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비즈니스 뿐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에 이르기까지, 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할 뿐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삶을 관통하는 문화에 대해서도 방향제시를 시도하는 책으로 이해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좋았던 점은
첫째, 전반적으로 짧고, 명료한 글로 구성되어 읽기가 편합니다. 신문기사를 읽는 것처럼 말이죠.
둘째, 짧고 명료한 글로 구성되어 통일성을 해칠수 있음에도, 1부와 2부에서는 길잃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논리정연해 보입니다.
셋째, 폭넓은 지은이의 독서를 따라갈 수 있도록 친절한 책소개가 좋습니다.
넷째, 제목과는 달리, 비즈니스 외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문화에 대한 여러 얘기가 좋습니다. 아쉬운 점은,
"문화를 설명하고 정의하는 개념이 6만개에 이른다고 한다" (p. 146)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많으나, 지면상의 한계 때문인지, 3부부터는 목차는 정연하나, 저같은 사람은 주제의 길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문화산업과 문화생업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 탓으로, 쥬라기 공원의 예시와 마시마로 예시는 서로 상반된 입장표명을 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자문자답하는 시간을 좀 갖고자 합니다. 문화의 프로슈머로 '내가 즐기는 문화는 무엇인가?' 그리고 '내가 창조할 수 있는 문화는 무엇이 있을까?' 하고 말이죠.
아래에는, 저에게 의미가 있었던 구절들을 발췌해 보았습니다. # 이후가 발췌이고요, 임의로 제목을 붙인 것도 있습니다.
# 1 수석문화연출가라야 한다 (p 47)
최고경영자는 건설자형, 관리자형, 창조자형으로 나눌 수 있다. 창조자형은 고객을 소비자로 여기지 않는다. 합리적 소비패턴을 보이는 다소곳한 고객은 이미 시장에 없다는 걸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냥 뼈와 살로 되어 있는 모순투성이 인간.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한 대로 평생 '염려하며 살아가는' 인간만이 실존하고 있음을 직시한다.
예전에는 그래도 경제학자들이 '군(群)으로서 인간'을 워낙 강조했기 때문에 경영자들도 그에 따라 예측가능한 고객에 대한 환상을 품고 살았다. 컴퓨터처럼 486 나오고 펜티엄 나오면 팔리게끔 되어 있었다. 휴대폰도 LCD 화면을 크게 박아주면 새 수요가 일어났다. 이때만 해도 건설자형, 관리자형 CEO가 적합했다. 그러나 이제는 딴 판이다. 휴대폰도 노트북도 기능은 기본이고, '뭔가 특별한 것'이 없으면 외면 당하기 일쑤다. 그 특별한 '뭔가'는 표현하긴 어렵지만 '명품'과 맞닿아 있다.
(1) 아니타 로딕 - 영적인 비즈니스(Business As Unusual)
아프리카 오지의 천연 향료로 목욕용품을 만들어 아로마 테라피를 전파하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당신의 몸과 혼을 사랑하라"(Love your body and soul!)고 외친다. 이 부분, 즉 아름다움에 대한 편견과 맞서 싸우는 일이야말로 아니타 로딕이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이다. '아름다움은 자신에 대한 숭상(Self esteem)'인데도 외모의 허상에만 탐닉해 있는 많은 사람들이 결국 자연을 파괴하고 사회의 오만과 편견을 증폭시킨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이렇게 한 번 맘을 먹은 그녀는 오래 전부터 그린피스, 고래구호, 소수민족과 여성 보호 등 운동에 헌신해 왔고 예순을 훌쩍 넘긴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력을 과시하고 있다.
아니타 로딕의 꿋꿋한 소신은 자연스럽게 바디샵 회사의 활동 지침이요, 성장의 동력이 되어 주었다. '소셜 비즈니스'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도 얻고 있다. 일과 놀이가 하나로 일치하는 이상향을 바디샵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이쯤 되면 비즈니스이면서 동시에 창조적인 CEO의 작품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2) 섬너 레드스톤과 멀티플렉스 - <승리의 열정>
(3) 잉그바르 캄프라드와 이케아(IKEA)
이케아는 세계 최대의 홈퍼니싱 소매 유통업체로 유명하다. 가구에서 온갖 거품을 빼고 소비자가 직접 고르고 만들고, 즉시 가져갈 수 있도록 한 새로운 서비스 및 소비 스타일을 연출해낸 기업이기도 하다. DIY(Do it youself)의 발상지라고 생각하면 감을 잡을 수 있겠다.
청바지와 스웨터를 입고 근무하는 것은 기본이고, 모든 간부들이 1년에 1주일 이상 매장이나 창고에서 현장학습을 하도록 해 조직의 활기와 생기를 온전히 보존하려 애쓰고 있다. 이 활기와 생기는 하나의 분위기로 정착되어 이케아를 찾는 전 세계 고객들의 건조한 가슴을 적셔주는 무형의 매개로 자리 잡았다...... 나아가 가구를 고르고 직접 들여놓고 원목의 질감을 손수 어루만짐으로써 삶의 활기와 생기 그리고 향기를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4) 루치아노 베네통 - Buy Creativity
<베네통 파브리카>와 <컬러스(colors)>
# 2 문화를 갈망하는 사회 (p. 111)
기업들이 먼저 알아차린 것은 고객의 문화에 대한 욕구 증대였다. 고객의 소비 패턴이 '품질중심(Quality centric)'에서 '품격중심(Dignity centric)'으로 이행하고 있음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특히 IT기술과 생산성의 향상에 따라 공급과잉이 나타나 더 이상 싸고 편리한 제품과 서비스만으로는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뭔가 특별한 전략, 마케팅의 필요성이 높아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략>
코펜하겐 미래학 연구소장 롤프 예센은 "이제 정보사회 시대는 지나갔으며 앞으로는 소비자에게 꿈과 감성을 제공해주는 것이 차별화의 핵심이 되는 드림 소사이어티의 시대가 온다"고 전망하고 있기도 하다. 또 프랑스의 문화비평가이자 경제학자인 기 소르망은 한국이 외환위기에 처하자 "한국이 겪는 위기는 단순한 경제문제가 아니라 세계에 내세울 만한 한국의 문화적 이미지 상품이 없다는 데서 비롯됐다"고 평가하면서 문화의 시대가 곧 찾아올 것이라고 일찍이 내다본 바 있다.
# 3 문화는 경험재이다 (p. 115)
문화를 이용하는 것이 그냥 쓰고 마는 소비로 쪼그라들지 않는다는 것은 문화경제학 선배들이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제 3의 물결>, <부의 미래>의 저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일찍이 1964년에 내놓은 문화소비자론 저선인 <문화의 소비자>를 통해 소비자가 곧 생산자가 되는 프로슈머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문화 상품을 소비하는 행위의 동기와 목적, 스타일 자체가 일반적인 공산품 재화소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향을 지닌다는 얘기다. 문화는 소비할 수록 창조와 참여 욕구를 키우게 된다. 문화소비 자체가 체험중심이므로 간접체럼을 경유하는 직접 체험의 경로가 훤히 열려 있다.
# 4 문화다양성으로는 문화제국주의를 막지 못한다 (p. 134)
문화다양성이라는 이상계가 과연 현실의 개방과 교역이라는 파도를 잘 차단할 수 있을까? 아니 더 근본으로 돌아가서 문화교류와 교역을 꼭 막아야만 하는 것인가? 문화다양성만 보존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인가? 예를 들어 중국의 서부대개발, 서남공정에 얽힌 소수민족의 현실을 살펴보자. 몽골족, 티베트 장족, 회족, 이족, 백족 등등. 이들 소수민족은 문화 다양성은 보호받고 있을지 몰라도 문화생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대한 디지털 물결, 새로운 기술의 물결에는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소수민족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학교도 잘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문화다양성이 경제적 가치를 제대로 발현하지 못하고 TV 다큐멘터리 쇼윈도에 전시되는 박물관 화석처럼 생기 잃은 문화로 전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화가 경제와 만나는 길을 차단한 결과이다. 문화하는 마음과 논리만으로 문화다양성에 기대서는 안될 일이다. 경제하는 마음과 함께 가야 문화도 살고 진짜 문화다양성이 지속가능하게 되어 미래에도 창창하게 빛날 수 있지 않을까?
# 5 문화를 중시하는 중국 (p. 156) - 상해 공원에서
공원 연못에 5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이 있는가 하면 쿵푸, 검술, 포크댄스, 영어회하, 토론, 포옹, 애정표현, 연분홍 스웨터에 이르기까지 정신을 살찌우고 청청하게 만드는 모든 행위를 중국 노인들은 소화하고 있었다.
갑자기 서울이 떠올랐다. 우리는 공원에서 뭘 하지? 노인들이 찬밥 신세가 되어 장기 두고 훈수 보고 상념에 젖어 있는 탑골공원이 내 머릿속에 포개졌다. 아마 할머니들은 거의 볼 수 없지. 또 우리는 살빼거나 비만을 막는 다이어트를 위해 강변마다 공원마다 아침저녁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는가? 공원에서도 약수터에서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한국 사람이지만 정적인 수양과 단련은 아주 약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들에게는 여유가 있다. 우리에게는 없다. 당당함과 자신감을 볼 수 있다. 우리에게는?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더 풍요롭다고 본다. 하지만 그들이 정신적으로 더 넉넉해 보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