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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합니다.
다른 분들은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말이죠.

저는 이 책을 읽고 나니, 4 개의 이야기가 흐름의 전부라고 생각 되더라구요.
눈길이 제법 오래가는 구절들도 있었지만,(그 구절들은 따로 담겠습니다.)
결국은 아래에 옮겨 적는 4개의 이야기가 뼈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이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 답지 않게, 도식적이고 메시지도 분명한 듯해서
좀 놀랐습니다.

그래서,
다행인 것은, 우울하지 않아 좋다는 것입니다.
불만인 것은, 헐리웃 영화의 해피엔딩 같다는 것과, '부부클리닉' 같은 교훈적 메시지라는 것 입니다.
어쩌면, 하루키도 좀 정상적(?)으로 살아 보고 싶다는 소망을 담은 결말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제 그 4 개의 이야기를 담아 보겠습니다.


첫째, 사막은 살아있다

"말이야. 세월이라는 것은 사람을 여러 모습으로 바꿔버리는 걸세. 당시 자네와 그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네만.
하지만 설사 무슨 일이 있었다 해도, 그건 자네 탓이 아니야. 정도의 차는 있어도, 누구에게라도 그런 경험은 있는 법이지. 내게도 물론 있어,
거짓말이 아닐세. 내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것은. 누군가의 인생은 결국 그 누군가의 인생인 것이야.
자네가 그 누군가를 대신해 책임질 수는 없어. 세상은 사막 같은 곳이고. 우리는 모두들 거기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거야.
저 초등학교 시절에 월트 디즈니의 <사막은 살아 있다>라는 영화 본 일 있지?"

"있지."

"그것과 마찬가지야. 이 세계는 그 영화와 마찬가지라구. 비가 내리면 꽃이 피고, 비가 오지 않으면 꽃은 말라 시들어 버리네, 벌레는 도마뱀에게 먹히고, 도마뱀은 새들에게 먹히고, 그러나 언젠가는 모두 죽어가지. 죽어서 바싹 말라버리고 말아. 한 세대가 죽으면,
그 다음 세대가 그 자리를 대신하네. 그게 정해진 이치일세. 모두들 제각기 다른 삶의 방식을 취하고 제각기 죽는 모습도 다르다네. 그러나 그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닌거야.
마지막에는 사막만이 남게 되네. 정말로 살아 있는 것은 사막 뿐이라구."


둘째,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

"옛날 어느 책에선가 그런 얘기를 읽은 일이 있어요.
중학생 시절이었던가. 무슨 책이었는지도 도무지 기억이 안 나지만.......
아무튼 그것은 시베리아에 사는 농부들이 걸리는 병이에요. 있잖아요. 상상해봐요.
당신이 농부고, 시베리아의 벌판에서 홀로 외로이 살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매일매일 밭을 갈아요.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죠. 북쪽에는 북쪽의 지평선이 있고, 동쪽에는 동쪽 지평선이 있고, 남쪽에는 남쪽 지평선이 있고, 서쪽에는 서쪽 지평선이 있어요. 그저 그것뿐, 당신은 매일동쪽 지평선에서 태양이 떠오르면 밭으로 나가 일을 하고, 그 태양이 머리 위로 올라와 있으면 일하던 손을 멈추고 점심을 먹고, 그리고 서쪽 지평선으로 해가 기울면 집으로 돌아가 자는 거예요."

"그런 생활은 아오야마에서 바를 경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생일 듯한데."

"그렇겠죠" 하고 말하고 그녀는 웃었다. 그리고는 아주 조금 고개를 기울였다.
"전혀 다르겠죠. 그런 생활이 몇 년이고 몇 년이고, 매일 계속돼요."
..........
"그리고 어느 날, 당신의 내면에서 무엇인가가 죽어버리고 말아요."

"죽다니, 어떤 것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무언가가요. 동쪽 지평선에서 떠올라, 높은 하늘을 질러서, 서쪽 지평선으로 기울어가는 태양을 매일매일 보고 있는 사이에, 당신 속에서 무언가가 뚝하고 끊어져 죽어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당신은 땅에다 괭이를 내던지고는, 그대로 태양의  서쪽을 향해서. 그리고는 무엇에 홀린 듯이 며칠이고 며칠이고 아무것도 마시지도 먹지도 않고 줄곧 걷다가, 그대로 땅에 쓰러져 죽고 말아요.
그게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

나는 대지에 엎드려 죽어가는 시베리아 농부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태양의 서쪽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데?" 하고 나는 물었다.

그녀는 또 고개를 저었다. "난 모르죠.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는지도 몰라요. 아니면 무엇인가가 있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아무튼, 그것은 국경의 남쪽과 좀 다른 곳이에요."


셋째, 하지메와 유키코

나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 말을 찾았다.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언제나 어떻게든 다른 인간이 되려고 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는 늘 어딘가 새로운 장소에 가서, 새로운 생활을 손에 넣고, 거기에서 새로운 인격을 갖추려고 해왔던 거야.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이고 그런 일을 되풀이 했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성장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퍼스너의 교환 같은 것이었지.
그러나 어찌됐든, 나는 자신이 아닌 다른 자신이 되어, 지금까지 자신이 껴안고 있던 무엇인가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던 거야.

나는 정말로, 진지하게, 현재와는 다른 나 자신을 추구하고 있었고, 노력만 하면 언젠가는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어. 하지만 결국, 나는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했어.
나는 어디까지 가도 나일 뿐이었어. 내가 껴안고 있는 결락은, 아무리 멀리 가도 변함없는 결락일 뿐이었어.

아무리 주위의 풍경이 변화해도, 사람들의 말소리가 아무리 변화해도. 나는 한 사람의 불완전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어.
내 안에는 어디를 가든 한결같은 치명적인 결락이 있어. 그 결락이 내게 격렬한 굶주림과 갈증을 갖다주었던 거야. 나는 줄곧 그 굶주림과 메마름에 혹사당해왔었고, 그것은 아마 앞으로도 마찬가지일거야. 어떤 의미에서는, 그 결락 자체가 바로 나 자신이니까 말이야. 나는 그걸 알 수 있어. 나는 지금, 당신을 위해 가능하다면 새로운 나 자신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아마도 난 그렇게 할 수 있겠지.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나는 노력해서 , 어떻게든 새로운 자신을 획득할 수 있겠지.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 비슷한 일이 다시 한번 일어난다면, 나는 또 똑같은 일을 반복할지도 몰라. 마찬가지로 당신에게도 상처를 입힐지도 모르고. 나는 당신에게, 아무런 약속도 할 수 없어. 내가 말하는 자격이란 그런 뜻이야. 나는 도저히 그 힘을 이겨내야 된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가 없어."



유키코는 가슴 위로 팔짱을 끼고, 잠시 내 얼굴을 보았다.

"내게도 옛날에는 꿈 같은 것이 있었고, 환상 같은 것도 있었어요.
하지만 언제인가, 어디에선가 그런 것들은 사라져버렸어요. 당신을 만나기 전의 일이에요.
나는 그런 것을 죽여버렸어요. 아마도 자신의 의지로 죽이고, 버린 걸 거예요.
필요가 없어진 육체의 한 기관처럼. 그것이 올바른 일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잘 몰라요.
하지만 나는 그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때로 꿈을 꾸어요.

누군가가 그것을 내게 전하러 오는 꿈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똑같은 꿈을 꾸어요.
누군가가 두 손으로 그것을 껴안고 와서는,
'부인, 잊으신 물건입니다.' 라고 말해요.
그런 꿈, 나는 당신과 같이 살면서, 내내 행복했어요. 불만이랄 만한 것도 없었고, 그 이상 갖고 싶은 것도 딱히 없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무엇인가가 늘 내 뒤를 쫓아오는 거예요.
한밤중에 나는 땀으로 푹 젖어서는 번쩍 눈을 떠요. 그, 내가 버린 것에 쫓겨서. 무엇엔가 쫓기는 것은 당신만이 아니에요. 무언가를 버리고,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은 당신만이 아니에요. 내가 하는 말 무슨 뜻인지 알아요?"

"알 것 같아" 라고 나는 말했다.

"당신은 또 언젠가 내게 상처를 줄지도 몰라요. 그때에 내가 어떻게 될지, 그것은 나도 몰라요.
어쩌면 이번에는 내가 당신에게 상처를 주게 될지도 모르죠. 무엇인가를 약속한다는 따위는 아무도 할 수 없는 거에요.
나도 할 수 없고, 당신도 할 수 없고. 하지만 여하튼, 나는 당신을 좋아해요. 그뿐이에요."


넷째, 사막 또는 바다

나는 그 어둠 속에서, 바다에 내리는 비를 생각했다.
광활한 바다에, 누구에게도 드러남 없이 은밀하게 내리는 비를 생각했다. 비는 소리도 없이 해면을 두드리고,
그것은 물고기들에게조차 전해지는 일이 없었다.
누군가가 다가와 내 등에다 살며시 손을 얹을 때까지, 나는 줄곧 그런 바다를 생각하고 있었다.

Posted by 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