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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빵굽는 타자기 - 폴 오스터
    문학, 소설, 등 2009. 1. 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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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의 향연> 작년에 재미있게 읽은 책 제목입니다.
    <빵굽는 타자기> 이 책의 주인공은 말 그대로 '실패의 향연'을 벌입니다.
    시작부터 자신의 과거가 실패의 잔치였음을 그 이유와 함께 고백합니다.


    [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 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이따금 돈이 떨어지거나 어쩌다 한번 허리띠를 졸라맨 정도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노상 쩔쩔맸고, 거의 숨 막힐 지경이었다. 영혼까지 더럽히는 이 궁핍 때문에 나는 끝없는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모두가 내 불찰이었다.
    나와 돈의 관계는 늘 삐그덕거렸고, 애매모호했고, 모순된 충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문제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은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내 꿈은 처음부터 오직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  (p. 5)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 그의 실패담으로 가득합니다.

    1. 젊은 시절

    이 시절의 주인공은 영화 <타이타닉>의 주인공 '잭 도슨'과 비슷합니다.
    다리 밑에서 자고, 쥐와 함께 3등 객실에서 생활하면서도 그림에 대한 꿈을 잃지 않는 '잭 도슨'.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들 앞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당당한 '잭 도슨' 처럼 살아갑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족부양의 책임도 없이, 젊음 하나로 자신만만하던 시절에는 실패의 짐도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글 쓰는 일을 위해, 꼭 필요한 돈만 있으면 되던 시절입니다. 그만큼의 돈벌이도 버겁긴 했지만요.

    시키는 대로 작성만 하면 될 '시청각자료 아르바이트'는 민주제와 공화제의 차이점이 크다는 자신의 주장을 이해 못하는 사장과의 불화로 20분 만에 때려치웁니다. 웨이터, 시설정비, 유조선 선원, 호텔직원의 일들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 없이 잘 하죠.
    스스로 실패자를 위한 상을 제정하여 공모하는 치기도 부려봅니다. 이렇게 좌충우돌 살아가면서도 글 쓰는 일은 놓지 않습니다.


    [ 프랑스에서 살았던 3년 반 동안 나는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프리랜서로 얻은 시간제 일자리를 몇 탕씩 뛰느라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서 얼굴이 파래질 정도였다.
    일감이 없을 때는 일을 찾아다녔다. 일감이 있을 때도 더 많은 일을 찾을 방법을 궁리했다. 가장 잘 나갈 때에도 마음을 놓을 만큼 돈을 번 적이 없지만, 한두 번 위기를 맞긴 했어도 파산만은 용케 면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흔히 하는 하루살이였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나는 꾸준히 글을 썼고, 대부분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지만 그래도 일부는 살아남았다. 좋은 싫든, 1974년 7월에 뉴욕으로 돌아왔을 때는 글을 쓰지 않는 생활은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   (p. 93, 94)



    곧 이 좋은 시절은 지나가죠.
    주인공은 나이가 들고, 아들의 아버지가 되고, 가장이 됩니다.

    2. 가장이 된 후의 시절

    이제 '생계를 위한 시간'과 '자신을 위한 시간'의 균형은 맞추기 힘들어집니다.


    [ 1977년 말쯤에는 덫에 걸린 짐승처럼 필사적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돈 문제를 회피하면서 평생을 보냈는데, 이제 갑자기 돈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기적 같은 역전을 꿈꾸었다. 복권에 당첨되어 수백만 달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따위의 일확천금을 꿈꾸며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중략>

    시간을 얻기에는 일을 너무 많이 했고, 돈을 벌기에는 일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제 나는 시간도 돈도 갖고 있지 않았다. ]   (P. 146)



    그가 쓴 희곡은 '존 마이어'라는 절대적인 지지자의 성원에도 실패로 끝납니다.
    스스로 개발한 '액션 베이스볼' 이라는 카드게임은 그의 기대와는 반대로 나락의 기분을 안겨준 채 끝납니다.
    불면의 밤을 지내며 문득 생각난 기막힌 탐정추리소설도 구석에 쳐 박히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 탐정추리소설로 900달러를 벌면서 실패의 추억은 끝이 납니다.

    실패로 가득한 책임에도 꽤나 재미있습니다.
    결국엔 성공한 작가가 될 테니, 실패의 쓰라림이 아닌 좋은 추억으로의 달콤함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가 담담한 필치로 실패의 암울함을 덜어내어서 일까요?
    것도 아니면, 남의 실패이기 때문에 - 그것도 지나간 - 일까요?
    혹은, 꼬장꼬장한 자존심 잃지 않고 꿈을 지켜내며 살아가는 주인공에 대한 응원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이유는 알 수 없네요.

    아무튼, 저는 추억으로 재구성되고 미화된 성공담보다는 쓰리지만 진솔해 보이는 실패담이 더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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