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개성상인>과 <구텐베르크의 조선>을 읽고서, 오세영 작가의 책을 더 찾아보던 중에 이 책 <원행>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정조암살 미스터리 8일' 이라는 드라마의 원작소설임도 알게 되었죠.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몇 가지 단상들을 끄적여 봅니다.

1. <원행> 과 <영원한 제국>

이 두 책의 비슷한 점은, 사도세자의 죽음, 금등문서, 그리고 개혁군주인 정조와 그의 정적들을 다룬다는 점입니다. 이앙법과 상업의 발달로 생산량은 증가하지만, 민생이 곤궁해 지는 시기에 정조의 개혁을 찬성하는 데에는 같은 입장인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점은,
<영원한 제국>은 긴박한 하루를 다루었고, <원행>은 8일간의 원행을 다룬다는 점입니다.
그 외에, 활극의 장면이 많고, 이해하기 쉬운 짧은 위기의 사건과 해결이 있어서, 저는 원행이 재미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재미를 가르는 기준은 정조의 붕어 여부 입니다.
<영원한 제국>에서는 정조에 가해지는 음모와 위해를 결국은 막지 못하고 맙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자책하면서 타향에서 외롭게 노년을 보냅니다.

2. <정조암살 미스터리 8일> - 한국판 홈즈?

드라마 <이산>과 다르게 정조의 비중이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약용과 장인형이 주인공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비교하자면, 한국판 셜록 홈즈, 정약용으로 생각하시고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벽파들의 병권 장악 공작과, 문인방과 홍재천 일당의 음모를 막아내는 구도가
루팡 대 홈즈의 대결을 보는것 같이 신이 납니다.
최고 검사 장인형의 활극도 끼어 있어서 재미를 더합니다.

아래에 간략히 등장인물도를 그려보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너무 적을 많이 만든 정조의 조급함

[ 약용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참으로 길고도 험한 길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민산(民産)의 불균(不均)을 없애는 것이 개혁의 시작인데, 말만큼 쉽지 않았다. 가진 자들은 순순히 재물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사대부들이 합심해서 가로막고 나서면 아무리 국왕이라고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이 니라의 법도며 전통이었다. 그러니 신권(臣權)을 억누를 수 있는 강력한 왕권을 이룩해야 했다.

하지만 변화에 반발하는 수구세력을 제압하는 일이 진정한 개혁의 전부는 아니었다.
섣부른 개혁은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중구난방의 혼란이 일면 혹세무민하는 무리가 나타나서 우매한 백성들을 현혹할 것이고, 또 사람들은 영악해져서 제 밥술 챙기기에 눈이 벌게질 것이다. 그리되면 국기가 흔들리고 미풍양속이 자취를 감추면서 억조창생은 도탄의 길로 빠질 게 분명했다.

초조감을 느낀 것일까. 지금 주상은 너무 벽파를 적으로 내몰고 있었다.
약용은 그게 걱정이었다. 융화를 도모해야 한다. 상대를 자꾸 적으로 돌리는 것은 진정한 개혁의 걸림돌이다. ] ( p. 43 인용)

너무나 많은 적을 만들어 개혁에 발목을 잡히고, 그의 사후에 나라는 쇠락의 길을 걷습니다.
그 어느 대통령을 닮았다고 말하는 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종부세가, 사학법이, 쇠고기 수입이, 국보법이, 법인세가, 국가에 미칠 영향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알면서 살아갔으면 합니다. 전 모르는 게 너무 많네요.

국가라는 대의 속에는 거짓말이 넘쳐 나는 듯합니다.
사천만이 넘는 국민들은 저마다 너무 다른데 '국익'을 위한 결정이라는 쉬운 거짓말에 속아주는 충직한 국민들이 많지는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적어도 사안별로 자신에게 솔직하고 충실하면, 어설픈 '국익'에 덜 속지 않을까 합니다.

'문학, 소설,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한산성 - 김훈  (4) 2008.08.22
밀양(벌레 이야기) - 이청준  (0) 2008.08.19
원행 - 오세영 역사추리소설  (0) 2008.08.11
구텐베르크의 조선 - 오세영  (4) 2008.08.07
민들레 공책 - 온다 리쿠  (6) 2008.07.07
도서실의 바다 - 온다 리쿠  (2) 2008.07.03
Posted by 로처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를 간행한 나라 고려

서양의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선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도 되련만,
마음 한 구석에 아쉬움과 의문이 남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학창시절 배우던 세계사에 의하면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의 발명과 인쇄술의 발달이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등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고려와 조선에서 인쇄술의 발달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발달된 인쇄기술이 어찌 영향을 전혀 주지 못했겠냐마는, 서양의 인쇄술의 파급효과에 비해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혹여 아시는 분은 알려주시면 감사히 듣겠습니다. 참고논문이나 서적을 알려주셔도 감사히 받을께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출처 -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을 파헤친다 (과학동아 90년 8월호)>



삼국시대부터 철을 다루는 기술이 우수했던 민족이고,
고려시대에 이미 금속활자를 사용했던 민족이며,
조선 태종 대에(태종3년: 1403년)  금속활자 '계미자'도 완성한 민족,
드디어 세종 대에 이르러 '갑인자'(1434년)가 완성되고, 그 후 한글이 창제. 반포 됩니다.

만약, 한글이 백성들에게 널리 알려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 발달된 인쇄술과 한글 사용의 일반화가 되었다면, 조선의 르네상스를 보았을까요?
그랬다면, 조선은 더 오래 존속했을까요? 아니면 민주화가 더 빨리 진행되었을까요?

하긴, 언론, 출판의 자유를 포함한 표현의 자유가 엄격히 제한 되어 있다면, 한글과 발달된 인쇄술도 그림의 떡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오세영 작가는 바로 이 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듯 합니다.
다시 말해서, 최고의 인쇄술에 비해 미미한 영향력에 대한 아쉬움 말이죠.

성군 세종의 한글 창제와 강력한 반포 의지, 그러나 반대하는 세력들.
세종대왕은 호군 장영실과 주자장 석주원에게 뛰어난 금속활자 개발의 밀명을 줍니다.
백성들에게 한글을 널리 알리고, 사용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죠.

이를 시작으로, 주인공인 석주원은 중국을 거쳐, 사마르칸트, 독일, 콘스탄티노플, 피렌체, 로마를 종횡무진 넘나듭니다. 그러면서 42행 성서의 인쇄에도 참여하고, 콘스탄티노플 함락도 직접 목도하는 등, 역사의 굵직 굵직한 곳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책에 관한 내용은 이정도로 할게요.


끝으로 세종 대의 '갑인자'에 관한 기사를 인용함으로 아쉬움을 달랩니다.
 
[ 세종 16년(1434년) 7월 2일. 갑인년 여름이었다.
세종은 이천을 불러 새로운 활자를 만들고 인쇄기를 개량하는 문제를 협의했다.
"근년에 있었던 정벌로 병기를 만드느라고 구리를 많이 써서 구리가 모자랄 것으로 안다.
또 공장(工匠)들도 겨를이 없을 터이지만 활자를 안 만들 수는 없으니 잘 계획해서 실행하도록 하라."

(중략)

이 사업을 추진한 각부서 책임자들의 이름들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큰 국가적인 사업이었는지를 추측할 수 있다.

총책임자인 도제조(都提調)에는 물론 이천이 임명되었다. 그리고 집현전 직제학 김돈, 직전(直殿) 김빈, 호군(護軍) 장영실, 첨지사역원사(僉知司譯院事) 이세영, 사인(舍人) 정척, 주부(注簿) 이순지 등이 감조관(監造官)이 되었다. 모두가 당대의 일류 과학자들이었다.

주자소(鑄字所), 즉 왕립인쇄공장은 2개월 만에 20여만자(字)의 새 청동활자 갑인자를 만들어냈다. ]

출처 -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을 파헤친다 (과학동아 90년 8월호)



P.S 제가 참고한 금속활자 관련 기사들 입니다.
    제가 문외한이라 쉬운 기사들을 읽었습니다. 참고하세요

* 금속활자의 부활 (과학동아 90년 7월호)
*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을 파헤친다 (과학동아 90년 8월호)
* 금속활자와 인쇄술 (과학동아 95년 12월호)
* 세계 최초 금속활자의 가치, 오종록, (내일을 여는 역사 03년 6월호)
* 중국이 목판인쇄 고집한 이유 (과학동아 96년 8월호)
* 직지월드, 고인쇄 박물관 홈페이지 http://www.jikjiworld.net/

처음에 부탁드린 것 처럼, 한민족의 금속활자가 우리 역사에 미친 영향에 관한 저의 의문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실 자료를 아시는 분은 알려주세요.   

Posted by 로처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한방블르스 2008.08.13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책 함 보려고 하였는데 영 기회가 닿지 않는군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의 발명은 성경이라는 좋은 재료가 있었기에 르네상스로 나갈 수 있었겠지요. 우리는 한자시대였으니 많이 찍어도 읽는 사람은 양반으로 한정되었을테니 더 발전은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로처 2008.08.14 0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시에 라틴어를 썼는지, 모국어의 사용이 증가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조선의 상업과 교역의 폭이 좁은 것이 문제가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과학동아 기사를 보니, 조선의 인쇄공이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대접을 좀 받은 모양입니다.

      방문감사 해요.

  2. 헤밍웨이 2008.08.18 2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겠는데요. 보고 싶어지네요.

    • 로처 2008.08.19 08: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영화 포레스트 검프 아시죠?
      베트남전, 흑인입학, 워터게이트, 핑퐁외교, 등 미국사 굵직한 곳에 모습을 드러내잖아요.

      그것처럼 주인공 석주원이 세계사 굵직한 순간들에 모습을 드러내서 그게 재미이자, 지나친 과장 아닌가 하는 단점인 책입니다.

      혹여나 제가 읽으실 것을 부추기기만 한 것이 아닌가 하여 써 봅니다. ^^

위에 나열한 셋 모두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세 작품 모두 작가의 능력에 감탄할 뿐입니다.

이유는, 많은 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실낱같은 단서로 엄청난 작품을 썼다는 것에 있습니다.

아래에 작가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1. 베니스의 개성상인 - 작가의 말 (p 11)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83년 12월 1일자 신문들은 일제히 그림 한장을 외신으로 전하고 있었다.
플란더즈 화풍으로 잘 알려진 거장 루벤스(1577~1640)의 '한복을 입은 남자(A Man in Korean costume)' 라는 그림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400년 전의 서양 화가가 조선옷을 입고 있는 한국 사람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다니! 그 당시 유럽에 조선 사람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을까.

시간이 차츰 흐르면서 나는, 피렌체에 살고 있던 프란체스코 카를레티라는 이탈리아인이 일본 나가사키에서 노예로 사간 조선인 안토니오 꼬레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 조선인이 지금도 남부 이탈리아 알비 지방에서 꼬레아라는 성을 쓰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선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그림 속의 남자는 임진왜란 때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갔다가 노예로 팔려 이탈리아까지 가게 되었던 안토니오 꼬레아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방인인 안토니오 꼬레아는 이탈리아에서 어떤 생활을 하며 살아갔을까.

시대를 뛰어넘는 안토니오 꼬레아의 머나먼 여행 이상으로 내 뇌리에 강하게 인식된 것은 한복을 입고 있는 남자의 알듯 모를듯한 잔잔한 미소였다.
그의 입가에는 비천한 신분의 사람에게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혈단신으로 그토록 먼 세계로 간 사람이 어떻게 그처럼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을까. 더구나 루벤스같은 명장을 초빙해서 그림을 그리게 했을 정도라면 사회적
신분이나 재력도 상당했을 게 아닌가. 그 사람이 정말 안토니오 꼬레아라면 어떻게 해서 먼 이국 땅에서 자수성가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조선에서는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이었을까.
궁금증은 더해가기만 했다. 생김새로 보아 경기도 서해안 지방사람 같다는 추측(조선일보 1984. 11. 23)만이 유일한 실마리였다.

그렇다면......
나는  추리를 계속해 보았다. 외국인, 더구나 동양인으로서는 정계에서 활약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종교계에서 활약했다면 교황청의 기록에라도 남아 있을텐데 쪽의 기록도 전무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상업도시였던 베니스에서 상인으로 자수성가한 것은 아닐까. 더구나 경기도 서해안 지역의 사람 같다는 외모로 보아서 러한 추리가 무모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이 글은 안토니오 꼬레아라는 한 인물을 통하여 400년 전의 역사가 지금도 되풀이 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과 결합해서 만들어진 이 작품이, 대인들에게 역사의 의미를 되새김질할 수 있는 작은 귀감이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1993년 늦은 봄
오세영



2. 리진 - 신경숙의 작가노트


내가 리진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사 년 전이다.
R이 외국어대학교 블레스텍스 교수가 백 년 전에 프랑스에서 출간된 조선에 관한 책을
가지고 있는데 특이한 이야기가 있어 번역을 했다며 보여주었다. A4용지 한 장 반 정도 되는 분량이었다.
그걸 보기 전까지 나는 내가 백년 전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조선에 처음 로 파견된 불란서 외교관이 조선의 궁중 무희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와 함께 파리로 건너갔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게 뭐? 하며 무심히 읽었다. 혼자 남게 되었을 때 백년 전에 불어를 빛나게 구사했다는 그녀의 행적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중략>

너무 야윈 나머지 마치 장난삼아 여자 옷을 입혀놓은 한 마리 작은 원숭이 같아 보였다.....는 문장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이윽고 다시 던져진 사슬이 자신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어 결국 종이를 삼키고 스스로 생명을 끊었다....를 읽어내리는데, 동시대인들이 보지 못했던 것을 본 대가로 깨진 유리조각들을 손에 움켜쥔 채 피흘리고 있는 백 년 전 한 여인의 고통이 나를 엄습했다. 다른 소설을 준비중이었는데 잘 풀리질 않아 아는 이 없는 낯선 길거리에 홀로 넘어져 있는 기분에 빠져 있던 때였다.
땅에 넘어진 자는 땅을 짚고 일어설 수밖에 없다.

R에게 전화를 걸어 A4 용지 한 장 반 안에 갇혀 있는 그 여인을 소설로 되살려보겠노라고 했다. 그날로부터 나는 하던 일을 접고 리진을 찾아 헤맸다. 자료를 모으다가 R이 따로 변역해 보여준 원서가 '프랑스 외교관이 본 개화기 조선'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이 되어 있음을 뒤늦게야 알았다.

<중략>

파리에서 그녀의 자취를 찾기를 포기하고 한국을 뒤졌다.
마찬가지였다. 조선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온갖 것들이 어떤 방편을 통해서든 기록되던 시대인데도 그녀에 대한 것은 단 한 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실존인물인가? 의아할 지경이었다. 크게 실망을 했으나 여러 달이 지나자 다른 근력이 생겼다. 전기를 쓰려는 게 아니라 소설을 쓰려는 것이다, 싶었던 것이다.



3. 대장금 - 김영현 작가 인터뷰 (월간조선 2004년 5월호)

기사를 보면, 이병훈PD가 장금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하네요.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에 중종 대의 장금과 선조 대의 장금이 딱 두 명이 나오는데, 그 중 중종실록에 중종 28년에 '대장금'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중종 39년에 대신들이 들어와서 '남자 의관들의 치료를 받으라'고 주청을 드리는데, 중종이 '내 병은 여의가 안다. 그러니 너희들은 걱정말고 물러가라' 고 하는 대목을 보고

'아, 장금이가 주치의가 됐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존경받고 사랑받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이것 뿐이겠냐만,
이 세 작품만 보더라도, 작가들에 대한 존경과 부러움, 사랑이 샘 솟습니다.

Posted by 로처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