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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문학, 소설, 등 2024. 4. 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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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작가정신 출판

     

    무얼 읽을까 찾다가 예전에 인기가 있어서 제목은 익히 알고 있던 이 책을 골랐습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꽤나 유명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책을 읽어보니 이 책은 30페이지 정도의 단편소설의 모음집이었습니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그 단편소설 중 하나의 제목입니다.

     

    해야할 것은 많은데 문제는 풀리지 않고, 해야할 것은 많은데 갈피를 잡지 못해 시간은 늘어지고 있는 지금,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날려버리는 것도 진절머리가 나고, 불안함으로 그 어떤 것도 시작도 하지 못하는 지금, 그나마 이 책은 읽는 게 가능합니다. 30페이지 정도의 짧은 소설이라 읽기 쉽습니다. 등장인물이 두 세 명으로 단출해서 쉽기도 합니다. 내용은 주인공의 심리묘사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는 것이 유튜브를 보는 것보단 쉽진 않지만 대체로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티비를 켜놓고 계속해서 채널을 돌리거나, 유튜브를 떠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사람은 자신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쉽고 자주 자신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거울일 겁니다. 거울을 봄으로 우리는 자신의 외형이나 표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어디선가 들은 말이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우리에게 거울의 역할을 제공해 줍니다. 나의 사회적 지위, 위치, 서열, 기호, 성취, 환영 이나 사랑을 받는지의 여부, 등을 다른 이와의 관계나 대화 같은 다른 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거울을 보듯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단편 소설들은 등장인물이 적습니다. 그래서 관계가 단순하고 쉽습니다. 주인공이 스스로를 설명하니 독자 입장에서 어려움이 없습니다.

     

     

    1.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 – ‘꿈꾸는 식물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에서는 주인공 고즈에와 곧 결혼할 사람을 소개하는 동생 미도리자매가 등장합니다. 기호도 소망도 뿌옇게 흐린 고즈에는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동생미도리의 분명해 보이는 인생에 부러움과 약간의 시기, 그리고 열등감을 느낍니다. 우유부단하고 뿌연 잿빛의 삶을 살아가는 고즈에는 스스로를 꿈꾸는 식물이라고 표현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인상 깊은 단어입니다. ‘꿈꾸는 식물이라니, 사회의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다니다가 벨트에서 떨어진 채로 다시 궤도로 올라설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는 저를 찌르는 단어 같아서 인상 깊었습니다.

     

    2.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츠네오가 바깥 바람을 몰고 오는 유일한 구멍이었다.” P. 52

     

    야마무라 구미코는 스스로를 조제라고 부르고, 사랑하는 츠네오관리인이라고 부르는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여성입니다. 가난하고 몹시 외로운 처지이지만, ‘츠네오를 만나 투정도 부리고 사랑도 합니다. 그렇게 누리는 행복이 영원할 수 없을 것을 알기에 오는 불안도 느낍니다.

    『 노랑과 검정이 만들어낸 강렬한 얼룩무늬가 움직일 때마다 햇빛을 받아 번득인다. 조제는 호랑이의 포효에 기절 할만큼 놀라 츠네오의 옷자락을 잡는다.

    꿈에 나오면 어떡해…..”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보긴 왜 봐.”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 무서워도 안길 수 있으니까. …..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호랑이를 보겠다고…..만일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평생 진짜 호랑이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p. 65~66

     사랑을 시작할 때 밀려드는 온갖 두려움’, ‘조건,’ ‘영속성에 대한 불안을 이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사람인 저는 이 책의 호랑이부분을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 깊은 밤에 조제는 눈을 뜨고, 커튼을 열어젖혔다. 달빛이 방안 가득 쏟아져 들어왔고, 마치 해저 동굴의 수족관 같았다. 조제도 츠네오도 물고기가 되었다. 죽음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죽은 거야.’

     츠네오는 그 후로도 조제와 같이 살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 부부라고 생각하지만, 호적 신고도 하지 않았고,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고, 피로연도 하지 않았고, 츠네오의 사족 친지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종이 상자 속에 담긴 할머니의 유골도 여전히 그대로다.

     조제는 이대로가 좋다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을 들여 간을 잘 맞춘 음식을 츠네오에게 먹이고, 천천히 세탁을 해서 츠네오에게 늘 깨끗한 옷을 입힌다. 아껴 모은 돈으로 일 년에 한 번 여행도 떠난다.

     우리는 죽은 거야. 죽은 존재가 된 거야.’

    죽은 존재란, 사체다.

     물고기 같은 츠네오와 조제의 모습에, 조제는 깊은 만족을 느낀다. 츠네오가 언제 조제 곁을 떠날지 알 수 없지만, 곁에 있는 한 행복하고,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제는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을 늘 죽음과 같은 말로 여긴다. 완전무결한 행복은 죽음 그 자체다.

     우리는 물고기야. 죽어버린 거야.’

     그런 생각을 할 때, 조제는 행복하다. 조제는 츠네오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깍지 끼고, 몸을 맡기고, 인형처럼 가늘고 아름답고 힘없는 두 다리를 나란히 한 채 편안히 잠들어 있다. p 70~71

     

    물고기 부분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가장 행복한 날의 한 가운데 자리하는 불안의 느낌을 공감하지 못할 것은 없지만, ‘죽음과의 접점은 저로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는 만큼 행복함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행복한 날을 박제하여 보관하고 싶다는 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로서는 죽음을 이렇게 갖다 붙이는 것은 퇴폐적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3.     차가 너무 뜨거워 인간관계에서 빠질 수 없는 불안과 경계 그리고 긴장

     

    다른 단편들에서도 주인공은 주로 남자와 여자입니다.

    주인공들은 사랑하는 사이이기도 하고, 사랑했던 사이이기도 하며, 불륜 사이이기도 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밀당이 이 책의 전반을 아우르는 주제가 아닐까 합니다. 사람 관계의 사랑과 행복은 이야기의 시작이자 배경이고 행복한 순간에도 항상 곁에 있는 불안과 경계 그리고 긴장이 이 책의 전반적인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의 불안과 경계와 긴장을 가장 많이 드러낸 단편이 <차가 너무 뜨거워> 입니다.

     

    『 아구리는 사이드보드 위의 그 꽃병에 막 꽃을 꽂아둔 참이다.

     일 때문에 찾아오는 손님이라면 이러지도 않을 것이다.

     요시오카는 특별한 손님이다.

     옛날 애인이니까, ‘꽃이라도…..’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실은, 꽃을 꽂은 꽃병을, 여기가 아니라 안방으로 옮겨서, 요시오카를 그곳으로 안내할까 생각도 했다.

    햇빛도 잘 들고, 멀리 산도 보인다. 예쁜 커튼도 있고, 멋진 가구도 있다.

    그러나 아구리는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이 살풍경한 응접실로 요시오카를 들이기로 했다.p. 169

     

    『아구리는 그가 바로 요시오카라는 걸 알았다. 요시오카는 알고 싶은 게 있으면,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고 미주알고주알 캐묻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아구리는 갑자기 마음이 변해서, 요시오카를 거실로 불어들이고 싶은 기분이 싹 가시고 말았다. 요시오카와 칠 년이나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고, 그동안 사람이 확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백합과 카네이션만 살풍경한 응접실에 장식하고, 거실로 이어지는 문은 닫아버렸다.

     

     

    4.     부담 없이 읽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읽어야만 한다는 부담 없이, 특별한 의미 부여 없이, 유튜브를 보듯이 가볍게 읽어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성이라던가 사회적 의미라던가 메시지를 평가할 능력은 저에게는 없습니다. 평가할 능력이 없다고 해도, 그리고 불륜의 관계들이 도덕적으로 불편하다고 할지라도, 읽기 쉽고 읽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거울을 보듯 다른 사람을 보고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합니다. 그 이야기가 허구일지라도 충분히 나의 일면을 돌아보는 거울 역할을 합니다. 짧은 단편인 점과, 적은 수의 등장인물 이라는 점이 이 거울 같은 책의 장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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