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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무라타 사야카문학, 소설, 등 2018. 1. 14. 17:32반응형
이 책을 읽으며 잡다한 많은 생각과 감정이 차오릅니다.
다른이와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지내온 후루쿠라씨의 어릴적 일화는 고교 사회 시간에 배우는 "사회화" 개념의 예시로 써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스스로를 감추기 위해 남들의 말투와 의습을 흉내내고, 남들의 의아함을 떨치려 거짓말을 하는 후루쿠라씨를 보면 남들 말투를 쉽게 따라하는 제 자신이 투영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지금은 "안빈낙도"에 대한 잡생각을 써볼까 합니다.
안빈낙도, 안분지족
학창시절 문학시간이나 미술 시간에 조선시대 작품들의 주제로 많이 들어보셨을 단어입니다. '자신의 처지에 만족할 줄 아는 삶'이란 너무도 그럴듯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유가의 가르침만은 아닐 것 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에서도 소명의식과 맡은 바 소임을 성실히 하는 것은 덕목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과연 주제파악을 하고 소임에 성실하면 만족할만한 삶인 것인가?
스스로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만족할만한 삶일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대 아니다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후루쿠라는 18여년 동안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성실히 생활하지만 친구들에겐 걱정과 염려의 대상으로 이물질과 다름 없었고, 점장이나 동료들에게 당장에 꼭 필요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당장 대체 가능한 자원 입니다. 몸 속의 수분과 피가 계속 교체되어도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후루쿠라씨는 점내의 젓가락이나 종이컵과 같이 편의점(사회)를 유지하는 수분인 것 입니다.
후루쿠라씨가 근무시간 외에 무보수로 쥐위 배설물 범벅이 되어 버린 반품상품 무더기를 치우면 귀해질까요? 노약자 손님이나 임산부 손님 짐이 많은 손님들의 출입문을 열고 닫아 주며 인사를 하면 귀해질까요? 미취학 아동들이 컵라면을 먹다 데일까 끓여주고 종이컵에 나눠주고 하면 귀해질까요? 개그맨 같이 특별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매출증가를 이끌면 귀해질까요?
결국 후루쿠라씨는 시라이씨의 도움을 받아 알아본 일자리를 면접 단계에서 스스로 걷어차고, 자신을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편의점으로 돌아갑니다. 편의점에선 금방 대체 되어 버릴지라도 자신은 존재를 의미있게 해주는 관계가 있습니다. 손님과의 관계, 동료와의 관계, 점장과의 관계. 그리고 '먹이'를 살 수 있게 해주는 급여의 지급이 있고, 대화도 있습니다. 아마도 결국 후루쿠라씨의 종말은 "겨울에 길거리에서 죽을 것이다."라는 시라이씨 제수의 저주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안빈낙도란 그 여유를 자랑할 만한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의 정신 유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명에 충실한 삶이란 '기어 오르지 말고 주제에 맞게 박박 기어라!' 같은 말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봅니다. 이름없이 소명을 다하는 편의점 젓가락, 찌그러져 팔리지 않는 우묵캔 같은 편의점 인간들의 구원은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인가. 경력은 위에서 아래로 흐를 뿐인데 말입니다.
끝으로 주제와는 무관 하지만, 개인적인 추측으로 말씀드리자면 후루쿠라씨의 동거인으로 묘샤되는 '시라이'씨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주인공의 다른 모습이자 작가의 다른 내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본인이 평범한 사회화 과정을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평범하지 못하게 18여년 동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주위의 의문과 염려에도 게속하는 주인공 후루쿠라씨와 남들처럼 살고 싶은 욕망은 있으나 능력과 노력의 부족으로 실패하였고, 구직사이트를 뒤적이는 것조차 본인의 일이라면 힘들어 하며 세상으로부터 숨어 욕조에 웅크린채 사는 시라이씨는 주인공 본인의 분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장만 있고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글이 되었지만 삭제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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