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 1

나는 어떤가 - 하고 나는 생각해 보았다.
절정-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한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되돌아보면, 이는 인생이라고 할 수 없을 듯한 느낌이 든다. 약간의 기복은 있었다. 꾸역꾸역 올라가거나 내려오기는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거의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아무것도 만들어낸 게 없다. 누군가를 사랑한 적도 있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

기묘하게 평탄하며, 풍경이 단조롭다. 마치 비디오 게임 속에 걸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팩맨 같다. 잇따라 미로 속의 점선을 먹어 간다. 목적도 없이. 그리고 언젠가는 확실하게 죽는다.


# 장면 2 - 하루키의 주문(?)

정신을 차려보니 무력감이 조용히 소리도 없이 물처럼 방 안에 차있었다. 나는 그 무력감을 밀어 헤치듯이 목욕실로 가서 <레드 클레이>를 휘파람으로 불면서 샤워를 하고, 부엌에 선 채로 캔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눈을 감고 스페인 어로 하나에서 열까지 센 다음, '끝났다'하고 소리 내어 말하고는 손뼉을 치자 무력감은 바람에 날려가듯이 휙 사라져 버렸다. 이것이 나의 주술이다. 혼자서 지내는 인간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 가지 능력을 익히게 된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


#장면 3

유키는 쟁반에 담겨진 프리첼을 집어 먹었다.
"틀림없이 모두들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저씨는 알고 있어요?"
"암시성이 구체적인 형태를 취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가, 이에 대처하면 되리라고 생각해, 요컨대."

유키는 T셔츠의 옷깃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잘 알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건 무슨 뜻이에요?"

"기다리면 된다는 말이야" 하고 나는 설명했다.
"천천히 그러한 때가 오기를 기다리면 돼. 무엇을 억지로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사물이 흘러가는 방향을 지켜보면 돼. 그리고 공평한 눈으로 사물을 보려고 노력하면 되는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자연히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모두들 너무 분주해.
재능이 넘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공평함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에는, 스스로에 대한 흥미가 너무 많거든."

# 장면 4

아무튼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어떤 일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다.
수가 막혔을 때에는, 당황하여 움직일 필요는 없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 무슨 일이 다가온다.
가만히 응시하면서, 어스름 속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기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경험을 통해 이를 배웠다.
이는 언젠가는 반드시 움직인다. '만일 이것이 필요한 것이면 이는 반드시 움직인다.'
좋아, 천천히 기다리자.

# 장면 5

가엾은 사나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여기서 그 나름의 질서를 열심히 만들어 가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러한 것은 하루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눈깜짝할 사이다. 사람이라는 건 자신과 제일 어울리는 장소에 그 그림자를 남기고 간다. 딕 노스의 그것은 부엌이었다. 그리고, 가까스로 남겨진 그 불안정한 그림자도, 눈깜짝할 사이에 소멸되어 버린다.

# 장면 6

'운명' 하고 유키는 연약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정말이에요. 나빠지고 있어요. 나와 엄마는 그러한 주파수가 공통되어 있는가봐요. 지난 번에도 말한 것처럼 엄마가 활기가 있으면 나도 활발해지고, 엄마가 움츠러들면 나도 점점 기력을 잃어가요. 어느 쪽이 먼저인지 잘 알 수 없을 때도 있지만. 즉 엄마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는지, 혹은 내가 엄마를 끌어당기고 있는지 잘 알 수가 없어요.

하지만 아무튼 그녀와 나는 무엇에 의해 이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달라붙어 있든 떨어져 있든 마찬가지예요."

"이어져 있어?"

"그래요, 정신적으로 이어져 있어요." 하고 유키는 말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장면 7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아요?"

"흥미를 가질 수 없어." 하고 나는 말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지도 않아. 단지 흥미를 가질 수가 없어."

"이상한 사람이에요." 하고 유키는 말했다. "초콜릿에 흥미를 가질 수 없다니, 정신에 이상이 있어요."

"전혀 이상하지 않아. 그러한 경우가 있다구. 너는 달라이 라마를 좋아하니?"

"뭐에요, 그건?"

"티베트의 가장 훌륭한 승려야."

"몰라요, 그런 건."

"그럼 넌 파나마 운하를 좋아해?"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요."

"혹은 넌 일부 변경선을 좋아하니 싫어하니? 원주율은 어때? 독점 금지법은 좋아해? 쥬라기는 좋아해 싫어해? 세네갈 국가는 어때? 1987년의 11월 8일은 좋아해 싫어해?"

"시끄러워요, 원. 정말 어이가 없어. 잇따라 잘도 생각해내는 군요." 하고 유키는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말했다.

"알았어요, 잘. 아저씬 초콜릿을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고, 단지 흥미를 가질 수 없을 뿐이란 말이죠. 알았어요."

"알아주면 됐어." 하고 나는 말했다.

# 장면 8

나는 잠자코 있었다. 잠시 후에 고혼다가 말을 계속하였다.
"대체 어디까지가 현실일까? 그리고 어디서부터가 망상일까?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그리고 어디서부터가 연기일까? 나는 그걸 확인하고 싶었어. 이렇게 자네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 그걸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어. 자네가 내게 키키의 일을 처음으로 물었을 때부터 나는 죽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네. 자네가 나의 이 혼란을 해소시켜 주지 않을까 하고 말야. 마치 창문을 열어 차갑고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도록 하는 것처럼 말야."


# 장면 9

목소리가 나올까?
내 메시지가 현실의 공기를 잘 흔들 수 있을까?
몇 가지 문구를 나는 입속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명료한 것을 골랐다.

"유미요시, 아침이야" 하고 나는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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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1 - 느슨한 관계

어떻든 나는 그녀에 대해선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나이가 몇 살인지도. 생일조차 알지 못한다. 학력도 알지 못한다.
가족이 있는지 어떤지조차 알지 못한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녀는 비처럼 어디선가 와서는, 어디론가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다만 기억만을 남겨 놓고.


# 장면2

나는 낙수물을 쳐다보면서 자신이 무엇엔가에 포함된다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 때문에 울고 있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그것은 몹시 먼 세계의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달인가 우주인가 그런 곳에서의 사건처럼 느껴진다. 결국 그건 꿈인 것이다.
손을 제아무리 길게 내뻗어도, 제아무리 빨리 달린다 해도, 나는 거기에 당도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어째서 누군가가 나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가?'


# 장면3

하지만 이루카 호텔로 돌아가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전화로 방을 예약하고, 비행기를 타고 삿포로에 가면 그걸로 끝날 일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호텔인 동시에  하나의 상황인 것이다. 그것은 호텔이라는 형태를 취한 상황인 것이다. 이루카 호텔로 돌아간다는 것은, 과거의 그림자와 다시 한 번 상대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나는 견딜 수 없이 우울한 상념에 사로잡혔다.

그렇다, 내가 이 4년 동안 조용히 부지런히 모아온 모두를 송두리째 포기하고 없애버리려고 하는 일인 것이다. 물론 나는 그다지 대수로운 것을 손에 넣은 것은 아니다. 그 거의 대부분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잠정적이고 편의적인 잡동사니였다. 하지만 나는 내 나름으로 최선을 다했으며, 그 같은 잡동사니를 제법 그럴싸하게 짝을 맞춰 가지고 현실과 자신을 연결하고, 내 나름의 조촐한 가치관에 기초한 새로운 생활을 쌓아 온 것이다. 다시 한 번 전의
텅 빈 자리로 되돌아 가라는 것인가?
창문을 열고 모든 것을 내동댕이치라는 것인가?
하지만 결국은, 모든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로선 그것을 알고 있었다.
거기서부터밖엔 시작되지 않는 것이다.


#장면4 - 이해받고 싶어하면서, 거부하는 하루키(1)

- 어린왕자에서 여우의 이름 그리고 김춘수의 꽃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자기 소개.
옛날, 학교에서 자주 했다.
학급이 새로 편성되었을 때, 순번으로 교실 앞쪽에 나가서, 여럿 앞에서 자신에 관해 여러 가지를 지껄인다. 나는 그것이 참으로 질색이었다. 아니, 질색일 뿐만도 아니었다.
나는 그러한 행위 속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내 자신에 대해 도대체 무엇을 알고 있을까?
내가 내 의식을 통해 파악하고 있는 나는 진정한 의미의 나일까?
바로 테이프레코드에 ㅜ치입한 소리가 자신의 소리로 들리지 않는 것처럼, 내가 파악하는 나 자신의 상은, 왜곡되게 인식되어 적당하게 변형되어 만들어진 상은 아닐까?......

언제나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럴 때, 나는 되도록 해석이나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는 객관적인 사실만을 이야기하도록 마음을 썼지만, 그래도 어쩐지 가공의 인간에 대한 가공의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곤 했던 것이다.

...........

하지만 아무튼, 무엇인가 지껄이기로 하자.
자신에 관해 무엇인가 지껄이는 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그것이 우선 제 1 보인 것이다.
올바른 것인지 올바르지 못한 것인지는 나중에 다시 판단하면 된다.
나 자신이 판단해도 되고 다른 누군가가 판단해도 된다.


#장면5 - 이해받고 싶어하면서, 거부하는 하루키(2)

나는 색다른 인간은 아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평균적인 인간이라곤 할 수 없을지 모르나, 그러나 색다른 인간도 아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지극히 성실한 인간인 것이다. 매우 직선적이다. 화살처럼 직선적이다. 나는 나로서 극히 필연적으로, 극히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이제 자명한 사실이어서, 타인이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파악했다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본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에게 전혀 관계없는 문제였다. 그것은 '나의 문제'라기보다는 차라리 '그들의 문제'인 것이다.

어떤 종류의 인간은 나를 실제 이상으로 우둔하다고 생각하며, 어떤 종류의 인간은 나를 실제 이상으로 계산이 빠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려면 어떤가. 게다가 '실제이상으로'라는 표현을, 내가 파악한 나 자신의 상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의 나는 어쩌면 현실적로 우둔하며, 어쩌면 계산이 빠르다.
그것은 뭐 어느 쪽이건 좋다. 대수로운 문제가 아니다.

세상에는 오해라는 것은 없다. 사고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것이 내 생각이다.

#장면 6 - 결국, 밀어내는 건, 하루키 아닌가?

내 방에는 두 개의 문이 달려 있는데 하나가 입구이고 하나가 출구다
호환성은 없다.
입구로는 나갈 수가 없고, 출구로는 들어올 수가 없다. 그건 뻔한 일이다.
사람들은 입구로 들어와 출구로 나간다. 어느 누구는 새로운 가능성을 시도하기 위해 나갔으며, 어느 누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나갔다. 어느 누구는 죽었다. 남은 인간은 한 사람도 없다.

방안에는 아무도 없다. 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부재를 언제나 인식하고 있다. 사라져 간사람들을. 그들이 입에 담은 말들이랑, 그들의 숨소리랑, 그들이 읊조린 노래가 방의 이 구석 저 구석에 티끌처럼 떠돌고 있는 게 보인다.


# 장면 7 - 그의 허무를 딛고 나의 허무에서 탈출.

새벽녘에 나는 혼자서 멍청하니 달을 바라보면서, 이것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고 생각했다. 나는 이윽고 또 어디선가 다른 여자와 해후하게 될 게다. 우리들은 유성처럼 자연스레 연관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다시 헛되이 기적을 기대하며, 시간을 갉아먹으며, 마음을 마멸시키며, 헤어져 가는 것이다.

그것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 장면 8 - 가장 실체가 있었던 시간

입구와 출구.
죽어버린 친구와 둘이서 다니던 조그마한 스넥 바 일도 생각났다.
우리는 거기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것이 이제껏 인생에서 가장 실체가 있는 시간이었던 것처럼 느낀다.

#장면 9 - 요구하지 않는 사이

그녀가 사라져 갔다는 것은, 내 속에 예상 이상의 상실감을 가져왔다.
얼마 동안은, 나 자신이 견딜 수 없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나는 결국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모두가 차례차례 사라져가고, 나만이 연장된 유예 기간 속에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었다. 현실이면서도 현실이 아닌 인생.

하지만 그것이 내가 공허함을 느낀 가장 큰 이유는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마음 밑바닥으로부터는 그녀를 요구하고 있지 않다는 그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좋아했다. 그녀와 함게 있는 것이 좋았다.
그녀와 둘이 있으면, 나는 쾌적한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온순한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결국은 나는 그녀를 요구하고는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가 사라지고 난 뒤, 나는 그 사실을 명백히 인식했다.


#장면 10 - 군중 속의 여유, 적당한 거리

나는 예전에 한 번 들어간 적이 있는 어떤 술집에 들어가서 술을 좀 마시고 간단한 식사를 했다.지저분하고, 시끌시끌하고, 값이 싸고, 맛이 좋은 가게였다. 나는 혼자서 밖에서 식사를 할 때는 언제나 될 수 있는 대로 시끌벅적한 음식점을 택하기로 하고 있었따. 그러는 편이 안정이 되는 것이다.
쓸쓸하지 않으며, 혼잣말을 해도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 장면 11 - 당신의 매듭, 당신의 장소

"괜찮아요, 걱정할 것 없어요.
당신은 이루카 호텔에 정말로 포함되어 있는 거요."
하고 양 사나이는 조용히 말했다.
"이제까지도 줄곧 포함돼 있었고, 이제부터도 줄곧 포함돼 있지. 여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고 여기서 모든 것이 끝나는 거요.

여기가 당신의 장소란 말이오.
그건 변함이 없어요. 당신은 여기에 연결돼 있어. 여기가 모든 것에게 연결돼 있어. 여기가 당신을 맺어주는 매듭인 거요.

# 장면 12 - 세상의 끝에서의 노래

"춤을 추는 거요." 하고 양 사나이는 말했다.
"음악이 울리고 있는 동안은 어떻든 계속 춤을 추는 거야. 내가 하는 이 말을 알아 듣겠는가?"
"춤을 추는 거야. 계속 춤을 추는 거요. 왜 춤추느냐 하는 건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건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건 애당초 없는 거요.
그런 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발이 멎어. 한번 발이 멎으면 이미 나로선 어떻게도 도와 주지 못하게 되고 말아.
당신의 연결은 이미 모두가 없어지고 말아.
'영원히 없어지고 마는 거요' 그렇게 되면 당신은 이쪽 세계에서밖엔 살아가지 못하게 되고 말아.

자꾸자꾸 이쪽 세계로 끌려들고 마는 거야. 그러니까 말을 멈추면 안 돼요.
아무리 싱겁기 짝이 없더라도, 그런 건 신경쓰면 안 돼. 제대로 스텝을 밟아 계속 춤을 추어대란 말이오.
그리고 굳어져 버린 것을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풀어나가는 거요.
아직 늦지 않은 것도 있을 테니까. 쓸 수 있는 것은 전부 쓰는 거요. 최선을 다하는 거요.

두려워할 것 아무것도 없어. 당신은 확실히 지쳐 있어. 지쳐서 겁을 먹고 있어.
누구에게나 그런 때가 있어. 무엇이고 모두 잘못 돼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법이야.
그래서 발이 멎어 버리거든.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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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권의 인용구절 입니다.

“하지만 대령님은 나에게 무척 친절하게 대해 주지 않습니까? 나에 대해서 신경을 써주고, 잠도 자지 않고 간병도 해주고, 그것은 마음의 또 다른 표현 아닌가요
?

“아니, 틀리네. 친절함과 마음은 전혀 별개의 것일세. 친절함이라는 것은 독립된 기능이지. 좀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표층적인 기능일세. 그것은 단순한 습관이지, 마음과는 다른 것이라네. 그리고 훨씬 모순된 것이지.





이상한 일이다. 사람들은 마음이라는 것을 진정한 따스함에 비유한다
.
그런데 마음이 없는 그녀의 몸에서 발산되는 이 따사로움은 과연 무엇일까
.
“내 마음이 열리지 않는 것은 아마 나 자신의 문제일 거야. 당신 탓이 아니야. 내가 나의 마음을 확인할 수가 없어서 그 때문에 나는 혼란스러워하는 거야.


“마음이라는 것은 당신조차도 잘 이해할 수 없는 건가 보죠?


“어떤 경우에는 그렇지.” 하고 나는 말했다
.
“그때 당시에는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시간이 훨씬 지나고 나서야 이해할 때도 있어. 그러면 대개의 경우는 이미 때가 너무 늦어 버리지. 대체적으로 우리들은 자신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하고, 더더구나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행동을 하기 때문에 혼란에 빠지는 거야.


“마음이라는 것이 무척 불안하고 불완전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이 너무나 비효율적이라고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하고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

“글쎄……. 아마도 그렇겠지.” 하고 나는 말했다
.
“나는 16년 동안 학교를 다녔지만, 그것이 특별히 어떤 도움을 주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변변하게 외국어도 하지 못하고, 악기도 다루지 못하고, 증권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고, 말도 타지 못하고 말야.


“그럼, 어째서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나요?
 
"
그만두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잖아요?


“글쎄, 그건 말이야” 하고 나는 말하며 그 일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았다. 분명히 그만두려고 생각했다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었던 것이다
.

“하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어. 우리 집은 당신네와는 달리 매우 평범한 보통 가정이었고, 나 자신이 일류가 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거든.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에요”하고 그녀가 말했다. “인간은 누구든지 뭔가 하나쯤은 일류가 될 수 있는 소질을 갖고 있어요. 그것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죠. 끌어낼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조리 덤벼들어서 그 싹을 짓밟아 버리니까 그 많은 사람들이 일류가 될 수 없는 거에요. 그리고 그 싹은 그대로 시들고 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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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2-무라카미 하루키

 

 

* 아래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2권의 구절 인용입니다.

 

 

기억나지 않아요. 그때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던 것 같아요. 기억하고 있는 건 단지 그 늦가을 비가 오는 날 저녁나절에 어느 누구도 나를 꼭 안아 주지 않았다는 사실뿐. 그것은 마치 내게 있어서 세계의 끝과 같은 것이었어요. 어둡고 힘겹고 쓸쓸해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꼭 껴안아 주었으면 했는데, 그때 주위에 자신을 안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당신은 이해하겠어요?

......

이 세상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외톨이가 될 수는 없어. 모두들 어딘가에서 조금씩 연결되어 있지. 비도 내리고, 새도 울고, 배에 상처가 나고, 어둠 속에서 여자 아이와 키스하는 일도 있지.

 

 


 

나는 주어진 숫자를 머리 속에서 주물럭주물럭 반죽해 다르게 바꾸어 버리는 것만으로 세상과 관련을 맺고, 그 이외의 시간은 혼자서 케케묵은 소설을 읽거나, 비디오로 할리우드의 옛날 영화를 보거나, 맥주나 위스키를 마시면서 내 삶을 지탱해 왔다. 자연히 신문이나 잡지 같은 걸 훑어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빛을 잃어버린 수수께끼 같은 어둠 속에서, 무수한 구멍과 무수한 거머리들에 둘러싸인 지금은 신문을 읽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햇볕이 드는 따사로운 곳에 걸터앉아, 고양이가 우유 접시를 핥듯이 신문의 구석구석을 한 자도 빼놓지 않고 깡그리 읽는 것이다. 그래서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단편들을 몸 속으로 빨아들이고, 세포 하나하나를 기름지게 하는 것이다.

 

 


 

그림자는 구두 굽으로 땅에 원을 그렸다.

테두리가 완성되어 있어. 그래서 여기에 오래 머물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하다 보면 점점 그들이 옳고 내가 틀린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게 되지. 그들이 너무나 빈틈없이 완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라구. 내가 하는 말 이해할 수 있겠어?

………..

그것과 마찬가지야. 이 도시의 완전함과 완결성이란 그 영구 운동과 같은 거라구.

원리적으로 완전한  세계 같은 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 그러나 여기는 완전해. 그렇다면 어딘가에 반드시 장치가 있을 거야. 실은 영구 운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기계가 뒤쪽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외적인 힘을 이용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

너는 자신을 상실한 게 아니야. 다만 기억이 교묘하게 숨겨져 있을 뿐이지. 그래서 넌 혼란스러운 거야. 그러나 결코 네가 틀린 게 아니야. 가령 기억이 상실되었다 해도, 마음은 있는 그대로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거지. 마음이란 것은 그 자체의 행동 원리를 가지고 있어. 그게 곧 자기지. 자신의 힘을 믿도록 해. 그렇지 않으면 넌 외부의 힘에 이끌려서 수수께끼와도 같은 장소로 끌려가게 된다구.

 

 


 

당신이 이제부터 가게 되는 세계에 나도 따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이 세계를 버리고?


, 그래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


여기는 시시한 세계예요. 당신의 의식 속에서 사는 것이 훨씬 즐거울 것 같아요.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내 의식 속 따위에서 살고 싶지 않다. 마찬가지로 그 누구의 의식 속에서도 살고 싶지 않다.

 

 

 

그들은 구덩이를 파는 것 자체가 목적이네. 단지 구덩이를 파고 있을 뿐이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순수한 구덩이지.

? 잘 모르겠습니다.

간단해. 그들은 단지 구덩이를 파고 싶으니까 파고 있는  걸세. 그 이상의 목적은 아무것도 없지.

………….

우리는 여기서 모두 제각기 순수한 구덩이를 계속 파고 있는 것뿐이야.

목적이 없는 행위, 진보도 없는 노력, 아무데도 다다르지 않는 보행, 멋지다고 생각지 않나? 아무도 상처를 입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상처를 입히지 않지, 아무도 앞질러 가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추월당하지도 않네, 승리도 없고, 패배도 없는 걸세.

 

 


 

우선 마음의 문제야. 너는 나한테 이 도시에는 싸움도, 미움도, 욕망도 없다고 했지?

그건 그것대로 좋아. 나도 기운만 있으면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야. 그런데 싸움과 미움과 욕망이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그 반대의 것도 없다는 얘기기도 하지.

그건 기쁨이고. 행복이고. 애정이야.

절망이 있고 환멸이 있고 비애가 있음으로 해서 기쁨이 생기는 거야 절망이 없는 행복 따위는 아무데도 없어. 그게 내가 말하는 자연스러움 이라는 거야.

 

 

 

세계의 끝 =

내가 잃어버린 것과 지금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과 다시 만날 수 있는 불사의 세계

 

 

 

내가 이 도시의 어딘가에 반드시 출구가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처음에는 직감이었어. 그렇지만 오래지 않아 확신을 하게 되었지. 그 까닭은 이 도시가 완벽한 시가지기 때문이지.


완벽하다는 건 필연적으로 모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이 곳은 도시라고 얘기할 수 조차 없어.

좀 더 유동적이고 총체적인 그 무엇이야. 모든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끊임없이 그 형태를 바꾸어 가고, 그리고 완전성을 유지하고 있다구.


, 이곳은 결코 고정적으로 완벽한 세계는 아니란 거야.

다시 말해 움직이면서 완벽해 지는 세계란 말이지. 그렇기 때문에 내가 탈출구를 원한다면, 탈출구는 있게 마련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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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무라카미 하루키

  

 

1. 추리소설? 환타지? 성장소설?

 

제목을 써놓고 보니, 이런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1권을 읽다 보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계산사 기호사

조직 공장

버튼 없는 큰 엘리베이터 상실의 시대에 나오는 우물 생각이 나네요

그림자를 떼어 낸다 피터팬인가?

야미쿠로 일본에 산다는 많은 귀신 중 하나인가 봐요?

두개골로 꿈을 읽는다

 

이거 대체 무슨 얘기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시작부분은 호기심을 자극하니 그렇다 쳐도,

둔감한 저는 1권 다 읽어가도록 답을 알 수 없어 답답 하더라구요.

그래도 2권까지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알 수 없는 얘기들이 쏟아지기에 답이 궁금해서,

둘째, 세계의 끝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넘나 들며 제법 속도감이 있어서,

셋째, 칼부림(?)도 나오고 야미쿠로 라는 귀신도 출몰하기에,

넷째, 무라카미 하루키 라서(?) 입니다.

 

다 읽고 나니, 뜬금없게도 다크시티(Dark City)가 다시 보고 싶어 지네요.

매트릭스, 다크시티, 같이 영화나 애니로 제작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래는 다크시티 리뷰를 잘 해주신 바이러스님 블로그를 링크해 둡니다.

 

Empty Life(바이러스) 님의 다크 시티 리뷰 보러 가기


2.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화상
자뻑소설

 

저의 개인적인 느낌은요.

백설공주의 마법거울을 갖고, 이상한 나라에 들어간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을 비춰보면서 그린 자화상 같은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요즘 은어로 자뻑을 소재로 글을 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뒤에 부록으로 매달린 평론에 슬쩍 나르시시즘이라는 단어가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평론은 제가 수준미달이라 읽기가 힘들어 관뒀습니다.)

자뻑 을 인기소설로 만드는 그의 재능이 부럽기만 합니다.

 

 

3. 천국은 어떤 곳일까?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싫은 것은 없고, 좋은 것만 가득한 곳일까요?

질병, 고통, 죽음이 없고, 기쁨과 환희가 가득한 곳일까요?

그러면 싫었다가 좋아지고, 좋았다가 싫어지면 어쩌나요?

 

좋은 사람과 좋은 관계가 가득한 곳일까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의식이 창조한 세계를 천국으로 보는 건가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이에 대한 것은 이 책의 일부를 인용하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그들은 구덩이를 파는 것 자체가 목적이네. 단지 구덩이를 파고 있을 뿐이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순수한 구덩이지.

? 잘 모르겠습니다.

간단해. 그들은 단지 구덩이를 파고 싶으니까 파고 있는  걸세. 그 이상의 목적은 아무것도 없지.

………….

우리는 여기서 모두 제각기 순수한 구덩이를 계속 파고 있는 것뿐이야.

목적이 없는 행위, 진보도 없는 노력, 아무데도 다다르지 않는 보행, 멋지다고 생각지 않나? 아무도 상처를 입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상처를 입히지 않지, 아무도 앞질러 가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추월당하지도 않네, 승리도 없고, 패배도 없는 걸세.

 

 

 

우선 마음의 문제야. 너는 나한테 이 도시에는 싸움도, 미움도, 욕망도 없다고 했지?

그건 그것대로 좋아. 나도 기운만 있으면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야. 그런데 싸움과 미움과 욕망이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그 반대의 것도 없다는 얘기기도 하지.

그건 기쁨이고. 행복이고. 애정이야.

절망이 있고 환멸이 있고 비애가 있음으로 해서 기쁨이 생기는 거야 절망이 없는 행복 따위는 아무데도 없어. 그게 내가 말하는 자연스러움 이라는 거야.

 


http://lawcher.tistory.com2008-02-18T10:17:320.3610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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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Virus 2008.02.18 2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랙백 타고 넘어 왔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상실의 시대로 유명하긴 하지만, 이 사람 스타일은 원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쪽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랑 취향이 비슷하신 거 같은데, 반갑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P.S: Empty Life는 제 블로그 이름이지 사람 이름이 아닙니다. ^_^;;

    • 로처 2008.02.18 23: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앗! 벌써 오셨네요. 감사합니다.
      바이러스 님의 블로그로 소개를 하는게 더 좋을까요?
      의견 주시면 바로 수정해 드릴께요.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


꽤나 유명한 책이지만, 이제서야 읽어 보았습니다.
오래 전에 이 책을 추천해준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물었습니다.

"상실의 시대, 네가 전에 추천해준 책 말이야."
"지금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읽을만 하겠니?"

책을 다 읽고 난 후 저의 답은 '글쎄' 입니다.
무척 재미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죽어서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에는 원칙적으로 손을 대지 않는다는 책 속의 '나가사와'의 말처럼 이 책은 '시간의 세례'를 받을 지 않을 지 궁금합니다.

저의 감상은 <어른을 위한 성장소설> 이라고 말씀드릴께요.

아래에는 위에 말한 감상을 기억하기 위한 구절의 인용과 저의 단상을 기록합니다.

1. 추억이란?

<젊은 Googler 의 편지>를 지은 김태원 씨가 소개한 '중독'의 정의는 '이번이 마지막' 입니다. 재미가 있어서, 친구들과의 티타임 시간에 '낱말정의' 놀이를 잠깐 해 봤습니다. 진행자인 저의 솜씨가 좋지 않아, 듣고 싶어하던 '추억'의 정의는 하지 못했죠. 여러분은 추억을 어떻게 정의하시겠어요?

<책 속에서>
18년이 지나버린 지금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는데 점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초원은 생생한 느낌으로 기억하고, 그녀가 얘기한 우물도 여전한데........
 

2. 대학진학, 더 넓은 세상? 삶의 재부팅?
그런 방을 보고 있으면, 그녀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대학에 입학해 고향을 떠나 알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학교를 택한 건, 우리 고등학교에서 아무도 이 학교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야." 하고 나오코는 웃으면서 말했다.


3. 친구, 사귐, 대화

아마 내 마음 속에는 딱딱한 껍데기 같은 게 있어서, 그걸 뚫고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제한되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제대로 사랑할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내 팔이 아니라, '그 누군가'의 팔인 것이다.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나의 따스함이 아니라 '그 누군가'의 따스함인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이라는 데서 나는 어쩐지 꺼림칙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죽은 친구의 연인, 나를 알아줄 것 같은 사람, 오래 걸으며 대화할 수 있는 사람임에도 그런 나오코를 남으로 거리 두는 와타나베. 그 거리는 나오코가 만드는 것일까? 와타나베가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죽은 기즈키가 만드는 걸까?


4. 정상과 비정상 그리고 이방인 


"그런데 왜 넌 그런 사람들만 좋아하는거야?" 하고 나오코가 말했다. "우린 모두 어딘가 휘어지고, 비뚤어지고, 헤엄을 못 쳐서 자꾸만 물 속에 빠져 들어가기만 하는 인간들이야. 나도 기즈키도 레이코 언니도, 모두 그래 어째서 좀 더 정상적인 사람들을 좋아하지 못하는 거야?"


정상과 비정상은 무엇을 기준으로 나누는 것일까요?
정상인이 되려고, 평균인이 되기를 바라며 주위를 끊임없이 살피고, 맞춰가며, 동시에 특별한 사람이 되고, 다른 대우를 받기를 바라며, 또 주위를 살핀다. 이 과정에서 실패하면 레이코나 나오코, 기즈키 처럼 물 속에 빠져드는 걸까? 어쩌면 나(와타나베)는 이들과 소통함으로 물 속에 빠지지 않으려는 건 아닌지?


5. 소통-둘이 좋은 경우와 셋이 좋은 경우

"성장의 고통 같은 과정을 치러야 할 때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바람에 그 고지서가 이제야 돌아온 거야. 그래서 기즈키는 그렇게 되었고, 나는 이렇게 여기 있는 거야. 우린 무인도에서 자란 헐벗은 아이 같은 존재였어. 배가 고프면 바나나를 따먹고, 외로워지면 서로 품에 안겨 잠들었던 거야. 하지만 그런 게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겠어? 우린 자꾸만 자라나고, 사회로 진출도 해야 하고, 그러니까 너는 우리에게 중요한 존재였던 거야. 넌 우리 둘을 바깥 세상과 이어주는 고리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어. 결국엔 잘 안 되었지만."

"그런 식사라면 하쓰미씨와 둘이서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네가 가주는 게 편해, 내게도 하쓰미에게도" 하고 나가사와 선배가 말했다. 세상에, 이건 기즈키, 나오코의 경우와 똑같지 않은가.


6. 마무리

<스틱>에서 지은이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왜 우리와 친구는 그렇지 못한데, 친구의 친구의 삶은 그렇게 드라마틱한 것인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삶이 4차원이라 이런 소설을 써냈다고는 생각 못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많은 부분을 공감하면서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이쯤 되면 제가 '이상한 나라의 폴'이 되는 건가요?
http://lawcher.tistory.com2008-02-05T14:11:180.3610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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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플로셔 2008.02.27 09: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처님의 글은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저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좋아했고, 또 조금 읽어본 편이라서요.
    하루키의 소설이 이처럼 인기가 있는 이유는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과장된 측면도 없잖아 있다고 생각하구요.
    하지만 소설이 출판된지 20년이 지난 후에 읽은 저도 많은 공감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는데요. 이데올로기가 붕괴되고 물질적 기능적 실용적 세태에 사는 현대인들이 느끼는 공허감이랄까요. 이런 면을 파고드는 그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나 싶습니다.
    관계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잃어나는 허무의 감정을 앉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어필하지 않았나 싶어요.
    상실의 시대는 소통이 결여된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 소통을 가능케 해주는 소설이란 생각이 드네요.
    좋은 포스팅 잘 읽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시구요.
    종종 놀러올게요.^^

    • 로처 2008.02.27 19: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로 제 부족한 글을 채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쓰신 것 자체가 포스팅이 될 정도라 그저 좋습니다.
      칭찬받은 김에 제 글을 다시 읽어보니 그저 창피할 뿐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