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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의사 장기려 - 손홍규
    인물, 평전, 전기 2009. 1. 2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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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에 '작가의 말'에서 지은이는 이 책을 소설이라고 합니다.
    소설이라니.....
    여지껏 이 책을 평전이겠거니 하고 읽었는데 황당했지요.
    가만 생각해보면 많은 대화들, 독백, 생각이나 상황묘사가 너무 생생하긴 했죠.
    영화 <트루먼 쇼>처럼 일생을 중계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겠다 싶네요.

    그래도 저는 평전이라고 생각할래요.
    <칼의 노래>나 <불멸의 이순신>으로 이순신 장군을 새로 알아가는 것처럼, 장기려 선생에 대해 이렇게 알아가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요. 후에 <장기려, 그 사람> 이라는 평전을 읽은 후에 사실과 크게 다르다면 소설이라고 번복할 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1. 무엇을 할 것인가


    [ 할머니는 늘 그를 위해 기도했다.
    "이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에서 크게 쓰임 받는 일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할머니의 바람대로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할머니, 죄송해요. 기려는 할머니가 생각하는 그런 일꾼이 되기에는 너무 게으르고 욕심이 많아요.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할머니, 저를 보고 계시다면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세요.' (p. 43) ]


    한국의 슈바이처로 존경받는 장기려 선생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네요.
    당연히 있을 시기를 당연히 없다고 경시하는 이면에는 다른 블로거님의 말대로 '하늘이 내린 인재'로서의 위인에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장기려 선생은 서원을 합니다.


    [ 그는 두 손을 모아 쥐고 눈을 감았다.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또한 수많은 기억들이 먼지처럼 떠돌았다.
    그는 포충망을 들고 곤충을 채집하는 아이처럼 그 숱한 생각과 기억들 가운데 지금까지 자신에게 큰 감명을 주었던 것들만 거두어들였다. 맨 마지막에 김주필과 그의 어머니가 기려의 내부로 스며들어왔다. 그것들이 기려의 내부에 들어온 대신, 그의 내부에 고여 있던 눈물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제가 의사가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때 누군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무엇 때문에 의사가 되려고 하느냐?"

    그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만약 제가 의사가 된다면 의사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습니다."     (p. 80) ]



    조금은 유치하기도 그래서 민망하기도한 서원의 장면들조차 감동인 이유는 장기려 선생의 실천이 있기에 그럴 겁니다.
    혈액이 필요해서 스스로 무리하게 헌혈을 하고, 사비를 들여 진료비에 보태고, 무의촌 진료에 열을 쏟고, 자신의 잘못이 있으면 간호사에게 무릎 꿇을 줄 아는 선생의 삶이 서원을 보증해줍니다.

    나이가 들고 상황이 변하면서 융통성 있게 바뀌게도 마련인 서원.
    어린 시절의 그 서원을 바보처럼 계속해서 고민하고 실천하는 선생의 삶이 있기에 소설이라면 유치할 수도 있는 서원의 장면도 마음을 울립니다.


    2. 외식하는 자들


    [ 그는 병원을 쉬는 날이면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칠성문 밖 빈민촌과 용산 면의 빈민촌을 찾아갔다. 어떤 목회자들은 그가 주일성수를 지키지 않는다고 힐난했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저는 의사입니다. 만약 당신이 위급한 병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 저와 같은 의사가 주일성수를 이유로 당신에게 오지 않는다면, 그래도 당신은 기꺼이 받아들일 자신이 있으십니까?"     (p. 171) ]


    불편한 진실이고, 통쾌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작가의 시선인지 정말 장기려 선생의 시선인지는 작가가 소설임을 시인하면서 알 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함석헌 선생과 가까이 사귀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작가의 시선만은 아닌 듯 합니다.

    자신의 신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교리를 정통이라고 믿는 믿음, 의심이나 비판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보고, 남들을 가리키며 이단을 말하는 사람들의 기사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막히고 필요이상 분노하게 됩니다.

    이제는 화내지 않으려고요.
    이 좋은 책을 읽으면서도 그 '화'가 많은 생각을 가렸거든요.
    그리고 저도 제 눈에 어떤 들보가 더 들어있을지 감당할 수 없어서이기도 합니다.

    후퇴하는 군인처럼 사람보다 '국가'나 '주의'를 우선시하지는 않는지
    김주필의 사례처럼 책임져야 함에도 책임을 미루었는지
    한국전쟁 당시의 치안처럼 복수에 눈이 멀어 그걸 정의라고 하는지.
    남과 북의 고관들처럼 어떻게든 자기 살 자리 마련에 열을 올리는지.
    행동하지 않고 너무나 쉬운 비난을 하지는 않는지.
    기도해야겠습니다.

    3. 장기려 선생에게 환자란

    좋은 구절이라 담아두고자 인용해 봅니다.


    [ 그리고 그는 힘들 때마다 의학도였던 시절 스승이 들려주었던 말을 떠올리며 견뎠다.

    "왜 아픈 사람을 일컬어 환자(患者)라고 하는지 아나? 환患은 꿰맬 관串자와 마음 심心자로 이루어져 있다네.
    상처받은 마음을 꿰매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네. 다시 말해 환자란 다친 마음을 어루만져줄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야.
    눈에 보이는 상처는 치유하기 쉽지만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네. 자네가 진정한 의사가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환자의 마음을 고치는 의사가 되어야 하네."
    (p. 406) ]


    써놓고 보니, 장기려 선생의 업적이나, 빛과 소금 같았던 일생에 대해서는 쓰지 않았네요.
    일단 '한국의 슈바이처' 이 말 한 마디로 대신할게요. 그리고 기록이 필요하다 생각되면 <장기려, 그 사람>이라는 평전을 읽고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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