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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의 아들 - 이문열
    문학, 소설, 등 2009. 10. 13.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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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아들 - 이문열

    1. 유다의 죄는 무엇입니까?

    다니던 교회의 어느 동생이 목회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 책에서 '아하스 페르츠'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도 진실로 카인의 죄를 믿으십니까?


    두 질문이 유사합니다.
    모든 것이 전지전능하신 신의 계획과 예정대로라면 유다와 카인은 신의 도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을 뿐 죄가 될 수 없는 것이죠. 그리고 '자유의지'로 선을 지키고 악을 행하지 말았어야 한다면 '자유의지'로 인해서 신의 예정은 변경될 수도 있는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의문은 '그의 부정(否定)은 확신하고 긍정하기 위함(p. 75)' 입니다.
    그런데 전 어지러운 논리는 질색함으로 답을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답을 알지 못함으로 아직도 어지럽기도 합니다.

    2.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런 의문에서 시작한 '아하스 페르츠'는 종교적 교의를 이해하고자 여행을 떠납니다.
    이집트의 이시스와 호루스에게서 인간으로 태어나 고통 받으며 무력하게 죽어가는 신의 모습을. 가나안지방에서 바알신의 농경신적 요소를 흡입했음을, 바빌론에서 천지창조와 아다파왕의 생명의 식물, 지아스투라의 홍수를 봅니다. 아래에 인용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 원래 야훼는 엘 사따이산에 은거하던 목양자의 신에 불과했다.
    거기에 모세의 광기가 접한 호렙산의 영이 더해져  야훼는 곧 가나안의 쟁취를 위한 무자비한 군신으로 변질되었다. 그 뒤 엘리야와 호세아는 그에게 농경신의 권능을 부여했고, 아모스와 이사야를 통해 민족의 신에서 우주의 절대유일자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바빌론에서 페르샤인들의 사탄과 종말론을 도입함으로써 우리의 야훼는 완성되었다. 결국 야훼가 우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야훼를 만들었을 뿐이다. (p. 169) ]


    10년에 걸친 종교공부를 위한 여행과 철학의 공부에도 불구하고 공허함을 이기지 못한 이유로 또는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이유로 '아하스 페르츠'는 조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가 믿는 신을 만나게 됩니다.

    3. 요즘 드는 의문

    그가 믿는 신은 예수를 땅에 보낸 신과는 다르기에 그는 예수와 일곱 차례 논쟁을 합니다.
    그 중에서 제가 요즘 가장 의문이었던 물음이 있어서 인용해 봅니다.


    [ 그 다음에 당신은 우리를 향해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이 되라 하셨소, 보복하지 말라 하셨으며,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소. 오른 뺨을 치거든 왼 뺨마저 내놓고 속옷을 달라거든 겉옷까지 주며, 오 리를 가자거든 십 리를 가 주라 하셨소. 진실로 묻거니와, 도대체 당신은 그 모든 가르침의 실천이 우리 인간에게 가능하다고 믿으시오? 인간의 창조자 오직 당신 아버지의 선으로만 이루어진 것으로 믿으시오? 그러나 자신 있게 단언하지만 여인의 몸을 빌어 태어난 자 중 그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뿐일 것이오. 극소수의 사람들이 당신을 따라 출발할 것이지만 결코 아무도 도달하지는 못할 것이오.
    그리고 그 나머지 -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그 교훈은 오직 감당할 수 없는 영혼의 짐, 영원히 헤어날 길 없는 죄책감과 절망의 원인이 될 따름이오. 비록 당신으로 하여 율법은 완성될 것이지만 그것은 인간과는 별 상관이 없는 독선의 완성일 따름이오. (p. 202) ]


    계명들이 지켜져서 지상낙원이 세워지는 것에는 반대할 사람이 없겠지요.
    그러나 이런 계명들은 '삼청교육대'가 범죄를 일소할 것이라고 믿는 것 만큼이나 요원해 보입니다.

    4. 기독교의 변신론

    그리고 해설에 보니 기독교의 변신론(辯神論-theodicy)을 얘기하네요.


    [ 고통, 죄악, 죽음 등과 같은 현상들은 언제나 기존 질서의 재편성을 요구하는 위협적인 힘이 된다. 이러한 위협들을 종교적 정당화의 견지에서 해소하여 기존 질서를 재확립하기 위한 논리를 변신론이라고 한다.

    변신론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인간들의 매저키즘적 속성이다. 인간은 자신의 불안과 욕구를 타인에게 의탁하고자 하는 자기 부정의 경향이 있다. 이러한 자기 부정적인 의탁을 가장 확실하게 받아 주는 타자가 바로 신이다.
    신은 인간에 대해서 <전체적인 타자他者-Totaliter aliter)>로 가정된다. 인간은 전체적 타자에게 자기 부정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의탁을 함으로서 오히려 심리적 안정과 희열을 얻는다. <나는 하찮은 존재이고 신은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신 안에 나의 궁극적인 지복이 있다> 라는 표현 속에서 매저키즘적 태도의 본질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매저키즘적 의탁은 신의 경험 불가능성에 의해 더욱 고양된다. 신은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것일 때 더욱 완벽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에 대한 묵시적인 비난은 오히려 그 인간에 대한 명시적 정죄로 전도되고, 신의 정의에 대한 회의는 오히려 그 인간의 죄에 대한 물음으로 전도된다. 기독교에서 강하게 내세우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 인간으로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함,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있음 등등은 모두 인간의 매저키즘적 속성을 정교하게 이용하는 변신론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도 인간의 고통을 합리화시키는 중요한 변신론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고통을 당하셨고, 그 고통은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는 곧 인간들의 고통이 당연한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 기독교에서 말하는 낙원회복의 약속, 즉 메시아주의나 천년왕국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인간의 죄악과 고통을 구원해 주시지 않는가라는 경험적 반증에 대하여 기독교는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미래에 그 낙원을 설정함으로써 인간의 고통에 찬 불만을 눌러버린다. 이러한 변신론을 통하여 종교는 현실적 위협으로부터 자체의 존립을 보호한다. 그런데 이러한 변신론은 중요한 사회적 기능도 담당한다.
    즉 사회에 편재해 있는 온갖 특권과 불평등과 고통을 합리화시켜 주는 것이다. 종교적 교리는 부당한 사회 질서를 정당한 것으로 여기게끔 강요하는 것이다. (p. 277) ]


    이 이론의 완성도는 저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네요.
    왜냐하면 제가 꼭 이렇습니다.
    불확실성과 불안함을 의지하고자 하고, 은총보다는 징계를 두려워하는 수준의 믿음이거든요. 극복해야겠지요.

    믿기 위해 의심한다고 하면 대부분 교인들은 고개를 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열 두 사도도 직업별로 믿는 방식이 제각기였다고 들은 바가 있습니다.
    위에 나열한 의문들과 이론들을 이론으로서 또는 믿음으로 극복하고 믿는 날이 오기를 기도합니다.

    덧붙임 1 : 이문열 작가는 누구나 갖는 의문들(스쳐 지나갈 뿐이더라도)을 참으로 기막히게 포착하고 풀어나가는  능력이 있는 듯 합니다.

    덧붙임 2 : 해설자는 "<사람의 아들>은 신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는 신을 부정해야 할 만큼 악화된 우리 시대의 삶에 대한 부정인 것이다." 라고는 하지만 책 속의 비중을 생각해 볼 때는 그 이상의 비중이 있는 듯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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