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에 해당되는 글 3건

1. 누군가의 헐린 집터를 바라본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낮은 기와집들과 슬레이트집들
담장 위에 바른 시멘트에는 깨진 병조각들을 박아둔 집.
그 집에 가기 위해서는 끝까지 올라야 하는 오르막길 즈음에'재개발' 플래카드가 시뻘건 색으로 축하인지 저주인지를 해주고 있는 동네.
제가 아주 어렸을 적에 살던 집이고, 부모님이 처음 내 집을 마련한 그 집을 요즘 찾아가면 이런 모습입니다.

그 집 근처에서 오래도록 서성거리고 싶어도,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까봐 담배 한 대 피울 겨를 정도 서성입니다. 뭔지 모를 아쉬움과 짠한 마음이 듭니다. 환한 웃음 짓기보다는 울듯 말 듯한 웃음이 지어집니다. 지질이 궁상맞죠?

빡빡 깎은 머리를 한 학창시절 국사교과서의 집터 유적을 보면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몇 천 년 전에 살던 사람들의 자취가 나와 무엇으로 맺어져 있는지는 관심도 없던 나이입니다.
지금도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이제는 집터를 바라보면 제가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새 건물을 올리기 위해 헐어버린 누군가의 집터를 지나칠 때에는, 내 집이 헐린 것만 같습니다.

아이의 첫걸음에 아이의 받아쓰기 성적표에 웃고, 아이가 아플 때 울고,
사랑하고, 싸우면서 아옹다옹 행복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담겨있을 것만 같은 헐려버린 집터를 바라보면 또 다시 서글픔에 소주 한 잔의 따뜻함이 올라옵니다.

<엄마를 부탁해>에서 박소녀 어머님은 맏이의 첫 직장, 첫 집을 파란 슬리퍼가 발을 파내려가도록 걷고 또 찾아다닙니다. 자신을 아껴주었던 사랑하던 시동생 균이에 대한 한과 풀어낼 곳 없는 고단한 삶이 머리에 고여 어머님을 갉아 먹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도 그렇게 당신에게 소중했던 추억들을 찾아다닙니다. 남들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풍경일 테지만요.
아마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찾아다니지 않았을까요.


2.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책 속에서 착한 두 딸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말은 하지 않지만 지헌이는 엄마처럼 살지 않고 있고, 작은 딸은 꼭 엄마처럼 사는 듯 보입니다.
작은 딸과 박소녀어머님의 차이점이라면, 작은 딸은 충분한 교육을 받았고 양식이 떨어져 아이를 굶길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과 후의 자기 인생까지 계획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많을 테고, 엄마도 바라는 바이겠지만, 그런 엄마에게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파란 슬리퍼를 신고 찾아다닐 만큼 행복한 시간들이 있었음에 위안을 받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출처 : DAUM 영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전 기억이 가물하지만, 제 기억으로는 이 책만큼 사랑받았던 드라마였습니다.
후남이와 종말이의 인기는 최고였죠.

점점 평균결혼연령도 높아지고 있고, 어머니의 지위도, 가족상도 바뀌고 있습니다.
조금씩이지만 말이죠. 지금 전근대사회의 조혼제도와 어머니상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제가 살던 집터가 흔적도 없이 아파트로 바뀌고도 오래 지나면, <엄마를 부탁해> 같은 책이나 <아들과 딸>같은 드라마를 좋아하는 분들 또한 사진으로 역사 책 속의 한 줄로 남아있겠죠?

어쩌면 우리의 소중한 하루하루는 21세기 초의 생활상을 공부하는 우리 후손들이 지루해하며 암기해야 할 역사의 한 줄로 남아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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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디오스 2009.01.18 15: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책 서평이 대부분 눈물이 난다길래.. 손을 내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눈물보다는 강함이 필요한 때인거 같아서... ^^;

    • 로처 2009.01.18 15: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좀 그래요.
      제목부터가 눈물의 느낌을 달고 있습죠.
      제 아는 동생도 추천했더니, 우는 건 싫다고 마다하네요.
      전 그냥 신경숙 작가가 좋아서 읽어봤어요.

      저도 강함이 필요한 때인데요, 좋은 것 아시면 추천해 주세요. 블로그에 올리시면 찾아가서 꼭 읽을게요.

  2. Greenbea 2009.02.01 0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이 소설은. 잡지에 연재된거. 거의 다 읽었는데
    마지막 부분은 미처 못 읽었네요~~
    나중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3. Greenbea 2009.02.03 15: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쩌다 보니 좀 늦어졌네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로처 님도 잘 지내셨죠 ?

  4. Greenbea 2009.02.06 2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투정이라..

    재미있군요 ^^::


신경숙 작가의 리진을 읽고-나에게 비극은 무슨 의미일까


언제인가 헐리우드의 영화를 비난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비난의 이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째, 미국식 영웅주의로 무장한 유치한 영화이다.
둘째, 여자와 어린아이는 죽지 않는다.
셋째, 항상 해피엔딩이다.
오래된 기사이기에 제대로 기억하는지도 가물하지만, 대체로 위와 같은 이유였습니다.

비극에는 사람의 감정을 순화시키는 무언가가 있다고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배운 것도 같습니다만.

이제는 저도 비극보다는 행복한 결말을 보기를 원합니다.
마음이 변덕스런 저는, 작은 일에도 쉬이 감정이 변하기 때문에 더 그러합니다.
요즘 신나는 일이 별반 없기에 그러합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밝고, 가볍고, 위트넘치고, 희망에 찬 것들을 보려 합니다.
이상하게도 신경숙 작가의 글은 그렇지 않아도 읽게 됩니다.

<리진>을 읽으면서도 그랬습니다.
아마 다른 분들도 그러하실 겁니다.
마음 한켠이 아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울분도 치밀어 오르고 말이죠.
결국 무거운 맘으로 담배를 한 대 빼어 뭅니다.

제가 왜 신경숙 작가의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으면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이전의 독서노트를 버렸던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참! 글 중에 <직지>이야기가 반가웠습니다.
아래에 청주에 있는 고인쇄 박물관 홈페이지를 링크시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출처는 고인쇄 박물관 홈페이지 >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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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고서도, 뭐라 글을 써야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제가 기억하고 싶은 구절을 적어둠으로 잊지 않고 기억하려 합니다.

1권

< 당신은 당신이 얼마나 빛나는 영혼을 가졌는지 상상도 못할 거요. >

< 이름을 통해야 우리는 비로소 그 존재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왕이 그녀에게 내린 이름을 그는 거리낌없이 받아들이고 불렀다. 춤을 출 때는 서여령으로, 자수를 놓을 때는 서나인으로, 소아에게는 진진으로, 강연에게는 은방울로 불리었던 그녀는 이제 리진이었다. >

< "이름의 주인이 어떻게 사느냐에 그 이름의 느낌이 생기는 게다.
사람들이 네 이름을 부를 때면 은혜의 마음이 일어나도록 아름답게 살라." >

< 배 밭 근처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 적에 어머니가 아이에게 하던 노릇이었다.
바느질을 해 주고 얻은 배를 긁어주며 어머니가 맛있느냐? 물으면 진이는 입이 미어져 대답을 못 하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눈 앞에 왕비 뿐인데 어디선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내전을 두리번거리던 어린 진이의 눈동자에 설핏 물기가 어렸다. >

< 선교사님이 좋으냐?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행이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살아가는 일이 덜 힘든 법이다. 좋아하는 일로 힘이 들게 된다 해도 그 힘듦이 살아가는 의미가 되는 게야. 너는 부자다 마음속에 선교사님이 있지 않니.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사람이 진짜 가난한 사람이거든. >


 블랑 선교사의 선문답이 너무나 우습다.
꼭 우리나라 사극에 나오는 스님들의 말투라 그런가 보다.
정겹고 좋기만 하고, 그래도 또 웃음이 난다

2권

< 리진은 선 채로 '레 미제라블'의 아무 장이나 펼치고 물결치는 듯한 프랑스어를 들여다보았다. 하룻밤 편히 쉴 수 있도록 잠자리를 마련해준 밀리에르 신부의 집에서 장발장이 은촛대를 훔치다가 들켜 끌려가는 장면이었다. 밀리에르 신부의 너그럽고 자비로운 마음이 없었다면 장발장은 어찌 되었을까? 리진은 빙긋이 웃었다. 책을 읽는 일의 즐거움은, 어찌 되었을까? 를 상상하는 데 있었다. >

< 리진은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와서 방금 전까지 쓴 내용을 쭉 읽어보았다. 마르세유에서 파리 리옹 역까지 기차를 탔을때 철마의 그 빠른 속도를 어떻게 전해야 할까? 리진은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갈증을 느끼며 깃털 펜에 잉크를 찍었다. >

< 뱅상과 같은 파리의 젊은이들에게 평생 직장이라는 느낌을 주며 최고의 일터로 동경의 눈길을 받는 봉마르셰 백화점에 대해 조선의 왕비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생각에 잠겨 있던 리진은 편지쓰기의 무력함이 느껴저 깃털 펜을 여태 썼던 편지 위에 내려놓았다. >

< 법국에선 어떤 때에 가장 외로웠느냐? 제가 누구인지 알고 싶을 때였습니다. 그래, 네가 누구 같더냐? 모르겠습니다. 먼지 같고 풀 같고 구름 같고..... 종내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왕비의 목소리가 한숨처럼 흘러나왔다. 리진은 슬며시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았다. 어느새 왕비가 잠이 들어 있었다. >
책을 읽는 중에 <베니스의 개성상인>이라는 책이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한민족으로 외국생활을 하면서 정체성 고민을 한다는 점이 같아서 그랬나 봅니다.
그 책을 다시 읽고 리뷰를 올리려 합니다.
꽤 재미있는 책인지라 여러분에게도 추천합니다
http://lawcher.tistory.com2008-01-21T14:27:340.3610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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