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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실에서 여러 명의 여자들이 둘러 앉아있습니다.
넉살좋게 생긴 한 여자 분이 자신의 외국체류의 경험담을 풀어놓고 있네요.
어찌나 목청이 좋고, 넉살이 좋은지 모두 웃으며 듣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맞장구 칠 뿐,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입담이 가히 수준급 인가 봅니다.
근대이전의 사회였더라면, 우물가 토크왕 이었을 겁니다.
기분이 좋을 때라면 아마 저도 배시시 웃으며 같이 앉아서 들었을 테지만,
당시에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그냥 웃으며 곁을 지나왔을 뿐이네요.

빌 브라이슨의 이 책이 이와 비슷합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유럽 여행담> 입니다.


1. 주의 : '여행 정보가 아닌 여행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유럽산책'이라는 제목만 보고 덜컥 책을 집어 들었던 저는 '유럽사이야기'를 기대했었습니다. '유럽사이야기'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오스트리아 편에 잠시 언급되는 정도로 말이죠. 이건 책을 꼼꼼하게 살피지 않은 저의 잘못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잘 말해주는 정보가 책의 뒤표지에 이런 문구로 있습니다.


'여행 정보가 아닌 여행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여행정보는 찾지 마시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적어도 저처럼 '유럽사 이야기'나 '여행정보'를 찾으시는 분은 다른 책을 찾아보셔야 합니다. 위에 적어놓은 것처럼 '주의'라고 적어놓지 않으면 '정보뿐 아니라 재미까지 있는 책'이라고 오해하는 것은 저만의 잘못인가요?

유럽사이야기도 여행정보도 없는 책이지만, 유쾌하고 기분 좋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으니까요


2. 고개 젖혀 웃게 만드는 입담

저와 같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요즘처럼 해야 할 일도 책도 손에 잡히지 않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더불어 '집이 주는 안락함'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분들에게도 말이죠.
방바닥에 배 깔고 엎드린 채로 빗소리라도 들으면서 이 재미있는 책을 읽는다면,
빗속에 숙소를 찾아다니는 여행객을 떠올리며 더더욱 '집의 안락함'을 사랑하게 될 겁니다.

이렇게 써 놓으니 '너 자꾸 그러면, 커서 삼촌처럼 된다.' 라고 조카를 타이르는 것 같아 기분이 요상합니다.
아무튼 그의 농담과 표현이 제게는 무척이나 재미있었습니다.

여행지 사진 한 장 없는 책,
해박한 유럽사의 배경지식을 줄줄 늘어놓지도 않은 책,
도움이 될 만한 여행정보도 없는 책,
빌 브라이슨의 개인적 감상만 주~욱 늘어놓은 책.

그런데도
이 책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그의 재미난 입담 속에 녹아 있는 그의 감상들 때문일 겁니다.
심지어 집근처 '와이 낫'이라는 식당에 대한 향수나, 자신의 친구들에 대한 추억들조차 공감할 수 있는 여행담이 됩니다.
많이 팔렸다니, 저만의 유별난 기호는 아닐 겁니다.


3. 나도 그 성당에 가고 싶다

많은 재미있는 구절들을 모두 인용하고 싶은 마음을 자제하고, 저도 '집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찾아가고 싶은 곳이 생겼습니다. 아마도 집의 안락함에 젖어 있는 저에게는 정말 찾아가고 싶다는 목적의식이 아니라, 가고 싶은 목적지가 있기는 하다는 위안의 표지일 가능성이 크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인용해 봅니다.


마지막 날에는 번잡한 바르베리니 광장으로 가, 산타 마리아 델라 콘체치오네 성당 안에 있는 카푸친 수도회의 납골당을 찾아갔다. 일명 해골 성당이라고 불리는 이곳에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때는 16세기, 어떤 수도사가 동료 수도사들이 죽은 후 그들의 해골로 장식을 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참으로 기발한 착상이 아닌가? 성당 한쪽 벽면에 자리 잡은 방 대여섯 개는 흉곽으로 만든 제단, 두개골과 다리뼈로 세심하게 만든 묘소, 팔뚝 뼈로 장식한 천장, 등뼈로 꾸민 벽 장식, 손과 발의 뼈로 만든 샹들리에 등으로 가득 차 있다. 한쪽 구석에는 후드가 달린 저승사자 복장을 한 어느 카푸친(프란체스코 회의 세 분파 중 하나) 수도사의 전신 해골이 서 있다. 다른 쪽 벽면에는 6개 국어로 아주 발랄한 어조로 이렇게 쓰인 표지판이 늘어서 있다.

"우리도 여러분 같았지요. 여러분도 우리처럼 될 겁니다."


Posted by 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