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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가는 길 황석영

 

수험생인 고교시절 읽었던 독서평설에는 이 책의 해설로 이런 말들이 붙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산업화와 개발로 사라져가는 농촌의 마을과, 전통적인 가족관의 해체, 그리고 가치관의 변화로 인한 상실감과 갈등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 다시 이 책을 읽으니 이전과는 느낌이 다릅니다. 이제는 정해진 정답에 걸맞는 글을 써야 하는 수험생이 아니기에 더 다른 느낌입니다. 이 책은 고향을 떠나 정처 없이 살아가는 노영달, 정씨, 백화 세 사람의 노정이 그 줄거리입니다.

 

1. 고향, 정처, 정착, 사랑 그리고 가정

 

겨울이 되어 공사판이 닫게 되자 다른 곳으로 떠나는 노영달과 정씨가 만나 대화를 이어갑니다.

 

넉 달 있었소. 그런데 노형은 어디로 가쇼?”

삼포에 갈까 하오.”

사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조용히 말했다. 영달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방향 잘못 잡았수. 거긴 벽지나 다름없잖소. 이런 겨울철에.”

내 고향이오.”

사내가 목장갑 낀 손으로 코 밑을 쓱 훔쳐냈다. 그는 벌판 저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달이와는 전혀 사장이 달라진 것이다. 그는 집으로 가는 중이었고, 영달이는 또 다른 곳으로 달아나는 길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P. 113~114

 

이 소설이 1973년 작품이라는데, 2020년 현재에도 사람들은 너나 할것없이 안정위해 노력합니다. 안정적인 직장, 경제생활, 사랑과 가정. 그러며 어린 시절의 고향 어쩌면 요즘은 추억 속의 평안을 바라거나, 이상적인 삶을 꾸리기 위해 애쓰며 살아갑니다. 일상적인 삶이랄까, 평균적인 삶이랄까. 그런 안정적 지위가 없다고 느끼는 우리는 극 중의 세 사람처럼 떠돌아다니며 살고 있습니다. 이 직장 저 직장, 파트타이머에서 계약직 노동자로 말이죠. 먹고 살기 위해서 그리고 그 이상의 무엇을 위해서 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2. 고단한 노정의 안식

 

눈길을 걷는 고단한 세 사람은 폐가에서 불을 쬐며 몸을 녹이고, 옷을 말립니다. 그것만으로도 노정의 고단함을 덜고 집과 같은 평안을 잠시나마 얻습니다.

 

영달이가 폐가 안을 기웃거리며 말했다.

저기서 신발이라두 말리구 갑시다.”

백화가 먼저 그 집의 눈 쌓인 마당으로 절뚝이며 들어섰다.

안방과 건넌방의 구들장은 모두 주저 앉았으나 봉당은 매끈하고 딴딴한 흙바닥이 그런대로 쉬어가기에 알맞았따. 정씨도 그들을 따라 처마밑에 가서 엉거주춤 서 있었다. 영달이는 흙벽 틈에 삐죽이 솟은 나무막대나 문짝, 선반 등속의 땔 만한 것들을 끌어모아다가 봉당 가운데 쌓았다. 불을 지피자 오랫동안 말라 있던 나무라 노란 불꽃으로 타올랐다. 불길과 연기가 차츰 커졌다. 정씨마저도 불가로 다가앉아 젖은 신과 바짓가랑이를 불길 위에 갖다대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불이 생기니까 세 사람 모두가 먼 곳에서 지금 막 집에 도착한 느낌이 들었고, 잠이 왔다. P. 132

 

이일 저일, 파트타임 잡으로 계약직 노동자로, 이리 저리 떠돌고 만나며 살고 있습니다. 몸 닳고 마음 갈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발 녹이는 정도의 안식마저 감사합니다. 먹고 살고 있음에, 일상의 소중함과 평안에 그리고 이정도의 건강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정착하며 고향이라 부르지 못하고 다시 일어서 길을 떠남은 오롯이 불만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며 살아도 그 이상의 무엇을 찾아 떠나야 하는 것은 어쩌면 생애 내내 찾아야할 푯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3. 안정 어쩌면 다시 볼 수 없는 추억

 

오래 전 객지에서의 고시원 자취 시절에 좋아하던 풍경이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창밖에 다른 집들과 아파트 유리창에 번지는 노란색 불빛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찌나 따뜻하고 집생각을 나게했는지 모릅니다. 후각으로는 다른 집에서 풍기는 김치찌게 된장찌개의 냄새가 그러했고, 청각적으로는 집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밥하는 소리가 그러했습니다. 그러다가도 막상 집에 돌아가면 타지에서 집 생각했던 아련함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어쩌면 바라는 안정을 평생 이룰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집에 대한 기억의 아련함이 현실과 달랐던 것처럼 말입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 속 안정과 꿈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요. 지금껏 안정을 확실을 바라며 살아왔습니다. 정해지지 않은 것과 확실하지 않은 것에 불안해했고 멈춰서고 웅크렸습니다.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 이제부터는 눈길을 떠도는 삶일지라도 끝까지 길을 가야 합니다. 언 발을 녹이는 안식에 감사하면서도, 인생의 중요한 것들을 찾아보려고 이루려고 계속해서 가야 합니다. 가려던 길이 막히고 사라져도 계속해서 가야 합니다.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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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으로
온다 리쿠 를 처음 만납니다.

10개의 단편 소설 모음집 이네요.

미스터리, 공포, 기담 등의 모음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시간 때우기 위한 이야기들 같은데도, 묘한 여운이 남습니다.

그것도 강하게 ……

 

너덜너덜 해진 졸업앨범을 뒤적여 볼 때의 감정들이 꿈틀댑니다.

웃음, 따뜻한 추억, 친구들, 그리움, 아쉬움, 후회…….들이 말이죠

 

밤에 지도를 그린 기억

어린 시절의 젊은 부모님에 대한 기억

지금은 연락이 끊긴 친구들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어릴 적 동무들

좋아했던 선생님들

못살게 굴어서 용서 빌고 싶은 친구

잘해 주지 못한 풋사랑

 

비 소리 좋은 날

담배 한 개피 피우면서

감정과 기억을 끄적거려 보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출처 - MBC 홈페이지 (MBC가이드 1995년 5월호)



예전에 MBC에서 <테마게임>이라는 프로그램을 했었습니다.

단막 콩트이면서도, 참 괜찮은 프로그램이었는데, 기억하시나요?

이 책을 읽으면서 그 프로그램 생각이 참 많이 납니다.

 

편하게 추억놀이 또는 상념놀이 해 보실 분 읽어보실 것 추천합니다.

 
P.S :
'헛소리' 또는 '쓸데 없는 소리'로 치부되어도 할 말 없을 것 같은 주제의 이야기가 이렇게 멋지게 단편집으로 나오는 것을 본 것이 충격이었습니다.
도대체 난 컨텐츠에 대한 어떤 강박적 규칙에 얽매여 있는지를 되돌아 봅니다.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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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밤의추억 2008.07.05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단편집은 하나 하나씩 읽을때마다 성취감이 있어서 좋더군요. 성격상 소설을 잘 안 읽은지가 오래 되었는데 한번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테마게임... 옛날 생각나는군요. 홍기훈하고 임백천도 보이네... 요샌 뭐하는지... 김용만하고 김국진은 요새도 보이는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로처 2008.07.07 13: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전에 책 중에서 "화장실에서 보는 책" 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었어요.
      정확한 제목은 아니지만요.
      그 책의 제목처럼 쉽게 쉬엄쉬엄 읽을만한 책이에요.
      쉬고 싶으실 때, 읽어 보실만 할 겁니다.
      댓글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