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나열한 셋 모두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세 작품 모두 작가의 능력에 감탄할 뿐입니다.

이유는, 많은 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실낱같은 단서로 엄청난 작품을 썼다는 것에 있습니다.

아래에 작가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1. 베니스의 개성상인 - 작가의 말 (p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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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2월 1일자 신문들은 일제히 그림 한장을 외신으로 전하고 있었다.
플란더즈 화풍으로 잘 알려진 거장 루벤스(1577~1640)의 '한복을 입은 남자(A Man in Korean costume)' 라는 그림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400년 전의 서양 화가가 조선옷을 입고 있는 한국 사람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다니! 그 당시 유럽에 조선 사람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을까.

시간이 차츰 흐르면서 나는, 피렌체에 살고 있던 프란체스코 카를레티라는 이탈리아인이 일본 나가사키에서 노예로 사간 조선인 안토니오 꼬레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 조선인이 지금도 남부 이탈리아 알비 지방에서 꼬레아라는 성을 쓰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선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그림 속의 남자는 임진왜란 때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갔다가 노예로 팔려 이탈리아까지 가게 되었던 안토니오 꼬레아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방인인 안토니오 꼬레아는 이탈리아에서 어떤 생활을 하며 살아갔을까.

시대를 뛰어넘는 안토니오 꼬레아의 머나먼 여행 이상으로 내 뇌리에 강하게 인식된 것은 한복을 입고 있는 남자의 알듯 모를듯한 잔잔한 미소였다.
그의 입가에는 비천한 신분의 사람에게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혈단신으로 그토록 먼 세계로 간 사람이 어떻게 그처럼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을까. 더구나 루벤스같은 명장을 초빙해서 그림을 그리게 했을 정도라면 사회적
신분이나 재력도 상당했을 게 아닌가. 그 사람이 정말 안토니오 꼬레아라면 어떻게 해서 먼 이국 땅에서 자수성가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조선에서는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이었을까.
궁금증은 더해가기만 했다. 생김새로 보아 경기도 서해안 지방사람 같다는 추측(조선일보 1984. 11. 23)만이 유일한 실마리였다.

그렇다면......
나는  추리를 계속해 보았다. 외국인, 더구나 동양인으로서는 정계에서 활약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종교계에서 활약했다면 교황청의 기록에라도 남아 있을텐데 쪽의 기록도 전무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상업도시였던 베니스에서 상인으로 자수성가한 것은 아닐까. 더구나 경기도 서해안 지역의 사람 같다는 외모로 보아서 러한 추리가 무모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이 글은 안토니오 꼬레아라는 한 인물을 통하여 400년 전의 역사가 지금도 되풀이 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과 결합해서 만들어진 이 작품이, 대인들에게 역사의 의미를 되새김질할 수 있는 작은 귀감이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1993년 늦은 봄
오세영



2. 리진 - 신경숙의 작가노트


내가 리진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사 년 전이다.
R이 외국어대학교 블레스텍스 교수가 백 년 전에 프랑스에서 출간된 조선에 관한 책을
가지고 있는데 특이한 이야기가 있어 번역을 했다며 보여주었다. A4용지 한 장 반 정도 되는 분량이었다.
그걸 보기 전까지 나는 내가 백년 전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조선에 처음 로 파견된 불란서 외교관이 조선의 궁중 무희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와 함께 파리로 건너갔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게 뭐? 하며 무심히 읽었다. 혼자 남게 되었을 때 백년 전에 불어를 빛나게 구사했다는 그녀의 행적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중략>

너무 야윈 나머지 마치 장난삼아 여자 옷을 입혀놓은 한 마리 작은 원숭이 같아 보였다.....는 문장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이윽고 다시 던져진 사슬이 자신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어 결국 종이를 삼키고 스스로 생명을 끊었다....를 읽어내리는데, 동시대인들이 보지 못했던 것을 본 대가로 깨진 유리조각들을 손에 움켜쥔 채 피흘리고 있는 백 년 전 한 여인의 고통이 나를 엄습했다. 다른 소설을 준비중이었는데 잘 풀리질 않아 아는 이 없는 낯선 길거리에 홀로 넘어져 있는 기분에 빠져 있던 때였다.
땅에 넘어진 자는 땅을 짚고 일어설 수밖에 없다.

R에게 전화를 걸어 A4 용지 한 장 반 안에 갇혀 있는 그 여인을 소설로 되살려보겠노라고 했다. 그날로부터 나는 하던 일을 접고 리진을 찾아 헤맸다. 자료를 모으다가 R이 따로 변역해 보여준 원서가 '프랑스 외교관이 본 개화기 조선'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이 되어 있음을 뒤늦게야 알았다.

<중략>

파리에서 그녀의 자취를 찾기를 포기하고 한국을 뒤졌다.
마찬가지였다. 조선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온갖 것들이 어떤 방편을 통해서든 기록되던 시대인데도 그녀에 대한 것은 단 한 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실존인물인가? 의아할 지경이었다. 크게 실망을 했으나 여러 달이 지나자 다른 근력이 생겼다. 전기를 쓰려는 게 아니라 소설을 쓰려는 것이다, 싶었던 것이다.



3. 대장금 - 김영현 작가 인터뷰 (월간조선 2004년 5월호)

기사를 보면, 이병훈PD가 장금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하네요.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에 중종 대의 장금과 선조 대의 장금이 딱 두 명이 나오는데, 그 중 중종실록에 중종 28년에 '대장금'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중종 39년에 대신들이 들어와서 '남자 의관들의 치료를 받으라'고 주청을 드리는데, 중종이 '내 병은 여의가 안다. 그러니 너희들은 걱정말고 물러가라' 고 하는 대목을 보고

'아, 장금이가 주치의가 됐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존경받고 사랑받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이것 뿐이겠냐만,
이 세 작품만 보더라도, 작가들에 대한 존경과 부러움, 사랑이 샘 솟습니다.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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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가의 리진을 읽고-나에게 비극은 무슨 의미일까


언제인가 헐리우드의 영화를 비난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비난의 이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째, 미국식 영웅주의로 무장한 유치한 영화이다.
둘째, 여자와 어린아이는 죽지 않는다.
셋째, 항상 해피엔딩이다.
오래된 기사이기에 제대로 기억하는지도 가물하지만, 대체로 위와 같은 이유였습니다.

비극에는 사람의 감정을 순화시키는 무언가가 있다고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배운 것도 같습니다만.

이제는 저도 비극보다는 행복한 결말을 보기를 원합니다.
마음이 변덕스런 저는, 작은 일에도 쉬이 감정이 변하기 때문에 더 그러합니다.
요즘 신나는 일이 별반 없기에 그러합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밝고, 가볍고, 위트넘치고, 희망에 찬 것들을 보려 합니다.
이상하게도 신경숙 작가의 글은 그렇지 않아도 읽게 됩니다.

<리진>을 읽으면서도 그랬습니다.
아마 다른 분들도 그러하실 겁니다.
마음 한켠이 아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울분도 치밀어 오르고 말이죠.
결국 무거운 맘으로 담배를 한 대 빼어 뭅니다.

제가 왜 신경숙 작가의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으면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이전의 독서노트를 버렸던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참! 글 중에 <직지>이야기가 반가웠습니다.
아래에 청주에 있는 고인쇄 박물관 홈페이지를 링크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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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는 고인쇄 박물관 홈페이지 >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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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고서도, 뭐라 글을 써야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제가 기억하고 싶은 구절을 적어둠으로 잊지 않고 기억하려 합니다.

1권

< 당신은 당신이 얼마나 빛나는 영혼을 가졌는지 상상도 못할 거요. >

< 이름을 통해야 우리는 비로소 그 존재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왕이 그녀에게 내린 이름을 그는 거리낌없이 받아들이고 불렀다. 춤을 출 때는 서여령으로, 자수를 놓을 때는 서나인으로, 소아에게는 진진으로, 강연에게는 은방울로 불리었던 그녀는 이제 리진이었다. >

< "이름의 주인이 어떻게 사느냐에 그 이름의 느낌이 생기는 게다.
사람들이 네 이름을 부를 때면 은혜의 마음이 일어나도록 아름답게 살라." >

< 배 밭 근처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 적에 어머니가 아이에게 하던 노릇이었다.
바느질을 해 주고 얻은 배를 긁어주며 어머니가 맛있느냐? 물으면 진이는 입이 미어져 대답을 못 하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눈 앞에 왕비 뿐인데 어디선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내전을 두리번거리던 어린 진이의 눈동자에 설핏 물기가 어렸다. >

< 선교사님이 좋으냐?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행이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살아가는 일이 덜 힘든 법이다. 좋아하는 일로 힘이 들게 된다 해도 그 힘듦이 살아가는 의미가 되는 게야. 너는 부자다 마음속에 선교사님이 있지 않니.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사람이 진짜 가난한 사람이거든. >


 블랑 선교사의 선문답이 너무나 우습다.
꼭 우리나라 사극에 나오는 스님들의 말투라 그런가 보다.
정겹고 좋기만 하고, 그래도 또 웃음이 난다

2권

< 리진은 선 채로 '레 미제라블'의 아무 장이나 펼치고 물결치는 듯한 프랑스어를 들여다보았다. 하룻밤 편히 쉴 수 있도록 잠자리를 마련해준 밀리에르 신부의 집에서 장발장이 은촛대를 훔치다가 들켜 끌려가는 장면이었다. 밀리에르 신부의 너그럽고 자비로운 마음이 없었다면 장발장은 어찌 되었을까? 리진은 빙긋이 웃었다. 책을 읽는 일의 즐거움은, 어찌 되었을까? 를 상상하는 데 있었다. >

< 리진은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와서 방금 전까지 쓴 내용을 쭉 읽어보았다. 마르세유에서 파리 리옹 역까지 기차를 탔을때 철마의 그 빠른 속도를 어떻게 전해야 할까? 리진은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갈증을 느끼며 깃털 펜에 잉크를 찍었다. >

< 뱅상과 같은 파리의 젊은이들에게 평생 직장이라는 느낌을 주며 최고의 일터로 동경의 눈길을 받는 봉마르셰 백화점에 대해 조선의 왕비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생각에 잠겨 있던 리진은 편지쓰기의 무력함이 느껴저 깃털 펜을 여태 썼던 편지 위에 내려놓았다. >

< 법국에선 어떤 때에 가장 외로웠느냐? 제가 누구인지 알고 싶을 때였습니다. 그래, 네가 누구 같더냐? 모르겠습니다. 먼지 같고 풀 같고 구름 같고..... 종내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왕비의 목소리가 한숨처럼 흘러나왔다. 리진은 슬며시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았다. 어느새 왕비가 잠이 들어 있었다. >
책을 읽는 중에 <베니스의 개성상인>이라는 책이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한민족으로 외국생활을 하면서 정체성 고민을 한다는 점이 같아서 그랬나 봅니다.
그 책을 다시 읽고 리뷰를 올리려 합니다.
꽤 재미있는 책인지라 여러분에게도 추천합니다
http://lawcher.tistory.com2008-01-21T14:27:340.3610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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