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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체 - 박범신

읽을 것이 없어서 도서관 서가를 돌아다니다가, 최근에 떠들썩했던 책이기에 집어 왔습니다. 말이 많았던 책에 대한 이상한 거부감을 심심함이 이겨낸 결과죠. 이 책의 앞에 '작가의 말'에 개인적인 고민과 엇갈리는 부분이 있어서 "두고 보자!"는 심산으로 읽었어요.

[ 감히 고백하거니와, 나는 '존재의 나팔소리'에 대해 썼고 '시간'에 대해 썼으며, 무엇보다 불가능해 보이는 '꿈'에 대해, 불멸에 대해 썼다.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현대인에게, 또 자본주의적 안락에 기대어 너무 쉽게 '꿈'을 포기하는 젊은 내 아이들에게 들려주고자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것은 숨기고 싶지 않다. 소망대로 잘 완성 됐는지는 물론 단정할 수 없다. 소설이란 독자와 소통의 길을 내는 것이면서 왕왕 독자의 '오해'를 만드는 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p. 10 중에서> ]

작가가 '감히'라는 단어를 앞에 두고 고백한 것처럼 이 정도면 '인생'의 모든 것을 다루었노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나처럼 저 역시 깊이 있고 연속적이진 않지만 '꿈'과 '정체성'과 '존재의 나팔소리'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니, 이 책을 읽어봤습니다.

소통

박상민과 정선배는 잡음 섞인 무전기를 통해서 하고 싶은 외마디를 나눕니다.
"그 놈 중 되겠다고......"와 "도장 찍었어요." 하영교의 말대로 웃기는 화법입니다.
함께 먹고, 마시고, 잠자면서 하지 못하는 얘기들을 술기운 빌듯, 무전기 잡음에 섞어서 얘기를 합니다. 일상에서는 이것저것 눈치 볼 것도, 생각해야 할 것도 많지만 그것이 점점 사라지는 상황의 힘을 빌어서 겨우 통하는 것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의 절박함과 단순한 상황

복잡한 집안 내력만큼이나 순탄치 못한 인생을 살아가는 두 형제.
하영교와 박상민 형제는 맘에 담고도 풀어두지 못했던 응어리들을 하나 둘 풀어냅니다. 치고받고, 악을 쓰고 욕도 합니다. 비박의 혹독함을 느끼는 신음소리와 상상, 등 수단을 가리지 않고 맺힌 것이 풀립니다.
둘 만 있는 정적의 장소, 살아야 하는 이유 외에는 배제된 곳이기에 막혔던 물길이 다시 흐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에 어울리는 시가 책의 끝부분에 있어서 인용해 봐요.

[ 눈물짓는 슬픔에 찬 세상을 떠나서
  고독한 동굴을 네 아버지로 삼고
  정적을 네 낙원으로 만들라
  사고(思考)를 다스리는 사고가 기운찬 말이고
  네 몸이 신들로 가득 찬 너의 사원이니
  끊임없는 헌신이 너의 최선의 약이 되게 하라
 
                     - 밀라레파 - <p.331 중에서> ]



다시 현실로

책의 구절들 중에 맘에 드는 구절이 있습니다.

'정상은 모든 길이 시작되는 곳이고, 모든 선이 모여드는 곳.'

그 곳에서 응어리들이 다 풀렸는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촐라체를 넘었고, 다시 또 현실에서 시작입니다. 정선생과 박상민과 하영교는 무전기의 잡음 없이 얘기하기 힘든 일을 또 겪을지도 모르고, 묻고 싶은 것을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응어리를 다시 키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소설 속 인물의 삶을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제가 가진 응어리가 있다면 풀고, 가슴 따뜻해지는 사랑도 하며, 존재의 나팔을 불어야죠. 아직 넘어야 할 정상이 무엇인지 푯대도 알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입니다만, 촐라체에 선 두 형제들처럼 정적 안에서 상황을 좀 단순화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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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살아간다는 것) - 위화

우리 마을에 처음으로 생긴 공립도서관, 그 곳 강당에서 접이식 간이의자 백여 개를 놓고 한 영화상연을 통해 처음 만났습니다. 영화 제목이 '인생'. 까까머리 코흘리개 중학생이 살면 얼마나 살았다고, '인생'이란 제목의 영화를 보기위해 거기에 앉아있었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영화를 접하기 어려운 때라, 공짜로 영화를 보기 위해서였겠죠.

영화 곳곳에 나오는 중국 근현대사를 몰라도(지금도 잘 모릅니다.) 참으로 재미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추억은, 불편한 접이식 의자에 앉아서 같이 영화를 보던 사람들과 같이 탄식하고, 웃으면서 호흡을 같이 한 기억입니다. 추억은 항상 아름다운 과장으로 범벅이 되는 것일지는 몰라도, 그 때의 추억은 제 머릿속에는 영화 '시네마 천국'의 마을극장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머리가 굵어진 후, 우연히 그 영화의 원작이 책이란 것을 알았어요.
작가는 '위화(여화)' 책 제목은 '인생(살아간다는 것)' 입니다. 영화와 책은 조금씩은 다릅니다. 아마도 그걸 각색이라고 하나 봅니다.

책이건 영화건 본론을 얘기해야죠. 너무 사담이 길었습니다.
처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제법 있어서, 도련님 소리를 듣는 철부지가 있습니다. 이름은 '푸구'. 결혼도 해서 딸까지 하나 있는 이 녀석은, 가족의 만류에도 도박과 기생에 빠져 삽니다. 결국 도박으로 모든 것을 잃습니다. 집도, 땅도, 도련님이라는 지위도, 곧이어 아버지, 어머니도 말이죠.

그나마 다행인 점은 푸구가 젊다는 것과 그의 아내 '자전'은 착하고 지혜롭다는 것 입니다.
'푸구'와 '자전' 그리고 사랑하는 딸 '펑샤'와 막내아들 '유칭' 이들이 가족이라는 것도 눈물나게 다행입니다.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풀처럼 사는 사람들. 이들의 행복을 빌어주실래요? 저도 여러분의 행복을 빌어드리겠습니다.


아래는 그냥 개인적인 기록입니다.

1. 나만 모르는 것

그가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는 사실을 주위가 다 알아도 정작 본인은 모릅니다.
'반만 잃었을 때 알아차렸다면.', '집만이라도 살렸다면.' 싶지만, 푸구는 파산을 할 때까지 알지 못합니다. 매일같이 외상장부에 지장을 찍으면서도, 아내 '자전'이 임신한 몸으로 걸어와서 하소연을 해도 알지 못합니다.
답답합니다. 책속으로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서 멱살을 잡고 한 대 때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책 밖으로 나와 봤는데 저 역시 뭔가를 계속 잃고 있네요. 시간, 금전,......을 말입니다. '푸구'와 같은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 잃고 있는 것과 버려야 할 것 그리고 새출발의 기초자산

푸구는 재산과 가족을 잃고 있었고, 도박과 기생을 버려야 했습니다.
책 속의 푸구 인생과 때때로 들려오는 다른 사람의 인생은 훤히 보이는 것 같은데, 막상 자신의 인생은 잘 모르겠습니다. 잃고 있는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알 것도 같으면서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끼적여 보면 버려야 할 것은 '같지 않은 학벌'과 '자존심', '주위의 시선이나 평가', '체면' 이런 것이 있네요.

푸구는 그림자극 소품(영화)과 농지(책),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로 다시 살아갑니다. 저는 무엇으로 다시 출발해야 할까요? 이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묵적도, 방향도......

써놓고 보니 일기인지 리뷰인지........
신세한탄을 공개하는 것도 같습니다만, 신세한탄이 아니라 반성하고자 함이니 좋게 봐주세요. 그리고 '무슨 짓을 하던지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이 책 머릿말에서 작가가 한 말에 영향을 받아서 제가 한 동안 읊조리고 다녔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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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졸라'와 '씨바'를 즐기신다면 재미있습니다

책의 내용과 무관하게 추천하기가 망설여지는 이유가 이 책의 말투에 있습니다.
이 책은 '졸라' 와 '씨바'를 섞어서 쓰면서 공대와 하대를 번갈아합니다.
이 두 단어는 그 예일 뿐이죠. 한 구절 인용해 보면 이렇습니다.


[ 당신 말이 옳다. 당신 억울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직장 내 게임 룰은 여전히 남자들이 세팅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 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너, 내 편이냐 아니냐. 그 피아 구분을 위해, 그 패거리 짓기를 위해, 남자들은 끊임없이 이너 서클을 만든다. 그렇게 우린 한통속이라는 의식을 조직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계보가 만들어 진다. 위로 갈수록 승진은 계보를 탄다.

집안 생계 운운하는 것은 남자들의 옹색한 핑계요,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그 말이 진정이라면 소녀 가장 승진이 가장 고속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p. 194) ]



이런 글들이 저는 그저 재미있습니다. 막말이 솔직이나 담백을 무조건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원해서 좋습니다.
하지만, 익숙지 않으신 분들은 이 책의 말투가 목불인견일지도 모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전에 마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신해철씨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어본 적이 있어요.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이라고요.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은 줄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는 신해철씨의 말투가 거슬려 도저히 못 듣습니다.  
이 책 <건투를 빈다>의 말투에서 좋고 싫음이 많이 갈리지 않을까 싶어요.


2. 인간관계론처럼 스테디셀러가 될까?

형님의 추천으로 읽게 된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재미있게 봤어요.
이 책도 사람 사는 세상의 크고 작은 문제와 그로 인한 고민들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이 책도 오래도록 사랑받을까요?

제가 생각하는 두 책의 비교를 짤막하게 써 볼게요.

<'건투를 빈다'의 좋은 점>

첫째, 말투가 재미있습니다. 위에 말씀드렸듯이 개인차가 클지도 모릅니다.
둘째, 시원시원한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문제는 쉬워보입니다.
셋째, 내담자와 상담자 모두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공감하기가 쉽습니다.진로, 직장, 부모, 연인, 사이의 문제들이 남일 같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건투를 빈다'에 없는 점>

인간관계론과 다르게 상담의 추이나 문제의 개선여부는 없어요. 고민에 이은 시원한 답변으로 끝입니다. 이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할 말만 하고 끝나니까요.
그렇다고 생각할 여지가 형편없이 적다는 말은 아닙니다.

3. 저를 찌르는 말들 - 선택과 감당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저를 찔렀던 말은 서문에 있는 구절(스스로에게 해야 될 질문을 남에게 하고 있는가?) 과 '선택' 그리고 '감당' 입니다.
직장, 진로, 부모, 연인, 부부, 친구, 돈, 등 힘들게 하는 문제의 많은 부분에 이 두 단어가 있어요.

선택과 감당

'선택과 감당'이 사용된 많은 구절들 중에서 둘을 인용해 볼게요.


[ 선택은 언제나 선택하지 않은 것을 비용으로 한다. (p. 114) ]

[ 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리스크가 따른다. 모든 선택에 따른 위험부담을 제로로 만들어달라고 한다면 그건 삶에 대한 응석이다. 그러니 중요한 건 선택의 이유다. 나머지는 그 이유를 붙들고 감당하는 거다. 스스로 설득될 이유가 있는지 생각해보고, 만약 그런 게 있다면, 그럼 누가 뭐라고 하든  그 결과까지 자신이 감당하는 것, 그게 어른의 선택이다. (p. 158) ]


참 우유부단한 저로서는 뜨끔하더라고요.
뭐 이런 말들 처음 들어본 말도 아니고, 스스로 생각 안 해본 바도 아니지만요.
'선택과 책임'으로 주로 되뇌고 있던 차에 '감당'이란 단어가 들어오네요.

그만 떨고, 감당할 수 있는 선택하러 가야겠어요.
감당할 각오로 선택하러 가야겠어요.
그리고 스스로가 언제 행복한 지, 화나는 지, 슬픈 지, 기쁜 지, 대충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려고요.

Greenbea 님께서 달아주신 <빵굽는 타자기>에 대한 댓글로 마무리 할게요.

항상 눈을 뜨고 있으면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뭐든지 유익할 수 있고, 내가 미처 몰랐던 것을 가르쳐 주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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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된 우예슬 양과 이혜진 양의 명복을 빕니다.


연일 신문, 방송에 안양초등학생 사건 기사가 보도 되고 있습니다.

끔찍하고, 몸서리쳐지게 무서운 일입니다.

그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억울하고 무서웠을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사형제 존폐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못하겠습니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분노하고, 사형 이상의 형벌이 있으면 그것을 집행해야 할 것만 같은 선정적인 기사들을 보게 됩니다.

그래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에 보았던 영화들이 다시 보고 싶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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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드맨 워킹>                  <타임 투 킬>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사진출처 - DAUM 영화

데드맨 워킹에 대해 정리를 잘 해 놓으신 분의 블로그를 링크함으로 대신합니다.

류다 님의 블로그 - <데드맨 워킹-죽은 자와 함께 걷는 삶의 길>
그리고 여기에서는 우..시의 몇 부분을 인용하려 합니다.

이렇게 저는 최대한 객관적인 척,

비겁하게 거리를 두고 숨어 보려 합니다.

답을 모르겠습니다. 결론을 내리기 힘이 듭니다.

그렇게 또 피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행시>에 나오는 밥 딜런의 <바람만이 아는 대답>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래에 네모표 안은 우..시의 구절들 인용입니다.

 

 

<바람만이 아는 대답> - 밥 딜런

 

 

사람이 얼마나 먼 길을 걸어봐야 비로소 참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흰 비둘기가 얼마나 많은 바다를 날아야 백사장에 편히 잠들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포탄이 휩쓸고 지나가야 더 이상 사용되는 일이 없을까

나의 친구,

그 해답은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있어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러야 높은 산이 씻겨 바다로 흘러 들어갈까

사람이 자유를 얻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하는 걸까

 

사람들은 언제까지 고개를 돌리고 모른 척할 수 있을까

나의 친구,

그 해답은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있어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지

 

사람이 하늘을 얼마나 올려다봐야 진정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사람들의 비명을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죽음이 있어야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다는 걸 알게 될까

나의 친구,

그 해답은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있어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지

 

 

어떻게 몰라?

아까 보니까 고모는 여기 서울 구치소 종교위원이라던데…….

저 사람한테 편지하려고 했을 땐 뭐 좀 알아보고 했을 거 아냐?

 

난 저 애를 오늘 처음 만났다. 유정아, 저 애랑 난 오늘 처음 만난 거야. 그게 다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너는 누구를 처음 만나서, 이제껏 무슨 무슨 나쁜 짓을 하다가 여기서 이렇게 날 만나게 되었습니까? 하고 묻지는 않잖니. 자기 입으로 그 얘길 하면 그냥 듣는 거지. 나에게는 오늘 본 저 애가 처음인 거다

오늘의 저 아이가 내게는 저 아이의 전부야.

 

그래서, 죄인이 그렇게 금방 천사처럼 변하는 게 좋아서……

하느님의 말씀이 요술 지팡이처럼 인간을 변화시키는 거 보고 고모랑 여기 드나드는 종교위원들 신앙심이 더 강해지나보지? 이상할 것도 없잖아.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언제고 자기네들 죽는다니 무서운 모양이지. 자기네가 다른 사람 죽일 때는 안 무서웠는데 이제 자기네들 죽인다니까 무서워서 얼른 착해지나보지…….. 그렇다면 사형제는 참 좋은 거네. 죽음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조금은 착해지는 게 보통일 테니까. 고모가 그때 교도관에게 말했던 그대로 최고의 교화잖아?

 

 

그럼 힌트를 줄게.

자기들이 죄를 지었다는 걸, 사연이야 어떻든 적어도 인정한다는 쪽이 하나 있고, 자신들은 죄가 있기는커녕 괜찮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쪽도 있어. 앞의 한쪽은, 그들은 최소한 몇 번의 잘못으로 평생 동안 벌을 받지만 다른 한쪽은 그걸 반복한다는 거지. 자신들이 꽤 괜찮은 인간들이라고 생각까지 해가면서…… 그럼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은 이 중 누구일까요?

 

 

유정아………고모는 ………. 위선자들 싫어하지 않아.

뜻밖의 말이었다.

 

목사나 신부나 수녀나 스님이나 아무튼 우리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위선자들 참 많아. 어쩌면 내가 그 대표적 인물일지도 모르지…….. 위선을 행한다는 것은 적어도 선한 게 뭔지 감은 잡고 있는 거야. 깊은 내면에서 그들은 자기들이 보여지는 것만큼 훌륭하지 못하다는 걸 알아. 의식하든 안 하든 말이야. 그래서 고모는 그런 사람들 안 싫어해. 죽는 날까지 자기 자신 이외에 아무에게도 자기가 위선자라는 걸 들키지 않으면 그건 성공한 인생이라고도 생각해.

 

고모가 정말 싫어하는 사람은 위악을 떠난 사람들이야.

그들은 남에게 악한 짓을 하면서 실은 자기네들이 실은 어느 정도는 선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위악을 떠난 그 순간에도 남들이 실은 자기들의 속마음이 착하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래.

그 사람들은 실은 위선자들보다 더 교만하고 더 가엾어..

 

그리고 고모가 그것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아무 기준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남들은 남들이고 나는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물론 그럴 때도 많지만 한 가지만은 안 돼.

사람의 생명은 소중한 거라는 걸, 그걸 놓치면 우리 모두 함께 죽어. 그리고 그게 뭐라도 죽음은 좋지 않은 거야……. 살고자 하는 건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에 새겨진 어쩔 수 없는 본능과 같은 건데, 죽고 싶다는 말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고, 이렇게 살 고 싶지 않다는 말은 다시 거꾸로 뒤집으면 잘 살고 싶다는 거고………

그러니까 우리는 죽고 싶다는 말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말해야 돼.

죽음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하는 건, 생명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기 때문이야……..

 

살인 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사형제 존치론자가 되고,

사형 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사형제 폐지론자가 된다…….

 

 

기도해 주거라. 기도해.

사형수들 위해서도 말고,

죄인들을 위해서도 말고,

자기가 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나는 안다고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 위해서 언제나 기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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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위화

웃지 못할 자기 희생

‘허삼관매혈기’라고 한문이 아닌 한글로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한 눈에 매혈의 뜻을 알아차리는 분이 많지는 않겠죠?
-어린 독자시라면 더욱더….
이 책에는 해학이 넘치는 자기희생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선 매혈의 본보기를 말한 후에, 왜 눈물나게 웃긴 지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1. 매혈의 본보기(?)
 
피값으로 사는 인류의 역사가 꽤 전통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적어 봅니다.

우선, 예수는 피를 파셨죠.
경우에 따라서는 몸을 파셨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예수의 피를 산 이는 하나님, 그의 매혈 덕분에 산 사람은 인류입니다.

그 다음, 석가모니 역시 수 많은 수행 중에 인신공양을 하셨죠.
그 분 역시 피를 팔고, 몸을 파셨습니다. 그의 피를 산 이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매혈 덕분에 복받은 이는 온 중생입니다.

셋째, 이 책의 주인공 허삼관 또한 매혈을 합니다.
그의 피를 산 이는 이혈두와 병원, 그의 매혈 덕분에 산 사람은 그의 세아들

모두 피를 팔았습니다.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요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 의하면(아직 못 읽었지만), 허삼관의 매혈은 결국 자신의 유전자를 위한 행위라고 이해되겠지만, 본인을 위함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 눈물나게

허삼관은 집안에 큰 일이 있을 적마다 피를 팝니다.
땀흘리는 것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 피를 팝니다.
자기는 복을 받아 건강 하다고, 자랑을 하면서 피를 팝니다.
그 아비의 피값으로 가족이 살아갑니다. 나중에 아비가 늙어서, 피를 팔 수 없을 때, 자식이 그만큼 다 자라 있을 때도 아비는 피를 팔 생각을 합니다.

“이젠 늙어서 아무도 내 피를 거들떠 보지 않아…..., 앞으로 집에 일이 생기면 난 어떻게 하지?”

저 역시 어미 아비의 피 같은 땀으로 자랐습니다.
지금 아버지 어머니의 마디진 손과 자글자글한 주름은 세월의 남긴 상처만은 아닐 것입니다.
부모님의 주름을 보고 우는 것도 불효라 생각합니다.
눈물 그렁그렁 하더라도, 웃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3. 웃기다

허삼관이라는 세 아이의 아비는 그 위인됨이 우습습니다.
김유정 작가의 소설 ‘봄봄’, ‘동백꽃’에 나오는 캐릭터 만큼 우습습니다. 김동인 작가의 ‘발가락을 닮았다’ 처럼 우습습니다.

사람들이 채플린이나 영구 같은 바보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죠? 위험하지 않고, 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며, 자신보다 못하기 때문이라고 들은 듯 합니다.

허삼관은 바보는 아닌데도, 일상이 우습습니다.
아마도 저의 일상을 이리 옮겨놓아도 여럿을 웃길 것 같습니다.
허삼관의 황당한 위인됨을 들여다 보면 아래와 같아요.

“허삼관이 그 깨진 삼각형의 거울을 손에 들고 자신의 눈을 한 번 보고 다시 일락이의 눈을 보니, 그 눈이 그 눈이었다. 그는 다시 자신의 코를 비춰보고 다시 일락이의 코를 보니 역시 그 코가 그 코였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모두들 일락이가 날 안닮았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래도 닮은 구석이 있구만.'”


가뭄 때문에 온 가족이 굶을 때, 말과 상상으로 요리를 먹는 장면입니다.

"일락이는 뭘 먹을래?" "홍소육요." 허삼관은 기분이 약간 상했다. "세 놈이 죄다 홍소육을 먹겠다니.....,왜 좀더 일찍 말하지 않고, 일찍 말했으면 한꺼번에 만들잖아. 그러면 한 번에 끝나고...,자 그럼 일락이에게 고기 다섯 점을 썰어서....."

4. 해학이 넘칩니다
.

없는 사람들이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그 고단을 날려버리는 것이 해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있는 사람은 재기발랄한 위트는 있을 지 언정 해학은 모를 것입니다.
자본에도 국경이 없고
노동자에게도 국경이 없고
가난에도 국경이 없으니 해학에도 국경은 역시 없나 봅니다.
오늘 중국의 해학을 맘껏, 맛보고 갑니다.
http://lawcher.tistory.com2007-11-08T05:51:45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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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살아간다는 것)


인생이라! 책 제목 한 번 거창하다.
제목부터 보자 치면, '너 인생 똑바로 살아라'하며 가르치려 드는 책 같이 오만방자해 보인다.
4대성인 외에 누군가 인생을 가르치려 든다면 누가 곧이 듣겠는가?
최고기업의 CEO?, 덕망있는 정치인?, 종교지도자?
그들이 자신의 삶을 발가벗겨 드러내놓고 낮아지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의 인생강의를 들을 의향이 없다.
세상에 귀천도 있고, 계층도 분명하지만, 스스로 귀하지 않은 인생이 없기에, 누구나 자신만의 삶이 있고, 각자에게는 스스로의 인생의 무게가 있기에 그렇게 난 자신만만하다.

저자 위화는 '인생'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발가벗긴다는 단어도 어울릴 정도로 말이다.
어떻게 자연스럽게 '인생'을 보여주는 지는 예비독자들이 해야할 일이다.
- 난 스포일러가 되어 여러분의 감상을 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최대한 줄거리는 배제하려 한다.


1. 유의점 -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털난다

방문해 주시는 분들의 얼굴을 붉히기 위해서 쓴 글이 아님을 밝혀둔다.
저속하다고 손가락질 하실 분은 하시라고 말씀 드린다.
동심으로 돌아가 보자고 가감없이 써 본 표현이다. ㅡㅡ;
그런데 책을 읽고 나시면 손가락질 자제하시게 될 것이다.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면서 책을 읽다보면 주위 사람을 의식하게 될 정도이니 말이다.

2. 책 제목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데 '푸구이'는 전통적인 우리의 아버지로 보였고, 불평없이 꿋꿋하고 한결같은 그리고 순종적이어서 더 슬픈 '자전'은 우리의 어머니로 보였다. 그래서 더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고, 울고 웃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 책의 제목은 '아버지'로 해도, '어머니'로 해도 또는 '가족'으로 해도 어색하지 않다.
그렇지만 역시 '인생'이 잘 어울린다.

읽은 후에는 아시리라, 책쓰는 이들이 흔히 말하는 잘난 척 하는 '인생'이 아님을,
눈물나고, 때론 우습기도 한 잔잔하고 속 깊은 인생임을 말이다.


3. 끝으로 영화이야기

사실, '인생'은 공리가 주연한 영화로 첫만남을 가졌다.
'인생'이라는 영화를 처음 본 것은 머리를 짧게 깎아 까까머리였던 중학시절 이었다.
마을의 도서관에서 백여명 남짓 되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같이 울고 웃으며 보았던 영화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은 그 내용도 떠오르진 않지만,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그리도 울다,웃다를 반복하며 본 기억만으로도,
인생 최고의 영화들 중 하나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http://lawcher.tistory.com2007-10-24T14:28:080.31010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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