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감동적인 글을 읽었습니다.
제목이 '축의금 만 삼천 원' 이었죠.
작가를 알고 싶은 마음에 인터넷을 뒤적여보니 출처가 바로 이철환 작가가 지은
이 책 <곰보빵>이었네요. 그래서 읽었지요.

저는 이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얘기는 좋아하지 않아요.
현실은 이외수 작가가 추천사에 쓴 '동물의 왕국' 이나 '오물의 제국'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 얘기는 동화와 현실 사이에 어디쯤에 있을까요?
나는 어디쯤에, 여러분은 어디쯤에 살고 있을까요?

폐지할머니의 손수레를 밀어주는 택시기사의 훈훈함과 복잡한 길에서 접촉사고가
있으면 할머니의 아들이 합의금을 왕창 뜯어낸다는 무시무시한 소문 사이에서 우리는
어디쯤 살고 있을까요?

전화 부스 안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눈물 닦는 외국인 노동자의 짠한 모습과 외국인
노동자의 범죄 기사에 흥분하며 강도 높은 처벌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우리는
어디쯤 살고 있을까요?

제 의문이 어리석었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깜빡이면서 살고 죽는 세상이 딱 떨어질 리가요.
음......그래도 어디쯤 살고 있는지 한 번 읽어보세요.
저 같이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가 흘리는 눈물로 안구건조를 치료하는 셈 쳐보세요.
그래도 밑지지는 않을거에요.

다만 지금 겪고 있는 문제보다 더 큰 걱정에 깊이 빠지신 분들은 읽기 어려우실지도 몰라요.
나와는 거리가 너무도 먼 얘기일지도 모르거든요.

마음에 들어 인용하고 싶은 글이 '축의금 만 삼천 원' 외에도 '아버지의 생일', '사랑아 ...너는 얼마나 아팠니...' 등 많아요. 인터넷에서 이미 보았던 글들도 많네요. 그 중에서 작가의 마지막 말을 인용함으로 마무리 할게요.


 아름다움의 원래 모습은 아픔이었다.

기름때 찌든 작업복을 입고 있을 때도
나는 프란츠 카프카를 읽고 있었다.
아무도 사 가지 않는 그림 옆에 서서 고개를 들 수 없을 때도
나는 알베르 카뮈를 읽고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말라르메, 스타니슬라프스키와
헤르만 헤세가 있어,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계셨기에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풀무야간학교에서 4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밤잠을 설쳐 가며 죽을힘을 다해 책 원고를 준비했다.
책 한 권을 준비하는 데 꼬박 7년이 걸렸다.
이제는 됐다 싶어 원고를 들고 출판사로 갔다.
정확히 다섯 군데 출판사에서 거절당했다.
글은 괜찮은데, 무명 필자의 글이라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원고가 한 번씩 거절당할 때마다 새로운 원고를 써 넣었다.
원고는 점점 더 좋아졌다.
어긋남도 조화가 될 수 있다는 걸, 그 어름에 알게 되었다.

원고를 다섯 번째 거절당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 출입문 쪽에 서서, 나는 울었다.
2개월 동안 책 속에 넣을 그림을 그렸다.
아픈 몸으로 밤을 새워 가며 그림 31컷을 완성했다.
아름다움의 원래 모습은 아픔이었다.


<곰보빵 p. 152, '아픔, 별이 되다' 중에서>


Posted by 로처


아직 나이가 많지 않은 덕분인지 아니면 고달픔을 덜 겪어서인지 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제법 생생합니다. 그렇지만 기억은 기억일 뿐, 그 시절의 기분은 잊은 지 오래인듯 합니다.

예를 들면,
유리창을 깨고 들켜서 혼이 나기 전까지의 식은땀이라던가,
받아쓰기 100 점 맞았다고 부모님이 웃으실 때의 날아갈 듯한 기분이라던가,
용돈 100원을 받고 50원짜리 깐돌이를 사먹고 남은 50원의 풍족한 기분들은 제 아무리
사실을 기억한다고 해도 다시 느껴보기는 힘든 감상들입니다.

가끔은 <행복한 고물상>같은 책을 읽는 것이 그래서 즐겁습니다.
다시 만나기 힘든 어릴 적 기분들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꿈결같이 어릴 적 세상을 다녀올 수 있습니다.

작가이자 주인공인 '철환'이는
친구가 좋은 성적을 받을 것이 배 아파서 심술부리는 못된 짓도 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를 위해 용감하게 연탄재를 집어 드는 착한 일도 하고요,
시르죽은 아버지를 등 뒤에서 안아주는 따뜻한 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빵 사달라고 노래 부르다 매를 벌기도 하지요.

이제는 꿈이 아니고는 만날 수 없는 그 시절의 나와 동무들 그리고 사건들을 꿈꾸는 것처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책입니다. 위기철 작가가 지은 <아홉 살 인생> 같은 작품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이 책도 좋아하실 거라 생각해요.


P. S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많아 놀랐어요.
    그래서 퀴즈 내드립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아실지 궁금하네요. 한 번 맞춰보세요.


1. 꼭뒤를 긁다.
2. 어진혼이 나간 얼굴로
3. 지윤이의 얼굴이 오련했다.
4. 시르죽은 얼굴이셨다.
5. 별쭝맞다.
6. 껑더리되었어요.
7. 나는 선득거리며 흥뚱항뚱 그들을 바라보고만.
8. 웅숭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9. 수꿀한 생각이 들었지만.
10. 서름한 낯빛으로
11. 푼더분하게 생긴 얼굴로
12. 봉구가 만일의 경우 저지레를 할까봐
13. 객쩍은 소리 그만해
14. 입찬소리 하는 거 아냐
15. 은근짜를 부리던 뱀장수 흉내
16. 생게망게한 얼굴로 기가 막힌다는 듯.


정답보기 DAUM 사전 참고

Posted by 로처

<인생>, <허삼관매혈기>, <형제> 를 꽤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에게 두 작가의 우열을 가릴 권한도, 능력도 없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를 추천해준 친구에게

"하루키 얘기는 나하고는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얘기를 하면서 "난 위화가 좋더라."고 얘기했죠.

속된 말로 '위화빠' 정도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작 3편을 읽었지만요.
그랬기에 '위화 산문집'이라는 부제를 달고 출간된 <영혼의 식사>를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조금이라도 작가의 일상이나 생각들을 알고 싶어서였죠.

그런데 다 읽고 난 지금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왜 이리 허망한지요.
당혹스럽습니다.
이 허망함과 당혹감은 전염성이 있는지, 다른 책을 읽어도 아무것도 쓰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쓰는 글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끼적임에 불과했는데도 그것도 못하겠다니 환장할 노릇입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바라고 이 책을 집어 들었던가?"
"무얼 기대했던가?"

무엇엔가 쫓기듯, 읽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기계적으로 집어 들었던 것이 탈인가 봅니다.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꾸역꾸역 읽어 온 것이 체했나 봅니다.
어느 블로거의 말대로 '급조한 느낌'의 이 책에 대한 실망보다는, 저 스스로가 바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읽은 이유와 체한 머릿속의 헛헛함을 느끼는 이유로 이 책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 적어도 지금의 저에게는 말이죠.
그래서 작가의 서문을 모아놓은 3편은 읽지 않았습니다.
각 소설을 읽을 때는 너무나도 좋아했던 서문임에도 모아놓으니 싫어지네요.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어떤 것도 끼적일 수 없을 것 같더니 주절대고 있는 새에 두 가지 생각이 남네요.

그 하나는 '아이, 두려움과 마주치다.' (p. 37)

위화의 아들 로우로우(漏漏)는 자신의 똥과의 첫 만남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웁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지막으로 비행기 안에서 두려움을 느끼죠.
비행기 안에서는 이렇게 두려움을 표현합니다.

"사람 살려, 살려주세요."

귀엽죠? 위화는 이런 말을 하네요.

이런 형태의 두려움은 늘 혼자 극복할 수 있고, 그럴 때마다 내면의 성장을 얻을 수 있다.
세계에 대한 녀석의 이해, 그러니까 진정으로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들에 대한 이해는 부단한 공포와 극복을 통해 완성된다. 녀석이 어른이 될 때까지, 심지어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이런 두려움이 그와 동반할 것이다. 마치 어린 시절부터 나와 함께했던, 나뭇가지가 달빛에 모습을 드러내며 빛을 발할 때 느꼈던 공포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p. 39, 40)


지금 나와 함께하는 두려움은 무얼까 생각해 봅니다.
갑자기 떠 오르는 것은 없지만, 꽤나 많을 겁니다.
창피해서 여기에 적을 수는 없지만, 한 번 정리해 봐야겠습니다.


두 번째는, 길거리에서 울고 있는 노인의 모습 입니다.


하루는 아내 천홍과 함께 베이징의 왕푸징 거리를 걷고 있다가 갑작스런 광경에 경악하고 말았다. 왁자지껄한 인파속에서 갑자기 반듯한 복장을 한 노인이 눈물을 쏟으며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것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들뜬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불행을 그렇게 솔직하게 표출하는 그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가득했다. (p. 147)


내 마음은 눈물을 잊은 지 오래입니다.
김광석의 노래 <타는 목마름으로>의 첫 구절처럼 말이죠.

행복한 표정으로 가득한 거리에서 소리 내어 우는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당혹스러울까요.
신문과 기사는 불행의 표지로 가득하고, 거리는 행복한 얼굴로 가득합니다.
불행한 이들은 모두 숨어있는 건가요. 행복한 얼굴은 거리의 통행증인가요.

짐 캐리의 <YES 맨>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나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긍정의 힘> 같은 책들이 흩뿌려지고 있는 시대에 우리의 눈물은 겉으로 나오지 못하고, 맘속에서 고여 썩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니다.

눈물도 소통일텐데

Posted by 로처

1. "그래서 어쩌라고!"

<좋은생각>, <배꼽>,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시겠죠?
책 뒷장에 이렇게 써 있네요. '101가지 지혜의 샘'이라고요.

네!
이 책은 위에 말씀드린 책들처럼 담아두고 싶은 얘기들, 좋은 얘기들이 잔뜩 실려 있습니다.
이미 들어서 아는 얘기, 읽어서 아는 얘기들도 잔뜩 있지요.
아래와 같은 얘기들처럼요.

<연필 같은 사람>

"연필에는 다섯 가지 특징이 있어. 그걸 네 것으로 할 수 있다면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게야.

첫 번째 특징은 말이다, 네가 장차 커서 큰일을 하게 될 수도 있겠지? 그때 연필을 이끄는 손과 같은 존재가 네게 있음을 알려주는 거란다. 명심하렴. 우리는 그 존재를 신이라고 부르지. 그분은 언제나 너를 당신 뜻대로 인도하신단다.

두 번째는 가끔은 쓰던 걸 멈추고 연필을 깎아야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이야. 당장은 좀 아파도 심을 더 예리하게 쓸 수 있지. 너도 그렇게 고통과 슬픔을 견뎌내는 법을 배워야 해. 그래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게야.

세 번째는 실수를 지울 수 있도록 지우개가 달려 있다는 점이란다. 잘못된 걸 바로잡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오히려 우리가 옳은 길을 걷도록 이끌어주지.

네 번째는 연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외피를 감싼 나무가 아니라 그 안에 든 심이라는 거야. 그러니 늘 네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렴.

마지막 다섯 번째는 연필이 항상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이야.
마찬가지로 네가 살면서 행하는 모든 일 역시 흔적을 남긴다는 걸 명심하렴. 우리는 스스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늘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란다." (p. 30)


그리고 <칭기즈칸과 그의 매> 라던가 <고독한 불씨>등의 얘기들은 많이들 아실 겁니다.
이 외에도 작가 자신의 경험담과 친구들의 경험담도 꽤 좋은 얘기들입니다.
실은 너무 좋아서 다 옮겨 적고, 암기하고 싶을 정도랍니다.

그러나 좋은 얘기들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좋은 말이지만,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말인 것처럼요.
이런 생각에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심사로 뿔이 나기도 했죠.
'참말로 좋다.'는 생각과 '그래서 어쩌라고.'하는 심사 사이에 있는 책입니다.


2. 그래도 믿고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미지 출처 : MBC 홈페이지>


드라마 <허준> 얘기를 또 하게 되네요.
MBC 드라마 <허준>은 당시 많이들 좋아하신 드라마입니다.

극중에서 허준은 고지식할 정도로 정직하고, 답답할 정도로 원칙을 지키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래서 손해보고, 그래서 상처받고, 그래서 내쳐지고,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빙 돌아서 갑니다.

"아이구 등신!" 이란 말을 하면서 보신 분들이 적지 않을걸요?
그러먼서도 속으로 응원하면서 보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잘 되길 응원하게 됩니다.

파울로 코엘료라는 작가에 대해서 저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가 하는 좋은 얘기들 믿고 싶습니다. 아니, 믿어야 제가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쇼핑몰에서 신명을 다해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를 닮고 싶어서입니다.
돌 치우고, 돈벌이 하는 인부가 아니라, 교회를 짓고 있는 인부이고 싶어서이고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을 한 어린구름이고 싶어서이기도 하죠.
이렇게 되기 위해 구겨지고 짓밟혀도 변함없는 가치를 가진 20달러 지폐처럼 굳건해야겠죠.
그래서 파울로 코엘료의 기도를 저도 해봅니다.

주여, 우리의 의심을 지켜주소서. 의심 또한 기도하는 한 방법입니다.
의심은 우리를 성장하게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의 문제에 대한 많은 답들과 두려움 없이 마주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p. 159)


뱀발 : 파울로코엘료는 '신에게 이르는 길은 오직 하나다.'라는 것을 근거 없는 믿음이라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다고 하죠. 과연 한국의 개신교에게 이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이단일 뿐인가 싶습니다.

Posted by 로처
우리들의 하느님-권정생 산문집


저는 <권정생 선생=강아지 똥> 이렇게만 알고 있었습니다.
두어 달 전에 우연히 '지식채널e' 라는 영상으로 권정생 선생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짧은 영상에서 보이는 선생의 삶은 코끝을 시큰거리게 하기에 충분 하더군요. 검색을 통해서, 선생을 좀 더 알아 보려고 했습니다.

<몽실언니> 이것을 선생이 쓰셨더군요.
벌써 17년 전에(1990년)에 드라마로 방송 되었었구요. 저도 그 때 책으로도 읽었는데 잊고 지낸 모양입니다.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 <무명 저고리와 엄마> 라는 동화책도 읽어 보았습니다. 이런 동화책을 읽으니, 선생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도 같았습니다. 아니 동화책 몇 권에 안다는 것은 어렵고, 느낀다고 해야 맞을 듯 합니다.

여전히 부족했습니다.
권정생 선생에 대해 더 알고 싶었습니다.
위인전이나 자서전은 찾지 못했습니다.-없으리라 생각 됩니다.
그러다가 <우리들의 하느님> 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좋았습니다. 위인전이라면 지은이의 눈을 통해 본 선생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지만, 선생이 써 오던 글들을 직접 보게 되니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위인전이나, 자서전이 없는 편이 더 선생의 삶에 어울린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권정생 선생의 생각을 듣고 싶으신 분에게 이 책을 소개 합니다.

이 책은 여러 편의 짧은 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목차가 소개 되니 목차는 생략 하겠습니다.

제일 첫 글 '유랑걸식 끝에 교회 문간방으로'라는 글은 선생의 생에 대한 짧은 정리글 입니다. 그리고 앞 부분의 글은 선생이 생각하시는 종교, 하느님, 부처님, 세상 에 대한 글이 많습니다. 중간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한 글도 보이구요.
뒷부분에는, 농촌의 환경, 자연을 아끼는 전통 농촌과 관습들에 대한 글도 있습니다.
마지막은 '용구삼촌', '오두막 할머니', '할매하고 손잡고'라는 동화 세 편의 소개로 끝이 납니다.

재생종이로 만들었나 봅니다.
저는 그래서 더 정이 갑니다.
오래 오래 변치 않고, 상하지 않게 코팅된 종이로 했으면 싶기도 하지만,
오래고 영원이 소용있겠나 싶습니다.
제 생명이 영원이 아닐텐데 말이죠.
책이 닳고 낡아지는 세월에 제 몸도 늙어 갈테구요.
선생의 생각들이 제 마음속에서 가지도 치고, 솎아지기도 하면서 자랄테죠.

권정생 선생이 궁금하신 독자 분들은 읽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선생의 자서전이나, 생을 다룬  책이 없으니 그걸 대신 하기에도 충분합니다. 제 생각에는 충분한 걸 넘어서, 더 가깝게 선생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http://lawcher.tistory.com2007-11-15T18:36:530.31010
Posted by 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