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 - 유시민
노무현과 조선일보가 어떻게 싸움을 시작했고, 조선일보의 보도가 어떤 식이었는지를 설명하는 책 입니다. 설명 방식은 조선일보와 그 외 언론의 보도 비교, 그리고 발언 당사자인 노무현의 기록과의 비교 입니다.
아는 분들은 다 아실 겁니다. 호화요트 부터 시작해서 '노무현의 깽판 발언과 비교되는 이회창의 빠순이 발언'에 이르기까지 언론 별로 다루는 태도와 관점이 다름을 말이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정치에 이성 뿐 아니라 신념과 이상이 같이 있기에 신앙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독선적 신앙이 돼 버린 정치관은 이미 다른 견해를 사이비와 사탄으로 규정하나 봅니다. 그러니 다른 견해가 귀에 들어올 리가, 다른 생각이 머리와 가슴에 파고들 여지가 없겠죠. 뭐 다른 사람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라 제 얘기입니다. 저 스스로 조심하자는 얘기이고요.
그래서 이 책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한국일보 '박래부 논설위원'의 칼럼을 아래에 인용해 봅니다.
2002년 7월 10일 <위악은 위선보다 안전하다>
-'박래부' 칼럼의 일부 발췌
[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독특한 어법으로 남북관계를 역설하다가 혼이 났다. 정당 연설회에서 "남북대화 하나만 성공시키면 다 깽판 쳐도 괜찮다."고 말했다가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은 것이다.
언론들은 그의 비속어 사용을 장기간 강도 높고 집요하게 비판했다. "대통령 후보가 뒷골목 말을 해서야......" 하는 식의, 이성보다는 감성을 앞세운 비판일수록 대중적 설득력을 갖는다. 그 말은 사실 민망하고 부적절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격식을 따지는 형식상의 비판이 남북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말의 본질을 흐려서는 안 된다. 강조법적 수사학을 위악적으로 동원한 그 말은 남북관계의 성공에 대한 의지와 집념, 진정성을 강조해서 전달하고자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서해교전 후의 상황을 보면, 그가 우려한 대로 남북의 평화구조는 허약하기 이를 데 없고 순식간에 긴장의 살얼음이 깔린다. 위험하기 때문에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위악이 아니라 위선이다. 정치인에게는 품격으로 포장된 미사여구보다 창조적인 사고와 실천의지가 더 값지다. 점잖은 화법으로 치면 최근 구설수에 오른 한 국회의원을 따라갈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주간한국'에서 "우리나라도 명문학교를 나온, 좋은 가문 출신의, 훌륭한 경력을 지닌 사람 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가 비난을 받았다.
장욱진은 도저한 정신의 자유를 추구했던 화가다. 세상에 대한 통찰력도 탁월했던 그는 겸손-교만-죄의 관계를 이렇게 갈파하고 있다. "나는 심플하다. 때문에 겸손보다는 교만이 좋고 격식보다는 소탈이 좋다. 적어도 교만은 겸손보다 덜 위험하며, 죄를 만들 수 있는 소지가 없기 때문에 소탈은 쓸데없는 예의나 격식이 없어서 좋은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 라는 다정한 말이 얼마나 지역감정을 조장하며, '북한 퍼주기'라는 말은 어떻게 남북관계를 왜곡하고 있는가. 거친 비속어보다 비수를 품격으로 은폐한 말이 더 위험하다. 우리는 위장된 말로 반민주적 편견을 조장하거나, 평화 를 위협해서는 안 된다.
교언으로 냉전시대로의 복귀를 속삭여서도 안 된다. 이성적 언어로 평화를 얘기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