는 것은 하늘의 무서운 응징인 이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250년간 노예들의 무보수 노동의 대가로 축적된 모든 부가 없어질 때까지, 채찍질에 흘린 모든 핏방울이 전쟁으로 인해 또 다른 피 흘림을 지불하게 될 때까지, 이 전쟁이 계속되는 것을 바라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3천 년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지금도 '하느님의 심판은 모두에게 참되고 정의롭다.'고 말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누구에게도 원한을 갖지 말고, 모든 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게 하신 그 정의로움에 대한 굳은 확신을 갖고 지금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끝내기 위해....... 우리들 사이의, 그리고 모든 나라들과의 정의롭고 영원한 평화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모든 일을 다 하기 위해 매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