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천재 이제석 - 이제석

[ 나는 내 나라에서는 새는 바가지였다. 대학을 수석 졸업했는데도 오라는 회사는 한 군데도 없었다. 광고쟁이가 광고만 잘하면 되지 왜 토익 성적이 필요하고, 왜 명문대 간판이 필요한 걸까? 창의력을 이런 잣대로 잴 수 있는가? ...<중략> 하지만 나는 내 나라 밖에서는 새는 바가지가 아니었다. (프롤로그 중에서) ]


책의 앞날개에 써 있는 '루저' 발언과 마찬가지로 프롤로그에 있는 '난 새는 바가지였다.'는 고백에는 지금의 성공과 뚜렷한 소신에서 오는 당당함이 묻어 있습니다.

제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저는 이런 반골(?)들이 좋습니다.
어려서부터 주목 받아온 엘리트 보다 잡풀처럼 억세게 자란 인물들에게 호감이 갑니다. 예를 들면 대학진학이나 프로입단이 어려웠던 시절을 극복하고 우뚝 선 박지성 선수와 같은 인물이 제게는 영웅입니다.

이 책은 당당한 '나는 잡풀이로소이다.'는 고백과 함께 저만의 소영웅들이 겪는 고난과 시련의 극복으로 시작합니다. 계명대를 수석졸업 하고도 취업을 하지 못해 동네 간판쟁이로 살다가 어떤 계기로 유학을 결심하게 됐는지 뉴욕행 편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곳에서는 어떻게 지냈는지, 등 말이죠.
그리고 각종 수상경력과 광고회사에서의 경력, 등의 성공스토리로 이어집니다.

마무리는요?
아이디어는 빈약한 채 물량을 통한 반복 세뇌만 성행하는 광고, 돈지랄로 느껴지는 광고에 반성적 회의를 하기 시작해서 공익광고로 눈을 돌린다거나, 광고주로부터 지시를 받지 않고 먼저 제작한 광고를 파는 방식의 광고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잡풀영웅의 책인데다가, 기발한 광고 사진까지 곁들여져 있어서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저에게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은 아래의 내용입니다.

[ 6개월이 되자 5명만 살아남았다. 그 과정에서 빡세게 트레이닝 되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트레이닝이기도 했다. 이렇게 살아남은 후배들은 국제광고 공모전에서 1등도 하고 뉴욕, 런던, 도쿄의 광고회사에서 자리도 잡았다. 내가 졸업한 이후에도 학과의 상위 5퍼센트를 차지한 것도 이들이었다.

이들은 이제석 광고연구소와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언제든 서로 뜻만 맞으면 힘을 합쳐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동료가 되었다.
 p. 206 동아리 모집 ]


저 정도 실력과 유명세로도 맘과 뜻을 모아서 함께 하고 싶은 일을 할 사람을 얻는 것이 저 정도로 힘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저 역시 준비하고 노력해야겠습니다. 우선 나중에라도 함께 할 사람들과 모으게 될 뜻을 세우는 것이 먼저 일지도 모르지만요.

Posted by 로처

맞춤법, 띄어쓰기, 등 너무나 관심 없이 살아왔나 봅니다.
블로그를 해보니, 제 국어 실력의 한계를 알게 됩니다.
특히, 맞춤법이나 외래어 표기도 어렵지만, 띄어쓰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아주 우연히,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날 정도로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만,
이 책 아주 잘 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다시 맘먹은 국어공부가 작심삼일이 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이 책에 관한 좋은 서평은 링크로 대신합니다.

도서출판 그린비 블로그 - '편집 매뉴얼을 만드는 이유' 들어보세요

DElIUS 님 블로그 - 깔끔한 소개글과 '국판' 에 대한 추가설명이 좋습니다.

Starla 님의 블로그 - 쓸모가 어찌 3,500원어치뿐이겠는가

저는 이 책 앞부분의 감사의 말을 인용함으로 저도 좋은 책을 내 주신 것에 감사드림으로 글을 마치려 합니다.


<감사의 말>

이 책이 태어나기까지, 그동안 열린책들에서 함께 일하며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강유진, 고영래, 고예진, 권순나, 권향미, 길혜숙, 김갑식,
김난주, 김도헌, 김민정, 김석중, 김소원, 김수연, 김영준, 김영희,
김은미, 김주성, 김준영, 김호주, 노영근, 노희호, 문정자, 박경숙,
박문혁, 박민정, 박소영, 박수진, 박윤규, 박현정, 배연경, 배현숙,
서향남, 석윤이, 신기영, 신재익, 안성열, 엄혜연, 우선영, 원준형,
유병수, 윤희기, 이갑수, 이경아, 이소영, 이승욱, 이양선, 이영아,
이영일, 이주애, 이주현, 임선영, 임영록, 장대익, 정수경, 정승원,
정은미, 조영아, 조중언, 주영화, 주지현, 채영진, 최미영, 최순영,
최영진, 최지영, 최화명, 한장수, 한상출, 한정덕, 홍승범, 홍영완,
홍예빈, 홍지웅, 홍현영.....

Posted by 로처



(열정속으로) 하버드 로스쿨 - 스콧 터로


오래 전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을 기억하세요?
아니면 비교적 최근의 <논스톱>은 보신 적이 있으시죠?

대학생활에 대한 호기심과 막연한 동경만 갖고 있던 중. 고교 시절에 이들 시트콤에서 보는 대학생활은 가슴 벌렁거리게 하기에 충분히 낭만적이고, 재미있어 보였습니다.

물론 시트콤이기에, 대학의 일부분을 그것도 약간은 과장되게 그린 것임을 곧 알게 됩니다.

시트콤 얘기로 시작한 이유는, 이 책은 개인의 경험담일 뿐, 로스쿨의 모든 것을 아려주는 책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려 함입니다.

이 책, <하버드 로스쿨>은 작가인 스콧 터로의 자전적 수필이라 볼 수 있습니다.
경험담이기에 그가 느낀 갈등과, 괴로움, 진로고민, 동료와의 마찰, 등이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경험의 진술일 뿐인 한계가 있고요.
스테디 셀러라는 점이, 그의 경험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면, 위에 말한 한계는 거의 없는 셈도 되는 것입니다.

정말 열심히, 잠도 못자가면서 공부했노라는 그의 이야기가 저에게 별 감동은 주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도서관, 연구실, 강의실, 노량진, 신림동에 가도 잠못자고, 위장병 앓아가면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많으니까 말이죠.

다만, 그곳이 하버드이든, 신림동이든
동료와 경쟁자의 미묘한 줄타기와, 협력과 경쟁사이의 갈등, 그리고 성적에 연연해 하면서
스스로의 모멸감에서 허우적대는 모습들에는 많이 공감이 갔습니다.
비록, 오래 전, 먼 곳의, 서양사람 이야기임에도 말이죠.

아래에는 인상깊었던 부분들을 발췌해 보았습니다. (# 제목 이하가 발췌부분입니다)

# 1 로스쿨 입학 결심 ( p. 20)


 

# 2 법학은 제 2 외국어 (p. 67)




 

# 3 배움의 만족 (p. 69)



 

# 4 스터디 그룹 (p. 81)



 

# 5 법은 도덕적인가? (p. 108)


 

# 6 법은 도덕적인가?2 (p. 122)



 

# 7 자신감의 상실 (p. 161)


 

# 8 자신감의 상실2 (p. 208)



 

# 9 교수에 대한 반감 (p. 344)


 

# 10 시험에 대한 공포 (p. 353)


Posted by 로처

아주 오래된 친구가 목회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신학대학원 진학을 했다고 하네요.
 
그 동안 적성에 맞지 않았을 공부를 한다고 고생이 많았을 것입니다.
늦었다면 늦은 나이에, 기도 끝에 어려운 결정을 내렸을 것입니다.
가슴이 터지도록 축하하고 기도해줘야 마땅한데, 맘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일전에 그 친구와 대화하다가 교회의 못마땅한 부분을 제가 성토한 적이 있거든요.
그 친구가 당사자라도 되는 양,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오래 기도하고 응답받아 그 길을 가려는 친구를 보며,
기도 한 번 해주지 못하고, 가시 돋힌 말만 뱉어냈던 것이 미안합니다.

책을 읽는 중에, 그 친구 생각이 계속 납니다.
형편없는 저이지만, 그 친구 기도 좀 해야겠습니다.
그 친구를 위해서, 그리고 저를 위해서 말입니다.

아래에는 이 책에서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인용해 보려 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1장(표준새번역)을 옮겨 적어 봅니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없음은, 평가를 유보하려 함입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책을 이러쿵 저러쿵 하고 싶지 않아서 입니다.
좋은 이야기와, 감동적인 간증을 보자면 좋습니다.
그러나 제 신앙수준에서는,

기복신앙과 믿음을 구별하기 어렵고,
순종과 맹목을 구별하기 힘듭니다.

선교사님이 쓰신 글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어려운 곳에서 하나님의 사업을 하는 선교사님은 존경합니다.

 어느 날 예배 중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 11:8)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되었다.

말씀 중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라는 구절이 마음에 확 들어왔다. 하나님께서 내가 그 분을 신뢰함으로 결단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아브라함과 같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믿음이라는
답을 받았다.

"그렇다. 믿음은 내가 익히 아는 익숙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인도하심을 따라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그런 길을 선택해 나아가는 것이다."    < P. 34 >


많은 분들이 개발되지 않은 몽골에서 생활하기가 불편할 것에 대해서도 걱정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은 복 많은 곳으로 간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복 많은 곳으로 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 12:2)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하자면 복의 통로가 되라는 것이다.
그래서 복이 없는 땅으로 가서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복을 나누라는 것이다.      < P. 47 >


아래에는 히브리서 11장을 옮겨 적어 봅니다. (표준새번역)

*히브리서 11장 (표준새번역)

Posted by 로처

정치교회(김지방) & 미션(The Mission)

 

 이 책을 읽고,

무슨 글을 써야 좋을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교회가 비판을 받을 만한 일이 있으면, 일부이거나 소수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책임을 피하려는 말일 뿐입니다.


교회의 머리 되는 소수가 잘못을 하고,
다수가 침묵한다면, 이는 소수일 수가 없습니다.

한기총의 행보를 보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각자의 정치성향에 따라 옥석을 가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어느 교회가 언제 침묵하고, 언제 정치적 발언을 하는지.
어느 목사가 언제 침묵하고, 언제 세상 짐을 지려고 하는지 알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 신도들도 신의 말씀을 듣는 것과, 정치토론의 자유를 가지는 것이 상반된 것이 아니라는 분위기가 확산되었으면 합니다.

읽었음에도 제가 아는 바가 적어서,
잘 정리하셨다고 생각하는 바람구두님의 블로그를 링크함으로 책 이야기는 마무리 합니다.


바람구두 님의 리뷰


 

대신, 많은 분이 보셨을 영화 미션(The Mission)을 소개할게요.

 

영화는 두 신부가 등장합니다.

 과라니 부족의 마음을 음악으로 열어 선교를 시작한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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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과라니 부족 사람을 대상으로 한 노예사냥꾼 로드리고 멘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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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로드리고 멘도자는 연인과 동생의 삼각관계로 사랑하는 동생을 죽이고, 죽지 못해 살다가 과라니 부족민들에게 용서받고, 과라니 부족을 돕는 삶을 사는 신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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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참 행복한데,
아시다시피 영화는 여기서부터 후반전 시작입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이권다툼의 희생으로 과라니 부족이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 때 가브리엘 신부와 로드리고의 대응방법이 갈리게 되죠.

 

가브리엘 신부는 비폭력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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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는 폭력투쟁을 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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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차이는 보시듯, 투쟁방법의 폭력성 유무 입니다.

둘의 공통점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부족민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들과 함께 했다는 점입니다.

둘 다 목숨을 다해 함께 합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말콤엑스랑 유사하다고 볼 수 있나요?

 

제 글이 좋은 영화 망치는구나 하는 자괴가 들기도 합니다^^;

결론도, 논점도 없는 우왕좌왕하는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점점 나아지길 기도해 주세요. ^___^

Posted by 로처

1. 조조를 위한 변명

어릴 때 보던 삼국지는 선과 악이 분명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조조는 힘이 센 적이고, 유비는 힘이 약하지만 정의로운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만화책, 애니메이션, 아동문고 모두 이런 구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런 구도가 이문열 삼국지를 읽으면서 삐걱대기 시작합니다.

벌써 10여년 전에 읽은 책이라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이문열 작가도 조조를 높게 평하면서 그를 위한 글을 자주 이야기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1권의 절반이 조조를 위한 지면이니 말이죠.

진수의 삼국지나 배송지 주서, 자치통감을 근거로 하면서 미움 받는 조조를 위한 변명을 해줍니다.


2. 그래도
조조보다 유비가 좋은 이유

이중톈이 간웅 조조의 지원사격을 합니다.

그래도 저는 조조 보다 유비가 좋습니다.

그 이유는 유년시절의 추억과 고정관념에도 있겠지만,

다음의 말이 제일 중요하게 작용한 듯 합니다.

조조가 여백사 일가족을 죽이고서 한 말 기억나시죠?

차라리 내가 천하 사람들을 배신할 망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배신하게 하지는 않겠다.

 
그 다음은,

유비가 신야성에서 백성들을 데리고 도망가면서 남긴 말이라죠


대체로 큰일을 성취하려면 반드시 이인위본(以人爲本) 해야 한다. 지금 사람들이 나에게 의지하는데, 내가 어떻게 그들을 버리겠는가!



삼국지에는 많은 영웅들이 등장하기에, 사람마다, 좋아하는 인물이나, 좋아하는 이유가  다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위에 적은 것은 저의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고, 책의 일부분을 인용한 것으로 전체를 호도할 수도 있음을 말씀 드립니다.


3.
삼국지가 부럽습니다.

삼국지, 수호전, 등 중국 고전을 읽으면 내심 중국의 고전들이 부럽습니다.

중국이 무서운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그들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 그리고 문화가 부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합니다.

우리도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우아하고, 힘이 넘치는 문화를 영위했을 것인데도,
지금의 삼국지처럼 동북아시아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 받는 것이 딱히 떠오르지 않아 서럽습니다.

많은 전란과 외침으로 인해, 소실되고, 단절된 문화재와 문화들이 있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힘차게 다시 쓸 수 있는 마음 속 무언가가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드라마 한류열풍 처럼 말이죠.

오주석
선생님의 책
한국의 미 특강을 다시 한 번 봐야겠습니다.

그 분에게 멋진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힘이 제법 날 듯 합니다.


4. 서핑하다가 새기고 싶은 글을 만났습니다.

'삼국지강의' 를 읽으신 다른 분들의 글을 읽기 위해 서핑을 하다가
삼국지 강의와는 무관하게 선무당에 관한 글에서 눈이 떨어지질 않아서,
가슴에 새겨 두고자 옮겨적어 봅니다.

출처는 아래에 링크 합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지식인은 혜안과 감동을 주지만 선무당은 사람을 죽입니다.
경험적으로 보니, 선무당에게 결정적으로 모자라는 것은 지식의 한계가 아니라 그 지식과 경험의 한계를 알지 못하는 자기 성찰의 부족과 그에 따른 겸양의 부족입니다

.

 

Posted by 로처

집으로 가는 길-이스마엘 베아

그 어떤 슬래셔 무비나 전쟁영화 보다 더 참혹합니다.
'참혹하다'는 표현이 진부해 보여 쓰지 않으려 했지만, '참혹함', '참담함' 외에 다른 감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 어떤 슬래셔 무비나 전쟁영화 보다 참혹해서, 눈을 제대로 뜨고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종이위에 쓰여진 글자일 뿐인데, 자세히 보기가 힘겨워 빨리 읽고 지나가 버렸습니다.
마치 어릴 적 '전설의 고향'을 볼때, 밤 장면만 나오면 눈 감았던 것처럼 말이죠.

아래에는 짧게 떠오르는 단상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1. 네 잘못이 아니야

예수께서 가시다가, 나면서부터 눈 먼 사람을 보셨다.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그에게서 드러나게 하시려는 것이다. 우리는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이 곧 온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복음 9장 1~5절-표준새번역>

요즘 교회를 다니지 않은지 수 년이 더 되었는데도.
이스마엘 베아의 글을 읽으면서 이 성경구절이 떠오르더라구요. 저는 이스마엘을 도왔던 간호사 에스더 처럼 사랑으로 "네 잘못이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 점은 네가 잘못했네." , "네가 잘못한 부분도 있을 수 있겠지." 라고 말했을 것 같습니다.

사랑도 마음도 노력으로 키워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에스더를 맘에 담아 두어야겠습니다.

 
2. 권정생 선생님은 뭐라 하실까?

전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이지만, 제 혈관에도 역시 가슴 아픈 내전의 기억이 흐르나 봅니다. 이스마엘 베아의 얘기에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님 생각에 슬퍼지니 말이죠.

제가 권정생 선생을 좋아 하는데, 베아를 보면서 '몽실언니'에 나오는 소년병이 생각나더라구요. 소설 속 인물이지만, 살아있다면 우리의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가 됐을 소년병

권정생 선생이 이 책을 읽으셨다면,
'어떤 글을 쓰실까?'
'어떤 행동을 하실까?' 무척이나 궁금해 지고, 생각이 납니다.


3. 이스마엘 베아가 기억하는 아버지 말씀 (인용)
 
한 치 앞을 내다볼수 없는 상황 꿈이나 목표는 고사하고, 5분 앞의 생존도 알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갈 힘이 되어 주는 것중 하나는 '추억'인가 봅니다.
아래에는 이스마엘 베아가 기억하는 아버지 말씀을 인용해 봅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시곤 했다.
"살아 있는 한, 더 나은 날이 오고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희망이 있단다. 더 이상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희망을 잃게 되면, 그 때 죽는 거야." 나는 여행 내내 아버지의 말을 생각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조차도 그 말을 생각하며 힘을 얻어 계속 나아갔다. 그 말은 내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http://lawcher.tistory.com2008-01-11T14:13:100.3610
Posted by 로처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김려령,노석미

 "아동문학"이 뭔가요?
그저 넘쳐나는 글과 책들을 분류하고 찾아보기 쉽게 분류해 놓은 틀에 불과한 거죠?

저는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도 재미있게 보았고, 박완서 작가나 신경숙 작가의 소설도 좋아합니다. 이우혁 작가의 '퇴마록' 같은 판타지도 좋아하고, 이인화 작가의 '영원한 제국',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같은 역사소설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책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는 제가 근래에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너무도 재미있게 읽은 터라 '난 아동인가 보다!'하는 생각과
'나도 천상병 시인과 같은 시심을 가질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웃어 버렸습니다.

권정생 선생의 동화를 읽고 품었던 생각을 이 책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글은 '아동문학', '동화', '성장소설' 이라고 말이죠.

책 내용을 보자면, 제 눈을 끈 두 인물은 엄마와 할머니 입니다.

엄마는 상냥하지만, 반대로 들리는 말을 하고, 몸을 편하게 해주지만, 마음은 편치 않게 합니다. 할머니는 투덕투덕 대고, 맘 긁는 소리도 쉽게 하지만, 그 덕에 '나(하늘)'역시 좋다. 싫다를 편하게 말합니다.

결국, 내 마음이 편한 대화 상대는 할머니 입니다.

좋고, 싫은 것을 마음에 담아만 두면, 나도 불편하고 상대도 불편하겠죠.
어른이 되면, 지위도 많아지고, 관계도 복잡해 집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라고 말하지 못하고, 돌려 말하게 되고, 그게 원만한 인간관계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듯, 좋은 인간관계의 기본은 '솔직함'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경청도 중요하겠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내감정에 대한 진솔한 얘기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책 밑줄긋기


http://lawcher.tistory.com2007-12-22T06:27:020.3610
Posted by 로처

재일교포 2.5세 노란구미의 한국.일본 이야기

만화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그런데 아직 '만화는 아이나 보는 것'이라는 불필요한 관념이 맘에 남아있나 봅니다. 이 만화는 그런 쓰잘데기 없는 관념을 치유해 가기에 좋았습니다.

다른 분의 부탁으로 보관 하다가 읽게 되었는데,
읽어보니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만화로 진한 여운을 남겨 주더군요.
생각할 거리도 많고요, 공감할 거리, 웃을 거리도 많습니다.

일본을 경험하신 분들은 '공감거리'를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일본을 알고 싶어하는 분들 에게는, '웃을거리'와 '생각거리'를 줍니다.

세상에는 인구 수 만큼의 정체성이 존재한다고 하는 말처럼,
사람을 개인으로 있는 그대로 바라 보려는 태도와 함께,
지역성, 민족성, 국민성으로 묶어서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죠

두 방법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두 방법 중 하나가 우월한 것도 아닐테죠,
서로 이해하고 알아가려고 노력하고,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이 방법일테죠?

노란구미님이 소통의 다리가 되어 주시네요.

더 많은 교류와 이해, 협력이 있었으면 하는 소망도 품어봅니다.
일본에 거주하시는 한민족 여러분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 같이 말이죠 실은, 저의 무관심과 무지가 부끄럽기도 합니다. '우토로'관련 기사도 다시 찾아 읽어봐야 겠습니다.

아래는 '노란구미' 님의 홈페이지 첫 화면과 링크를 둡니다.

'노란구미'님 홈페이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란 구미' 님의 홈페이지 첫 화면




http://lawcher.tistory.com2007-12-08T07:34:270.3810
Posted by 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