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가정폭력, 성폭력, 갱단의 위협, 총격사건, 가난, 마약, 인종차별, 친구의 죽음, 등 의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 그저 살아남고자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스스로가 폭력의 피해자이면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폭력을 택하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폭력과 가난의 악순환이 그들과 함께합니다.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영화 <위험한 아이들(Dangerous mind)>이나 <프리덤 라이터스(The freedom writers)>를 보면서 그들을 조금이나마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도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입니다.
인종 별로 무리 짓고, 싸우고, 사회에서처럼 학교에서도 무시당합니다.
교육의 목적이나 자기계발은 TV 속 <비버리힐즈의 아이들> 만큼이나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이들에게 초보교사 에린 그루웰이 수업을 시작합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등장하는 캡틴 ‘키튼 선생’같이 말이죠.
2. 초보교사 그루웰의 수업 –문학읽기와 일기쓰기
그루웰 선생은 ‘문학작품 읽기’수업을 합니다.
과목이 ‘English’이니 당연한 수업과정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게는 따분하고 읽기 어려운 고전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아이들은 감동합니다. 그리고 <안네의 일기>, <즐라타의 일기>, <더 컬러 퍼플> 등을 읽고 진솔은 글들을 일기로 풀어냅니다..
스스로의 세계로 문학을 읽을 줄 알고, 일기를 통해 진솔하게 생각할 줄 아는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일기를 교정해 주면서,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스스로도 위로 받습니다.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어서 공감이 될 것이고, 몰랐던 놀라운 상처에 같이 분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학 읽기와 일기쓰기는 방법일 뿐 입니다.
여느 선생님도 하시는 일입니다. 무엇이 이들의 학교를 교육의 현장으로 바꿨을까요?
3. 그루웰 선생에 대한 믿음
제 멋대로 결론을 내리자면, 결론은 ‘선생에 대한 아이들의 믿음’입니다.
그루웰 선생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불굴의 신념으로 아이들을 사로잡습니다.
여기에서는 구체적 일화를 통해 그루웰 선생을 잠시 들여다 보겠습니다.
그루웰 선생은,
1. 아이들의 현장학습 비용을 대기 위해 ‘메리어트 호텔’에서 일을 합니다.
2. 아이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경우에는 동료교사에게 따지기도 합니다.
3. 아이들과 밤늦게 일기교정을 하다가 도둑으로 오해 받아 아이들과 함께 경찰 에 체포당 할 뻔 하기도 합니다.
4. 아이들의 의견을 불가능하다며 현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 아니라, 초청하여 안네를 숨겨주었던 미프 기스(Miep Gies)씨를 초대하고 즐라타(Zlata)와 종군기자 피터 마스(Peter Maass)를 초청하여 좋은 시간을 보냅니다.
5. 난독증으로 고통 받는 아이에게 집에서 소설쓰기 숙제를 냅니다.
이 아이는 컴퓨터의 도움으로 자신감을 얻습니다.
6.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은 주위의 도움을 받습니다. 존 투씨의 컴퓨터 기증이나 만찬과 같이 말이죠.
7. 고교졸업도 꿈이었던 아이들에게 대학 진학을 위해, 일손이 부족하자 자신이 강의하던 교육대학원 원생들을 2인 1조로 아이들의 진로상담 멘토로 연결시 켜 줍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속편으로 <그루웰 선생의 일기>가 출간되면 좋겠습니다.
4. 현실과 교육제도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영화에서 그루웰 선생은 이혼을 합니다.
어디까지가 사실일지 모르지만, 충분히 개연성 있다고 생각합니다.
150명 아이들의 엄마 역할을 하려면 누군가의 자식, 배우자, 부모 역할을 하기가 힘이 들 것입니다.
모든 교사들이 그루웰 선생이나<미즈타니 오사무 선생>처럼 일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 아닐까 싶어요.
선생이 아닌 사람들이 선생에게 이 정도의 요구를 한다면, 그것은 성인의 경지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책갈피) 책의 인용문 보기
그루웰 선생님 동료 교사와 마찰
그제서야 나는 나의 위선을 깨달았다.
1년 내내 나는 아이들에게 사람을 쉽게 나쁜 쪽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회적 편견에 희생당했던 분들을 모셔서 집단적 낙인의 위험성에 대한 강연까지 듣게 했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인 르네 파이어스톤 씨는 "일부 사람의 행동만 보고 전체 집단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기억하세요. 독일인들이 전부 다 나치였던 것은 아닙니다." 라는 말로 나의 요점을 아이들에게 재차 전달해 주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전부'라는 말로 다른 선생들을 매도하고 말았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다.
실제로는 나를 지지하는 선생들도 있었다. 만약 소수의 선생들 때문에 내가 윌슨고를 떠나 버린다면 그 피해는 결국 아이들에게 돌아간다. 아이들은 다른 많은 사람처럼 나도 그들을 포기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내 손으로 시작한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차피 인기투표에서 표를 얻으려고 교사가 된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윌슨고에 남아 하찮은 갈등에 휘말리기보다 문학을 가르치는 데 온 힘을 쏟기로 결심했다. (p. 114)
부당한 차별에 항의
얼마 뒤 나는 그루웰 선생님과 함께 그 인솔 교사를 찾아갔다.
그루웰 선생님은 불같이 화를 내며 그 선생과 싸웠다. 그루웰 선생님 역시 내가 현장학습에 갈 권리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복장 때문에 부당한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결국은 그 인솔 교사가 차별행위에 대해 사과했지만, 용서는 하되 결코 잊지는 않을 것이다. 복장 규정을 최대한 따랐는데도 겨우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고 해서 정당한 권리를 거부당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사람들이 겉모습만으로 남을 판단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꿈꾸며......
(p. 134)
난독증 학생의 자신감 회복
국어반에서 처음으로 소설을 쓰는 숙제를 받고 너무 행복했다.
밤새도록 사전을 뒤적이며 나를 표현할 말들을 찾았다. 새 국어선생님인 그루웰 선생님에게는 멍청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소설을 쓰는 일이야말로 다른 선생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할 기회였다.
(중략)
글을 다 쓰고 난 뒤 나는 틀린 단어를 직접 고칠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맞춤법 검사 기능 덕분에 이제 나의 생각과 감정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에 손을 얹으면, 이전에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자신감이 절로생겨났다. (p. 292)
경찰에 도둑으로 오인받다
그날은 정신없이 일기를 교정하다가 밤 11시를 넘겼다.
프레드는 경보 장치가 작동하지 않도록 그루웰 선생님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창문으로 내보냈다. 하지만 누군가 우리를 본 모양이었다. 30초도 지나지 않아서 그루웰 선생님의 차는 다섯 대의 경찰차에 포위됐다. 경찰들은 우리가 컴퓨터를 훔치는 줄 알았단다.
불량배처럼 보이는 일부 아이들이 밤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남아서 공부했다는 사실을 더더욱 믿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그루웰 선생님이 우리의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는
점이다. 선생님이 우리하고 비슷하게 옷을 입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좀 더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권하는 바람에 그루웰 선생님은 정장을 벗고 나의 헐렁한 운동복을 입었다. 게다가 머리까지 뒤로 묶어서 겉으로는 십대처럼 보였다. 경찰들은 우리가 훔친 차를 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우리를 체포하려고 하다가 선생님의 차 뒷좌석에 있던 '올해의 교사상' 상패를 보고서야 우리말을 믿어 주었다.
이상하게도 그 사건을 겪고 나서 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선생님하고 체포될 뻔 한 경험을 가진 아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의 작문 숙제를 돕느라 체포될 뻔했던 일은 선생님의 열의를 깨닫게 했다. (p. 312)
홀로 코스트 박물관에서
어느 독일인 목사의 말이 눈에 띄었다.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 잘 보여 주는 말이다.
"그들이 노조를 공격했지만, 나는 노동운동가가 아니기 때문에 침묵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주의자들을 공격했지만,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침묵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유태인을 공격했지만, 나는 유태인이 아니기 때문에 침묵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들이 나를 공격했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이 말 옆에는 수용소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나는 독일인 목사의 말을 계속 생각하면서 한동안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p. 334)
대학원생과 자유의 작가들 진로지도 멘토 맺어주기
혼자서 150명이나 되는 입시생의 엄마 노릇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주위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셔널 대학에서 했던 교육학 강의가 잘된 덕분에 가을에 특별 세미나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 세미나에 참석하는 75명의 대학원생에게 각자 두 명씩 자유의 작가들을 짝지어 줄 것이다. 그리하면 대학원생들은 자유의 작가들을 통해 직접적인 교육 경험을 얻을 수 있고, 자유의 작가들은 대학원생들에게서 대학 진학에 대한 조언을 구할 수 있다.
아이들의 대학 진학에 가장 큰 장애물이 경제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나는 돈 패리스(Don Parris)씨와 함께 '관용 교육 재단(Tolerance Education Foundation)' 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었다. 우리 재단에 돈을 기부하는 사람은 가난한 아이들의 대학 진학을 도우면서 동시에 기부금에 대한 세금 공제 혜택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기부금을 요청하는 것이 그렇게 염치없는 일은 아니다.(p. 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