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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말하지 못해도, 자신만의 분명한 느낌과 생각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그 학교의 역사시간에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의 만행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학생이 묻습니다.


"왜 그들은 침묵했나요?"



 

 "독일 사람들은 전부 나치였나요?"
에이미가 물었다.

벤 로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독일사람 중에 나치 당원이었던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퍼센트도 안 돼."

<중략>

"당시 독일인들의 행동은 사실 역사의 수수께끼야.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모두 수수방관할 수 있었을까?
뿐만 아니라 그런 끔찍한 일에 대해 자기네는 몰랐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데, 우스운 일이지만, 그 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p.26~ 28)



왜 그들은 침묵했을까?
그 침묵의 이유를 알기 위해 학생들과 교사는 실험을 시작합니다.
체험학습의 목적이었던 그 실험은 희망의 선전, 공동체 강조, 구호, 상징, 친위대부터 지도자의 제복에 이르기까지 주도면밀하게 진행됩니다. '파도'란 이름의 단체에 소속감을 느끼며 황홀해한 학생들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스워 보이던 구호와 상징들은 이론을 벗어나 살아 움직이며 세력을 키웁니다.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면, 너도 당연히 좋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죠.
기계적 평등과 우리에 열광하면서 '나'를 찾을 수 없는 '우리'가 등장합니다.
'나'는 '우리' 속에 묻히고, '나'가 없는 '우리'의 모습에 소속감의 기쁨 보다는 배제될까 하는 두려움이 자리 잡습니다. 당연히 반대나 다름을 말하는 것조차 두려워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죠.
그들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요?
결말은 말씀드리지는 않을게요.

로버트 O. 팩스턴은 그의 책 <파시즘(The Anatomy of Fascism)>에서 '파시즘'은 정적으로 쉽게 정의 내리기 힘든 만큼 그 단어사용의 남용을 경계하며, 군부독재나 권위주의정권과도 구별해야 함을 말합니다.
그의 의견대로라면 <파도> 속 아이들의 행동에 '파시즘'이라는 단어를 들이대기는 어려울지도 몰라요. 그런데 실험 속 아이들의 행동이 어찌나 섬뜩한지 그 단어 외에 다른 무엇으로 설명하기도 어렵기도 합니다. 나치즘을 제대로 벤치마킹하기도 했고요.

생각해보면 <파도>에서 토드 스트래서는 일상속의 파시즘이나, 우리 안의 파시즘에 대해 말한다고 생각해요.
우열감과 경쟁의 불안을 벗고자 하는 자기연민이 스스로를 '우리'라는 이름으로 무장하게 하고, 그 '우리'에 결국 자신마저 먹히는 '파시즘'의 매혹적인 수렁에 대해 얘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곳도 관용이 넘치는 토론과 비판이 풍성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우리'로 '다수'로 무장시키지 않아도 자기성찰과 자기결정, 스스로의 목소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저부터 말이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는 속담을 가운데가 최고라며 복지부동의 자세로 웅크려야함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을 볼 때 씁쓸했습니다.
씁쓸함의 진짜 이유는 저 역시 나만의 목소리 없이 우리라는 무리 뒤에 웅크리고 앉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P. S 재미있는 부분이 있어요.
책 속에서 교사 '벤 로스'는 '자유와 책임' 보다는 '규율과 질서'를 중요시 하게 된 학교에 복잡한 감정을 느낍니다.
말 잘 듣게 된 아이들 덕분에 수업이 편해진 데서 오는 안도가 첫째 감정이고 자신을 거치지 않고 머리에서 바로 추출되는 도식화된 정답을 뱉어내는 아이들에 대한 불안이 둘째 입니다.

비틀어진 기억일지 모르지만 제가 다닌 학교에서는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말하는 것은 시끄러운 아이로 낙인찍히는 지름길이었고, 오직 정답만 있는 질문에 답을 말해야 착한 아이였죠. 자기성찰과 자기결정의 능력을 함양하기보다는 단답형 시험의 성과와 진도가 최고선이었던 학교였지 싶습니다.

구체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지나치게 주관적인 <P. S> 부분을 빼야 마땅한데, 지금의 제 생각을 기록하자는 의미에서 남겨놓습니다. 정말로 사족인지라 주객전도가 무지무지 걱정되네요.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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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디오스 2009.04.07 0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틀러의 달콤한 말에 속아 넘어가 동조하게 된게 아닐까 싶네요
    강대국에 대한 욕망을 잘 꺼내줬다고나할까?? ^^

    • 로처 2009.04.07 18: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면이 있겠죠?
      그래도 <파도> 이 책에 나와 있는 의문에 놀랐어요.

      왜 그들이 침묵했는가?
      어쩌면 적극적인 동참에 대한 의문보다 더 풀기 어려운 질문인지도 몰라요.

  2. 밤의추억(nightmemory) 2009.04.08 18: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쩜 그 해답은 좀 더 단순할지도... 단순히 무관심과 객관화의 산물이 아닐런지요.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기와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히틀러의 시기의 독일인들도 살인을 지지하지는 않았을겁니다. 독일 내에서 벌어지는 살인에는 분명 관대한 처벌이나 지지를 하지는 않았을껍니다. 분명 전쟁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을테고요.

    전쟁은 스포츠나 장기와 같은 게임들 처럼 승부를 정하는 방법이 정해져 있지않은 처절한 살육의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전쟁을 객관화 하는 순간 전쟁은 그 승과 패만으로 대변되는 하나의 게임으로 전락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 게임을 주도하는 것은 각 국가의 권력층의 일부이기에 일반인들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 되어버려 이겼냐 졌냐만 관심을 가질 뿐 그 내용에 대해서는 방관하게 되고 말았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내 자식에게 밥을 먹이기위해 군수공장일 지라도 돈을 준다면 일을 해야한다" 내지 하찮게는 "2000만원짜리 새 차를 갖고 싶다. 어디가 더 할부금과 이자를 싸게 해주지?" 와 같은 좀 더 그들에게 실질적인 관심사가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과거의 독일인들과는 전혀 다른 소위 좀 더 나은 인격을 가진 존재일까요?
    우리는 대중 매체를 통해서 우리 주위에 살인을 비롯하여 부조리 그리고 인권 침해가 난무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현상에 대해 어떤 행동을 취하셨나요?
    알고는 있으되 당신도 그들처럼 침묵하고 있지는 않나요?
    당신의 침묵은 현재의 옳지못한 현상에 대한 암묵적인 정치적 지지의 표현인가요?
    좋은 의도 그리고 생각 그리고 비판 만으로는 변화가 없습니다. 변화를 만드는 것은 행동입니다.
    저는 히틀러 시대의 독일인들을 두둔할 생각도 없지만 오늘날의 우리도 큰 차이가 없음에 비판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로처 2009.04.08 18: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얘기를 참 구체적으로 잘 하십니다.
      제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들이 많아서 듣고 빨리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그래서 많네요.

      저도 당시의 독일대중을 비판할 마음은 없습니다.
      먹고 살기위한 투쟁을 하기 바쁘거든요.
      그래서 이 책 읽은 소감이 나치즘이나 파시즘 보다는 저만의 목소리를 내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주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