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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 토드 스트래서, 김재희문학, 소설, 등 2009. 4. 6. 18:10반응형
정답은 말하지 못해도, 자신만의 분명한 느낌과 생각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그 학교의 역사시간에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의 만행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학생이 묻습니다.
"왜 그들은 침묵했나요?"
"독일 사람들은 전부 나치였나요?"
에이미가 물었다.
벤 로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독일사람 중에 나치 당원이었던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퍼센트도 안 돼."
<중략>
"당시 독일인들의 행동은 사실 역사의 수수께끼야.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모두 수수방관할 수 있었을까?
뿐만 아니라 그런 끔찍한 일에 대해 자기네는 몰랐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데, 우스운 일이지만, 그 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p.26~ 28)
왜 그들은 침묵했을까?
그 침묵의 이유를 알기 위해 학생들과 교사는 실험을 시작합니다.
체험학습의 목적이었던 그 실험은 희망의 선전, 공동체 강조, 구호, 상징, 친위대부터 지도자의 제복에 이르기까지 주도면밀하게 진행됩니다. '파도'란 이름의 단체에 소속감을 느끼며 황홀해한 학생들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스워 보이던 구호와 상징들은 이론을 벗어나 살아 움직이며 세력을 키웁니다.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면, 너도 당연히 좋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죠.
기계적 평등과 우리에 열광하면서 '나'를 찾을 수 없는 '우리'가 등장합니다.
'나'는 '우리' 속에 묻히고, '나'가 없는 '우리'의 모습에 소속감의 기쁨 보다는 배제될까 하는 두려움이 자리 잡습니다. 당연히 반대나 다름을 말하는 것조차 두려워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죠.
그들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요?
결말은 말씀드리지는 않을게요.
로버트 O. 팩스턴은 그의 책 <파시즘(The Anatomy of Fascism)>에서 '파시즘'은 정적으로 쉽게 정의 내리기 힘든 만큼 그 단어사용의 남용을 경계하며, 군부독재나 권위주의정권과도 구별해야 함을 말합니다.
그의 의견대로라면 <파도> 속 아이들의 행동에 '파시즘'이라는 단어를 들이대기는 어려울지도 몰라요. 그런데 실험 속 아이들의 행동이 어찌나 섬뜩한지 그 단어 외에 다른 무엇으로 설명하기도 어렵기도 합니다. 나치즘을 제대로 벤치마킹하기도 했고요.
생각해보면 <파도>에서 토드 스트래서는 일상속의 파시즘이나, 우리 안의 파시즘에 대해 말한다고 생각해요.
우열감과 경쟁의 불안을 벗고자 하는 자기연민이 스스로를 '우리'라는 이름으로 무장하게 하고, 그 '우리'에 결국 자신마저 먹히는 '파시즘'의 매혹적인 수렁에 대해 얘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곳도 관용이 넘치는 토론과 비판이 풍성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우리'로 '다수'로 무장시키지 않아도 자기성찰과 자기결정, 스스로의 목소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저부터 말이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는 속담을 가운데가 최고라며 복지부동의 자세로 웅크려야함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을 볼 때 씁쓸했습니다.
씁쓸함의 진짜 이유는 저 역시 나만의 목소리 없이 우리라는 무리 뒤에 웅크리고 앉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P. S 재미있는 부분이 있어요.
책 속에서 교사 '벤 로스'는 '자유와 책임' 보다는 '규율과 질서'를 중요시 하게 된 학교에 복잡한 감정을 느낍니다.
말 잘 듣게 된 아이들 덕분에 수업이 편해진 데서 오는 안도가 첫째 감정이고 자신을 거치지 않고 머리에서 바로 추출되는 도식화된 정답을 뱉어내는 아이들에 대한 불안이 둘째 입니다.
비틀어진 기억일지 모르지만 제가 다닌 학교에서는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말하는 것은 시끄러운 아이로 낙인찍히는 지름길이었고, 오직 정답만 있는 질문에 답을 말해야 착한 아이였죠. 자기성찰과 자기결정의 능력을 함양하기보다는 단답형 시험의 성과와 진도가 최고선이었던 학교였지 싶습니다.
구체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지나치게 주관적인 <P. S> 부분을 빼야 마땅한데, 지금의 제 생각을 기록하자는 의미에서 남겨놓습니다. 정말로 사족인지라 주객전도가 무지무지 걱정되네요.'문학, 소설,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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