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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밑줄긋기
    문학, 소설, 등 2008. 2. 2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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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쓰기-하트필드

    "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책 속의 하트필드



    이제 나는 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물론 문제는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았으며, 얘기를 끝낸 시점에서도 어쩌면 사태는 똑같다고 말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결국 글을 쓴다는 건 자기 요양의 수단이 아니라 자기 요양에 대한 사소한 시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직하게 자신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정직해지려고 하면 할수록 정확한 언어는 어둠 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버린다.

    -하루키


    "
    글을 쓰는 작업은, 단적으로 말해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물과의 거리를 확인하는 일이다. 필요한 건 감성이 아니라, '잣대'" <기분이 좋아서 무엇이 나쁜가?>
    -         책 속의 하트필드


    2.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밑줄 긋기

     

    "이따금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곤 해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전에 인간의 존재 이유를 테마로 한 짧은 소설을 쓰려고 했던 적이 있다.

    결국 소설은 완성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 동안 줄곧 인간의 '레종 데르트'에 대해서 생각했고 덕분에 기묘한 버릇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모든 사물을 수치로 바꿔 놓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버릇이었다.

    약 여덟 달 동안 나는 그런 충동에 시달렸다. 나는 전철에 타자마자 승객 수를 헤아렸고, 계단 수를 전부 헤아렸고, 시간만 나면 맥박 수를 쟀다.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1969년 8월 15부터 이듬해 4 3일 사이에 나는 강의에 358번 출석했고, 섹스를 54번 했고, 담배를 6,921개비 피운 것으로 되어 있다.

    그때 나는 그런 식으로 모든 걸 수치로 바꿔 놓음으로써 타인에게 뭔가를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타인에게 전할 뭔가가 있는 한, 나는 확실히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연한 일이지만, 내가 피운 담배의 개비수나 올라간 계단의 수나 나의 페니스 사이즈에 대해서 누구 한 사람 흥미 같은 걸 갖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상실하고 외톨이가 되었다.



    "
    어째서 안 하는 걸까?"
    "말하기가 어려워서 그렇겠지. 바보 취급당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말일세."
    "바보 취급은 안 한다구."
    "그렇게 보이는 거라구. 전부터 그런 느낌이 들었어. 자네는 다정하지만 뭐랄까, 모든 걸 달관한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겨...... 그다지
    나쁜 뜻으로 말하는 건 아닐세."
    "알아."
    "다만 나는 자네보다 20년이나 연상이고 그만큼 여러 가지 일을 많이 겪었지. 그러니까 이건 뭐라고 할까......."
    "노파심."
    "그래."
    나는 웃고 나서 맥주를 마셨다.
    "쥐한테는 내가 먼저 말을 꺼내 보지."



    3. 1973
    년 핀볼 밑줄 긋기


     "
    이름은?"

    나는 두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숙취 탓으로 머리는 깨질 것만 같았다.


    "
    밝힐 수 있을 만한 이름이 아니에요."

    오른쪽에 앉은 여자 아이가 말했다.


    "
    정말로 대단한 이름이 아니라구요, 알겠죠?"

    왼쪽이 말했다.


    "
    알았어."

    내가 대꾸했다.

    우리는 식탁에 마주앉아서 토스트를 먹고 커피를 마셨다. 정말 맛있는 커피였다.


    "
    이름이 없으면 곤란해요?"

    한 아이가 물었다.


    "
    글쎄?"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생각을 했다.


    "
    만약에 꼭 이름이 필요하다면 적당히 붙여 주면 되잖아요."

    또 다른 아이가 제안했다.


    "
    당신 마음대로 부르면 된다구요."

    쌍둥이는 언제나 번갈아 가며 얘기했다. 마치 FM 방송에서 스테레오를 점검하듯이. 그 때문에 머리가 한층 더 아팠다.


    "
    예를 들면?"

    내가 물어 보았다.


    "
    오른쪽과 왼쪽."

    한 명이 말했다.


    "
    세로와 가로."

    또 다른 한 명이 말했다.


    "
    위와 아래."

    "겉과 속."

    "동쪽과 서쪽."


    나는 지지 않으려고 가까스로 이렇게 덧붙였다.

    "입구와 출구."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고 만족스러운 듯이 웃었다.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다.

    대부분은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다.

    우체통, 전기 청소기, 동물원, 소스 통. 물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쥐덫.



     
    나는 우물을 좋아한다. 우물을 볼 때마다 돌멩이를 던져 넣어 본다.

    싶은 우물의 수면을 때리는 돌멩이의 소리만큼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건 없다.



    핀볼 기계와 히틀러의 발걸음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그들 둘은 어떤 종류의 저속함과 함께 시대의 거품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났고, 그리고 그 존재 자체보다는 진화의 속도에 의해서 신화적 후광을 얻었다고 하는 점에서 말이다. 진화는 물론 세 개의 바퀴 즉 테크놀러지와 자본 투자, 그리고 사람들의 근원적 욕망에 의해서 지탱되었다.



    핀볼 연구서인 <<보너스 라이트>> 서문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다.

    당신이 핀볼 기계에서 얻는 건 거의 아무것도 없다.

    수치로 대치된 자존심 뿐이다. 잃는 건 정말 많다. 역대 대통령의 동상을 전부 세울 수 있을 만큼의 동전과 되찾을 길 없는 귀중한 시간이다.


    당신이 핀볼 기계 앞에서 계속 고독한 소모전을 벌이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은 프루스트를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어떤 사람은 드라이브 인 극장에서 여자 친구와 <용기 있는 추적>을 보면서 진한 애무에 열중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시대를 통찰하는 작가가 되고 혹은 행복한 부부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핀볼 기계는 당신을 아무데도 데려가 주지 않는다.

    리플레이 램프를 켤 뿐이다. 리플레이, 리플레이, 리플레이......,
    마치 핀볼 게임 그 자체가 어떤 영겁성을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영겁성에 대해서 우리는 많은 걸 모른다. 그러나 그 그림자를 추측할 수 있다.
    핀볼의 목적은 자기표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변혁에 있다.
    에고의 확대가 아니라 축소에 있다. 분석이 아니라 포괄에 있다.
    만일 당신이 자기 표현이나 에고의 확대, 분석을 지향한다면 당신은 반칙 램프에 의해서 가차없는 보복을 받게 될 것이다.

    좋은 게임을 하길 빈다.



    "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어떻게 하다니요.......다만 귀를 청소할 때 주의만 하면 되는 거예요. 주의요."

    "귓구멍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심하게 구부러져 있어서 뭔가 달리 영향을 받지는 않습니까?"

    "영향을 받다니요?"

    "가령 ...... 정신적으로."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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