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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유도 없는 절망에 허우적대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 적어도 다른 사람이 보기엔 - 절망에 허우적댑니다.
포그의 아파트 관리인이 그를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처럼요.

토마스 에핑이 그랬고.
솔로몬 바버가 그랬고.
M. S 포그가 그렇습니다.

외삼촌, 아버지의 죽음이나 재정위기가 원인이라고 하기엔 좀 부족합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될 수 없는 절망 속에서 세 사람은 허우적댑니다.

마땅한 원인이 없기에 절망의 해결책도 없어 보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 따위는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데,
그런 것 생각할 겨를 없이 바동거리며 살아도 바쁜 삶인데 말이죠.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 욕을 먹어도 한참을 먹을 나약한 그들에게, 배부른 그들에게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면서 읽게 되는 이 책은 좀 우울합니다.

읽다가 접은 책이지만 왕멍은 <나는 학생이다>에서 유배생활의 고독과 절망 속에서 미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배움'과 '공부'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달의 궁전>의 솔로몬 바버와 M. S 포그 역시 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토마스 에핑은 그림을 그립니다.

그러나 그들을 잠시나마 구원한건 '키티 우'나 '에밀리 포그'에 대한 사랑이었네요.
그리고 '빅터 포그'나 '솔로몬 바버'와 같은 혈육이었습니다.

아무튼 지금 끼적거리고 있는 저도 책을 읽습니다.
부엌에 계란을 떨어뜨리고는 공원에서 노숙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 2 글 쓰는 방법에 대한 작가의 가르침?

우스우면서도, 동질감 느껴지는 포그의 절망에 대한 대처 외에 가장 관심이 가는 대목은
눈 먼 토마스 에핑에게 사물을 설명해야 하는 포그의 깨우침이었어요.
서로 모순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처음 봤을 때에는 무언가 영감을 제공해 주는
것 같아서 인용해 봅니다.

M. S 포그는 토마스 에핑이라는 눈 먼 노인의 비서직을 갖게 됩니다.
책을 읽어주고, 같이 산책을 하면서 거리의 사물을 설명해야 하죠. 그 산책의 첫 날 길 한가운데서 포그는 에핑에게 큰소리를 듣습니다.


 "빌어먹을!"
그가 호통을 쳐댔다.

"그 대가리에 박힌 눈을 쓰란 말이야. 나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는데, 자네는 지금
<흔히 볼 수 있는 가로등>, <아주 평범한 맨홀 뚜껑>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어떤 두 가지 물건도 똑같지는 않아, 멍청이 같으니라고, 어떤 바보라도 그건 알아. 나는 지금 우리가 뭘 보고 있는지 알고 싶은 거야, 빌어먹을! 자네가 나한테 확실히 설명해 주길 바라는 거라고!"  (p. 176)


이래서 포그는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을 보고 그에 대해 말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이죠.
마치 김연수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태어나서 처음인 것처럼 느껴봐." 라고 하는 말처럼 말이죠.
포그는 세 가지 생각을 전해줍니다.


첫째, 아무것도 당연시해서는 안 되었다.

둘째, 긴 설명으로 그를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사물을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내가 말하는 문장들을 단순화하고 본질적인 것으로부터 부수적인 것을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

셋째, 나는 어떤 사물 주위로 더 많은 여유를 남겨 두면 남겨 둘수록 그 결과가 더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 178~180)



# 3 가끔은 성공이나 실패의 결과를 잊자

토마스 에핑은 황무지의 동굴 속에서 은신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다른 이에게 보여주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 성공과 실패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잊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충만한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해 합니다.

결과나 평가가 머리를 짓누를 때, 잠시 벗어나서 자신에게 충만해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요.

Posted by 로처


<실패의 향연> 작년에 재미있게 읽은 책 제목입니다.
<빵굽는 타자기> 이 책의 주인공은 말 그대로 '실패의 향연'을 벌입니다.
시작부터 자신의 과거가 실패의 잔치였음을 그 이유와 함께 고백합니다.


[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 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이따금 돈이 떨어지거나 어쩌다 한번 허리띠를 졸라맨 정도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노상 쩔쩔맸고, 거의 숨 막힐 지경이었다. 영혼까지 더럽히는 이 궁핍 때문에 나는 끝없는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모두가 내 불찰이었다.
나와 돈의 관계는 늘 삐그덕거렸고, 애매모호했고, 모순된 충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문제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은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내 꿈은 처음부터 오직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  (p. 5)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 그의 실패담으로 가득합니다.

1. 젊은 시절

이 시절의 주인공은 영화 <타이타닉>의 주인공 '잭 도슨'과 비슷합니다.
다리 밑에서 자고, 쥐와 함께 3등 객실에서 생활하면서도 그림에 대한 꿈을 잃지 않는 '잭 도슨'.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들 앞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당당한 '잭 도슨' 처럼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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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부양의 책임도 없이, 젊음 하나로 자신만만하던 시절에는 실패의 짐도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글 쓰는 일을 위해, 꼭 필요한 돈만 있으면 되던 시절입니다. 그만큼의 돈벌이도 버겁긴 했지만요.

시키는 대로 작성만 하면 될 '시청각자료 아르바이트'는 민주제와 공화제의 차이점이 크다는 자신의 주장을 이해 못하는 사장과의 불화로 20분 만에 때려치웁니다. 웨이터, 시설정비, 유조선 선원, 호텔직원의 일들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 없이 잘 하죠.
스스로 실패자를 위한 상을 제정하여 공모하는 치기도 부려봅니다. 이렇게 좌충우돌 살아가면서도 글 쓰는 일은 놓지 않습니다.


[ 프랑스에서 살았던 3년 반 동안 나는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프리랜서로 얻은 시간제 일자리를 몇 탕씩 뛰느라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서 얼굴이 파래질 정도였다.
일감이 없을 때는 일을 찾아다녔다. 일감이 있을 때도 더 많은 일을 찾을 방법을 궁리했다. 가장 잘 나갈 때에도 마음을 놓을 만큼 돈을 번 적이 없지만, 한두 번 위기를 맞긴 했어도 파산만은 용케 면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흔히 하는 하루살이였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나는 꾸준히 글을 썼고, 대부분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지만 그래도 일부는 살아남았다. 좋은 싫든, 1974년 7월에 뉴욕으로 돌아왔을 때는 글을 쓰지 않는 생활은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   (p. 93, 94)



곧 이 좋은 시절은 지나가죠.
주인공은 나이가 들고, 아들의 아버지가 되고, 가장이 됩니다.

2. 가장이 된 후의 시절

이제 '생계를 위한 시간'과 '자신을 위한 시간'의 균형은 맞추기 힘들어집니다.


[ 1977년 말쯤에는 덫에 걸린 짐승처럼 필사적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돈 문제를 회피하면서 평생을 보냈는데, 이제 갑자기 돈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기적 같은 역전을 꿈꾸었다. 복권에 당첨되어 수백만 달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따위의 일확천금을 꿈꾸며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중략>

시간을 얻기에는 일을 너무 많이 했고, 돈을 벌기에는 일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제 나는 시간도 돈도 갖고 있지 않았다. ]   (P. 146)



그가 쓴 희곡은 '존 마이어'라는 절대적인 지지자의 성원에도 실패로 끝납니다.
스스로 개발한 '액션 베이스볼' 이라는 카드게임은 그의 기대와는 반대로 나락의 기분을 안겨준 채 끝납니다.
불면의 밤을 지내며 문득 생각난 기막힌 탐정추리소설도 구석에 쳐 박히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 탐정추리소설로 900달러를 벌면서 실패의 추억은 끝이 납니다.

실패로 가득한 책임에도 꽤나 재미있습니다.
결국엔 성공한 작가가 될 테니, 실패의 쓰라림이 아닌 좋은 추억으로의 달콤함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가 담담한 필치로 실패의 암울함을 덜어내어서 일까요?
것도 아니면, 남의 실패이기 때문에 - 그것도 지나간 - 일까요?
혹은, 꼬장꼬장한 자존심 잃지 않고 꿈을 지켜내며 살아가는 주인공에 대한 응원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이유는 알 수 없네요.

아무튼, 저는 추억으로 재구성되고 미화된 성공담보다는 쓰리지만 진솔해 보이는 실패담이 더 좋네요.

Posted by 로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1. 상실의 시대

88만원 세대
2080의 시대
신자유주의
고용 없는 성장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진 비극적인 말들
초등학교부터 시작한 줄 세우기는 사회에 나와서도 어김없이 적용되어서,
자신이 밑바닥에 속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위를 보며 살아갑니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밑에서 끔찍한 가난이 입을 벌리고 기다립니다.

이렇게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성공의 시대' 이면에는 더 많은 실패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실패의 향연>의 지은이가 말하는 것처럼, 실패에 익숙해지면서 실패를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자세를 갖는 것이 성공을 다룬 책을 읽는 것보다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아래에는 토크빌의 글을 저자가 인용한 부분 입니다.
당시의 유럽에 비해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 미국,
그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에서 사람들이 왜 행복하지 못할까? 하는 의문에 대한 토크빌의 해석입니다. 저는 <실패의 향연>의 주제와 같은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연예인의 화려한 생활을 동경해 자식이 그 길로 가겠다고 하면,
부모님들은 그 이면의 어려움을 짐작해서 말리는 것으로 비유가 될까요?

삶을 비관하자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서 또 성공하기 위해서, 과장된 부분과 실패의 함정들을 제대로 살피자는 의미일 것입니다.


[ 토크빌은 1830년대에 '무한한 가능성의 나라' 미국을 여행한 경험을 토대로 <미국의 민주주의>(1835~1840)를 집필했다.
이 책에서 그는 민주주의적인 평등한 사회 체제의 허점을 분석하고, 특히 과거 어느 때보다 오늘날 더 절실해 보이는 문제를 진지하게 제기했다.

"출생과 소유의 모든 특권이 폐지되고 누구나 모든 직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되면, ..... 사람들은 마음 놓고 무한히 야심을 펼칠 수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자신들이 위대한 것을 이루라는 소명을 타고났다고 즐겨 상상한다. 그러나 그것은 날마다 경험을 통해 수정되는 잘못된 생각이다. ..... 불평등이 일반적으로 사회를 지배하는 법칙인 경우에, 극심한 불평등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대체로 모든 것이 평등한 경우에는, 아주 미미한 차이도 마음을 상하게 한다. ..... 이것은 민주주의의 주민들이 풍요 한가운데서 기이하게도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다. ..... 나는 부자들이 누리는 것을 희망과 부러움의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는 가난한 시민을 미국에서 단 한 명도 만나 보지 못했다."

토크빌은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위대한 자유주의자였다. 그러므로 봉건적인 불평등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토크빌은 평등주의 시대에 인간을 괴롭히는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했다. 성공의 사다리를 타고 맨 꼭대기까지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이 은연중에 계속 우리에게 불어넣어진다.

"이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 덕분에 특히 처음에 젊은 사람들은 피상적인 만족감을 느끼고,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과 행운아들은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절망한다. 그들의 영혼은 비통함에 숨이 막힌다." ]
(p. 188)



2. 상실에 익숙해지기

필요가 수요를 낳고
필요가 발명을 낳는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리고 마케팅이 수요를 낳고,
상품이 수요를 낳는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 책의 지은이는 풍요의 시대에 사는 우리가 현재 소비하는 것들 중 많은 부분이 '없어도 그만'일 수도 있노라고 말 해줍니다.

'레스토랑에서의 외식', '고급 승용차', '휴대폰', '예술작품', '넘쳐나는 정보' 들 중에서 진정 내 삶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것을 권합니다.
혹시나 유행처럼 소비하지는 않는지, 소외되지 않기 위한 소비를 하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3. 다시 생각나는 권정생 선생

지은이는 '자신의 중심'을 잡고 '유행하는 소비'나 '소외되지 않기 위한 소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권할 뿐, 무소유의 삶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냉소적인 말투 때문에 그런 오해를 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마 그에게 권정생 선생 같은 삶을 살라고 하면, 이 책을 대폭 수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존경하고, 동경하지만, 선생의 삶을 따라가기는 버겁습니다.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을 돌려대라거나,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주라는 말씀은 외면한 채,
스스로에게 유리한 하나님만 찾아서 믿을 뿐입니다.
그나마 부끄러움을 안다면 감사할 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권정생 선생의 <우리들의 하느님>을 다시 읽고 싶어졌습니다.

Posted by 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