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들의 도서관 - 김중혁

우리 고장의 도서관에서 김중혁 작가를 초청한다기에 읽어보았어요.
작가는 밤 새 읽을 만한 책은 아니라고 하셨지만, 강연 전에 읽고 싶은 맘은 굴뚝이고 시간은 모자라기에 밤 새 읽었죠.

단편 여덟 트랙으로 된 소설집입니다.
읽다보니 자꾸 이야기 속 인물을 작가와 동일시하게 되네요.
그리고 그 인물들이 제가 되기도 하고요. 그게 소설 읽는 재미겠죠.
읽으면서 표시해 두었던 부분을 강연 후에 다시 보니 영락없이 작가의 모습들이 보이고, 또
닮고 싶어 하는 제 모습도 보입니다. 이어지는 이런 저런 생각들도 있고요.


1. 뒷수습의 상상력


첫 문장을 써놓자 나머지 문장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매뉴얼을 쓸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 있던 문장들이 눈치를 보면서 슬그머니 나타나는 거 같다. 매뉴얼을 쓴다는 것은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발굴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는 문장 위에 덮인 먼지를 조심스럽게 툭툭 털어내기만 하면 된다. 고고학자가 된 기분이다.  (p. 46 <매뉴얼 제너레이션> 중에서)


강연회에서 작가가 한 말이 있어요.
'뒷수습의 상상력' 첫 문장을 써놓고, 연이어 수습을 하다보면 어느 새 소설이 완성되노
라고 하시네요. 그럼 위에 인용한 부분은 어김없이 작가의 경험이네요.


2.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는다는 건 억울하다

<악기들의 도서관>의 첫 문장입니다.
제가 요즘 느끼는 바를 콕 찌르는 문장이라 되뇌어 봐요. 처해있는 상황이나 지위 책임이 각각 달라도, 저 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 돌이켜 후회하고 아쉬워하며 생각에 잠기게 하는 문장 아닌가 싶습니다.

마침 제가 즐겨듣던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에도 비슷한 의미의 가사가 있어요.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신해철 <민물장어의 꿈> 중에서)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는다는 건 억울하다.' <악기들의 도서관>
그리고'몸속에 저장해뒀던 돌덩이를 내려놓기 위해'
'아직은 무른 내 손가락 끝'을 여물게 해야겠습니다. <나와 B>


3. 침 흘리며 공상하듯, 휘적거리며 악몽을 꾸듯

<무방향버스>에서는 끔찍한 악몽을 꾸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엄마가 사라진다는 것은 어릴 적부터 머리가 다 커버린 지금까지 무서운 일입니다. 생각하기 싫은데 가끔 머리에 떠오를 때면 그렇게 끔찍할 수 없어요.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을 때처럼 눈물 흘리고 싶지 않아 긴장하고 있는데 '무방향버스'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아! 꿈이구나.' 싶습니다.


4. 5 Cm 공중부양의 SF작가

제가 강연회에서 제대로 들었다면 작가는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았음에도 확언하지는 못하겠지만요. 8개의 단편소설들을 다시 생각해보면 위의 표현이 참 기막힐 정도로 어울립니다.

저는 8개 트랙의 이 소설을 읽으면서
톡톡 튀는 소재의 소리를 들었어요<매뉴얼 제너레이션>
침울함 속에서 웃음소리를 듣고요 <유리 방패>
어긋날 수도 있는 목표를 삶에 끼워 맞추는 소리 <악기들의 도서관>
그리고 무서운 꿈을 깨우는 "밥 먹어라." 하시는 엄마의 소리도 들었습니다. <무방향버스>

이제는 <펭귄뉴스>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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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회 후 사인해주시는 김중혁 작가>
Posted by 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