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에 해당되는 글 2건



 1984 - 조지 오웰

1. 빅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

담배나 초콜릿뿐만 아니라 식량의 배급이 이뤄지고 있는 나라 '오세아니아'의 런던에 주인공 '윈스턴'이 살고 있습니다. 그 나라는 '텔레스크린'이라는 쌍방향 화상 장치가 곳곳에 - 심지어는 집안 까지- 설치되어 있고, 어린이들을 '스파이단'이라는 이름으로 부모의 고발자가 되도록 교육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말 한 마디 조심해야 하고, 성을 내건 웃음을 짓건 주위와 같이해야 하는 나라입니다. 의심받으면 어김없이 사람이 '증발'하기에 끝이 올 때까지는 조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적국과 '골드스타인'에 대한 타협 없고 대책 없는 증오를 키워가는 나라이고, 당의 완전무결함을 위해 통계와 역사를 수시로 조작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전체주의사회의 모습이기도, 독재정권아래 사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도 관제시위를 조장하고, 권력자 비판은 쉬쉬해야 했고, 인혁당사건처럼 사람이 '증발'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나라 인권상황 운운하기엔 좀 버겁다는 생각이 들죠.

아무튼 이 초국가 '오세아니아'에 구호가 있습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이 중에서 첫 번째와 세 번째 구호의 내용을 요약하고 인용해 볼게요.

2. 전쟁은 평화

초국가 세 나라(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가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고, 자족하기에 충분하기에 전쟁을 일으키는 경제적 요인은 노동력에 국한되는 상황입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전쟁인 셈이죠. 그리고 전쟁은 국지전 양상으로 일부 지역에서만 발생합니다.

이런 전쟁이 계속되는 이유는 삼국 모두가 전쟁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물질적 이유로 전쟁은 잉여생산물을 소비함으로 '부'가 하급계층에게 돌아감으로 그들에게 생활의 여유가 생기고 그것이 교육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함 입니다. 즉, 계층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해 전쟁으로 궁핍을 필연화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정신적 이유로 긴장과 공포, 증오로 내부결속을 강화하기 위함입니다.
결국 계속되는 전쟁은 물질적 정신적으로 현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평화는 그들만의 '평안'을 말함이죠.


[ 옛날의 전쟁과 비교하면 오늘날의 전쟁은 한낱 협잡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서로 해칠 수 없도록 뿔이 엉뚱하게 나 있는 반추동물의 싸움과 같다. 그러나 전쟁이 비현실적이라 해도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전쟁은 잉여 소비재를 소비시키고 계층적 사회가 필요로 하는 독특한 정신적 분위기를 조성하기 때문이다. 뒤에 가서 서술하겠지만 전쟁은 이제 단순한 국내 문제일 뿐이다.

<중략>

하지만 우리 시대의 지배자들은 서로간의 전쟁은 하지 않는다.
전쟁은 이제 지배 집단이 국민을 상대로 벌이는 싸움이며, 전쟁의 목적도 영토의 정복이나 방어가 아니라 사회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 있다. (p. 278) ]


3. 무지는 힘


[ 상층계급은 오랜 기간 권력을 안전하게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만간 신뢰나 효율적인 통치 능력 중 한 가지를 잃거나 두 가지를 다 잃어버리는 순간이 그들에게 닥친다. 그러면 중간계급은 자유와 정의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여 하층계급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상층계급을 전복시킨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하층계급을 다시 옛날의 노예 신분으로 전락시키고 스스로 상층계급이 된다. 이때 새로운 중간 계급은 다른 두 계급 중 하나에서 분리되거나 양쪽 계급에서 분리되어 나오는데, 이로 인해 투쟁이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이 세 계급 중에서 하층계급만이 단 한 순간도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중략>

하층계급의 입장에서 볼 때 역사적 변화란 그들의 주인이 바뀌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p. 282) ]



4. 사람만이 희망일까

스파이단의 일원이 된 자녀들이 부모를 고발케하여 가정을 무너뜨리고, 획일화된 증오에서
낙오되면 '증발'할 위험이 커지는 살벌한 사회, 그리고 당의 완전무결함을 위해 과거를 끊임없이 수정하는 사회에서 '윈스턴'은 "다음 세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저는 지금 우리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을 뿐이에요."라며 말하는 '줄리아'와 사랑에 빠집니다.

전에도 사회에 대한 의문과 불만이 있던 그였지만 이제는 기계가 만든 음악을 멋지게 부르는 아주머니를 새롭게 바라보고, 당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보다는 자신에게 충실한 너무도 인간적인 노동자들을 경멸하지 않게 되고 희망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 DAUM 영화>



영화 <아일랜드>에서 통제되고 남을 위해 죽을 운명에 있는 주인공 남녀는 버그(Bug)가 되어서 그들의 운명과 사랑을 쟁취했습니다. 이 책의 '윈스턴'과 '줄리아'는 사회를 변혁시키는 등불이 될까요?
아니면 그들만이라도 사랑과 생의 쟁취에 성공할까요?

덧 : 왜 평등을 지양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가장 중요하다고하면서 설명이 돼있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윈스턴은 '방법은 알지만 이유를 모른다.'고 하는데요 구호들의 설명을 미루어볼 때 계층질서의 유지를 통한 현재체제의 유지가 이유가 아닐까 싶은데 뭔가 다른 이유가 있나 봅니다.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시는 분 알려주세요~~

Posted by 로처


동물농장 - 조지 오웰

<잉글랜드의 짐승들>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그런 세상을 꿈꾸던 동물들은 '메이저'가 말한
'반란'을 예상외로 쉽게 성공합니다. 압제와 착취의 손에서 벗어나 모두가 평등한 농장이 되길 바라며 동물들은 계명을 정합니다. 정확하게는 영리한 돼지들이 정하고 다른 동물들은 동의하는 정도죠.


일곱 계명

1.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2.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p. 26)


그런데 우유의 행방이 묘연해지는 것을 시작으로 삐걱대기 시작합니다.
나폴레옹이 강아지를 몰래 교육시킵니다.
반대자 스노볼은 축출되고, '회의'는 폐지됩니다.
인간과 거래를 트기 시작하고, 침대에서 자는 동물이 생겨나고, 동물들을 죽이는
일이 벌어집니다. 해서 처음의 계명은 모르는 새 바뀝니다. 아래처럼요.


4계명 어떤 동물도 '시트를 깔고' 침대에서 자면 안 된다.
6계명 어떤 동물도 '이유 없이'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반란'에 성공했고, 사람도 없는 농장에 다른 것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반대자들에게 으르렁대고, 처형하는 사나운 개들이요,
나폴레옹의 말을 반복해서 외쳐대는 양들이요,
동물들을 의심스런 통계와 몰래 바꾼 계명으로 설득하는 '스퀼러'요,
나폴레옹을 찬양하는 '미니무스'요

결국 '복서'는 신념에 차서 기쁨으로 헌신하며 일하지만 몸뚱이 마저 팔리며 죽음을 맞이
합니다. 다른 동물들은 이상하게 삶이 고달프고, 무언가 처음과는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반란' 후에 또 다른 반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소설과 당시 소련의 현실과의 상관관계를 넘어서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권력은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권력은 항상 부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책을 읽는 것처럼 간단하면 좋을 텐데, 현실에서는 돼지는 머리가 너무 좋습니다.
어쩌면 돼지가 되고 싶은 마음 굴뚝인 저는 아는 바도, 정보의 접근성도 그들과 차원이 다릅니다. '복서'같이 살면 모지즈에게 칭찬은 듣겠지만 억울할 테고요, 아직은 양들처럼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좋게 봐야 '벤자민' 정도의 미지근한 참여자 정도일 테지요.아래에 정리가 잘 된 <해설>의 부분을 인용해 봄으로 글을 정리합니다.


[ 우화로 읽었을 때의 <동물농장>은 특정의 풍자문맥과 연결된 <동물농장>과는 다른 의미론적 확장을 가능하게 한다. 우화로서의 <동물농장>은 소비에트 체제라는, 한 시대의 권력형식만을 재현대상으로 하는 역사적 정치풍자의 수준을 넘어 '독재일반'에 대한 우의적 정치풍자로 넓어지는 것이다. 이 경우 이를테면 나폴레옹은 반드시 스탈린을, 돼지들은 반드시 볼셰비키를 지시하는 것으로 파악될 필요가 없다. 부패한 독재자는 어느 시대에나 있을 수 있고 권력형 돼지들도 어느 시대에나 있다. 그러므로 나폴레옹은 모든 시대에 있을 수 있는 독재자의 알레고리이고 돼지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을 수 있는 교활한 정예주의 권력집단의 알레고리이다.

<중략>


복서나 클로버 같은 우직하고 성실한 동물들도 반드시 프롤레타리아트로 제한되지 않는 광의의 피착취 대중을 포괄하는 알레고리로 읽힐 수 있다. 소비에트 체제의 역사적 실체가 소멸하고  없는 지금 이 시대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여전히, <동물농장>이 강한 적절성과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 정치사회의 권력 현실을 부패시키는 근본적 위험과 모순에 대한 항구한 알레고리이기 때문이다. 오웰이 그린 동물농장은 지금의 세계에도 있고 미래 세계에도 있을 것이다.  (p. 150) ]

Posted by 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