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에 띄운 편지-교사라면…..

Ⅰ. 리뷰를 쓰기 전에

저는 한 때 선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적도 있었지요.
지금은 선생이 아니지만, 선생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어 보게 되더라구요. 그 몇 가지 생각들을 옮겨 보려고 합니다.


Ⅱ. 하고 싶은 말고 담고 싶은 말


1. 질문없는 대답과 대답없는 질문

며칠 전에 윤구병 선생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 중에 선생이 ‘질문없는 대답’을 칠판 한 가득 채우는 것은 무의미 하다는 내용의 말씀이 있었지요.
아이들의 삶에서 소중한 것, 알고 싶은 것, 세상을 살아 가는데 필요하다고 스스로 느끼는 것을 질문하게 되고 그에 대한 답을 선생이 해주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죠. 그렇지 않고 아이들의 질문이 없는 상태로 선생이 혼자의 생각을 칠판 한 가득 채우고 주저리 주저리 떠드는 것은 의미가 없노라고 말이죠.

이 책의 앞부분에 ‘탈 레빈’의 학교에서 20 세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학생이 묻고 선생님들이 대답을 합니다. 재미가 있어서 옮겨 봅니다.

“20세기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사망자, 항생제, 그리고 컴퓨터로 충만해진 거야….”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의미 부여한 것들에 대해 앵무새처럼 주워섬기지 않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실은 제가 그런 경향이 있거든요 …….

세계 발전과 인류공영,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고민은 안해도 좋으니 지금처럼만 스스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 휴전중인 한반도와 가자지구

“여기선 이스라엘 사람들을 아주 과격하게 대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협조한다는 의심을 받는다. 그런 혐의 만으로도 죽을 수 있다.”


전쟁과 살육의 분쟁이 심해지면, 중간영역이나 제3의 길은 보이지 않게 되겠죠. 모두에게 이쪽 아니면 저쪽의 둘 중 하나의 강요된 선택만이 있을 것입니다.

최인훈 작가의 ‘광장’이나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에서 보는 것처럼 말이죠. 한국도 이 상황에서 그리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주적은 북한이고, 이것이 국시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쟁점이 되는 휴전 50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을 보면 더욱 그렇죠.

종전이 아닌 휴전이라는 아리송한 개념 때문에 더 그런가 봅니다. 서해교전으로 인해 안타깝게 산화한 젊은이들의 충정과 애국이 통일을 위한 정책들과 대립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데 말이죠.

3. 일반화 속의 개인

한의학에서 사람의 몸을 하나의 작은 우주라고 하던가요?
이 책의 중간 중간에서 지은이는 이스라엘 또는 팔레스타인 이라고 하는 전체의 묶음으로 서의 이해가 오히려 그 또는 그들에 대한 몰이해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합니다.
단수 이상의 의미를 지닌 그들을 복수로 일반화 시켜서 이해하는 것에는 항상 예외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알아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관련된 내용을 인용해 봅니다.

P 72. [ ‘나, 너, 그’ 하는 식의 단수는 존재하지도 않고, 그냥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는 복수만 있는 거지. 불쌍한 팔레스타인 사람들, 아니면 나쁜 팔레스타인 사람들 하는 식으로 경우에 따라서 바뀌기만 할 뿐 바로 그 복수만 늘 존재하는 거지. 우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하나+하나+하나’가 아니라 늘 400만인 거야. 그러니 사람들은 민족을 통째로 등에 지고서 살아가는 것이고. 무거워. 무거워. 무거워 등이 뭉개질 것만 같아서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져 버리지. ]



4. 개인적으로 몸과 맘에 새기고 싶은 것

대화를 하면, 대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만 주저리 주저리 숨차게 떠들어 대곤 합니다. 이런 사람이 아이들을 앞에 놓고 주입식 교육과정을 수업해야 한다면. 안봐도 훤하시겠죠? 제가 그랬습니다, 진도를 위해, 성적을 위해, 하나라도 더 말하려고 숨차게 떠들기만 했죠.

그러나 저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학교나 학원에 매인 몸이라면, 아마도 이 틀을 벗어나기 힘들긴 할 것입니다. 상급 학교로 갈수록 더 심하겠죠. 그래서 수업을 하면서도 수업을 듣는 아이들이 불쌍했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이게 제 맘의 허영이고, 사치나 교만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랬습니다.

저에게 해주는 말이라 생각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책에서 탈의 친구인 ‘나임’ 에게 NGO 회원이 해주는 말이죠. 담아두고 싶은 말이기에 옮겨 적어 봅니다.

[파올로가 이어서 말했어. “네가 보다시피 우리가 분쟁을 멎게 할 수는 없어. 그렇다고 모두에게 돈을 나눠줄 수도 없고. 하지만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그들 속에 있는 상처를 발견하도록 도울 수 있다면 그 상처들이 나아질 수도 있겠지. 그토록 힘든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스스로 더 강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거야.” 윌리가 말했어. “특히 중요한 건 그 사람들이 각자의 하나의 개체로 존재한다는 걸, 그들이 공통된 운명에 처해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닮은 꼴인 익명의 존재가 아니란 걸 인식하는 거야. 그 사람들 각자는 둘도 없는 유일한 존재니까.”]


Ⅲ. 마무리

픽션인줄 모르고 집어 든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세계사의 흐름에 대해서나, 이-팔 간의 대립구도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책은 아니지만, 전체로서 취급되는 개인이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의 풋풋함을 통해, 새싹을 보면서 열매 맺는 나무를 꿈꾸게 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http://lawcher.tistory.com2007-11-11T08:54:340.3810
Posted by 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