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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일이 살고 싶은 아이들

 

고등학교의 졸업보다 18살까지 살아있기만 하면 좋겠다는 아이들

 

이혼, 가정폭력, 성폭력, 갱단의 위협, 총격사건, 가난, 마약, 인종차별, 친구의 죽음, 의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 그저 살아남고자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스스로가 폭력의 피해자이면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폭력을 택하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폭력과 가난의 악순환이 그들과 함께합니다.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영화 <위험한 아이들(Dangerous mind)>이나 <프리덤 라이터스(The freedom writers)>를 보면서 그들을 조금이나마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도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입니다.

인종 별로 무리 짓고, 싸우고, 사회에서처럼 학교에서도 무시당합니다.

교육의 목적이나 자기계발은 TV <비버리힐즈의 아이들> 만큼이나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이들에게 초보교사 에린 그루웰이 수업을 시작합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등장하는 캡틴 키튼 선생 같이 말이죠.

 

 

2. 초보교사 그루웰의 수업 문학읽기와 일기쓰기

 

그루웰 선생은 문학작품 읽기 수업을 합니다.

과목이 English이니 당연한 수업과정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게는 따분하고 읽기 어려운 고전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아이들은 감동합니다. 그리고 <안네의 일기>, <즐라타의 일기>, <더 컬러 퍼플> 등을 읽고 진솔은 글들을 일기로 풀어냅니다..

 

스스로의 세계로 문학을 읽을 줄 알고, 일기를 통해 진솔하게 생각할 줄 아는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일기를 교정해 주면서,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스스로도 위로 받습니다.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어서 공감이 될 것이고, 몰랐던 놀라운 상처에 같이 분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학 읽기와 일기쓰기는 방법일 뿐 입니다.

 여느 선생님도 하시는 일입니다.
무엇이 이들의 학교를 교육의 현장으로 바꿨을까요?

 


3.
그루웰 선생에 대한 믿음

 

제 멋대로 결론을 내리자면, 결론은 선생에 대한 아이들의 믿음 입니다.

그루웰 선생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불굴의 신념으로 아이들을 사로잡습니다.

여기에서는 구체적 일화를 통해 그루웰 선생을 잠시 들여다 보겠습니다.

 

그루웰 선생은,

 

1. 아이들의 현장학습 비용을 대기 위해 메리어트 호텔에서 일을 합니다.

2. 아이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경우에는 동료교사에게 따지기도 합니다.

3. 아이들과 밤늦게 일기교정을 하다가 도둑으로 오해 받아 아이들과 함께
   경찰 에 체포당 할 뻔 하기도 합니다.

4. 아이들의 의견을 불가능하다며 현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 아니라, 초청하여
   안네를 숨겨주었던 미프 기스(Miep Gies)씨를 초대하고 즐라타(Zlata)
   종군기자 피터 마스(Peter Maass)를 초청하여 좋은 시간을 보냅니다.

5. 난독증으로 고통 받는 아이에게 집에서 소설쓰기 숙제를 냅니다.

    이 아이는 컴퓨터의 도움으로 자신감을 얻습니다.

6.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은 주위의 도움을 받습니다. 존 투씨의 컴퓨터 기증이나
   만찬과 같이 말이죠.

7. 고교졸업도 꿈이었던 아이들에게 대학 진학을 위해, 일손이 부족하자 자신이
   강의하던 교육대학원 원생들을 2 1조로 아이들의 진로상담 멘토로 연결시
   켜 줍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속편으로 <그루웰 선생의 일기>가 출간되면 좋겠습니다.

 

 4. 현실과 교육제도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영화에서 그루웰 선생은 이혼을 합니다.

어디까지가 사실일지 모르지만, 충분히 개연성 있다고 생각합니다.

150명 아이들의 엄마 역할을 하려면 누군가의 자식, 배우자, 부모 역할을 하기가 힘이 들 것입니다.

모든 교사들이 그루웰 선생이나 <미즈타니 오사무 선생>처럼 일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 아닐까 싶어요.

 

선생이 아닌 사람들이 선생에게 이 정도의 요구를 한다면, 그것은 성인의 경지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책갈피)
책의 인용문 보기

 

 

 

 

 


 

 


 


 



 

 

Posted by 로처

거리의 아이들
위험한 아이들
겁나는 10 대

거칠고, 선생을 조롱하고, 야유하며 신뢰하지 않는 아이들 말입니다.
어찌보면 성급하게 '다룬다'는 시도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을 겁니다.
내가 '다루어진다' 는 느낌일 때 얼마나 끔찍할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관계개선의 시작은 '다루기 방법' 보다는 '진정한 믿음의 회복'에 있는 듯 합니다.

저도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 제가 말을 너무 쉽게 했습니다.
저는 짧은 시간 아이들을 가르쳐 봤는데요.
정말 예뻐할래야 예뻐할 수 없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표현이 완곡해서 그렇지 얼마나 미웠는지 모릅니다.
2달이 지나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아 절망스러웠죠.
그런 미운 아이들이 잘 따르는 선생님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이들의 믿음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책에서 '미즈타니 오사무' 선생님도 거리의 아이들과 믿음을 쌓아 갑니다.

선생이라는 작자들을 싫어하는 미즈타니 선생이 한 선생님을 계기로 변화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무서워하거나, 멸시하는 거리의 아이들에게 선생님으로 다가섭니다.
그 가운데 손가락 하나를 잘라야 하는 위험도 있었고, 자신의 교만으로 인한 안타까운 경험도 고백합니다.
(이 글의 마지막에 그의 글을 짧게 인용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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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을 읽으면서, <위험한 아이들(Dangerous minds)> 이란 영화가 떠오릅니다.
이 영화에서 '미셸 파이퍼' 역시 처음엔 고전합니다.
시작 하자마자 그만 두겠다고도 하고,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실수로 싸움을 키우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제자를 죽음의 위협에서 지켜내는데 실패도 하죠.
그러나 꾸준한 관심과 노력으로 종국에는 아이들의 믿음을 얻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선생님은 Captain Oh my caption 이 되었듯,
이 영화에서 루앤 선생님(미셸 파이퍼)은 아이들의 '빛'(Light) 이 되고, 탬버린 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한 사람이 더 있습니다.
가수 김장훈씨의 어머니로 유명한, 김성애 십대교회 목사님입니다.
십대교회와 <꾸미루미>를 통해 청소년 사역을  하시는데, 가출청소년을 위한 사역에 힘쓰시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 : 크리스천 투데이 : 가수 김장훈 어머니 검성애 목사 "엄마 마음으로 목회" )


그가 한다는 "괜찮아" 라는 한 마디에 힘이 있는 이유는, 그의 진심과 사랑이 가득 담겨 있어서 이겠지요.
그리고 아이들이 믿어 주고 맘 문 열어주기 까지는 보이지 않는 사랑을 볼 수 있게 한 음식의 대접과, 위험한 순간들을 함께 해준 것, 경청이 뒷받침 되어 있어서일 겁니다.

이런 그도 아래와 같은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옳다고 믿는 것을 향해 계속 나아간다는 것 입니다.
교사 뿐 아니라, 이 땅에서 어른 다운 어른으로 살아가기 위해 이 책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지는 것도 좋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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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처
가자에 띄운 편지-교사라면…..

Ⅰ. 리뷰를 쓰기 전에

저는 한 때 선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적도 있었지요.
지금은 선생이 아니지만, 선생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어 보게 되더라구요. 그 몇 가지 생각들을 옮겨 보려고 합니다.


Ⅱ. 하고 싶은 말고 담고 싶은 말


1. 질문없는 대답과 대답없는 질문

며칠 전에 윤구병 선생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 중에 선생이 ‘질문없는 대답’을 칠판 한 가득 채우는 것은 무의미 하다는 내용의 말씀이 있었지요.
아이들의 삶에서 소중한 것, 알고 싶은 것, 세상을 살아 가는데 필요하다고 스스로 느끼는 것을 질문하게 되고 그에 대한 답을 선생이 해주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죠. 그렇지 않고 아이들의 질문이 없는 상태로 선생이 혼자의 생각을 칠판 한 가득 채우고 주저리 주저리 떠드는 것은 의미가 없노라고 말이죠.

이 책의 앞부분에 ‘탈 레빈’의 학교에서 20 세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학생이 묻고 선생님들이 대답을 합니다. 재미가 있어서 옮겨 봅니다.

“20세기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사망자, 항생제, 그리고 컴퓨터로 충만해진 거야….”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의미 부여한 것들에 대해 앵무새처럼 주워섬기지 않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실은 제가 그런 경향이 있거든요 …….

세계 발전과 인류공영,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고민은 안해도 좋으니 지금처럼만 스스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 휴전중인 한반도와 가자지구

“여기선 이스라엘 사람들을 아주 과격하게 대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협조한다는 의심을 받는다. 그런 혐의 만으로도 죽을 수 있다.”


전쟁과 살육의 분쟁이 심해지면, 중간영역이나 제3의 길은 보이지 않게 되겠죠. 모두에게 이쪽 아니면 저쪽의 둘 중 하나의 강요된 선택만이 있을 것입니다.

최인훈 작가의 ‘광장’이나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에서 보는 것처럼 말이죠. 한국도 이 상황에서 그리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주적은 북한이고, 이것이 국시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쟁점이 되는 휴전 50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을 보면 더욱 그렇죠.

종전이 아닌 휴전이라는 아리송한 개념 때문에 더 그런가 봅니다. 서해교전으로 인해 안타깝게 산화한 젊은이들의 충정과 애국이 통일을 위한 정책들과 대립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데 말이죠.

3. 일반화 속의 개인

한의학에서 사람의 몸을 하나의 작은 우주라고 하던가요?
이 책의 중간 중간에서 지은이는 이스라엘 또는 팔레스타인 이라고 하는 전체의 묶음으로 서의 이해가 오히려 그 또는 그들에 대한 몰이해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합니다.
단수 이상의 의미를 지닌 그들을 복수로 일반화 시켜서 이해하는 것에는 항상 예외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알아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관련된 내용을 인용해 봅니다.

P 72. [ ‘나, 너, 그’ 하는 식의 단수는 존재하지도 않고, 그냥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는 복수만 있는 거지. 불쌍한 팔레스타인 사람들, 아니면 나쁜 팔레스타인 사람들 하는 식으로 경우에 따라서 바뀌기만 할 뿐 바로 그 복수만 늘 존재하는 거지. 우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하나+하나+하나’가 아니라 늘 400만인 거야. 그러니 사람들은 민족을 통째로 등에 지고서 살아가는 것이고. 무거워. 무거워. 무거워 등이 뭉개질 것만 같아서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져 버리지. ]



4. 개인적으로 몸과 맘에 새기고 싶은 것

대화를 하면, 대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만 주저리 주저리 숨차게 떠들어 대곤 합니다. 이런 사람이 아이들을 앞에 놓고 주입식 교육과정을 수업해야 한다면. 안봐도 훤하시겠죠? 제가 그랬습니다, 진도를 위해, 성적을 위해, 하나라도 더 말하려고 숨차게 떠들기만 했죠.

그러나 저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학교나 학원에 매인 몸이라면, 아마도 이 틀을 벗어나기 힘들긴 할 것입니다. 상급 학교로 갈수록 더 심하겠죠. 그래서 수업을 하면서도 수업을 듣는 아이들이 불쌍했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이게 제 맘의 허영이고, 사치나 교만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랬습니다.

저에게 해주는 말이라 생각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책에서 탈의 친구인 ‘나임’ 에게 NGO 회원이 해주는 말이죠. 담아두고 싶은 말이기에 옮겨 적어 봅니다.

[파올로가 이어서 말했어. “네가 보다시피 우리가 분쟁을 멎게 할 수는 없어. 그렇다고 모두에게 돈을 나눠줄 수도 없고. 하지만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그들 속에 있는 상처를 발견하도록 도울 수 있다면 그 상처들이 나아질 수도 있겠지. 그토록 힘든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스스로 더 강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거야.” 윌리가 말했어. “특히 중요한 건 그 사람들이 각자의 하나의 개체로 존재한다는 걸, 그들이 공통된 운명에 처해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닮은 꼴인 익명의 존재가 아니란 걸 인식하는 거야. 그 사람들 각자는 둘도 없는 유일한 존재니까.”]


Ⅲ. 마무리

픽션인줄 모르고 집어 든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세계사의 흐름에 대해서나, 이-팔 간의 대립구도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책은 아니지만, 전체로서 취급되는 개인이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의 풋풋함을 통해, 새싹을 보면서 열매 맺는 나무를 꿈꾸게 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http://lawcher.tistory.com2007-11-11T08:54:340.3810
Posted by 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