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번영'과 '충성'을 선전하는 나치정권은 전쟁과 유대인 학살의 만행 뿐 아니라
민요를 부를 자유나 시집을 읽을 자유마저 앗아갑니다. 야만적인 나치정권으로부터
자유를 되찾기 위해 양심적인 독일 학생들의 저항이 시작되었고 그들은 사법기관에 의해
적법하게 처형됩니다.
이 책은 나치정권에 의해 처형된 '한스 숄'과 '죠피 숄' 남매와 그의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시대가 바뀌어 '4.19 정신'과 '민주 공화국'임이 헌법에 명시되어있는 지금도 이 책이
의미가 있을지 잠시 의문이었습니다. 비록 용산참사가 있고, 촛불시위하던 시민들이 물대포를 맞아도 말이죠.

잠시 생각해보니 떠올리기도 싫었던 400회 특집 <100분 토론>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촛불시위와 관련하여 '법치'를 두 패널이 얘기했는데 서로 말이 달랐죠.

먼저 유시민 전장관이 말하는 법치를 인용해 봅니다.


두 번째는 법치주의가 굉장히 훼손됐다는 겁니다.
법치주의는 시민들이 법을 잘 지켜야 된다. 단순히 그걸 말하는 게 아니고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권력을 행사하라는 뜻입니다. 그게 상식이거든요.

아까 민주당 국회의원들 얘기가 나왔지만 똑같이 거기서 전경들하고 머리끄덩이 잡고 소화기 분말 뿌려가면서 싸웠는데 야당 국회의원하고 야당 대표는 청와대에 가서 같이 밥 먹고 그 자리에서 같이 시위했던 유모차 엄마, 예비군 모임, 또 연예인들은 검찰에 조사 받으러 다니고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무너지면 법치가 없는 것이거든요. 이런 점에서 대한민국이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헌법의 대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이런 점들을 보면서 저는 매우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가 말하는 법치를 인용해 봅니다.
제성호 교수는 촛불시위의 참여민주주의 측면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평화적인 집회시위는 최대로 보장하지만 불법집회시위,
아까 법치주의의 확립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우리 사회에 어떤 선진화로 가야 할 방향에서 후퇴했다 라는 것을 보여줬고 그래서 인권이나 인권의 한계, 내재적 한계, 또 자율과 책임 또 법치, 이런 근본적인 문제들을 우리가 한 번 곰곰이 다시 생각해야 할 그런 계기를 가져왔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공동체의 안전과 법치는 각 개인이 향유하는 인권의 토대가 된다는 것을 우리가 한 번 다시 한 번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성호 교수는 모든 시위를 불법으로 몰아가는 위험부담을 떠안지 않고, 시위를 둘로 나눕니다. 그리고 불법시위자가 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 법치주의의 후퇴라고 말하네요. 그리고 권리의 한계로 서둘러 넘어갑니다.
이걸 보면, 제성호 교수가 말하는 법치는 '준법' 이나 '법에 복종' 에 가깝습니다.
아니면 '닥치고 복종하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법치를 잘못 말했거나요.

제가 기억하는 법치주의의 개념은 유시민 전 장관이 말한대로 인데요.
기억이 가물하여, 인근 도서관에 가니 김철수 교수님 책이 가장 신간이네요.
그 책에서 '법치주의'를 찾아서 아래에 인용해 봅니다.


법치주의 (김철수, 헌법학개론, 박영사, 2007, p. 265)

법치주의란 국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든가, 국민에게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려 할 때에는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하거나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또 법률은 국민만이 아니고 국가권력의 담당자도 규율한다는 원리를 말한다.

이것은 국가권력에 대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려는 것을 이념으로 하는 것으로서, 이와 같은 합리적 지배의 원리를 실현하기 위하여서는 먼저 법의 제정이 의회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 법은 독립된 법원에 의하여 그 법에 따라서 적용되어야 하며, 행정은 소정의 법에 근거하여 집행되어야 함이 요구된다. 말하자면 권력분립주의가 법치주의의 기초를 이루고 있으며, 국민의 자유권을 보장하기 위한 자유주의적 원리가 법치주의의 내용을 이루게 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위에 두 패널이 각자 말하는 법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헌법학자의 교과서에 부합하는지요?

'법치주의'는 위에 인용한대로 국가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려는 것을 이념으로 하는 개념이지, '법이니까 무조건 지켜' 라며 시민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개념은 아닙니다.
제가 제대로 읽었다면 제성호 교수가 하고자 하는 말도 '법에 복종' 입니다.
그가 실수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법치를 얘기했다면, 시민혁명 전 왕정시대의 법가치관을 갖고 있거나, 나치정권하에서 무너진 법치를 말하는 것일 겁니다.

헌법은 4.19 정신을 얘기하고, 자유와 평등을 보장할 것을 말합니다.
이 시대에 어떤 법학자는 법치와 복종이 같은 것인 양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렇게 저항할 용기도 자신도 없지만, 이렇게나마 '한스 숄'과 '죠피 숄' 그리고 백장미단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지난 여름의 촛불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나온 '고트프리트 켈러'의 시를 인용함으로 마치겠습니다.


'고트 프리트 켈러' 의 시 (p. 53~54)

어두운 동굴 속에서
도적이 나온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그는 돈지갑을 좇는다.
그리고 그는 더 중요한 것을 보았다.
그는, 헛된 싸움을
혼미한 지식을
찢어진 깃발을
겁에 질린 사람들을 보았다.

가는 곳마다, 그는 보았다.
이 보잘것 없는 시대의 공허감을,
그리하여 그는 부끄럼 없이 활보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예언자가 된다.
쓰레기 더미 위로 그는
그의 사악한 발자욱을 올려 놓는다.
그리고 이런 기막힌 세상에 대하여
안녕을 속삭인다.

마치 먹구름처럼
비열함으로 뒤덮인
민중들 앞에 선 위선자,
곧 그의 권력은 강대하게 솟아오른다.
누구나 할 것 없이
기회를 엿보면서
그의 선거에 제공한
숫자놀음의 도움으로.

그들은 그의 공약을 나눠 갖는다.
언젠가 신의 사자가
다섯 개의 빵을 나눠 주었듯이.
공약은 점점 더 주위를 더럽힌다!
처음엔 개들만 거짓말을 했으나
지금은 모두가 거짓으로 말한다.
그리고 마치 폭풍의 몰아치듯
지금 그들의 재능은 한껏 부푼다.

싹은 높이 높이 솟아 오르고
땅은 변했다.
민중은 치욕  속에 살며
비열함을 비웃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깨달았다.
최초에 무엇이 꾸며졌던가를.
선은 사라지고
악만 위세를 떨친다!

언젠가 이 위기가
빙벽이 녹아내리듯 천천히 사라지면,
사람들은 마치 어두운 죽음에 대해 얘기하듯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황야 위에
허수아비를 세운다.
슬픔 속에서 기쁨을 불태우기 위해서,
그리고 다시 오는 새벽의 빛을 위하여.



P.S 책에 이 시의 제목을 알려주지 않네요. 아시는 분 있으면 알려주세요. ^___^

    제가 읽은 책은 '청사' 에서 1978년 초판발행, 1991년에 중판발행한 책으로 옮긴이는 박종서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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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외된 투명인간들의 역사

이 책의 서문에서 밝혀 말하기를 '콜롬버스'가 아닌 '바로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를 영웅으로 내세웁니다. 그 외에 체로키 인디언, 마크 트웨인, 헬렌 켈러, 등을 영웅으로 봅니다.
이쯤이면 '하워드 진'에 대해 모르는 분들도 대충 책의 내용을 짐작하실 것입니다.


이 책은 화려한 찬양을 받는 영웅들 중심의 역사가 아니라 '불편한 진실'의 편에 서서 노력했던 사람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스로가 선택했든 아니든 가시밭길 인생을 걸어온 사람들 말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현실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과 함께 힘겹게 저항하는 사람들의 역사를 말해주는 책입니다.

아래에 콜럼버스와 카사스에 대한 글을 인용해 봅니다.

[ 콜럼버스의 선원들은 황금을 찾아 아이티에 왔지만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고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배에 황금을 대신할 무언가를 채워야만 했다. 그러한 이유로 1495년 대규모의 노예사냥이 이루어졌다. 결국 그들은 스페인으로 이송할 500 명의 노예를 포획했다.
그 가운데 200 명은 항해 중에 죽었고, 살아서 스페인에 도착한 나머지 인디언들은 한 지역 교회에서 경매에 부쳐졌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잘 팔릴 만한 노예를 계속해서 공급해주자."

(중략)

아이티에는 약 25만 명의 인디언이 살고 있었지만 2년이 지난 후에는 살해와 자살로 그 수 가 반으로 감소했다. 황금이 없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인디언들은 스페인들 소유의 대농장의 노예가 되었다. 과로와 비인간적인 처우에 수천 명씩 목숨을 잃었다. 1550년경에는 불과 5만 명 정도만 남았다. 한 세기가 더 지났을 때, 섬에는 아라와크족이 단 한명도 남지 않았다. ]  (p. 21)


[ 젊은 성직자 바로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Bartolome de Las Casas)는 콜롬버스의 일지 사본을 만들었으며, <인디언의 역사Historia de las Indias> 라는 책을 저술했다. 그는 그 책에서 인디언들의 사회와 풍속을 설명했으며, 스페인인 들이 인디언들을 어떤 식으로 다루었는지도 밝혔다.

산모가 과로와 굶주림에 시달려 젖이 나오지 않아 신생아들은 일찍 사망했다. 내가 쿠바에 있을 때 석 달 동안 7,000명의 아이들의 죽었다. 심지어 어떤 어머니들은 절망감에 아기를 물에 빠뜨려 죽이기까지 했다. 남편들은 광산에서 죽어갔고, 아내들은 과로에 죽어갔으며, 아이들은 먹을 젖이 없어 죽어갔다....... 나는 이처럼 인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끔찍한 행위를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으며,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지금도 몸서리가 쳐진다......] (p. 23)


이 외에도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던 사람들, 마틴 루터 킹, 말콤 엑스, 이름 없는 탈영병들, 여성운동가들의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지금은 당연한 상식인 '여성의 참정권', '노동 3권', '유색 인종차별 금지'
이것들이 공기처럼 소중하면서도 당연한 상식이 되기까지는,
시대를 앞서 가시밭길을 걸어간 선구자들이 '반사회 세력'과 '애국심 없는 무리'라는 비난과 핍박 속에서 싹틔운 것임을 기억하는 것이 그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현대사에서 4.19 혁명과 5.18민주화운동의 위대한 정신은 잊혀진 채 화석으로 딱딱하게 굳어 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 때랑 지금은 달라" 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게 아닌지 말이죠.


2. 무엇이 연대를 어렵게 하는가? - 분할하여 통치하라

소제목을 너무 거창하게 썼습니다.
실천도 고민도 연구도 없이 그저 저의 짧은 의문을 제목 삼았습니다.

이 책에서 하워드 진은 고통 받는 다수의 연대의 가능성과 실패의 역사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사례 중 하나가 책의 초반부에 나오는 식민지 시대 아메리카 대륙에서 흑인노예와 백인 노예의 연대 가능성입니다.
그러나 고통 받는 다수의 연대는 실패하고 맙니다.

큰 이유는

첫째, 인종차별 의식의 조장

둘째, 백인하인들에게 약간의 재산과 자유를 주어 '백인 중산층'이라는 완충장치를 마련한 것입니다.

하워드 진은 이런 연대가능성과 실패의 역사를 말해주면서
국가, 민족, 인종, 종교, 성별, 계급, 등의 많은 차이와 이해관계를 넘어서 다수의 사람들이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다다를 수 없는 이상일 뿐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하는 듯 합니다.


3. 한국사회의 건강한 완충장치 중산층?

한-강만수 "중산층은 9억 주택, 소득 8800만원" - 고뉴스 이세찬 기자 08년 9월 3일 기사

강만수 장관이 한국의 중산층은 소득 8,800 만 원 이상의 사람들이라고 한 말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중산층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서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정책을 한 번 되짚어 봐야하지 않을까요.

나 하나 밀알이 되어 '국익'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애국심의 발로' 라고 하신다면 마땅히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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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농업과 상업의 발달은 은자의 나라 조선에도 자본주의의 싹을 보여주는데,
너무도 발전이 더딘 탓일까? 상업을 천대하는 탓일까? 순종적인 백성들 덕일까?
시민혁명은 일어나지 않고 봉건왕조는 끈질긴 생명을 이어갑니다.

탐관오리와 무능한 봉건왕조는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백성과 소통은 삐걱대는데,
곪을 대로 곪은 상처는 갑오농민전쟁으로 아픔을 드러내지만, 왕권의 유지에 급급한 왕실은 권력다툼에 여념이 없고 그렇게 안에서 썩고 무너져 내립니다.

이 때, 유홍기(유대치)의 문하를 자처하는 개화당의 인사들이 '갑신정변'을 일으키죠.
결과는 '3일 천하'로 일컬어지듯 실패.

흥선대원군의 척화비로 대표되는 쇄국이 근대화를 늦춰서 일제치하의 필연으로 이어졌다는 빈약한 인과관계만큼이나 갑신정변의 성공이 식민지화를 막았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 것은 막을 수가 없네요

이 책은 암울한 조선말기의 풍운아 김옥균과 홍종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순신 Vs 허균 같은 구도 때문일까요?
실패한 갑신정변의 주도자이자 개화당의 영수인 김옥균,
그런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는 근대화의 반대자, 대책 없는 수구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하네요.

지은이 조재곤은 홍종우에 대한 흑백논리식의 평가를 경계합니다.
김옥균이나 독립협회와 견해가 다를 뿐, 근대화에 대한 열의는 같았다고 말하죠.
아래처럼 말입니다.


[ 한국 근대사 연구자로서 필자는 이 글과 관련해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개화파와 1884년의 갑신정변, 1896~1898년 독립협회, 만민공동회의 역사적 역할은 강조되어야 함이 마땅하지만 이러한 운동을 주도한 인사들만이 유일한 근대 지향 세력이었다고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위정척사파' 혹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 없는 보수 관료들과 극단적으로 대비시키고 역사적 정합성을 무시하면서 이들 세력을 무시하려는 시각은 이제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개항 이후의 변화들을 충분히 인정하는 가운데 개혁 방안의 연속성과 차별성을 가려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같은 개화 인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지향과는 달리 대외적으로 '자주와 독립', 내부적으로는 '공론과 공도'를 핵심으로 하는 홍종우와 같은 제 3의 근대화 방안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편견과 무지에 의해 역사의 '미라'가 된 홍종우에게 '심장'을 박아줄 때가 되지 않았는가. ] (p. 260)


 

책을 읽고 난 후에 외려 더 혼란스럽습니다.
김옥균과 홍종우에 대한 이분법적 평가를 경계하라는 작가의 의도가 적중해서 그런가 봅니다.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김옥균과 홍종우가 방향은 다르지만 모두 정계에서 활동했다면,
'세계사적 필연'이라는 굴레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었을까요?
무얼 해도 안 되는 그런 암울한 시기였을까요?
조선은 이미 소생하기에는 어려운 지경이었을까요?

저는 어려워서 더 이상 무엇을 쓰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홍종우에 대해 알 수 있는 상소를 정리한 표와, 그가 독립협회와 마찰을 일으킨 것을 정리한 표를 옮겨 놓음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종우 어떤 상소를 올렸나? (p. 167)

연도

내용

1898. 3.17

고문관과 사관士官문제, 한아은행, 외국 상인의 상권 침탈, 각국 공사의 내정 간섭, 통역관의 폐해, 석탄고, 공법, 내수, 용인,

1898. 4.16

외상의 도성 내 상점 설치, 내지 행상, 외국 군대 철수, 조계 설정, 조약 개정, 어업 침탈, 홍삼 투증 금지, 광무연호 화폐 주조, 외국인의 내지 유람 금지, 방곡령, 현량인賢良人을 쓰고 어진 정치를 베풀 것.

1898. 8.10

대한청년애국회 사건에 대한 견해

1899. 8. 2

김필제 사건 관련자 처리 문제

1900. 8. 4

법부대신서리 민종묵 탄핵, 사람을 넓은 시각에서 쓸 것, 옥안獄案 문제

1900. 8. 9

옥사獄事를 간소히 할 것

1900. 9.14

정부 각 부서의 국정 운영에 대한 견해

1900.10. 2

시폐 상소를 봉정한 지 오래 되었으나 비답을 받지 못하고 재상소를 위해 대안문 앞에 進伏, 그러나 등철치 못하고 스스로 물림

1902. 1.28

사람 씀에 신중을 기할 것, 언로를 넓힐 것, 중추원 의관 사직 청원

1902. 8. 1

광주부 언주면 방하교리에 있는 부모와 처의 묘 도굴 문제에 대한 청원

1902.11. 9

신병을 이유로 중추원 의관을 사직 청원



독립신문과 홍종우 어떻게 대립했나? (p. 236)

홍종우

 

독립신문

외국 군대 주둔은 우리 자주권의 침해다.

모두 본국으로 철수해야 한다

외국군대

우리 군사와 순검은 내란을 능히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을 아직 갖추지 못했다. 외국군 주둔은 반드시 필요하다.

나라를 부강케 하려면 백성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할 대의원을 직접 뽑는 하의원을 개설해야 한다.

하의원 설치

인민의 정치 참여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우리에겐 군주국 체제가 합당하다. 하의원 설치는 시기상조이다.

빈민의 생계가 더욱 어려워지므로 세금으로 거둬들인 미곡이 항구로 향하는 것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

쌀 국외

유출

방곡 실시하면 항구로 갈 곡식이 내지의 포구로 향하므로 해관세만 줄어들 것이다.

도성 내 상점 설치만은 금지해 내지인의 경제적 피해와 가옥이 줄어드는 것을 막아야 한다.

도성 내

외국

상점

외국 상인을 돌려보내려면 조약을 다시 체결해야 하고 정부 예산도 부족하므로 불가하다.

일본 상인이 헐값에 사가지 못하도록 황실에서 홍삼 전매 실시해야 한다. 국가 재정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홍삼

수출

홍삼을 외국 사람이 찌지 못한다는 말은 약조에 없다. 약조 없이는 금할 수 없다.

국가 재정을 강화하고 외화가 국내에 무분별하게 통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조해야 한다.

광무

연호

화폐

발행

교환가치 면에서 외국 화폐가 우월하고 통화하는 데도 편리하다. 전폐 문제만 심각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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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정민

 

 

다산선생에 관한 책을 찾던 중이었습니다.

<격물치지 님의 블로그> <쉐아르 님의 블로그> 글에 소개된 미쳐야 미친다 이 책을 그 덕에 만났습니다.

 

위에 두 분의 블로그를 보시면, 이 책에 대한 대강의 궁금증은 풀리실 것입니다.

저는 배움에 관한 주제로 이 책을 인용해 보려 합니다.

 

책에 등장하는 엽기적인 노력가 김득신 과 유배지 강진에 온 정약용 선생에게 가르침 받기를 원하며 자신의 꽉막힘과 답답함을 죄스러워 하는 황상 같은 선조들을 거울 삼고자 합니다.
그래서, 선조의 삶과 글들을 정민 선생처럼 나태와 안일을 쫓는 '죽비소리'로 삼고자 아래의 글을 인용합니다.

 

네모 표 안의 글이 인용 부분 입니다.

 

 

김득신, 그의 노둔함이 이와 같았다.

 

김득신은 지혜가 부족하고 재주가 몹시 노둔했는데도 외워 읽기를 몹시 부지런히 했다.

독서록이 있었는데 천 번을 읽지 않은 것은 기록에 올리지도 않았다. 사마천의 <사기> 중에 <백이전> 같은 것은 113천 번을 읽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억은 10만 이라 하네요.


뒤에 한 번은 말을 타고 어떤 사람 집을 지나가는데, 책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말을 멈추고 한참 동안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 글이 아주 익숙한데, 무슨 글인지 생각이 안 나는구나.


말고삐를 끌던 하인이 올려다보며 말했다.

 
부학자(夫學者) 재적극박(載籍極博) 어쩌고저쩌고 한 것은 나으리가 평생 맨날 읽으신 것이니 쇤네도 알겠습니다요. 나으리가 모르신단 말씀이십니까?


김득신은 그제서야 그 글이 <백이전>임을 깨달았다. 그 노둔함이 이와 같았다. 하지만 만년에는 능히 시로 세상에 이름이 났다.

 

 이 이야기는 EBS <지식채널 e>  에 소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제목은 <어느 독서광의 일기> 입니다
.
  Idreamlist 님의 블로그를
가시면 볼 수 있습니다.

천재와 둔재

 

이 중 황덕길(1750~1827) 이 쓴 <김득신의 독수기 뒤에 쓰다> 란 글의 한 대목을 읽어 보자.

 

 

일찍이 선배들을 살펴보니 김일손은 한유의 문장을 1천 번, 윤결은 <맹자> 1천 번 읽었다. 노수신은 <논어>와 두시를 2천 번 읽었고, 최립은 <한서> 5천 번 읽었는데, 그 중에서 <항적전>은 두 배를 읽었다. 차운로는 <주역> 5천 번 읽었고, 유몽인은 <장자>유종원의 문장을 1천 번 읽었다. 정두경 <사기>를 수천 번 읽었고, 권유는 <강목> 전체를 1천 번 읽었다.

 

지금까지 동방에서 대가의 문장을 논할 때면 반드시 이분들을 지목하는데, 그 시를 읽고 글을 읽어보면 그 글이 어디서 힘을 얻었는지 알 수 있다.

 

근세에 재주가 뛰어난 자로 칭송을 받는 자로, 중추 곽희태는 다섯 살에 <이소경>을 다섯 번 읽고 다 외웠다. 그 아들 곽지흠은 일곱 살에 <이소경>을 일곱 번 읽고 외웠는데,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다. 권유의 아들 권호와 종제 권민이 어릴 적에 이들에게 <우공>을 가르쳐 총명한지 시험하였다. 문장의 뜻을 다 가르친 뒤 책을 덮고 외우게 하니, 권민은 바로 외웠고, 권호는 한 번 읽은 뒤에 외웠다. 그들의 총명한 재주가 남들보다 뛰어나니 비록 옛날에 암기력이 뛰어난 장수양이라 하더라도 어찌 이들보다 낫겠는가?

 

하지만 그들의 문장이 단지 한때 재능이 있다는 이름만 얻었을 뿐 후세에 전하는 것이 없다.

 

마음을 지킨 사람

이서우가 쓴 <백곡집서>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글을 맺기로 한다.

 
 

대저 사람은 스스로를 가벼이 여기는 데서 뜻이 꺾이고,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느라 학업을 성취하지 못하며, 마구잡이로 얻으려는 데서 이름이 땅에 떨어지고 만다.

 

공은 젊어서 노둔하다 하여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독서에 힘을 쏟았으니 그 뜻을 세운 자라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읽기를 억 번 만 번에 이르고도 그만두지 않았으니, 마음을 지킨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작은 것을 포개고 쌓아 부족함을 안 뒤에 이를 얻었으니 이룬 사람이라 할 수 있다.

 

! 어려서 깨달아 기억을 잘한 사람은 세상에 적지 않다.

날마다 천 마디 말을 외워 입만 열면 사람을 놀래키고, 훌륭한 말을 민첩하게 쏟아내니, 재주가 몹시 아름답다 하겠다. 하지만 스스로를 저버려 게으름을 부리다가 어른이 되어서는 그만두어버리고, 늙어서도 세상에 들림이 없으니, 공과 견주어본다면 어떠하겠는가?


에디슨에게는 어머니, 헬렌켈러에게는 설리반이 있었듯,
김득신 뒤에는 믿고 묵묵히 기다려주는, 아버지가 있었나 봅니다.
요즘 같아선, 한글을 10살에 떼는 아이를 믿고 기다려 주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
넌 머리가 좋아!' 라는 칭찬이 대개의 경우 아이를 못쓰게 만들어 버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 아이가 없어서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

제가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내가 황상에게 문사(文史) 공부할 것을 권했다.

그는 쭈뼛쭈뼛하더니 부끄러운 빛으로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제가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꼭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한 것입니다.

 

내가 말했다.

배우는 사람에게 큰 병통이 세 가지가 있다.

네게는 그것이 없구나.

첫째, 외우는 데 민첩한 사람은 소홀한 것이 문제다. 둘째로 글 짓는 것이 날래면 글이 들떠 날리는 게 병통이지. 셋째 깨달음이 재빠르면 거친 것이 폐단이다. 대저 둔한데도 계속 천착하는 사람은 구멍이 넓게 되고, 막혔다가 뚫리면 그 흐름이 성대해진단다. 답답한데도 꾸준히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반짝반짝 하게 된다. 천착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뚫는 것은 어찌하나? 부지런히 해야 한다.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네가 어떤 자세로 부지런히 해야 할까?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아야 한다.

당시 동천여사(東泉旅舍)에 머물고 있었다.


이렇게 멋진 스승과 제자를 많이 볼 수 있는 대한민국 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배움도 '빨리 빨리' , 박사학위도 '빨리 빨리' 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일이 좀 덜해졌으면 하는 소망도 있습니다
.
다른 것에 관심이 있어, '틀에 박힌 교육'이란 것을 익히는 일이 좀 늦은 아이들이 그 관심을 재능으로 키워갔으면 합니다. 열등감을 몸에 배이게 하는 대신에 말이죠
.

P.S 
잊을 뻔 했습니다
.
      
쉐아르님 처럼 저도 정민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
      
오주석 선생님 책을 많이 좋아했는데, 정민 교수님 책도 포함시키렵니다
.
       
앞으로도, 저 같은 사람들도 쉽게 고전과 역사를 알 수 있도록 좋은 책 부탁드

      
립니다.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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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쉐아르 2008.03.10 1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출장땜에 정신 없이 지내다 이제야 저도 트랙백을 겁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어릴적에 뛰어났던 이들 중에 오히려 커서 제 역할을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자 속도에 맞추어 기다려줄 수 있는 것이 소중한 것 같습니다.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

    • 로처 2008.03.10 17: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트랙백 어마 무지 감사해요 ^^
      저는 공교육이건, 사교육이건, 표준이나 정답을 덜 요구했으면 합니다. 초등교육에서는 특히나 말이죠.
      자주 찾아뵐께요.

삼국지강의-이중톈

역사 2008. 3. 1. 15:59

1. 조조를 위한 변명

어릴 때 보던 삼국지는 선과 악이 분명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조조는 힘이 센 적이고, 유비는 힘이 약하지만 정의로운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만화책, 애니메이션, 아동문고 모두 이런 구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런 구도가 이문열 삼국지를 읽으면서 삐걱대기 시작합니다.

벌써 10여년 전에 읽은 책이라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이문열 작가도 조조를 높게 평하면서 그를 위한 글을 자주 이야기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1권의 절반이 조조를 위한 지면이니 말이죠.

진수의 삼국지나 배송지 주서, 자치통감을 근거로 하면서 미움 받는 조조를 위한 변명을 해줍니다.


2. 그래도
조조보다 유비가 좋은 이유

이중톈이 간웅 조조의 지원사격을 합니다.

그래도 저는 조조 보다 유비가 좋습니다.

그 이유는 유년시절의 추억과 고정관념에도 있겠지만,

다음의 말이 제일 중요하게 작용한 듯 합니다.

조조가 여백사 일가족을 죽이고서 한 말 기억나시죠?

차라리 내가 천하 사람들을 배신할 망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배신하게 하지는 않겠다.

 
그 다음은,

유비가 신야성에서 백성들을 데리고 도망가면서 남긴 말이라죠


대체로 큰일을 성취하려면 반드시 이인위본(以人爲本) 해야 한다. 지금 사람들이 나에게 의지하는데, 내가 어떻게 그들을 버리겠는가!



삼국지에는 많은 영웅들이 등장하기에, 사람마다, 좋아하는 인물이나, 좋아하는 이유가  다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위에 적은 것은 저의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고, 책의 일부분을 인용한 것으로 전체를 호도할 수도 있음을 말씀 드립니다.


3.
삼국지가 부럽습니다.

삼국지, 수호전, 등 중국 고전을 읽으면 내심 중국의 고전들이 부럽습니다.

중국이 무서운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그들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 그리고 문화가 부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합니다.

우리도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우아하고, 힘이 넘치는 문화를 영위했을 것인데도,
지금의 삼국지처럼 동북아시아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 받는 것이 딱히 떠오르지 않아 서럽습니다.

많은 전란과 외침으로 인해, 소실되고, 단절된 문화재와 문화들이 있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힘차게 다시 쓸 수 있는 마음 속 무언가가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드라마 한류열풍 처럼 말이죠.

오주석
선생님의 책
한국의 미 특강을 다시 한 번 봐야겠습니다.

그 분에게 멋진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힘이 제법 날 듯 합니다.


4. 서핑하다가 새기고 싶은 글을 만났습니다.

'삼국지강의' 를 읽으신 다른 분들의 글을 읽기 위해 서핑을 하다가
삼국지 강의와는 무관하게 선무당에 관한 글에서 눈이 떨어지질 않아서,
가슴에 새겨 두고자 옮겨적어 봅니다.

출처는 아래에 링크 합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지식인은 혜안과 감동을 주지만 선무당은 사람을 죽입니다.
경험적으로 보니, 선무당에게 결정적으로 모자라는 것은 지식의 한계가 아니라 그 지식과 경험의 한계를 알지 못하는 자기 성찰의 부족과 그에 따른 겸양의 부족입니다

.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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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방블르스 2008.09.22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중천의 <삼국지강의>는 아마도 CCTV 강연의 모음이기에 더욱 더 조조를 관점의 중심에 두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다들 아는 관점을 다시 이야기 한다면 진부하고 새로운 관점이 나오기 힘든 상황이니 다른 관점 즉 조조를 중심으로 하면 이야기를 풀기도 쉽고 흥미를 끌기도 쉽지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합니다.

    조조가 정치적인 인물인것과 마찬가지로 유비도 정치적인 인물입니다. 말씀하신 유비가 신야성에서 한말도 잠시후에 부하들의 말을 듣고 혼자 피신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니까요. 유비가 얼마후 벌어질 일을 몰랐을 리도 없고 나오는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니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사전정지 작업이라고도 생각해 봅니다. 이것도 물론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런 유비의 언행은 전에도 후에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처럼 이렇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는 삼국지가 부럽긴 합니다.

    아직 삼국지강의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지 못하여 단정 짓지는 못하겟네요. 관심가는 부분을 띄엄띄엄 읽고있는지라. ㅎㅎㅎ

    덕분에 저녁에 삼국지강의를 다시 잡아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로처 2008.09.22 2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방블루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과장이 심한 삼국지와 유비, 관우에 대한 중국인의 애정을 생각한다면, 유비의 백성사랑하는 마음도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정어린 댓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