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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문학, 소설, 등 2008. 12. 3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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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누군가의 헐린 집터를 바라본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낮은 기와집들과 슬레이트집들
    담장 위에 바른 시멘트에는 깨진 병조각들을 박아둔 집.
    그 집에 가기 위해서는 끝까지 올라야 하는 오르막길 즈음에'재개발' 플래카드가 시뻘건 색으로 축하인지 저주인지를 해주고 있는 동네.
    제가 아주 어렸을 적에 살던 집이고, 부모님이 처음 내 집을 마련한 그 집을 요즘 찾아가면 이런 모습입니다.

    그 집 근처에서 오래도록 서성거리고 싶어도,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까봐 담배 한 대 피울 겨를 정도 서성입니다. 뭔지 모를 아쉬움과 짠한 마음이 듭니다. 환한 웃음 짓기보다는 울듯 말 듯한 웃음이 지어집니다. 지질이 궁상맞죠?

    빡빡 깎은 머리를 한 학창시절 국사교과서의 집터 유적을 보면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몇 천 년 전에 살던 사람들의 자취가 나와 무엇으로 맺어져 있는지는 관심도 없던 나이입니다.
    지금도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이제는 집터를 바라보면 제가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새 건물을 올리기 위해 헐어버린 누군가의 집터를 지나칠 때에는, 내 집이 헐린 것만 같습니다.

    아이의 첫걸음에 아이의 받아쓰기 성적표에 웃고, 아이가 아플 때 울고,
    사랑하고, 싸우면서 아옹다옹 행복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담겨있을 것만 같은 헐려버린 집터를 바라보면 또 다시 서글픔에 소주 한 잔의 따뜻함이 올라옵니다.

    <엄마를 부탁해>에서 박소녀 어머님은 맏이의 첫 직장, 첫 집을 파란 슬리퍼가 발을 파내려가도록 걷고 또 찾아다닙니다. 자신을 아껴주었던 사랑하던 시동생 균이에 대한 한과 풀어낼 곳 없는 고단한 삶이 머리에 고여 어머님을 갉아 먹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도 그렇게 당신에게 소중했던 추억들을 찾아다닙니다. 남들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풍경일 테지만요.
    아마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찾아다니지 않았을까요.


    2.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책 속에서 착한 두 딸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말은 하지 않지만 지헌이는 엄마처럼 살지 않고 있고, 작은 딸은 꼭 엄마처럼 사는 듯 보입니다.
    작은 딸과 박소녀어머님의 차이점이라면, 작은 딸은 충분한 교육을 받았고 양식이 떨어져 아이를 굶길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과 후의 자기 인생까지 계획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많을 테고, 엄마도 바라는 바이겠지만, 그런 엄마에게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파란 슬리퍼를 신고 찾아다닐 만큼 행복한 시간들이 있었음에 위안을 받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출처 : DAUM 영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전 기억이 가물하지만, 제 기억으로는 이 책만큼 사랑받았던 드라마였습니다.
    후남이와 종말이의 인기는 최고였죠.

    점점 평균결혼연령도 높아지고 있고, 어머니의 지위도, 가족상도 바뀌고 있습니다.
    조금씩이지만 말이죠. 지금 전근대사회의 조혼제도와 어머니상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제가 살던 집터가 흔적도 없이 아파트로 바뀌고도 오래 지나면, <엄마를 부탁해> 같은 책이나 <아들과 딸>같은 드라마를 좋아하는 분들 또한 사진으로 역사 책 속의 한 줄로 남아있겠죠?

    어쩌면 우리의 소중한 하루하루는 21세기 초의 생활상을 공부하는 우리 후손들이 지루해하며 암기해야 할 역사의 한 줄로 남아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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