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2008년 10월 9일 목요일)

“열람실 이용 시간이 끝났습니다.”

초인종 소리 같은 멜로디와 함께 나가라는 안내 방송이 들린다.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한 예배가 끝이 난 것이다.

이 책 저 책 열어 보지도 않은 책들을 가방에 넣고 일어선다.
담배 한 개비를 물고 밤하늘을 올려 봐도 별 하나 보이지 않는다.
별이 보고 싶은데 달 하나만 달랑 걸려있다.
모두가 비는 소원의 무게에 지쳐 가라앉고 있는 달 하나만.


‘별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도서관에서 나온 사람들은 전화통화를 하며, 수다를 떨며 어디론가 가고 있다.
담배를 비벼 끄고 발걸음을 옮긴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행복에 감사하지만, 발걸음은 다른 곳을 향한다.
향한다는 것은 목적지가 있는 것이니 틀린 말이다.
그저 걷는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서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다 고가지하철로를 따라 걷는다.
인적이 뜸해지고, 소원의 무게에 빛이 바랜 달 대신 가로등만 길을 밝힌다.

걷다보니 무심결에 예전 일터가 있는 공단이다.

텅 빈 공장으로 들어선다.
정문을 지키는 수위실도 텅 비어있는 지경이다.
완성된 창문들이 포장되어 쌓여있다.
같이 일하던 사람들의 웃음소리, 땀 냄새, 욕지거리가 싸여있다.

저 창문이 시공되는 새 집에 들어선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것들이 말이다.
아마 새 집 주인들 중에는 싸여있는 소리들을 들을 줄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땀 냄새를 맡을줄 아는 이도 있을 것이다.
손을 다쳐 지르는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이도 있을까?
월급날 담배를 더 많이 피우는 이유를 아는 사람도 있을까?
싸여있는 말들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천사들만 가득한 세상이 되었을까?

빈곤한 상상력으로 추억을 들려주던 제품이 입을 다물 때 쯤 돌아서서 나온다.
집으로 갈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다시 담배를 빼어 문다.

고개를 들고 달을 향해 연기를 뿜는다.

“너 말고 별 좀 보자!”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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