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를 읽고 쓴 글 중에서 '하루키가 생각하는 이름'에 대해 끄적였었죠.
이 책 <양을 둘러싼 모험>에서 '이름' 에 대한 하루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인 듯한 대화에서, '이름'에 대한 하루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제 가정은 하루키의 웃음 하나로 바보가 되고 말겠지만 말입니다.
아래에 [ ] 안에 이름에 대한 재미있는 대화를 인용해 봅니다. 다소 길다 싶어서 중간 부분은 접어 놓았습니다.
[ 뿐만 아니라 놈에게는 이름조차 없었다. 나로서는, 고양이의 이름이 없는 게 놈의 비극성을 덜어주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부채질하고 있는 것인지는 쉽사리 깨달을 수 없었다.
"나비야." 하고 운전기사는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지만, 예상대로 손은 내밀지 않았다.
"어떤 이름이죠?"
"이름은 없습니다."
"그럼 평상시 어떻게 부르고 있죠?"
"부르지 않습니다. 다만 존재하고 있는 겁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그래도 꼼짝 않고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의지를 갖고 움직이지 않습니까?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데 이름이 없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군요."
"정어리 역시 의지를 갖고 움직이고 있지만, 아무도 이름 따위는 붙여주지 않죠."
"그건 정어리와 인간 사이에는 거의 감정의 교류가 없고, 무엇보다도 자기 이름을 누가 부른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하긴 붙이는 건 자유이지만."
"그럼 의지를 갖고 움직이며, 인간과 감정의 교류가 가능하고, 뿐만 아니라 청각을 지니고 있는 동물은 이름을 갖고 있을 자격이 있다는 건가요?"
"그런 셈이죠." 하고 운전기사는 스스로 납득했다는 듯이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떨까요, 내가 마음대로 이름을 붙여도 좋을까요?" ]
[ "왜 배에는 이름이 있고, 비행기에는 이름이 없는 거죠?" 하고 나는 운전기사에게 물었다.
"어째서 971편이라든가 326편이라고만 할 뿐 '은방울꽃호' 라든가 '데이지호' 라는 식의 고유 이름이 붙어 있지 않는 걸까요?"
"틀림없이 배에 비해서 숫자가 너무 많아서 그럴 겁니다. 대량 생산물인 셈이죠."
"그럴까요? 배 역시 나무랄 데 없는 대량 생산물이고, 숫자 역시 비행기보다 많을 텐데."
"하지만." 하고 말한 운전기사가 몇 초 가량 침묵했다. "현실적 문제로 시내버스에 일일이 이름을 붙일 수는 없으니까요."
"시내버스 하나하나에 이름이 붙여져 있다면 멋있을 것 같은데." 하고 여자 친구가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승객이 선호하는 걸 가려 타게 되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신주쿠에서 센다가야까지 가는데, '영양호' 라면 타겠지만 '노새호'라면 타지 않거나." 하고 운전기사가 말했다.
"어떻게 생각해?" 하고 나는 여자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확실히 '노새호'라면 타지 않을 거야."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노새호' 운전기사가 불쌍해지죠. '노새호' 운전기사한테는 죄가 없는 겁니다." 하고 운전기사가 동병상련적 발언을 했다.
"그렇죠."하고 나는 말했다.
"그래요. 그래도 '영양호'를 탈래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그것 보세요" 하고 운전기사가 말했다. "그런 겁니다. 배에 이름이 붙여져 있는 건 대량생산되기 이전부터, 그것에 친숙해져온 흔적입니다. 원리적으론 말에 이름을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죠. 따라서 말처럼 쓰이고 있는 비행기에는 틀림없이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예를 들면 '스피리츠 어브 센트루이스' 라든가 '에노라 게이' 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분명히 의식의 교류가 있는 겁니다."
"그건 생명이라는 개념이 바탕에 있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목적성이라는 건 이름에선 2차적 요소인가요?"
"그렇습니다.목적성만이라면 번호로 끝납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유태인이 당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겠군요"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말입니다. 만약 이름의 바탕이 생명의 의식 교류 작업에 있다고 한다면 말입니다. 어째서 역과 공원과 야구장에 이름이 붙어 있는 걸까요? 생명체가 아닌데."
"그래서 목적적이 아니라 원리적으로 설명해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운전기사는 지지하게 생각에 빠져들어. 신호가 파란색으로 바뀌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뒤따라오던, 캠핑 카로 꾸민 하이에스가 '황야의 7인'의 서곡을 본뜬 경적을 울려댔다.
"호환성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가령 신주쿠 역은 한 곳밖에 없고 시부야 역과 바꿔치기할 순 없죠. 호환성이 없는 것과 대량 생산물이 아닌 것. 이 두 가지면 어떨까요?"
운전기사가 말했다. "신주쿠 역이 에코다에 있다면 그것은 에코다 역입니다." 하고 운전기사가 반론했다.
"하지만 오다큐선도 함께 따라오잖아요." 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리죠. 만약 역에 호환성이 있다면 어떻게 되죠? 만약 말입니다. 만약 철도 역 전체가 대량 생산물의 조립 방식으로 신주쿠 역과 도쿄 역을 그대로 교환할 수 있다면?" 하고 내가 말했다.
"간단합니다. 신주쿠에 있으면 그건 신주쿠 역이고, 도쿄에 있으면 그건 도쿄 역입니다."
"그럼 그건 사물에 붙은 이름이 아니라 역할에 붙은 이름인 셈이군요. 그건 목적성 아닙니까?"
운전기사는 침묵했다. 하지만 지금의 침묵은 그다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이따금 생각합니다만, 우리는 그런 것에 대해서 조금 따뜻한 눈길을 주어야만 되는 게 아닐까요?" 하고 운전기사가 말했다.
"무슨 말이죠?"
"다시 말해서 거리와 공원과 차도와 역과 야구장과 극장에는 한결같이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그것들은 지면 위에 고정된 대가로 이름이 붙여진 겁니다."
새로운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가령 내가 의식을 완전히 포기하고 어딘가에 확연히 고정되었다고 하면, 나에게도 훌륭한 이름이 붙게 될까요?" 하고 내가 말했다.
운전기사는 백미러 속의 내 얼굴을 힐끗 보았다. 어딘가에 함정이 설치돼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듯한 눈초리였다.
"고정되었다고 하시면?"
"다시 말해서 냉동되어 버린다던가, 그런 거죠. 잠자는 숲속의 미녀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당신에겐 이미 이름이 있잖습니까?"
"그렇습니다. 잊어버렸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 "왜 지금까지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양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틀림없이 이름이라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때문이겠지. 나는 나, 그대는 그대, 우리는 우리, 그들은 그들, 그것으로 좋은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드는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