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농업과 상업의 발달은 은자의 나라 조선에도 자본주의의 싹을 보여주는데,
너무도 발전이 더딘 탓일까? 상업을 천대하는 탓일까? 순종적인 백성들 덕일까?
시민혁명은 일어나지 않고 봉건왕조는 끈질긴 생명을 이어갑니다.

탐관오리와 무능한 봉건왕조는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백성과 소통은 삐걱대는데,
곪을 대로 곪은 상처는 갑오농민전쟁으로 아픔을 드러내지만, 왕권의 유지에 급급한 왕실은 권력다툼에 여념이 없고 그렇게 안에서 썩고 무너져 내립니다.

이 때, 유홍기(유대치)의 문하를 자처하는 개화당의 인사들이 '갑신정변'을 일으키죠.
결과는 '3일 천하'로 일컬어지듯 실패.

흥선대원군의 척화비로 대표되는 쇄국이 근대화를 늦춰서 일제치하의 필연으로 이어졌다는 빈약한 인과관계만큼이나 갑신정변의 성공이 식민지화를 막았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 것은 막을 수가 없네요

이 책은 암울한 조선말기의 풍운아 김옥균과 홍종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순신 Vs 허균 같은 구도 때문일까요?
실패한 갑신정변의 주도자이자 개화당의 영수인 김옥균,
그런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는 근대화의 반대자, 대책 없는 수구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하네요.

지은이 조재곤은 홍종우에 대한 흑백논리식의 평가를 경계합니다.
김옥균이나 독립협회와 견해가 다를 뿐, 근대화에 대한 열의는 같았다고 말하죠.
아래처럼 말입니다.


[ 한국 근대사 연구자로서 필자는 이 글과 관련해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개화파와 1884년의 갑신정변, 1896~1898년 독립협회, 만민공동회의 역사적 역할은 강조되어야 함이 마땅하지만 이러한 운동을 주도한 인사들만이 유일한 근대 지향 세력이었다고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위정척사파' 혹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 없는 보수 관료들과 극단적으로 대비시키고 역사적 정합성을 무시하면서 이들 세력을 무시하려는 시각은 이제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개항 이후의 변화들을 충분히 인정하는 가운데 개혁 방안의 연속성과 차별성을 가려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같은 개화 인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지향과는 달리 대외적으로 '자주와 독립', 내부적으로는 '공론과 공도'를 핵심으로 하는 홍종우와 같은 제 3의 근대화 방안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편견과 무지에 의해 역사의 '미라'가 된 홍종우에게 '심장'을 박아줄 때가 되지 않았는가. ] (p. 260)


 

책을 읽고 난 후에 외려 더 혼란스럽습니다.
김옥균과 홍종우에 대한 이분법적 평가를 경계하라는 작가의 의도가 적중해서 그런가 봅니다.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김옥균과 홍종우가 방향은 다르지만 모두 정계에서 활동했다면,
'세계사적 필연'이라는 굴레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었을까요?
무얼 해도 안 되는 그런 암울한 시기였을까요?
조선은 이미 소생하기에는 어려운 지경이었을까요?

저는 어려워서 더 이상 무엇을 쓰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홍종우에 대해 알 수 있는 상소를 정리한 표와, 그가 독립협회와 마찰을 일으킨 것을 정리한 표를 옮겨 놓음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종우 어떤 상소를 올렸나? (p. 167)

연도

내용

1898. 3.17

고문관과 사관士官문제, 한아은행, 외국 상인의 상권 침탈, 각국 공사의 내정 간섭, 통역관의 폐해, 석탄고, 공법, 내수, 용인,

1898. 4.16

외상의 도성 내 상점 설치, 내지 행상, 외국 군대 철수, 조계 설정, 조약 개정, 어업 침탈, 홍삼 투증 금지, 광무연호 화폐 주조, 외국인의 내지 유람 금지, 방곡령, 현량인賢良人을 쓰고 어진 정치를 베풀 것.

1898. 8.10

대한청년애국회 사건에 대한 견해

1899. 8. 2

김필제 사건 관련자 처리 문제

1900. 8. 4

법부대신서리 민종묵 탄핵, 사람을 넓은 시각에서 쓸 것, 옥안獄案 문제

1900. 8. 9

옥사獄事를 간소히 할 것

1900. 9.14

정부 각 부서의 국정 운영에 대한 견해

1900.10. 2

시폐 상소를 봉정한 지 오래 되었으나 비답을 받지 못하고 재상소를 위해 대안문 앞에 進伏, 그러나 등철치 못하고 스스로 물림

1902. 1.28

사람 씀에 신중을 기할 것, 언로를 넓힐 것, 중추원 의관 사직 청원

1902. 8. 1

광주부 언주면 방하교리에 있는 부모와 처의 묘 도굴 문제에 대한 청원

1902.11. 9

신병을 이유로 중추원 의관을 사직 청원



독립신문과 홍종우 어떻게 대립했나? (p. 236)

홍종우

 

독립신문

외국 군대 주둔은 우리 자주권의 침해다.

모두 본국으로 철수해야 한다

외국군대

우리 군사와 순검은 내란을 능히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을 아직 갖추지 못했다. 외국군 주둔은 반드시 필요하다.

나라를 부강케 하려면 백성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할 대의원을 직접 뽑는 하의원을 개설해야 한다.

하의원 설치

인민의 정치 참여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우리에겐 군주국 체제가 합당하다. 하의원 설치는 시기상조이다.

빈민의 생계가 더욱 어려워지므로 세금으로 거둬들인 미곡이 항구로 향하는 것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

쌀 국외

유출

방곡 실시하면 항구로 갈 곡식이 내지의 포구로 향하므로 해관세만 줄어들 것이다.

도성 내 상점 설치만은 금지해 내지인의 경제적 피해와 가옥이 줄어드는 것을 막아야 한다.

도성 내

외국

상점

외국 상인을 돌려보내려면 조약을 다시 체결해야 하고 정부 예산도 부족하므로 불가하다.

일본 상인이 헐값에 사가지 못하도록 황실에서 홍삼 전매 실시해야 한다. 국가 재정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홍삼

수출

홍삼을 외국 사람이 찌지 못한다는 말은 약조에 없다. 약조 없이는 금할 수 없다.

국가 재정을 강화하고 외화가 국내에 무분별하게 통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조해야 한다.

광무

연호

화폐

발행

교환가치 면에서 외국 화폐가 우월하고 통화하는 데도 편리하다. 전폐 문제만 심각해질 것이다.

Posted by 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