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안 보여요."
사람이 하얗게 눈이 먼다.
그렇게 하이얀 채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백색질병'이 전염까지 된다.
발병이유도, 감염경로도, 치료방법도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이 질병으로 눈 먼 자들은 격리수용 되지만,
결국 모든 사람의 눈이 먼다. 단 한 사람 '의사의 아내'만 제외하고.

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렇게 얘기를 해줬더니, 친구는 시큰둥하게 "공포영화야?"라고 묻습니다.
폭력과 기아에 노출되어 생존을 두려워하며 걱정해야 하니 공포도 있고, 공포 외의 것도 있으니 아니기도 한 것 같다는 말은 미처 해주지 못했습니다.

1. 공포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몸서리 칠만큼 두려운 일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부모님은 어쩌지?', 등 고민이 많겠죠.
그런데 이 책의 공포는 그리 심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첫째 이유는 모든 이가 눈이 멀기에 같은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들과 소수자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사회가 공포를 가중시키긴 합니다.
지하철역의 높은 계단과, 고장이 잦은 리프트는 무엇보다 큰 위협이 될 겁니다.
그러나 모두가 눈이 머는 상황에서 이 점은 개선되겠죠. 아주 많이.

굶주림과 무질서에 대한 공포가 눈앞의 문제인데, 사람들은 나름의 규칙을 세우고 거기에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으며, 폭력은 눈멀기 전의 사회에서도 있었다는 것이 둘째 이유입니다.
책 속에서도 눈 먼 사람들은 조직, 정부, 사회를 얘기하면서 살아갑니다.

결국, 갑작스러운 변화 속에서 새로운 질서가 생기기 전까지 혼란기 동안의 생존만이 문제될 뿐입니다.
생존을 가벼이 여겨서가 아닙니다.
눈멀기 전의 소설 속의 세상 뿐 아니라, 지금 제가 사는 세상도 여전히 '사람답게 사는 생존'이 문제이기 때문에 소설 속의 공포가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별, 이혼, 실직, 취업, 물가, 교육, .........
어떠세요? 책 속의 공포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이것 외에 눈 뜨고 있는 우리들은 서로 다른 것을 보면서 편 가르는 공포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칭 보수논객 이라는 지만원의 문근영 양에 대한 궤변이 그랬죠.
그리고 사람들의 자유와 대화를 두려워하는 대통령의 '미디어관련법 법률안' 과 '일제고사 파문에 대처하는 그들의 태도'는 현실을 하얗게 가려버립니다. 눈 먼 것과 다를 바가 있나요.


2. 같은 것을 보고 다른 것을 말한다

의사는 약국 직원을 향해 말을 이었다, 사실 눈은 렌즈에 지나지 않죠.
실제로 보는 일을 하는 것은 뇌입니다, 어떤 상이 필름에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죠.
 (p. 95,96)


일제고사에 대해 교육수요자에게 선택권을 주었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중징계를 가하는 사태를 보면서 참 많이 슬프면서도 화가 납니다.
아래에 기사의 일부를 발췌해 보았습니다.

김인봉 교장이 일제고사 반대하는 이유인즉 -views&news 김혜영 기자 <출처>

그는 서울지역의 교사 7명 해임-파면에 대해선 "나는 그걸 보고 우리나라가 30여 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다.
그때 유신헌법에 대한 반대나 비방을 못했잖나. 100%찬성을 강요했던 유신시절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다."며 "일제고사의 경우도 100%찬성하라는 것 아니냐. 우리 학교 61명 중에서 53명이 봤으니까 87%가 응시한 거다. 8명은 13%다. 이 13%의 반대마저 포용하지 못하고 징계한다는 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천박한가. 야만스러운가를 드러낸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서울교육청을 꾸짖었다.


그리고 오늘 언론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자율과 창의 다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다들 입을 모으는데 통제와 획일을 향해 달리는 법률안들을 보면서 할 말을 잃습니다.

미디어관련법안들도 경제 논리로 바라봐야한다는 이명박대통령의 얼굴 위로 '갱제를 외치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그나라당들의 97년 외환위기가 겹쳐지는 것에 이 책의 설정보다 훨씬 큰 공포를 느낍니다.

요즘 <눈먼 자들의 도시> 이 책보다 현실은 더 큰 공포이고 분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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