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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번영'과 '충성'을 선전하는 나치정권은 전쟁과 유대인 학살의 만행 뿐 아니라
민요를 부를 자유나 시집을 읽을 자유마저 앗아갑니다. 야만적인 나치정권으로부터
자유를 되찾기 위해 양심적인 독일 학생들의 저항이 시작되었고 그들은 사법기관에 의해
적법하게 처형됩니다.
이 책은 나치정권에 의해 처형된 '한스 숄'과 '죠피 숄' 남매와 그의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시대가 바뀌어 '4.19 정신'과 '민주 공화국'임이 헌법에 명시되어있는 지금도 이 책이
의미가 있을지 잠시 의문이었습니다. 비록 용산참사가 있고, 촛불시위하던 시민들이 물대포를 맞아도 말이죠.

잠시 생각해보니 떠올리기도 싫었던 400회 특집 <100분 토론>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촛불시위와 관련하여 '법치'를 두 패널이 얘기했는데 서로 말이 달랐죠.

먼저 유시민 전장관이 말하는 법치를 인용해 봅니다.


두 번째는 법치주의가 굉장히 훼손됐다는 겁니다.
법치주의는 시민들이 법을 잘 지켜야 된다. 단순히 그걸 말하는 게 아니고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권력을 행사하라는 뜻입니다. 그게 상식이거든요.

아까 민주당 국회의원들 얘기가 나왔지만 똑같이 거기서 전경들하고 머리끄덩이 잡고 소화기 분말 뿌려가면서 싸웠는데 야당 국회의원하고 야당 대표는 청와대에 가서 같이 밥 먹고 그 자리에서 같이 시위했던 유모차 엄마, 예비군 모임, 또 연예인들은 검찰에 조사 받으러 다니고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무너지면 법치가 없는 것이거든요. 이런 점에서 대한민국이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헌법의 대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이런 점들을 보면서 저는 매우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가 말하는 법치를 인용해 봅니다.
제성호 교수는 촛불시위의 참여민주주의 측면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평화적인 집회시위는 최대로 보장하지만 불법집회시위,
아까 법치주의의 확립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우리 사회에 어떤 선진화로 가야 할 방향에서 후퇴했다 라는 것을 보여줬고 그래서 인권이나 인권의 한계, 내재적 한계, 또 자율과 책임 또 법치, 이런 근본적인 문제들을 우리가 한 번 곰곰이 다시 생각해야 할 그런 계기를 가져왔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공동체의 안전과 법치는 각 개인이 향유하는 인권의 토대가 된다는 것을 우리가 한 번 다시 한 번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성호 교수는 모든 시위를 불법으로 몰아가는 위험부담을 떠안지 않고, 시위를 둘로 나눕니다. 그리고 불법시위자가 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 법치주의의 후퇴라고 말하네요. 그리고 권리의 한계로 서둘러 넘어갑니다.
이걸 보면, 제성호 교수가 말하는 법치는 '준법' 이나 '법에 복종' 에 가깝습니다.
아니면 '닥치고 복종하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법치를 잘못 말했거나요.

제가 기억하는 법치주의의 개념은 유시민 전 장관이 말한대로 인데요.
기억이 가물하여, 인근 도서관에 가니 김철수 교수님 책이 가장 신간이네요.
그 책에서 '법치주의'를 찾아서 아래에 인용해 봅니다.


법치주의 (김철수, 헌법학개론, 박영사, 2007, p. 265)

법치주의란 국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든가, 국민에게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려 할 때에는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하거나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또 법률은 국민만이 아니고 국가권력의 담당자도 규율한다는 원리를 말한다.

이것은 국가권력에 대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려는 것을 이념으로 하는 것으로서, 이와 같은 합리적 지배의 원리를 실현하기 위하여서는 먼저 법의 제정이 의회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 법은 독립된 법원에 의하여 그 법에 따라서 적용되어야 하며, 행정은 소정의 법에 근거하여 집행되어야 함이 요구된다. 말하자면 권력분립주의가 법치주의의 기초를 이루고 있으며, 국민의 자유권을 보장하기 위한 자유주의적 원리가 법치주의의 내용을 이루게 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위에 두 패널이 각자 말하는 법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헌법학자의 교과서에 부합하는지요?

'법치주의'는 위에 인용한대로 국가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려는 것을 이념으로 하는 개념이지, '법이니까 무조건 지켜' 라며 시민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개념은 아닙니다.
제가 제대로 읽었다면 제성호 교수가 하고자 하는 말도 '법에 복종' 입니다.
그가 실수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법치를 얘기했다면, 시민혁명 전 왕정시대의 법가치관을 갖고 있거나, 나치정권하에서 무너진 법치를 말하는 것일 겁니다.

헌법은 4.19 정신을 얘기하고, 자유와 평등을 보장할 것을 말합니다.
이 시대에 어떤 법학자는 법치와 복종이 같은 것인 양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렇게 저항할 용기도 자신도 없지만, 이렇게나마 '한스 숄'과 '죠피 숄' 그리고 백장미단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지난 여름의 촛불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나온 '고트프리트 켈러'의 시를 인용함으로 마치겠습니다.


'고트 프리트 켈러' 의 시 (p. 53~54)

어두운 동굴 속에서
도적이 나온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그는 돈지갑을 좇는다.
그리고 그는 더 중요한 것을 보았다.
그는, 헛된 싸움을
혼미한 지식을
찢어진 깃발을
겁에 질린 사람들을 보았다.

가는 곳마다, 그는 보았다.
이 보잘것 없는 시대의 공허감을,
그리하여 그는 부끄럼 없이 활보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예언자가 된다.
쓰레기 더미 위로 그는
그의 사악한 발자욱을 올려 놓는다.
그리고 이런 기막힌 세상에 대하여
안녕을 속삭인다.

마치 먹구름처럼
비열함으로 뒤덮인
민중들 앞에 선 위선자,
곧 그의 권력은 강대하게 솟아오른다.
누구나 할 것 없이
기회를 엿보면서
그의 선거에 제공한
숫자놀음의 도움으로.

그들은 그의 공약을 나눠 갖는다.
언젠가 신의 사자가
다섯 개의 빵을 나눠 주었듯이.
공약은 점점 더 주위를 더럽힌다!
처음엔 개들만 거짓말을 했으나
지금은 모두가 거짓으로 말한다.
그리고 마치 폭풍의 몰아치듯
지금 그들의 재능은 한껏 부푼다.

싹은 높이 높이 솟아 오르고
땅은 변했다.
민중은 치욕  속에 살며
비열함을 비웃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깨달았다.
최초에 무엇이 꾸며졌던가를.
선은 사라지고
악만 위세를 떨친다!

언젠가 이 위기가
빙벽이 녹아내리듯 천천히 사라지면,
사람들은 마치 어두운 죽음에 대해 얘기하듯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황야 위에
허수아비를 세운다.
슬픔 속에서 기쁨을 불태우기 위해서,
그리고 다시 오는 새벽의 빛을 위하여.



P.S 책에 이 시의 제목을 알려주지 않네요. 아시는 분 있으면 알려주세요. ^___^

    제가 읽은 책은 '청사' 에서 1978년 초판발행, 1991년에 중판발행한 책으로 옮긴이는 박종서 교수입니다.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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