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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난한 사랑노래
    문학, 소설, 등 2024. 5. 25.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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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사랑노래

    시인 : 신경림

    출판 : 실천문학

     

    2024 5 22일 타계하신 신경림 시인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시인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책은 시집입니다. <가난한 사랑노래>라는 시집입니다. 이 책의 1판 발행은 2013 1 31로 되어 있으나, 저작권 표기에 1988이라 되어있는 걸 보면 1988년 이전에 쓰여진 시인가 봅니다. 이전에 읽었던 시집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보다 시인이 더 젊은 시절에 쓴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이 시집은 훨씬 민중문학 성격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투쟁적이라는 느낌도 듭니다.

     

    젊은 시절의 저였으면 이런 민중가요같은 시들을 아주 좋아했겠지만, 최저시급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면서 나이든 무산계급이 된 지금으로써는 이런 시들에 쓴웃음만 짓게 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민주노총 산하에 있는 회사 노조에 가입조차 안 되는 현실에서, 약자인줄 알았고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노동자들이 현실에서는 나의 노조가입을 거부하는 갑이 되었음을 알았을 때, 대학시절 외쳤던 구호와 참여했던 시위들은 시인의 표현에 의하면 병신춤에 지나지 않았음을 늦게나마 깨닫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 시집을 읽으며 쓴웃음만 지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떨어진 빵반죽 같은 인생이 되어 곧 버려질 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숨결이 남아있는 한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버릴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병신춤일지라도 공동체에 대한 저의 다짐이나 소망을 알아주기라도 하는 것 같은 시 두 편을 옮겨 적어 봅니다. <올해 겨울> 이라는 시와 <우리는 너무 멀리까지 왔다>라는 시 입니다.

     


     

    올해 겨울

     시인 : 신경림

     

    저 환호 소리 아우성 소리가

    우리를 귀머거리로 만들고 당달봉사로 만들고

    저 발구르는 소리 손뼉치는 소리가

    우리 길 헷갈리게 하고 머뭇거리게 하고

    길동무 뿔뿔이 헤어지게 만들고

    그 사이 원수들은

    쥐새끼처럼 살쾡이처럼 도망쳤던 원수들은

    번뜩이는 총칼 새로 벼려 든 채

    큰길에서 신바람나게 망나니 춤추는데,

    우리는 서로 손톱을 세워

    동무들의 얼굴에 깊은 상처를 내고

    돌아서는 야윈 어깨에 칼을 꽂고

    원수들의 날라리 장단에

    병신춤을 추는구나.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을 달려온 걸음

    추위와 굶주림에 떨면서 협박과

    꼬임에 뒤뚱대면서 절뚝이면서

    쓰러지면서 엎어지면서 달려온 걸음

    그 어려운 걸음 되돌려진다는 걸 모르면서.

     

     

    올해 겨울은 춥구나,

    따슷한 겨울이라서 더욱 춥구나,

    무학여고 가까운 소줏집에 앉아

    광장을 덮은 깃발을 거리를 메운 노래를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혼자서 술을 마시는 저녁은.

    아카시아 꽃냄새가 깔리던

    삼십 년 전의 그 봄보다도 더욱 춥구나.

    한강 백사장으로 가는 대신 학교 운동장에 앉아

    외로운 사람의 목쉰 얘기를 듣던

    그 봄보다도 더욱 춥구나.

     

     

    l  1956 5월 제3대 대통령 선거 때 해공이 30만의 대군중을 놓고 한강 백사장에서 선거유세를 벌이던 날 죽산은 무학여고에서 300명을 놓고 외로운 유세를 했다.

     


     

    우리는 너무 멀리까지 왔다

     

    시인 : 신경림

     

     우리는 너무 멀리까지 왔다.

    내 것은 버려두고 남의 것을 쫓아

    허둥대며 비틀대며 너무 멀리까지 왔다.

    색다른 향내에 취해 속삭임에 넋나가

    이 길이 우리가 주인으로 사는 대신

    머슴으로 종으로 사는 길임을 모르고

    우리는 너무 멀리까지 왔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소경이 되었다

    앞을 가로막은 천길 낭떠러지도

    보지 못하는 소경이 되었다

    천지를 메운 죽음의 소리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되었다 바보가 되었다

    남의 것을 쫓아 허둥대는 사이

    우리 몸은 서서히 쇠사슬로 묶였지만

    우리는 그것도 모르는 천치가 되었다

    문득 서서 귀를 기울여보면

    눈을 떠라 외쳐대는 아우성 그 소리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되었다

    동은 터오는데 새벽 햇살은 빛나는데

    그릇된 길잡이한테 휘둘리며

    우리는 너무 멀리까지 왔다

    이제는 풀잎의 이슬로 눈을 비벼 뜰 때

    샘물 한 바가지 퍼마시고

    크게 소리내어 울음 울 때

    허둥대던 발길 우리 것 찾아 돌릴 때

    머슴으로 종으로 사는 길을 버리고

    우리가 주인되어 사는 길 찾아들 때

    우리는 너무 멀리까지 왔다

    이제는 얼뜬 길잡이 밀어 제치고

    우리가 앞장서서 나아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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