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위화
웃지 못할 자기 희생
‘허삼관매혈기’라고 한문이 아닌 한글로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한 눈에 매혈의 뜻을 알아차리는 분이 많지는 않겠죠?
-어린 독자시라면 더욱더….
이 책에는 해학이 넘치는 자기희생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선 매혈의 본보기를 말한 후에, 왜 눈물나게 웃긴 지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1. 매혈의 본보기(?) 피값으로 사는 인류의 역사가 꽤 전통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적어 봅니다.
우선, 예수는 피를 파셨죠.
경우에 따라서는 몸을 파셨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예수의 피를 산 이는 하나님, 그의 매혈 덕분에 산 사람은 인류입니다.
그 다음, 석가모니 역시 수 많은 수행 중에 인신공양을 하셨죠.
그 분 역시 피를 팔고, 몸을 파셨습니다. 그의 피를 산 이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매혈 덕분에 복받은 이는 온 중생입니다.
셋째, 이 책의 주인공 허삼관 또한 매혈을 합니다.
그의 피를 산 이는 이혈두와 병원, 그의 매혈 덕분에 산 사람은 그의 세아들
모두 피를 팔았습니다.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요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 의하면(아직 못 읽었지만), 허삼관의 매혈은 결국 자신의 유전자를 위한 행위라고 이해되겠지만, 본인을 위함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 눈물나게
허삼관은 집안에 큰 일이 있을 적마다 피를 팝니다.
땀흘리는 것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 피를 팝니다.
자기는 복을 받아 건강 하다고, 자랑을 하면서 피를 팝니다.
그 아비의 피값으로 가족이 살아갑니다. 나중에 아비가 늙어서, 피를 팔 수 없을 때, 자식이 그만큼 다 자라 있을 때도 아비는 피를 팔 생각을 합니다.
“이젠 늙어서 아무도 내 피를 거들떠 보지 않아…..., 앞으로 집에 일이 생기면 난 어떻게 하지?”
저 역시 어미 아비의 피 같은 땀으로 자랐습니다.
지금 아버지 어머니의 마디진 손과 자글자글한 주름은 세월의 남긴 상처만은 아닐 것입니다.
부모님의 주름을 보고 우는 것도 불효라 생각합니다.
눈물 그렁그렁 하더라도, 웃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3. 웃기다
허삼관이라는 세 아이의 아비는 그 위인됨이 우습습니다.
김유정 작가의 소설 ‘봄봄’, ‘동백꽃’에 나오는 캐릭터 만큼 우습습니다. 김동인 작가의 ‘발가락을 닮았다’ 처럼 우습습니다.
사람들이 채플린이나 영구 같은 바보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죠? 위험하지 않고, 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며, 자신보다 못하기 때문이라고 들은 듯 합니다.
허삼관은 바보는 아닌데도, 일상이 우습습니다.
아마도 저의 일상을 이리 옮겨놓아도 여럿을 웃길 것 같습니다.
허삼관의 황당한 위인됨을 들여다 보면 아래와 같아요.
“허삼관이 그 깨진 삼각형의 거울을 손에 들고 자신의 눈을 한 번 보고 다시 일락이의 눈을 보니, 그 눈이 그 눈이었다. 그는 다시 자신의 코를 비춰보고 다시 일락이의 코를 보니 역시 그 코가 그 코였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모두들 일락이가 날 안닮았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래도 닮은 구석이 있구만.'”
가뭄 때문에 온 가족이 굶을 때, 말과 상상으로 요리를 먹는 장면입니다.
"일락이는 뭘 먹을래?" "홍소육요." 허삼관은 기분이 약간 상했다. "세 놈이 죄다 홍소육을 먹겠다니.....,왜 좀더 일찍 말하지 않고, 일찍 말했으면 한꺼번에 만들잖아. 그러면 한 번에 끝나고...,자 그럼 일락이에게 고기 다섯 점을 썰어서....."
4. 해학이 넘칩니다.
없는 사람들이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그 고단을 날려버리는 것이 해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있는 사람은 재기발랄한 위트는 있을 지 언정 해학은 모를 것입니다.
자본에도 국경이 없고
노동자에게도 국경이 없고
가난에도 국경이 없으니 해학에도 국경은 역시 없나 봅니다.
오늘 중국의 해학을 맘껏, 맛보고 갑니다.
http://lawcher.tistory.com2007-11-08T05:51:450.3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