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이 뭔가요? 그저 넘쳐나는 글과 책들을 분류하고 찾아보기 쉽게 분류해 놓은 틀에 불과한 거죠?
저는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도 재미있게 보았고, 박완서 작가나 신경숙 작가의 소설도 좋아합니다. 이우혁 작가의 '퇴마록' 같은 판타지도 좋아하고, 이인화 작가의 '영원한 제국',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같은 역사소설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책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는 제가 근래에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너무도 재미있게 읽은 터라 '난 아동인가 보다!'하는 생각과 '나도 천상병 시인과 같은 시심을 가질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웃어 버렸습니다.
권정생 선생의 동화를 읽고 품었던 생각을 이 책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글은 '아동문학', '동화', '성장소설' 이라고 말이죠.
책 내용을 보자면, 제 눈을 끈 두 인물은 엄마와 할머니 입니다.
엄마는 상냥하지만, 반대로 들리는 말을 하고, 몸을 편하게 해주지만, 마음은 편치 않게 합니다. 할머니는 투덕투덕 대고, 맘 긁는 소리도 쉽게 하지만, 그 덕에 '나(하늘)'역시 좋다. 싫다를 편하게 말합니다.
결국, 내 마음이 편한 대화 상대는 할머니 입니다.
좋고, 싫은 것을 마음에 담아만 두면, 나도 불편하고 상대도 불편하겠죠. 어른이 되면, 지위도 많아지고, 관계도 복잡해 집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라고 말하지 못하고, 돌려 말하게 되고, 그게 원만한 인간관계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듯, 좋은 인간관계의 기본은 '솔직함'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경청도 중요하겠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내감정에 대한 진솔한 얘기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래에는 제가 개인적으로 기억하고 싶은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읽기 전의 독자시라면 주의하세요.
나는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돼서 우리 집에 왔다고 한다. 그러니 친부모와 헤어지던 때를 기억할 수 없다. 그럼에도 문득 문득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통과하는 순간이 있다. 버려진 강아지를 볼 때, 혼자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볼 때, 덩그라니 떨어진 낙엽을 볼 때도 그렇다. 아마 내 어딘가에 헤어짐의 슬픈 기억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한강이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슬퍼해야 할지 모르는 슬픔, 생각할수록 화나고 서운한 슬픔.
"하늘이 저녁 안 먹었니? 배고파?" 언젠가부터 엄마 말이 가끔 거꾸로 들린다. 지금도 "하늘이 저녁 먹었지? 배 안 고프지?"로 들렸다.
나는 거실에 있는 서랍에서 약상자를 꺼내 방으로 돌아왔다. 피부질환 치료제. 효능-효과 첨부 문서 참조. 그런데 첨부문서가 없다. 그러니 이 연고는 바를 수 없다. 나는 다른 연고를 들었다. 효능 및 효과, 알레르기성. 염증성 피부질환, 급.만성 습진, 접촉피부염, 건선, 가려움증(항문.음부), 일광피부염, 원형탈모증, 벌레 물린 데, 2차 세균감염 피부질환, 피부사상균증(백선.무좀 등). 주의-부작용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부작용뿐이다. 다른 연고들도 다 마찬가지다. 알 수 없는 증세만 잔뜩 씌어있지 생선 지느러미에 찔린 데 바르는 연고는 없었다.
"데리다가 멕여 주고, 입혀 주면, 당연지사 니가 혀야제, 나가 치우냐?" "할머니!" "아이구, 가시나야. 귀떨어지겄다." "그런 말씀을 꼭 하셔야 해요?" "워떤 말? 데리다가 멕여 주고 입혀 준다는 말? 그 말 듣기 싫으문 나가라." "진짜 나가요? 엄마가 되게 화내실 텐데요." "가시나야, 니는 농이랑 참말도 구별 못 허냐?" "할머니한테 농담이 저한테까지 농담은 아니잖아요." "하이고 요것이 넘들 있을 띠만 착헌 척하고, 나랑 있으면 요로코롬 따박따박 따져드는 건 아무도 모를 것이여." 할머니는 고개를 흔들었다.
할머니와 있을 때는 내 속에 있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싫은 건 싫고 좋은 건 좋다고. 늘 웃으며 상냥하게 말하는 엄마보다 투덕투덕 말하는 할머니가 더 편한 것도 사실이다. 엄마와 있으면 몸이 편하고 할머니와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식탁 위에서 살짝살짝 흔들리고 있는 할머니의 불편한 왼손마저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요즘 우리 애 변이 너무 좋아졌어요. 집에서 만들어 먹는 요구르트 있죠, 그게 효과를 보나 봐요." 그러자 모두들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나는 사람들의 저런 모습이 싫다.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걸로 대단한 듯이 감탄한다. 누군가 "우리 아기는 서랍을 잡고 일어선답니다."하면 역시 또 그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다벡 이야기하는 보기 좋은 모습인데 나는 목이 메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다. 사람들 눈이 카메라 같다. 식물 관찰일기를 쓰면서 하루 하루 달라지는 모습을 촬영하는 그런 카메라 말이다. 사람들은 줄기는 잘 자랐는지, 이파리 색은 좋은지, 휘거나 상한 데는 없는지 관찰하는 시선으로 나를 본다. 나는 오늘 저 사람들 관찰일기에 어떤 모습으로 기록될까.
"니는 학원서 오자마자 방문 꼭 틀어잠그고 뭐 혔냐?" "뭘 좀 만들었어요." "뭐?" "종이 집이요." "집을 만들었어야?" 허이고, 니나 나나, 이 집이 불편허기는 매한가진가 보다. 멀쩡허게 큰 집 놔두고 쪼깐한 집 만드는 거 보니께."
"전 엄마가 힘들어요. 집을 나가고 싶을 정도로...." 처음으로 엄마의 눈을 피하지 않고 속에 잇는 말을 했다. 그런데 속이 시원하지 않다. 하고 싶은 말을 했는데 더 속이 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