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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30 공무도하 - 김훈
  2. 2008.08.22 남한산성 - 김훈 (4)

공무도하 - 김훈

1. 관계, 사연 그리고 사람

문정수는 기자입니다.
많은 사건이나 사고를 경험합니다. 취재를 하며 안으로 비집고 들어갈수록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을수록 그들의 사연을 알아갑니다. 사람을 닮은 사연들은 각자의 색을 갖고 명멸합니다. 간척되어 마르는 해망지역 못의 물고기처럼 살아 꿈틀거리고 모두가 그냥 넘길 수 없을 만큼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자는 그 사연들을 묻어야 합니다. 신문이 브리태니커가 되는 일은 막아야 하니까요. 기사가 되는 것은 사연을 배제한 무채색의 사실들 입니다. 이런 무채색의 사연들은 일기예보 보다 감흥을 주지 못합니다. 짧은 탄식이나 동정의 대상이 될 뿐이죠.

임금님 귀의 비밀을 알아버린 사람의 심정으로 문정수는 체한 듯 걸려있는 사연들을 노목희에게 이야기하면서 풀어냅니다. 묻어도 자꾸 살아나는 사연들을 노목희에게 방류합니다.
문정수에게 노목희는 대밭이기도 하고, 해망의 바다이기도 합니다.

노목희는 미대를 졸업한 교사였고 출판사 직원입니다.
대나무밭으로서의 일상도 좋아하는 노목희는 문정수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문정수가 그녀의 대밭에서 위안을 얻는 것처럼, 그녀도 문정수의 주절거림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그녀도 변화하는 세상의 빛과 색을 그림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주저함이 있어서인가 봅니다. 만물의 변화를 단정 짓지 못하는 그녀의 주저함은 어쩌면 넘치는 사연을 다 품지 못해 괴로워하는 문정수의 그 어떤 면모와 닮아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장철수
그는 불만과 개혁, 운동이라는 색으로 살아가는 사람인데 색을 잃고 맙니다.
어쩌면 색을 잃은 것이 아니라 신문에서 색을 빼버린 사람들 이야기처럼 색이 빠져 보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세 사람 외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오금자, 그녀의 아들, 소방관 박옥출, 제3자와 그의 어머니, '남'이나 '오'처럼 성만 나오는 사람, 존속살인범, 익명의 익사자, 방미호와 방천석, 후에, 미군 공보관, 횟집마을 사람들......
관계의 밀접함에 따라 사연과 사람은 색이 있을 겁니다.
사람에 따라, 관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하는 색일 테고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명멸하는 색일 테지요.
노목희가 창야의 저수지에서 포착하지 못해 그리지 못하는 그런 빛과 색일 테고요.
문정수가 가슴에 품기에 벅차서 방류해야만 하는 사연과 사람일겁니다.

바람에 날리며 해망의 간척지를 덮는 풀씨처럼 살아도.
다른 사람들이 흑백으로 보는 삶을 살아도.
한 줄짜리 기사거리도 못되는 삶을 살아도.
바다를 그리며 머리가 깨지도록 수조를 들이받는 바다사자처럼 지향점을 갖고 살고 싶네요.
혐오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색깔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 색 자주 변하고, 금세 사라질지라도 말이죠.

2. 맑게 소외된 자리

책을 읽고 난 후 감상은 "허무"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허탈합니다.
그 많은 사연들은 숫자로만 기록되는 익명의 사망자들처럼 덤덤하고요, 명멸하는 사람들의 삶은 기사처럼 감흥이 없습니다. 문정수는 데면데면하고, 장철수는 색을 빼버렸습니다. 그나마 노목희가 유학 가는 장면을 희망적이라고 봐야 하나요?

작가의 말에서 김훈 작가는 이렇게 말하네요.

[ 나는 나와 이 세계 사이에 얽힌 모든 관계를 혐오한다.
나는 그 관계의 윤리성과 필연성을 불신한다. 나는 맑게 소외된 자리로 가서,
거기서 새로 태어나든지 망하든지 해야 한다. 시급한 당면 문제다. (p. 325) ]


작가의 심중에 들어가 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맑게 소외된 자리'가 뜻하는 바도 알기 힘들죠.
그러나 작가가 <공무도하>같이 허무로 가득한 책을 연이어 써 낸다면 10년이 지나지 않아 확실히 '소외된 자리'를 체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의 감상을 '허무'로 받아들인 저의 개인적 잡생각일 뿐입니다.

해망 바다의 풀씨에게 허무는 없습니다.
수조 안에 갇힌 바다사자에게도 없습니다.
오금자, 박옥출, 등 많은 사람들에게 허무는 사치일겁니다.
실망이나 좌절 같은 허무와 유사한 감정은 있겠지만 허무보다 앞서는 것은 배고픔 같은 생존에의 욕구일겁니다.
오금자씨처럼, 그 아이처럼, 박옥출씨처럼일지라도, <남한산성>에서 말 먼지에 피바람이 몰아쳐도 그저 살고 죽는 사람들처럼요. 일단은 살고 봐야죠.

생각해보면 저 같은 단순한 놈의 생존을 위해서 작가는 부러 허무를 내뱉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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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처

잘 살아 보세
  - 민들레처럼


이것이 이 책에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 아닐까 합니다.
삼전도의 굴욕도 있고, 주전과 주화의 말(言) 먼지도 있고, 서날쇠의 지혜로움과 나루의 생명력도 있습니다만, 저는 이 책의 주제를 "잘 살아 보세"로 이해했습니다.



인조 14년(1636년 12월)
말(言) 먼지가 일고, 군량과 더불어 시간이 말라가는 곳,
그 곳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

남한산성에 임금이 있고,
체찰사로서 난국의 해결을 시간에 맡기는 영의정 김류가 있고,
의로움과 충성심으로 주전을 말하는 예판 김상헌이 있고,
매국의 오명을 뒤집어쓰더라도 임금이 살길은 화친이라 하는 이판 최명길이 있습니다.

주화파 이판 최명길을 목 베라는 주청을 올리면서, 강력히 주전을 외치다가 뒷구멍으로 달아나는 당하들도 있고, 자신들의 목숨으로 임금의 목숨을 살리는 당하관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영특하고 부지런히 살아가는 서날쇠와 나루가 있죠.

모두가 나라를 지켜온 사람들입니다.
충성으로 죽은 자도, 살아남은 자들도 말이죠
반만년의 역사동안 많은 외침과 내란이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이름 아래 한글을 쓰면서 살 수 있게 해준 선조들입니다.

백성을 버리고 강화도로 피난 가는 고려의 왕도,
도성을 버리고 몽진을 떠나는 임진년의 선조도,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이 건너고 있음에도 한강다리를 폭파시킨 정부도,
그리고 모질게 살아온 이름 없는 국민들도,
살아있어 우리가 있는 것일 테죠.

부끄러운 역사도 있고, 치욕적인 삶도 있었겠지만,
살아있어, 오늘이 있는 것일 테죠.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고, 논의해야 할 것은 말 먼지를 일으키더라도,
민들레처럼 살아가야겠습니다.
보다 즐겁게 말이죠.

끝으로 최명길의 말을 인용함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 온조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최명길의 이마가 차가운 돗자리에 닿았다. 왕조가 쓰러지고 세상이 무너져도 삶은 영원하고, 삶의 영원성만이 치욕을 덮어서 위로할수 있는 것이라고, 최명길은 차가운 땅에 이마를 대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치욕이 기다리는 넓은 세상을 향해 성문을 열고 나가야 할 것이었다. 최명길은 오랫동안 엎드려 있었다.  (p. 236)


PS. 참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 있습니다.

청나라 칸이 쓴 편지에 대해, 인조가 네 명의 신하에게 답서를 쓸 것을 명합니다.
내용인 즉, 청군이 그대로 돌아가 달라는 것입니다.

최명길은 화친을 주장해 오던 터라 문제가 없었지만,
나머지 세 신하는 만고의 역적 불명예와 어명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정육품 수찬은 몸이 아파 쓸수 없다는 글을 씁니다.
결과는 피똥싸게 장을 맞아 쓸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정오품 교리는 고민 고민 하다가 지병인 협심증이 도져 죽습니다.

정오품 정랑은 임금부터 주전파 주화파의 신하들은 물론이고, 군병들과 노복까지 모두가 살고자 한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살 길을 찾습니다.
바로 간택되지 않을 글을 지어서 바치는 것입니다.

남한산성과 고구려의 안시성은 비교할 수가 없을진대, 이 둘을 비교하는 글을 지어 바침으로 만고의 역적과 매국의 불명예와 임금의 어명 사이에서 죽을 위기를 면합니다.

여기에서도 교훈은 "잘 살아 보자" 인가 봅니다.

Posted by 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