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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의 해방일지
    문학, 소설, 등 2024. 5. 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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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해방일지

    작가 : 정지아

    출판 : 창비

     

     

    장례 이야기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장례를 치르며, 딸로서 그간 알았던 아버지와의 추억과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인연들과의 일상을 정리하는 장례 이야기 입니다. 외동딸로 많은 것을 추억하고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평생 형을 원망했던 작은 아버지와 친척들의 인생에서의 아버지 이야기 뿐 아니라, 장례식장 황사장’, 동창생 박한우’, ‘떡집언니’, 아들 노릇 하는 윤학수’, 구멍가게의 노란 머리 소녀등 아버지가 평생에 관계 맺어온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아버지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이어집니다.

     

     혐오와 증오, 분노의 시대 그리고 오지랖

     

    이 책의 아버지 고상욱씨는 그렇게도 오지랖이 넓어 보입니다.

    친척의 일뿐 아니라, 그렇게 동네 사람들의 일에도 자기 일처럼 발벗고 나서는 장면들이 보입니다. 아내의 빈정거림에도 사위 자랑을 그렇게 하던 한씨전화를 받고 애써주는 일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오거리수퍼 할머니 손녀인 노란 머리 소녀를 다독여주는 일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여러 사람과 이런 저런 관계를 맺으며 살아온 아버지는 그렇게 기억해 주는 문상객들의 기억을 통해 딸인 아리에게 전해집니다. 이 책은 어쩌면 오지랖이고 어쩌면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인 그런 인간관계들을 따뜻하게 그려냅니다.

     

    작중에 딸로 등장하는 고아리는 아버지 고상욱씨 만큼 공동체의 다른 이들을 위해 발벗고 사는 삶을 살지는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 세대가 그렇듯 친척들에 대한 생각들도 윗 세대와는 많이 달라져 있죠.

     

    << 아버지 가고, 어머니 가면 반내골 찾을 일이 몇번이나 있을까? 부모 세대가 가고 나면 사촌이라도 남남이 될 터였다. 자주 오지도 못할 길, 친척들에게 내일을 떠맡기고 싶지 않았다.>> (p. 216)

     

    저 역시 작중의 고아리처럼 혼자 잘난 맛에 주위 사람들과 데면데면하게 지냅니다. 귀찮은 관계는 생략하고, 정리하고, 주위에 피해주지 않고, 관심도 주지 않고, 오지랖을 부리지도 않으며, 귀찮은 일에 엮이는 것을 피하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자기비하자기혐오를 넘어서 꼴 보기 싫은 세상과 사람을 향해 혐오하고 증오하고 손가락질 해야 세상이 바뀔 것처럼 생각하던 어린 시절을 살았습니다. 요즘은 혐오나 증오가 그리고 손가락질이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혐오나 증오 그리고 비판이나 비난 그리고 분노도 각기 그 역할이 있음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저 역시 잘 하지 못하는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입에 담기도 익숙치 않아 민망하고, 실천하기에는 더 힘든 사랑이지만, 사람을 위함으로 변하게 하는 것은 오직 사랑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남에 대한 오지랖과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관심 받는 사람이 싫어하면 오지랖이고 좋아하면 관심이나 사랑일까요? 그 구분이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저는 일단 선행하는 인간관계가 충분하다면 그 인간관계 만큼은 관심이나 애정을 두어도 오지랖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개별 사례에서 충분히 조심하며 살펴봐야 하는 것은 당연한 전제로 남겨둡니다. 그리고 심각하거나 급박한 상황이라면 선행하는 인간관계가 없어도(모르는 사이여도) 관심이나 애정을 둘 수 있다고 개인적인 결론을 내려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여태 잘 살아있기 때문에 이런 개인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아마 제가 눈치채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도움과 호의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오지랖에 대한 혐오를 조금은 줄이고,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을 조금 키워볼까 합니다. 아직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인간이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사랑하는 구성원으로서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치는 아주 작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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