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알아보는 데에는 많은 방법이 있을 겁니다.
<건투를 빈다>에서 김어준씨는 모든 것이 부족한 여행을 같이 떠나보면 그 사람의 밑바닥까지 알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사람의 성장환경이나 부모를 보면 알 수 있다고도 하고요. 누군가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도 합니다.

이 책 <연을 쫓는 아이> 에서 '나'(아미르)를 말하기 위해 기억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우선 그 주요 인물들을 간략히 소개하고 '곰 이야기'로 넘어갈게요.

1. 아미르를 이루고 있는 인물들

바바 - 아미르의 아버지

커다란 체격에 사회적 성공과 부까지 거머쥔 사람으로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
자신의 아들에게는 자상한 면이 부족한 전형적인 아버지상이죠.
이마르는 바바를 존경하고 그의 사랑을 독점하고 싶어 하지만, 그와는 너무 다른 자신을 보면서 실망도 하고 그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이유로 전전긍긍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미르는 자신이 원하는 진로를 선택합니다.


라힘 칸 - 아버지의 친구이자 아미르의 친구

아미르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열패감을 느낄 때에 힘이 되어준 어른친구 입니다.
아미르가 처음 이야기를 썼을 때 목말라 하던 칭찬을 해준 인물이 '라힘 칸'과 '하산' 이죠.
아버지에게 바라기 힘들었던 자상한 격려를 해주는 사람으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고민을 털어놓을 뻔 했을 만큼 자상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다시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단다."라는 전화 한 통으로 이마르가 자신의 곰과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하산 - 하인이자 친구인 하자라인

절대 자신을 위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소년입니다.
글을 몰라도 영리하고 지혜로우며 부지런한 영혼이죠.
그리고 늘 짓는 미소로, 정직으로, 새총으로 곰과 겨루는 인물입니다.
제가 이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을 합니다.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할게요."


아세프 - 히틀러를 존경하는 인물. 곰의 화신(?)

타헤리 소라야 - 아미르의 아내

아미르가 힘들 때나 기쁠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소랍 - 하산의 아들


2. 곰 이야기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 <가을의 전설>의 마지막 부분을 생각했어요.
브래드 피트가 곰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 말이죠.

이 책의 앞부분에 느닷없이 곰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떠도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버지는 옛날에 발루치스탄에서 맨 손으로 검은 곰과 겨뤘다고 한다. (P. 24)


'바바'는 다양한 사회활동과 기부를 통해서 곰과 겨룹니다.
'하산'은 그의 정직과 충실 그리고 새총으로 곰과 겨룹니다. 빠질 수 없는 그의 미소까지.
주인공 '아미르'는 곰을 보고 도망친 기억으로 괴로워합니다.
곰을 외면한 대가로 그는 계속 거짓말을 해야 했고,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립니다.
그러다 아래와 같은 결심을 합니다.


다시 라힘 칸의 아파트로 돌아가는 인력거 위에서, 내 문제는 항상 누군가가 내 대신 싸워주었던 것이라는 바바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이제 서른 여덟 살이다. 머리카락이 조금씩 빠지고 있고 최근에는 눈가에 잔주름이 생기고 있다.
이제는 조금 나이가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나 스스로 싸움을 시작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이가 든 것은 아닐 것이다. 바바가 많은 거짓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내 문제에 대해서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중략>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린 나는 그에게 내 결심을 전했다.
카불로 가겠다고, 아침에 캘드웰 부부에게 전화를 걸겠다고. (P. 339, 340)



아미르가 곰과 겨루는 장면은 이 책의 후반부 이야기 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자세한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네요.
그리고 이 책은 아미르가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끝이 납니다.

"너를 위해서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

저는 곰으로부터 달아나려는데 제자리걸음입니다.
다시 '선택', '책임', '감당' 이라는 단어가 눈에 밟힙니다.
왜 이리 망설여지고도 어려운지요.

Posted by 로처

1. 기독교인이라면 한 번 보세요

영화보다 짧은 책입니다.
가볍고 짧은 책임에도, 먹먹해진 가슴을 내리누르는 무게는 가볍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한 번 읽어 보실 것을 권합니다.
내용은 대강 이렇습니다. (스포가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탕자의 형' 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이죠.
그저 가슴이 답답하고 아립니다.
너무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다만, 극중의 김 집사처럼 용서를 강요하는 실수를 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2. 누가 용서와 화해를 말하는가?

8월 15일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광복절 입니다.
정부수립일 이기도 하지만, 광복절 입니다.
말장난 같은, 건국절 얘기로 '상생과 화합'을 저해하고
'분열'을 조장하며, '내우'를 만들어 '신화의 시대'를 방해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본의 사과와 피해보상은 마무리 되지 않았습니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망언은 계속 되네요.

그런데 몇몇 정치인은 자위대 창설 기념식(2004년 서울)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관계의 정립'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일본과의 발전적 협력 관계를 이어나가더라도, 짚을 것은 짚고 갑시다.
아래에 쿠키뉴스의 위안부 할머니 인터뷰 기사를 링크해 놓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링크> 쿠키뉴스 http://www.kukinews.com/news/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21000908&cp=du

<PS>. 개인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친일의 과거진상 규명이 반공과 양립한다는 것입니다.

Posted by 로처



# 하루키의 작품후기 중

* [] 안의 부분이 인용 부분 입니다.

[ 이
소설은 내게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했다.
일단 발을 들여놓게 되면 좀처럼 그곳에서 자신을 해방시킬 수가 없었다. 역시 가게를 운영하면서는 쓸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때, 소설은 누가 뭐라고 해도 폭력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소설이라는 것을 두들겨 패서 타고 넘거나, 아니면 그곳에서 발목을 잡혀 짓밟히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그곳에는 융화와 협조의 정신은 없다. 하양 아니면 검정, 승리 아니면 패배뿐인 것이다.

어쩌면 이런 식의 표현이 다소 과장되게 들릴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용서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쓰는 과정을 통해서, 나는 진짜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것은 눈이 떠지는 듯한 생각이었다.

이전의 두 작품은 다소의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나는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소설을 썼다. 물론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게임 같은 것이기도 했다. 마음에 든 조각을 바꿔 붙여서 머릿속에서 차츰차츰 선호하는 이미지를 부풀려가고, 그것을 문장으로 바꿔서 옮겼다.

하지만 이 <양을 둘러싼 모험>은 완전히 달랐다.
이 작품은 물론 내가 탄생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 작품은 나라는 존재와 격렬하게 대치하는 칼끝을 갖고 있다.

그것은 내게 어떤 종류의 변혁을 요구하고 있다. ]

Posted by 로처



일전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를 읽고 쓴 글 중에서
'하루키가 생각하는 이름'에 대해 끄적였었죠.

이 책 <양을 둘러싼 모험>에서 '이름' 에 대한 하루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인 듯한 대화에서, '이름'에 대한 하루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제 가정은 하루키의 웃음 하나로 바보가 되고 말겠지만 말입니다.

아래에 [ ] 안에 이름에 대한 재미있는 대화를 인용해 봅니다.
다소 길다 싶어서 중간 부분은 접어 놓았습니다.


[ 뿐만 아니라 놈에게는 이름조차 없었다.
나로서는, 고양이의 이름이 없는 게 놈의 비극성을 덜어주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부채질하고 있는 것인지는 쉽사리 깨달을 수 없었다.

"나비야." 하고 운전기사는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지만, 예상대로 손은 내밀지 않았다.

"어떤 이름이죠?"

"이름은 없습니다."

"그럼 평상시 어떻게 부르고 있죠?"

"부르지 않습니다. 다만 존재하고 있는 겁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그래도 꼼짝 않고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의지를 갖고 움직이지 않습니까?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데 이름이 없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군요."

"정어리 역시 의지를 갖고 움직이고 있지만, 아무도 이름 따위는 붙여주지 않죠."

"그건 정어리와 인간 사이에는 거의 감정의 교류가 없고, 무엇보다도 자기 이름을 누가 부른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하긴 붙이는 건 자유이지만."

"그럼 의지를 갖고 움직이며, 인간과 감정의 교류가 가능하고, 뿐만 아니라 청각을 지니고 있는 동물은 이름을 갖고 있을 자격이 있다는 건가요?"

"그런 셈이죠." 하고 운전기사는 스스로 납득했다는 듯이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떨까요, 내가 마음대로 이름을 붙여도 좋을까요?" ]


이름에 관한 선문답 펼쳐보기




[ "왜 지금까지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양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틀림없이 이름이라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때문이겠지.
나는 나, 그대는 그대, 우리는 우리, 그들은 그들, 그것으로 좋은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드는 거야."  ]

Posted by 로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양을 둘러싼 모험>을 읽으면서 밑줄 친 것을 옮겨 적어 봅니다.

# 다음은 제 생각을 짧게 적어 본 것일뿐, 제목은 아닙니다.
[] 안의 부분이 인용부분 입니다.

#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 "열
두살 때부터 귀를 내놓은 적은 한번도 없어요."
"그래도 모델 일을 할 때는 귀를 드러내잖소?"
"네에, 하지만 그건 진짜 귀가 아녜요." 하고 그 여자는 말했따.
"진짜 귀가 아니라고?"
"그건 폐쇄된 귀예요."
나는 수프를 두 번 떠먹고 나서 고개를 들어 그 여자의 얼굴을 보았다.
"폐쇄된 귀에 대해서도 좀더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겠소?"
"폐쇄된 귀는 죽은 귀예요. 내가 직접 귀를 죽였어요. 다시 말해서 의식적으로 통로를 분단시켜 버리는 일이지만 - 이해하시겠어요?"
나는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
"그대가 말하고 있는 걸 종합해보면 이런 게 된다고 생각하는데.
결론적으로 그대는 열두 살까지 귀를 드러냈었어. 그리고 어느 날 귀를 숨겼지. 그런 다음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번도 귀를 드러내지 않았어. 꼭 귀를 드러내야 할 때는 귀와 의식 사이의 통로를 폐쇄하는 거야. 그런 거요?"
그 여자는 빙긋 웃었다. "그런 거예요."  ]



#  하루키의 학교

[ 여기
에는 자신의 사이즈라는 게 없어. 자신의 사이즈에 맞춰서 다른 사람의 사이즈를 칭찬하거나 헐뜯으려는 무리도 없어.
시간은 투명한 강물처럼 있는 그대로 흐르고 있지. 이곳에 있으면이따금 자신의 원형질까지 해방돼 버린 듯한 느낌마저 드는 거야. ]


이 소설 속에서 쥐의 별장이 있는 곳을 말하고 있지만,
하루키의 다른 소설 속에서는 학교를 이렇게 말하고 있었죠.
예를 들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도 학교도 이런 모습이었다고 기억합니다.

다양성 보다는 표준화된 제품을 양산해내는 학교 말이죠.
개성 보다는 정답일 수 없는 정답을 요구하는 학교 말입니다.



# 혼자 해낼 수 없는 친구 - 사람은 혼자 살지 않아요!

[ "소용없어
. 틀림없이 잘 안 될 거야." 하고 그가 말했다.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찾았다.
찾고 있는 사이에 여종업원이 성냥을 그어서 불을 붙여주었다.
"걱정 없을 거야. 죽 함께 해온 내가 말하는 것이니까 틀림없어."

"너와 둘이니까 해낼 수 있었지. 지금까지 혼자서 뭔가를 해보려고 했어도 잘된 적이 없었어."하고 그가 말했다.

"야, 들어봐. 일을 벌이라고 말하는게 아니라니까. 축소하라고 말하고 있잖아. 예전에 해왔던 산업혁명 이전의 번역일 말이야. 너 한 사람과 여직원 하나, 바깥에서 일감을 맡아줄 아르바이트 대여섯 명과 프로페셔널 두 명. 못 해낼 게 없잖아."

"넌 날 잘 몰라."
10엔짜리가 잘깍하는 소리를 내고 떨어졌다. 나는 나머지 세 닢의 동전을 넣었다.

"난 너완 달라. 넌 혼자서 해낼 수 있어. 하지만 난 그러질 못해. 누군가에게 불평을 늘어놓거나 자문을 구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거야." 하고 그가 말했다.  ]

누구에게나 속상한 일 털어놓고, 화풀이 받아줄 친구는 있잖아요.
말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무덤 속으로는 혼자 들어가겠지만 말입니다.
걱장 마세요.
하루키 씨! 그리고 나 역시!

Posted by 로처

렉싱턴의 유령
-무라카미 하루키

  

 

이 책은 단편소설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단편소설이 장편소설보다 좋으냐고 물으시면, 답을 하긴 쉽지 않겠습니다만,

 

저는 이 책에 관한 한, 좋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듯한, 그래서 잡힐 듯 말 듯 한 이야기가 좋습니다.

다른 말로는, 명확한 메시지가 없어서 좋구요.(물론 제가 놓친 것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말로는, 여백이 많아서 좋습니다.

 

아래에는 이 책의 단편 중에서 저의 생각의 단편과 인용구들 입니다.

네모 안의 글이 책의 인용입니다.
 

1. 렉싱턴의 유령 잠과 상실감

 

아버지는 그녀를 사랑하고, 아주 소중하게 여기셨어.

아마 아들인 나보다 어머니를 훨씬 더 사랑하셨을 거네.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지. 자기 손으로 획득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어. 그에게 나란 존재는, 결과적으로 얻어진 것이었어. 그는 물론 나도 사랑해주셨어. 딱 하나뿐인 아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머니를 사랑하는 만큼은 아니었지. 그렇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네.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한 것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는 않으셨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재혼도 하지 않으셨으니까.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다음 3주일 동안, 아버지는 내내 잠만 자셨어. 과장이 아니라네. 말 그대로 내내 주무셨지.

…………..

 

그렇게 깊고, 그렇게 긴 잠을 나는 그때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네. 그는 마치 다른 세계로 가버린 사람처럼 보였어. 정말 무섭고 두려웠다네. 나는 그 넓은 저택 안에서, 그야말로 외톨이였지. 세상에로부터 버림받은 듯한 느낌이었다네.

………..

내가 지금 여기서 죽는다 해도, 이 세상 어느 누구 하나, 나를 위해 그렇게 깊은 잠을 자주지는 않을 거네.

 

뒤에 김난주씨가 옮긴이의 말에서 적은 것에서, 저는 위안을 삼을 수 있었습니다.

유령을 무서워 하는 옮긴이의 딸만큼, 혼자되는 것이 두려운 모양입니다.

 

2. 침묵

 

학생들도 3학년이 되면 온통 입시밖에 염두에 없어, 교실 분위기도 팽팽하게 긴장되었습니다. 나는 그 학교의 그런 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들어갈 때부터 좋아하지 않았고 6년을 다녔는데도 끝내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학교 친구는 끝내 한 명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그나마 사귀었다고 하는 상대는 체육관에서 만나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고 또 이미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과는 허물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연습이 끝나면 함께 맥주를 마시기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반 남자들과는 전혀 종류가 달랐고, 하는 얘기들도 내가 보통 교실에서 하는 내용들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함께 있는 편이 훨씬 편했습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여러 가지 중요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만약 내가 복싱을 하지 않았다면, 그 숙부의 체육관에 다니지 않았다면 난 참 고독하였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상을 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하는 말을 혹은 당신이 하는 말을, 누구 하나 믿어주지 않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런 일은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법이죠.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죠.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일은 여섯 달 만에 그럭저럭 끝났습니다만 이 다음에 그런 일이 다시 생긴다면, 그것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자신이 그것에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을지, 전혀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때로 정말 두려워집니다. 밤중에 그런 꿈을 꾸고 놀라 벌떡 일어나는 일도 있습니다. 아니 그런 일이 종종 있습니다.

 

<침묵>을 읽으면서, 학창시절 생각이 많이 납니다.

 

표준과 규격이 지배하는 학교를 생각하면 가슴이 꽉 막혀 옵니다.

다원화 시대, 다문화 시대, 그리고 창의와 다양성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학교는 여전히 정답표준 그리고 정상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3. 토니 다키타니

 

# 상실감 1

 

다키타니 쇼자부로가 홀쭉하게 야윈 몸 하나로 일본으로 돌아온 것은, 1946년 봄이었다.

돌아와 보니 도쿄의 집은 한 해 전 3월 도쿄 공습 때 불타버리고 없었다. 부모님도 그때 돌아가시고 안 계셨다.딱 한 명뿐인 형은 버마 전선에서 행방불명 된 채였다. 결국 다키타니 쇼자부로는 천애 고아의 몸이 된 셈이었다. 그러나 그는 별로 슬퍼하지도 안타까워 하지도 않았고, 그다지 충격도 받지 않았다. 물론 상실감 비슷한 것은 느꼈다. 그러나 어차피 인간은 언젠가는 혼자가 되는 법이다. 그는 그때 서른 살이었다. 외톨이가 되었다고 아무나 붙들고 하소연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다. 단번에 몇 살을 먹은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 이상의 감정은 그다지 일지 않았다.

 

# 상실감 2

 

다키타니 쇼자부로는 그녀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느껴야 좋을지 자기자신도 잘 몰랐다. 그는 그런 감정에는 서툴렀던 것이다. 무슨 평평한 원반 같은 것이 가슴속에 쏙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종류의 물체이고, 어떻게 거기에 있는지 그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그 물체는 내내 거기에 있으면서 그가 그 이상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지 않도록 저지하였다.

그 덕분에 다키타니 쇼자부로는 한 일주일 정도 거의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4. 일곱 번째 남자

 

# 두려움과 고통 1

 

나는, 나의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공포 그 자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자는 잠시 짬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공포는 물론 존재합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출현하고, 때로는 우리 존재를 압도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그 공포에 등을 돌리고, 외면하는 행위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을, 내가 아닌 다른 무엇에게 내어주게 됩니다.

내 경우에 그것은 파도였습니다.

 

 

5.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 두려움과 고통 2

 

제일 괴로운 것은 무서움이야. 실제의 통증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통증을 상상하는 쪽이 훨씬 무섭고,  싫어. 그런 기분 알겠어?

알 것 같애.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 하루키 소설 속 가족은 거의 등장하지 않아 보입니다.
적어도 제가 그간 읽었던 소설 속에서는 그렇습니다.

이 단편이 그간 읽었던 그의 책 중에서 가족이 가장 많이 등장하지 않나 싶어요.

 

그렇지만, 도쿄로 돌아가서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어.

나는 말했다. 사촌 동생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 않으면 안 될 일 따위, 그 어디에도 한 가지도 없다. 그렇지만 다른 데라면 몰라도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

 

하루키는 가족으로부터 불쾌한 기억이 있는가?

질식할 정도로 무거운 기대를 받으며 자라왔는가?

엄부 아래 엄한 규율밑에서 숨막힐 듯 자랐는가?

왠지 모르게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고,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려는 하루키가 보이는 듯 합니다.

 

 

Posted by 로처


<렉싱턴의 유령> 책 말미에
- 옮긴이의 말 김난주

 

  

렉싱턴의 유령 가장 뒷부분에 옮긴이의 말이 있습니다.

옮긴이 김난주씨의 글이죠.

하루키 속의 따뜻함을 퍼올리는 글이라 생각할 정도로 좋아서 옮겨 봅니다.

 

옮긴이의 말 김난주

출처 렉싱턴의 유령(열림원)

 

며칠 전 늦은 밤이다. 둘째 딸아이가 잠이 안 온다면서 얘기를 해달라고 칭얼거렸다.

내가 예의 옛날에 어떤 소설가가 있었는데…….. 라고 서두를 꺼내자, 아이는 또 소설가야라며 시큰둥해 했다. 오늘은 재미있는 이야기야. 들어 봐 라고 달래자, 샐쭉한 표정으로 내 가슴에 기대는 딸.

 

밤마다 얘기를 해달라고 보채는 아이에게 늘 새로운 얘기를 들려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작업하고 있는 작품의 내용을 대충 각색하여 들려주는 기발한 방법을 생각한 것이다.

 

그날은, <렉싱턴의 유령>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소설가가 미국에 살았는데 미국 친구네 집을 봐주러 갔었대. 그런데 그 소설가는 너 같지 않아서 열한 시만 되면 잠을 잤다는 거야………”


얘기가, 혼자 잠자던 소설가가 느닷없이 한밤중에 깨어나 무슨 소리를 듣는 장면에 이르자, 아이의 표정은 반짝반짝 오히려 잠이 달아나는 모양이었다.


그 소리가 무슨 소린가 싶어서, 소설가는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대. 그랬더니…….


엄마, 유령이야?


갑자기 몸을 움츠리며 무섭다고 더욱 안겨 드는 딸.

나는 순간적으로 극적인 각색을 감행하여야 했다. 한밤에 유령이야기를 들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으응, 그게 아니고, 그 소설가는 꿈을 꾸고 있었던 거야. 잠에서 깨어나 무슨 소리를 듣는 꿈 말이야. 그 집은 아주 오래된 집이었거든. 소설가 아저씨 혼자 자니까 아주 심심하겠지. 그래서 그 집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소설가의 꿈 속에 나타나서 소설가가 혼자 자도 외롭고 심심하지 않게 파티를 열어 준거야. 술도 마시고, 춤도 추고,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면서 말이야.


, 그럼 그 소설가 아저씨, 아침까지 안 일어났어?


그럼, 아침까지 푹 자고 일어나서, 또 소설 썼지.


딸아이는 그제서야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러고 나서 잠시 생각했다.

적막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케이시. 자신의 죽음을 위해서 깊은 잠을 자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리란 외로움과 두려움에 마음이 늙어가고 있는 그, 그를 위해 이미 죽은 많은 자들이 파티를 열어 준다면, 그는 길고 긴 잠 같은 죽음에 편안히 빠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죽은 자들이 내미는 따스한 손길을 마주 잡을 수 있다면 말이다

 

1997년 깊어가는 가을

김난주

 

 

이 정도 따뜻함과 자기긍정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루키 소설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관찰자인 듯, 거리 두고, 외롭고, 건조하고, 때로는 괴기스럽고 차가운 하루키 소설 속의 따뜻함을 이해하고 퍼 올리려면 말이죠.

 

김난주 씨가 어떤 작품 활동을 하는지 새삼 궁금해 집니다.

소설을 써도, 아동문학을 써도, 읽어 보고 싶네요.

 

Posted by 로처

궁금합니다.
다른 분들은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말이죠.

저는 이 책을 읽고 나니, 4 개의 이야기가 흐름의 전부라고 생각 되더라구요.
눈길이 제법 오래가는 구절들도 있었지만,(그 구절들은 따로 담겠습니다.)
결국은 아래에 옮겨 적는 4개의 이야기가 뼈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이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 답지 않게, 도식적이고 메시지도 분명한 듯해서
좀 놀랐습니다.

그래서,
다행인 것은, 우울하지 않아 좋다는 것입니다.
불만인 것은, 헐리웃 영화의 해피엔딩 같다는 것과, '부부클리닉' 같은 교훈적 메시지라는 것 입니다.
어쩌면, 하루키도 좀 정상적(?)으로 살아 보고 싶다는 소망을 담은 결말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제 그 4 개의 이야기를 담아 보겠습니다.


첫째, 사막은 살아있다

"말이야. 세월이라는 것은 사람을 여러 모습으로 바꿔버리는 걸세. 당시 자네와 그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네만.
하지만 설사 무슨 일이 있었다 해도, 그건 자네 탓이 아니야. 정도의 차는 있어도, 누구에게라도 그런 경험은 있는 법이지. 내게도 물론 있어,
거짓말이 아닐세. 내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것은. 누군가의 인생은 결국 그 누군가의 인생인 것이야.
자네가 그 누군가를 대신해 책임질 수는 없어. 세상은 사막 같은 곳이고. 우리는 모두들 거기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거야.
저 초등학교 시절에 월트 디즈니의 <사막은 살아 있다>라는 영화 본 일 있지?"

"있지."

"그것과 마찬가지야. 이 세계는 그 영화와 마찬가지라구. 비가 내리면 꽃이 피고, 비가 오지 않으면 꽃은 말라 시들어 버리네, 벌레는 도마뱀에게 먹히고, 도마뱀은 새들에게 먹히고, 그러나 언젠가는 모두 죽어가지. 죽어서 바싹 말라버리고 말아. 한 세대가 죽으면,
그 다음 세대가 그 자리를 대신하네. 그게 정해진 이치일세. 모두들 제각기 다른 삶의 방식을 취하고 제각기 죽는 모습도 다르다네. 그러나 그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닌거야.
마지막에는 사막만이 남게 되네. 정말로 살아 있는 것은 사막 뿐이라구."


둘째,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

"옛날 어느 책에선가 그런 얘기를 읽은 일이 있어요.
중학생 시절이었던가. 무슨 책이었는지도 도무지 기억이 안 나지만.......
아무튼 그것은 시베리아에 사는 농부들이 걸리는 병이에요. 있잖아요. 상상해봐요.
당신이 농부고, 시베리아의 벌판에서 홀로 외로이 살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매일매일 밭을 갈아요.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죠. 북쪽에는 북쪽의 지평선이 있고, 동쪽에는 동쪽 지평선이 있고, 남쪽에는 남쪽 지평선이 있고, 서쪽에는 서쪽 지평선이 있어요. 그저 그것뿐, 당신은 매일동쪽 지평선에서 태양이 떠오르면 밭으로 나가 일을 하고, 그 태양이 머리 위로 올라와 있으면 일하던 손을 멈추고 점심을 먹고, 그리고 서쪽 지평선으로 해가 기울면 집으로 돌아가 자는 거예요."

"그런 생활은 아오야마에서 바를 경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생일 듯한데."

"그렇겠죠" 하고 말하고 그녀는 웃었다. 그리고는 아주 조금 고개를 기울였다.
"전혀 다르겠죠. 그런 생활이 몇 년이고 몇 년이고, 매일 계속돼요."
..........
"그리고 어느 날, 당신의 내면에서 무엇인가가 죽어버리고 말아요."

"죽다니, 어떤 것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무언가가요. 동쪽 지평선에서 떠올라, 높은 하늘을 질러서, 서쪽 지평선으로 기울어가는 태양을 매일매일 보고 있는 사이에, 당신 속에서 무언가가 뚝하고 끊어져 죽어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당신은 땅에다 괭이를 내던지고는, 그대로 태양의  서쪽을 향해서. 그리고는 무엇에 홀린 듯이 며칠이고 며칠이고 아무것도 마시지도 먹지도 않고 줄곧 걷다가, 그대로 땅에 쓰러져 죽고 말아요.
그게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

나는 대지에 엎드려 죽어가는 시베리아 농부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태양의 서쪽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데?" 하고 나는 물었다.

그녀는 또 고개를 저었다. "난 모르죠.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는지도 몰라요. 아니면 무엇인가가 있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아무튼, 그것은 국경의 남쪽과 좀 다른 곳이에요."


셋째, 하지메와 유키코

나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 말을 찾았다.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언제나 어떻게든 다른 인간이 되려고 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는 늘 어딘가 새로운 장소에 가서, 새로운 생활을 손에 넣고, 거기에서 새로운 인격을 갖추려고 해왔던 거야.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이고 그런 일을 되풀이 했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성장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퍼스너의 교환 같은 것이었지.
그러나 어찌됐든, 나는 자신이 아닌 다른 자신이 되어, 지금까지 자신이 껴안고 있던 무엇인가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던 거야.

나는 정말로, 진지하게, 현재와는 다른 나 자신을 추구하고 있었고, 노력만 하면 언젠가는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어. 하지만 결국, 나는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했어.
나는 어디까지 가도 나일 뿐이었어. 내가 껴안고 있는 결락은, 아무리 멀리 가도 변함없는 결락일 뿐이었어.

아무리 주위의 풍경이 변화해도, 사람들의 말소리가 아무리 변화해도. 나는 한 사람의 불완전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어.
내 안에는 어디를 가든 한결같은 치명적인 결락이 있어. 그 결락이 내게 격렬한 굶주림과 갈증을 갖다주었던 거야. 나는 줄곧 그 굶주림과 메마름에 혹사당해왔었고, 그것은 아마 앞으로도 마찬가지일거야. 어떤 의미에서는, 그 결락 자체가 바로 나 자신이니까 말이야. 나는 그걸 알 수 있어. 나는 지금, 당신을 위해 가능하다면 새로운 나 자신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아마도 난 그렇게 할 수 있겠지.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나는 노력해서 , 어떻게든 새로운 자신을 획득할 수 있겠지.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 비슷한 일이 다시 한번 일어난다면, 나는 또 똑같은 일을 반복할지도 몰라. 마찬가지로 당신에게도 상처를 입힐지도 모르고. 나는 당신에게, 아무런 약속도 할 수 없어. 내가 말하는 자격이란 그런 뜻이야. 나는 도저히 그 힘을 이겨내야 된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가 없어."



유키코는 가슴 위로 팔짱을 끼고, 잠시 내 얼굴을 보았다.

"내게도 옛날에는 꿈 같은 것이 있었고, 환상 같은 것도 있었어요.
하지만 언제인가, 어디에선가 그런 것들은 사라져버렸어요. 당신을 만나기 전의 일이에요.
나는 그런 것을 죽여버렸어요. 아마도 자신의 의지로 죽이고, 버린 걸 거예요.
필요가 없어진 육체의 한 기관처럼. 그것이 올바른 일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잘 몰라요.
하지만 나는 그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때로 꿈을 꾸어요.

누군가가 그것을 내게 전하러 오는 꿈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똑같은 꿈을 꾸어요.
누군가가 두 손으로 그것을 껴안고 와서는,
'부인, 잊으신 물건입니다.' 라고 말해요.
그런 꿈, 나는 당신과 같이 살면서, 내내 행복했어요. 불만이랄 만한 것도 없었고, 그 이상 갖고 싶은 것도 딱히 없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무엇인가가 늘 내 뒤를 쫓아오는 거예요.
한밤중에 나는 땀으로 푹 젖어서는 번쩍 눈을 떠요. 그, 내가 버린 것에 쫓겨서. 무엇엔가 쫓기는 것은 당신만이 아니에요. 무언가를 버리고,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은 당신만이 아니에요. 내가 하는 말 무슨 뜻인지 알아요?"

"알 것 같아" 라고 나는 말했다.

"당신은 또 언젠가 내게 상처를 줄지도 몰라요. 그때에 내가 어떻게 될지, 그것은 나도 몰라요.
어쩌면 이번에는 내가 당신에게 상처를 주게 될지도 모르죠. 무엇인가를 약속한다는 따위는 아무도 할 수 없는 거에요.
나도 할 수 없고, 당신도 할 수 없고. 하지만 여하튼, 나는 당신을 좋아해요. 그뿐이에요."


넷째, 사막 또는 바다

나는 그 어둠 속에서, 바다에 내리는 비를 생각했다.
광활한 바다에, 누구에게도 드러남 없이 은밀하게 내리는 비를 생각했다. 비는 소리도 없이 해면을 두드리고,
그것은 물고기들에게조차 전해지는 일이 없었다.
누군가가 다가와 내 등에다 살며시 손을 얹을 때까지, 나는 줄곧 그런 바다를 생각하고 있었다.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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