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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원숭이 서문 중 발췌 - 무라카미 하루키

[] 안의 내용이 인용부분 입니다
.

[ 나는 실은, 이런 정도 길이의 짧은 스토리를 아주 즐겨 씁니다.
물론 긴긴 장편 소설을 쓰는 작업이, 내게는 가장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틈틈이 이렇게 짧고 재미있고 펑키한 스토리를 쓰다 보면, 마음이 상당히 가벼워집니다.

일이라기보다는 취미에 가까운지도 모르죠. 그래서 이번 달에는 무슨 얘기를 써야 하나 하고 고민을 한 기억은 없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생각나는 대로 술술 담숨에 써내려 가고, 이것으로 끝, 그런 식이었습니다. 조금도 고생스럽지 않았습니다.
........

하지만 만약 당신이 내게 "이런 얘기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 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이죠.
아니, '의미가 없다'고 하면, 오해를 부를지도 모르겠군요.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나는 그 의미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말이 맞을 겁니다.
의미는 아마도 - 깊은 수풀 속에 들쥐가 숨어 있는 것처럼 - 어딘가에 있을 테죠.
내가 그런 스토리를 문득 떠올렸고, 거기에는 내가 그런 스토리를 떠올릴 만한 '필연성'이 반드시 있었을 테니까요.
분명히 들쥐 정도 크기의 필연성이.

그러나 나는, 그 들쥐가 수풀 속에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른다, 는 말입니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이런 이야기를 술술 써내려갔다. - 그것도 신나게 썼다는 것 뿐입니다. 그러니까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우리는 우리들대로 즐기고, 들쥐는 들쥐 나름으로 재미있게 살면 되지 않을까요. ]


P.S  무라카미 하루키를 보고 싶으시다면 이 곳을 찾아가 보세요.

        오유미님 블로그 입니다.

        가셔서 Haruki 탭을 찾아가 보세요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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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는 머리 속 얘기를 중얼거리듯 합니다.

뒤죽박죽, 한 달은 청소를 안 한 것 같은 방처럼 어질러진 그의 머리 속 얘기를 그냥 풀어 놓은 듯 하죠.

제가 하루키에게

거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요? 라고 물으면,

뭘 말이요? 하고 되물을 듯 합니다.

이 책에서도
현실적이고, 명확한 것은 언제나 나오는 노래제목 뿐 입니다.
그리고 그가 늘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 사이, 거리 두기, 인연 등등 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이름 ………

다음에 이름을 말씀 드리려 합니다.


2.
이름과 관계

하루키는 <>를 객관적 수치로 표현해 보고, 기호를 나열해 보는 등, 주관을 배제하고 철저히 객관적인 조각들로만 <>를 얘기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지고 싶어합니다.

결국,  이름 마저 주관의 요소로 보는 모양 입니다.

아니면, 이름을 알게 된 후 관계의 책임이 무거워 피하는 것일까요?

그의 소설 속에는 익명이나 가명의 인물이 많이 등장합니다.


<
댄스 댄스 댄스>키키 가 그랬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친구인지, 자신인지 모를 가 그랬고,
가 사귀는 여자 그리고 <>가 사귀는 쌍둥이 자매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모르는 사귐이 있습니다.

이름이 사람의 인생을 좌우 할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이름이 <>를 이루는 것들을 곡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이름은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사귐(관계)의 시작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하루키 소설 속의 <>는 시니컬 하고, 관조적이고, 인생에 달관한 듯,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의 외로움과 관계단절의 두려움, 소외에 대한 걱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상실감이나 단절의 두려움, 허무함 같은 감정들의 시작에는 익명 그리고 이름을 모르는 관계’가 있지 않을까요?.

 

저는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첫 단추는 이름 이 아닐까 합니다.

 

<어린왕자> 도 생각나구요.......

아래에는 김춘수 님의 시 을 인용해 봅니다.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3. 하루키, 시간의 세례 받을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이 상실의 시대에 나오는 말대로 <시간의 세례>를 받아 작가가 타계한 후에도 오래도록 사랑 받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관조적이고, 시니컬한 캐릭터의 매력을 보자면, 오래 가지 않을 것도 같구요.
이음, 매듭, 관계, 거리 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기에, 고전처럼 오래 남을 것도 같습니다.

하긴, <>에게 의미가 있고, 내가 의미를 찾으면 그만이지,
시간의 세례와 다수의 사랑을 받을지는 불필요한 호기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P.S. 서핑중에 소설 속의 <콜라+핫케익>을 만드신 블로그가 있어 링크 합니다
다인님 블로그 :  세계 명작 식당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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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쓰기-하트필드

"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책 속의 하트필드



이제 나는 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물론 문제는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았으며, 얘기를 끝낸 시점에서도 어쩌면 사태는 똑같다고 말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결국 글을 쓴다는 건 자기 요양의 수단이 아니라 자기 요양에 대한 사소한 시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직하게 자신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정직해지려고 하면 할수록 정확한 언어는 어둠 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버린다.

-하루키


"
글을 쓰는 작업은, 단적으로 말해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물과의 거리를 확인하는 일이다. 필요한 건 감성이 아니라, '잣대'" <기분이 좋아서 무엇이 나쁜가?>
-         책 속의 하트필드


2.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밑줄 긋기

 

"이따금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곤 해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전에 인간의 존재 이유를 테마로 한 짧은 소설을 쓰려고 했던 적이 있다.

결국 소설은 완성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 동안 줄곧 인간의 '레종 데르트'에 대해서 생각했고 덕분에 기묘한 버릇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모든 사물을 수치로 바꿔 놓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버릇이었다.

약 여덟 달 동안 나는 그런 충동에 시달렸다. 나는 전철에 타자마자 승객 수를 헤아렸고, 계단 수를 전부 헤아렸고, 시간만 나면 맥박 수를 쟀다.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1969년 8월 15부터 이듬해 4 3일 사이에 나는 강의에 358번 출석했고, 섹스를 54번 했고, 담배를 6,921개비 피운 것으로 되어 있다.

그때 나는 그런 식으로 모든 걸 수치로 바꿔 놓음으로써 타인에게 뭔가를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타인에게 전할 뭔가가 있는 한, 나는 확실히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연한 일이지만, 내가 피운 담배의 개비수나 올라간 계단의 수나 나의 페니스 사이즈에 대해서 누구 한 사람 흥미 같은 걸 갖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상실하고 외톨이가 되었다.



"
어째서 안 하는 걸까?"
"말하기가 어려워서 그렇겠지. 바보 취급당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말일세."
"바보 취급은 안 한다구."
"그렇게 보이는 거라구. 전부터 그런 느낌이 들었어. 자네는 다정하지만 뭐랄까, 모든 걸 달관한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겨...... 그다지
나쁜 뜻으로 말하는 건 아닐세."
"알아."
"다만 나는 자네보다 20년이나 연상이고 그만큼 여러 가지 일을 많이 겪었지. 그러니까 이건 뭐라고 할까......."
"노파심."
"그래."
나는 웃고 나서 맥주를 마셨다.
"쥐한테는 내가 먼저 말을 꺼내 보지."



3. 1973
년 핀볼 밑줄 긋기


 "
이름은?"

나는 두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숙취 탓으로 머리는 깨질 것만 같았다.


"
밝힐 수 있을 만한 이름이 아니에요."

오른쪽에 앉은 여자 아이가 말했다.


"
정말로 대단한 이름이 아니라구요, 알겠죠?"

왼쪽이 말했다.


"
알았어."

내가 대꾸했다.

우리는 식탁에 마주앉아서 토스트를 먹고 커피를 마셨다. 정말 맛있는 커피였다.


"
이름이 없으면 곤란해요?"

한 아이가 물었다.


"
글쎄?"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생각을 했다.


"
만약에 꼭 이름이 필요하다면 적당히 붙여 주면 되잖아요."

또 다른 아이가 제안했다.


"
당신 마음대로 부르면 된다구요."

쌍둥이는 언제나 번갈아 가며 얘기했다. 마치 FM 방송에서 스테레오를 점검하듯이. 그 때문에 머리가 한층 더 아팠다.


"
예를 들면?"

내가 물어 보았다.


"
오른쪽과 왼쪽."

한 명이 말했다.


"
세로와 가로."

또 다른 한 명이 말했다.


"
위와 아래."

"겉과 속."

"동쪽과 서쪽."


나는 지지 않으려고 가까스로 이렇게 덧붙였다.

"입구와 출구."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고 만족스러운 듯이 웃었다.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다.

대부분은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다.

우체통, 전기 청소기, 동물원, 소스 통. 물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쥐덫.



 
나는 우물을 좋아한다. 우물을 볼 때마다 돌멩이를 던져 넣어 본다.

싶은 우물의 수면을 때리는 돌멩이의 소리만큼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건 없다.



핀볼 기계와 히틀러의 발걸음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그들 둘은 어떤 종류의 저속함과 함께 시대의 거품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났고, 그리고 그 존재 자체보다는 진화의 속도에 의해서 신화적 후광을 얻었다고 하는 점에서 말이다. 진화는 물론 세 개의 바퀴 즉 테크놀러지와 자본 투자, 그리고 사람들의 근원적 욕망에 의해서 지탱되었다.



핀볼 연구서인 <<보너스 라이트>> 서문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다.

당신이 핀볼 기계에서 얻는 건 거의 아무것도 없다.

수치로 대치된 자존심 뿐이다. 잃는 건 정말 많다. 역대 대통령의 동상을 전부 세울 수 있을 만큼의 동전과 되찾을 길 없는 귀중한 시간이다.


당신이 핀볼 기계 앞에서 계속 고독한 소모전을 벌이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은 프루스트를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어떤 사람은 드라이브 인 극장에서 여자 친구와 <용기 있는 추적>을 보면서 진한 애무에 열중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시대를 통찰하는 작가가 되고 혹은 행복한 부부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핀볼 기계는 당신을 아무데도 데려가 주지 않는다.

리플레이 램프를 켤 뿐이다. 리플레이, 리플레이, 리플레이......,
마치 핀볼 게임 그 자체가 어떤 영겁성을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영겁성에 대해서 우리는 많은 걸 모른다. 그러나 그 그림자를 추측할 수 있다.
핀볼의 목적은 자기표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변혁에 있다.
에고의 확대가 아니라 축소에 있다. 분석이 아니라 포괄에 있다.
만일 당신이 자기 표현이나 에고의 확대, 분석을 지향한다면 당신은 반칙 램프에 의해서 가차없는 보복을 받게 될 것이다.

좋은 게임을 하길 빈다.



"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어떻게 하다니요.......다만 귀를 청소할 때 주의만 하면 되는 거예요. 주의요."

"귓구멍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심하게 구부러져 있어서 뭔가 달리 영향을 받지는 않습니까?"

"영향을 받다니요?"

"가령 ...... 정신적으로."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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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댄스 댄스
-무라카미 하루키를 추측해 본다

  

 

친구의 오래된 추천으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고 있습니다.

<상실의 시대><하드보일드.....> 에 이어 이번이 겨우 세 번째 하루키 와의 만남이지만, 이 책을 통해 제가 느낀 하루키에 대해 끄적여 보려고 합니다.

 

아래에서 <> 는 이 소설 속의 ''를 가리킵니다.

참! 웹서핑 중에 좋은 글을 찾았습니다. 아래에 링크해 둡니다.

제제님 블로그 -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 속 인물들의 패션
 

 

1. 나 좀 이해해줘, 난 달라

 

<>는 남들이 다 쉽게 하는 자기소개도 어려워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특별하고, 남들에게 이해 받기 힘든 사람일 거라는 생각을 하죠

물론, 자신은 평범하다고 겉으로는 말을 하지만 말입니다.

 

어떤 것이 <>의 속마음 일까요?

자신의 입으로 평범하다고 한 것이 사실일까요?

저는 자기소개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죽 늘어놓는 것이

좀 이해해 달라고, 난 다르다고 얘기하는 것으로 들립니다.

 

 

2. 하루키가 좋아하는 거리는?

 

사람이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 거리 또는 간격을 말함입니다.

저는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진 않더라도, 사귐에 거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혹은 그녀가 <>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양을 쫓는 모험은 아직 읽지 않았지만, <양 사나이> <>도 둘로 나누어 거리를 두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책 속의 <>는 사귐의 폭이 넓지 않음에도, 외로움을 많이 탐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사람을 밀어내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 는 사랑도 하고, 사랑도 받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긴 합니다.


그러나 아내와의 이별을 떠올리면서,

요구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거리를 두고 관조하기 보다는, 요구하고, 부딪치는 것이 사귐에도 사랑에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친절은 습관일 뿐이라고 하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속 대령의 말도 덧붙여 생각해 봅니다.



3.
하루키
나를 잊지 마세요

 

사람과의 거리를 두고, 관조적으로 생활하는 <>좋다 보다는 나쁘지 않아 라는 표현을 더 자주할 정도로 관조적으로 보입니다. 그와 동시에 <>는 잊혀질까, 묻힐까, 자기 안으로만 침잠할까 두려워합니다.

 

가엾고 우울하기도 합니다.

지금의 혹은 과거의 를 떠올리기도 하면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4.
하루키
일보전진, 그리고 속삭여! 소리치던지

 

하지만 아무튼, 무엇인가 지껄이기로 하자.

자신에 관해 무엇인가 지껄이는 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그것이 우선 제 1 보인 것이다.

올바른 것인지 올바르지 못한 것인지는 나중에 다시 판단하면 된다.

나 자신이 판단해도 되고 다른 누군가가 판단해도 된다.

 

<어린왕자> 에서 여우에게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춘수 시인의 <>에서의 이름 과 같이

하루키에게 지껄이는 것 그리고 속삭이는 것이 같은 의미이기를 바란다.

 

 목소리가 나올까?

내 메시지가 현실의 공기를 잘 흔들 수 있을까?

몇 가지 문구를 나는 입속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명료한 것을 골랐다.

 

유미요시, 아침이야. 하고 나는 속삭였다.

 


6.
마무리


앞에서 말씀 드렸듯,

저는 겨우 세번째 하루키와의 만났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의 개인적인 소감을 말씀드린 것에 불과합니다.

하루키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싫어하실 글을 쓴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우울함과 상실감에 하루키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저도 점점 하루키가 좋아지려 하고 있습니다.

다른 책들을 읽고 나면 지금의 생각이 바뀔 것도 같습니다.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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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나는 어떤가 - 하고 나는 생각해 보았다.
절정-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한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되돌아보면, 이는 인생이라고 할 수 없을 듯한 느낌이 든다. 약간의 기복은 있었다. 꾸역꾸역 올라가거나 내려오기는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거의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아무것도 만들어낸 게 없다. 누군가를 사랑한 적도 있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

기묘하게 평탄하며, 풍경이 단조롭다. 마치 비디오 게임 속에 걸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팩맨 같다. 잇따라 미로 속의 점선을 먹어 간다. 목적도 없이. 그리고 언젠가는 확실하게 죽는다.


# 장면 2 - 하루키의 주문(?)

정신을 차려보니 무력감이 조용히 소리도 없이 물처럼 방 안에 차있었다. 나는 그 무력감을 밀어 헤치듯이 목욕실로 가서 <레드 클레이>를 휘파람으로 불면서 샤워를 하고, 부엌에 선 채로 캔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눈을 감고 스페인 어로 하나에서 열까지 센 다음, '끝났다'하고 소리 내어 말하고는 손뼉을 치자 무력감은 바람에 날려가듯이 휙 사라져 버렸다. 이것이 나의 주술이다. 혼자서 지내는 인간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 가지 능력을 익히게 된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


#장면 3

유키는 쟁반에 담겨진 프리첼을 집어 먹었다.
"틀림없이 모두들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저씨는 알고 있어요?"
"암시성이 구체적인 형태를 취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가, 이에 대처하면 되리라고 생각해, 요컨대."

유키는 T셔츠의 옷깃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잘 알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건 무슨 뜻이에요?"

"기다리면 된다는 말이야" 하고 나는 설명했다.
"천천히 그러한 때가 오기를 기다리면 돼. 무엇을 억지로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사물이 흘러가는 방향을 지켜보면 돼. 그리고 공평한 눈으로 사물을 보려고 노력하면 되는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자연히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모두들 너무 분주해.
재능이 넘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공평함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에는, 스스로에 대한 흥미가 너무 많거든."

# 장면 4

아무튼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어떤 일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다.
수가 막혔을 때에는, 당황하여 움직일 필요는 없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 무슨 일이 다가온다.
가만히 응시하면서, 어스름 속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기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경험을 통해 이를 배웠다.
이는 언젠가는 반드시 움직인다. '만일 이것이 필요한 것이면 이는 반드시 움직인다.'
좋아, 천천히 기다리자.

# 장면 5

가엾은 사나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여기서 그 나름의 질서를 열심히 만들어 가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러한 것은 하루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눈깜짝할 사이다. 사람이라는 건 자신과 제일 어울리는 장소에 그 그림자를 남기고 간다. 딕 노스의 그것은 부엌이었다. 그리고, 가까스로 남겨진 그 불안정한 그림자도, 눈깜짝할 사이에 소멸되어 버린다.

# 장면 6

'운명' 하고 유키는 연약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정말이에요. 나빠지고 있어요. 나와 엄마는 그러한 주파수가 공통되어 있는가봐요. 지난 번에도 말한 것처럼 엄마가 활기가 있으면 나도 활발해지고, 엄마가 움츠러들면 나도 점점 기력을 잃어가요. 어느 쪽이 먼저인지 잘 알 수 없을 때도 있지만. 즉 엄마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는지, 혹은 내가 엄마를 끌어당기고 있는지 잘 알 수가 없어요.

하지만 아무튼 그녀와 나는 무엇에 의해 이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달라붙어 있든 떨어져 있든 마찬가지예요."

"이어져 있어?"

"그래요, 정신적으로 이어져 있어요." 하고 유키는 말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장면 7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아요?"

"흥미를 가질 수 없어." 하고 나는 말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지도 않아. 단지 흥미를 가질 수가 없어."

"이상한 사람이에요." 하고 유키는 말했다. "초콜릿에 흥미를 가질 수 없다니, 정신에 이상이 있어요."

"전혀 이상하지 않아. 그러한 경우가 있다구. 너는 달라이 라마를 좋아하니?"

"뭐에요, 그건?"

"티베트의 가장 훌륭한 승려야."

"몰라요, 그런 건."

"그럼 넌 파나마 운하를 좋아해?"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요."

"혹은 넌 일부 변경선을 좋아하니 싫어하니? 원주율은 어때? 독점 금지법은 좋아해? 쥬라기는 좋아해 싫어해? 세네갈 국가는 어때? 1987년의 11월 8일은 좋아해 싫어해?"

"시끄러워요, 원. 정말 어이가 없어. 잇따라 잘도 생각해내는 군요." 하고 유키는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말했다.

"알았어요, 잘. 아저씬 초콜릿을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고, 단지 흥미를 가질 수 없을 뿐이란 말이죠. 알았어요."

"알아주면 됐어." 하고 나는 말했다.

# 장면 8

나는 잠자코 있었다. 잠시 후에 고혼다가 말을 계속하였다.
"대체 어디까지가 현실일까? 그리고 어디서부터가 망상일까?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그리고 어디서부터가 연기일까? 나는 그걸 확인하고 싶었어. 이렇게 자네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 그걸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어. 자네가 내게 키키의 일을 처음으로 물었을 때부터 나는 죽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네. 자네가 나의 이 혼란을 해소시켜 주지 않을까 하고 말야. 마치 창문을 열어 차갑고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도록 하는 것처럼 말야."


# 장면 9

목소리가 나올까?
내 메시지가 현실의 공기를 잘 흔들 수 있을까?
몇 가지 문구를 나는 입속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명료한 것을 골랐다.

"유미요시, 아침이야" 하고 나는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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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권의 인용구절 입니다.

“하지만 대령님은 나에게 무척 친절하게 대해 주지 않습니까? 나에 대해서 신경을 써주고, 잠도 자지 않고 간병도 해주고, 그것은 마음의 또 다른 표현 아닌가요
?

“아니, 틀리네. 친절함과 마음은 전혀 별개의 것일세. 친절함이라는 것은 독립된 기능이지. 좀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표층적인 기능일세. 그것은 단순한 습관이지, 마음과는 다른 것이라네. 그리고 훨씬 모순된 것이지.





이상한 일이다. 사람들은 마음이라는 것을 진정한 따스함에 비유한다
.
그런데 마음이 없는 그녀의 몸에서 발산되는 이 따사로움은 과연 무엇일까
.
“내 마음이 열리지 않는 것은 아마 나 자신의 문제일 거야. 당신 탓이 아니야. 내가 나의 마음을 확인할 수가 없어서 그 때문에 나는 혼란스러워하는 거야.


“마음이라는 것은 당신조차도 잘 이해할 수 없는 건가 보죠?


“어떤 경우에는 그렇지.” 하고 나는 말했다
.
“그때 당시에는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시간이 훨씬 지나고 나서야 이해할 때도 있어. 그러면 대개의 경우는 이미 때가 너무 늦어 버리지. 대체적으로 우리들은 자신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하고, 더더구나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행동을 하기 때문에 혼란에 빠지는 거야.


“마음이라는 것이 무척 불안하고 불완전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이 너무나 비효율적이라고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하고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

“글쎄……. 아마도 그렇겠지.” 하고 나는 말했다
.
“나는 16년 동안 학교를 다녔지만, 그것이 특별히 어떤 도움을 주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변변하게 외국어도 하지 못하고, 악기도 다루지 못하고, 증권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고, 말도 타지 못하고 말야.


“그럼, 어째서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나요?
 
"
그만두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잖아요?


“글쎄, 그건 말이야” 하고 나는 말하며 그 일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았다. 분명히 그만두려고 생각했다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었던 것이다
.

“하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어. 우리 집은 당신네와는 달리 매우 평범한 보통 가정이었고, 나 자신이 일류가 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거든.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에요”하고 그녀가 말했다. “인간은 누구든지 뭔가 하나쯤은 일류가 될 수 있는 소질을 갖고 있어요. 그것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죠. 끌어낼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조리 덤벼들어서 그 싹을 짓밟아 버리니까 그 많은 사람들이 일류가 될 수 없는 거에요. 그리고 그 싹은 그대로 시들고 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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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2-무라카미 하루키

 

 

* 아래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2권의 구절 인용입니다.

 

 

기억나지 않아요. 그때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던 것 같아요. 기억하고 있는 건 단지 그 늦가을 비가 오는 날 저녁나절에 어느 누구도 나를 꼭 안아 주지 않았다는 사실뿐. 그것은 마치 내게 있어서 세계의 끝과 같은 것이었어요. 어둡고 힘겹고 쓸쓸해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꼭 껴안아 주었으면 했는데, 그때 주위에 자신을 안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당신은 이해하겠어요?

......

이 세상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외톨이가 될 수는 없어. 모두들 어딘가에서 조금씩 연결되어 있지. 비도 내리고, 새도 울고, 배에 상처가 나고, 어둠 속에서 여자 아이와 키스하는 일도 있지.

 

 


 

나는 주어진 숫자를 머리 속에서 주물럭주물럭 반죽해 다르게 바꾸어 버리는 것만으로 세상과 관련을 맺고, 그 이외의 시간은 혼자서 케케묵은 소설을 읽거나, 비디오로 할리우드의 옛날 영화를 보거나, 맥주나 위스키를 마시면서 내 삶을 지탱해 왔다. 자연히 신문이나 잡지 같은 걸 훑어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빛을 잃어버린 수수께끼 같은 어둠 속에서, 무수한 구멍과 무수한 거머리들에 둘러싸인 지금은 신문을 읽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햇볕이 드는 따사로운 곳에 걸터앉아, 고양이가 우유 접시를 핥듯이 신문의 구석구석을 한 자도 빼놓지 않고 깡그리 읽는 것이다. 그래서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단편들을 몸 속으로 빨아들이고, 세포 하나하나를 기름지게 하는 것이다.

 

 


 

그림자는 구두 굽으로 땅에 원을 그렸다.

테두리가 완성되어 있어. 그래서 여기에 오래 머물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하다 보면 점점 그들이 옳고 내가 틀린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게 되지. 그들이 너무나 빈틈없이 완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라구. 내가 하는 말 이해할 수 있겠어?

………..

그것과 마찬가지야. 이 도시의 완전함과 완결성이란 그 영구 운동과 같은 거라구.

원리적으로 완전한  세계 같은 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 그러나 여기는 완전해. 그렇다면 어딘가에 반드시 장치가 있을 거야. 실은 영구 운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기계가 뒤쪽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외적인 힘을 이용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

너는 자신을 상실한 게 아니야. 다만 기억이 교묘하게 숨겨져 있을 뿐이지. 그래서 넌 혼란스러운 거야. 그러나 결코 네가 틀린 게 아니야. 가령 기억이 상실되었다 해도, 마음은 있는 그대로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거지. 마음이란 것은 그 자체의 행동 원리를 가지고 있어. 그게 곧 자기지. 자신의 힘을 믿도록 해. 그렇지 않으면 넌 외부의 힘에 이끌려서 수수께끼와도 같은 장소로 끌려가게 된다구.

 

 


 

당신이 이제부터 가게 되는 세계에 나도 따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이 세계를 버리고?


, 그래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


여기는 시시한 세계예요. 당신의 의식 속에서 사는 것이 훨씬 즐거울 것 같아요.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내 의식 속 따위에서 살고 싶지 않다. 마찬가지로 그 누구의 의식 속에서도 살고 싶지 않다.

 

 

 

그들은 구덩이를 파는 것 자체가 목적이네. 단지 구덩이를 파고 있을 뿐이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순수한 구덩이지.

? 잘 모르겠습니다.

간단해. 그들은 단지 구덩이를 파고 싶으니까 파고 있는  걸세. 그 이상의 목적은 아무것도 없지.

………….

우리는 여기서 모두 제각기 순수한 구덩이를 계속 파고 있는 것뿐이야.

목적이 없는 행위, 진보도 없는 노력, 아무데도 다다르지 않는 보행, 멋지다고 생각지 않나? 아무도 상처를 입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상처를 입히지 않지, 아무도 앞질러 가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추월당하지도 않네, 승리도 없고, 패배도 없는 걸세.

 

 


 

우선 마음의 문제야. 너는 나한테 이 도시에는 싸움도, 미움도, 욕망도 없다고 했지?

그건 그것대로 좋아. 나도 기운만 있으면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야. 그런데 싸움과 미움과 욕망이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그 반대의 것도 없다는 얘기기도 하지.

그건 기쁨이고. 행복이고. 애정이야.

절망이 있고 환멸이 있고 비애가 있음으로 해서 기쁨이 생기는 거야 절망이 없는 행복 따위는 아무데도 없어. 그게 내가 말하는 자연스러움 이라는 거야.

 

 

 

세계의 끝 =

내가 잃어버린 것과 지금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과 다시 만날 수 있는 불사의 세계

 

 

 

내가 이 도시의 어딘가에 반드시 출구가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처음에는 직감이었어. 그렇지만 오래지 않아 확신을 하게 되었지. 그 까닭은 이 도시가 완벽한 시가지기 때문이지.


완벽하다는 건 필연적으로 모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이 곳은 도시라고 얘기할 수 조차 없어.

좀 더 유동적이고 총체적인 그 무엇이야. 모든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끊임없이 그 형태를 바꾸어 가고, 그리고 완전성을 유지하고 있다구.


, 이곳은 결코 고정적으로 완벽한 세계는 아니란 거야.

다시 말해 움직이면서 완벽해 지는 세계란 말이지. 그렇기 때문에 내가 탈출구를 원한다면, 탈출구는 있게 마련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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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무라카미 하루키

  

 

1. 추리소설? 환타지? 성장소설?

 

제목을 써놓고 보니, 이런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1권을 읽다 보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계산사 기호사

조직 공장

버튼 없는 큰 엘리베이터 상실의 시대에 나오는 우물 생각이 나네요

그림자를 떼어 낸다 피터팬인가?

야미쿠로 일본에 산다는 많은 귀신 중 하나인가 봐요?

두개골로 꿈을 읽는다

 

이거 대체 무슨 얘기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시작부분은 호기심을 자극하니 그렇다 쳐도,

둔감한 저는 1권 다 읽어가도록 답을 알 수 없어 답답 하더라구요.

그래도 2권까지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알 수 없는 얘기들이 쏟아지기에 답이 궁금해서,

둘째, 세계의 끝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넘나 들며 제법 속도감이 있어서,

셋째, 칼부림(?)도 나오고 야미쿠로 라는 귀신도 출몰하기에,

넷째, 무라카미 하루키 라서(?) 입니다.

 

다 읽고 나니, 뜬금없게도 다크시티(Dark City)가 다시 보고 싶어 지네요.

매트릭스, 다크시티, 같이 영화나 애니로 제작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래는 다크시티 리뷰를 잘 해주신 바이러스님 블로그를 링크해 둡니다.

 

Empty Life(바이러스) 님의 다크 시티 리뷰 보러 가기


2.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화상
자뻑소설

 

저의 개인적인 느낌은요.

백설공주의 마법거울을 갖고, 이상한 나라에 들어간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을 비춰보면서 그린 자화상 같은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요즘 은어로 자뻑을 소재로 글을 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뒤에 부록으로 매달린 평론에 슬쩍 나르시시즘이라는 단어가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평론은 제가 수준미달이라 읽기가 힘들어 관뒀습니다.)

자뻑 을 인기소설로 만드는 그의 재능이 부럽기만 합니다.

 

 

3. 천국은 어떤 곳일까?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싫은 것은 없고, 좋은 것만 가득한 곳일까요?

질병, 고통, 죽음이 없고, 기쁨과 환희가 가득한 곳일까요?

그러면 싫었다가 좋아지고, 좋았다가 싫어지면 어쩌나요?

 

좋은 사람과 좋은 관계가 가득한 곳일까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의식이 창조한 세계를 천국으로 보는 건가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이에 대한 것은 이 책의 일부를 인용하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그들은 구덩이를 파는 것 자체가 목적이네. 단지 구덩이를 파고 있을 뿐이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순수한 구덩이지.

? 잘 모르겠습니다.

간단해. 그들은 단지 구덩이를 파고 싶으니까 파고 있는  걸세. 그 이상의 목적은 아무것도 없지.

………….

우리는 여기서 모두 제각기 순수한 구덩이를 계속 파고 있는 것뿐이야.

목적이 없는 행위, 진보도 없는 노력, 아무데도 다다르지 않는 보행, 멋지다고 생각지 않나? 아무도 상처를 입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상처를 입히지 않지, 아무도 앞질러 가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추월당하지도 않네, 승리도 없고, 패배도 없는 걸세.

 

 

 

우선 마음의 문제야. 너는 나한테 이 도시에는 싸움도, 미움도, 욕망도 없다고 했지?

그건 그것대로 좋아. 나도 기운만 있으면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야. 그런데 싸움과 미움과 욕망이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그 반대의 것도 없다는 얘기기도 하지.

그건 기쁨이고. 행복이고. 애정이야.

절망이 있고 환멸이 있고 비애가 있음으로 해서 기쁨이 생기는 거야 절망이 없는 행복 따위는 아무데도 없어. 그게 내가 말하는 자연스러움 이라는 거야.

 


http://lawcher.tistory.com2008-02-18T10:17:320.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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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


꽤나 유명한 책이지만, 이제서야 읽어 보았습니다.
오래 전에 이 책을 추천해준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물었습니다.

"상실의 시대, 네가 전에 추천해준 책 말이야."
"지금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읽을만 하겠니?"

책을 다 읽고 난 후 저의 답은 '글쎄' 입니다.
무척 재미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죽어서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에는 원칙적으로 손을 대지 않는다는 책 속의 '나가사와'의 말처럼 이 책은 '시간의 세례'를 받을 지 않을 지 궁금합니다.

저의 감상은 <어른을 위한 성장소설> 이라고 말씀드릴께요.

아래에는 위에 말한 감상을 기억하기 위한 구절의 인용과 저의 단상을 기록합니다.

1. 추억이란?

<젊은 Googler 의 편지>를 지은 김태원 씨가 소개한 '중독'의 정의는 '이번이 마지막' 입니다. 재미가 있어서, 친구들과의 티타임 시간에 '낱말정의' 놀이를 잠깐 해 봤습니다. 진행자인 저의 솜씨가 좋지 않아, 듣고 싶어하던 '추억'의 정의는 하지 못했죠. 여러분은 추억을 어떻게 정의하시겠어요?

<책 속에서>
18년이 지나버린 지금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는데 점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초원은 생생한 느낌으로 기억하고, 그녀가 얘기한 우물도 여전한데........
 

2. 대학진학, 더 넓은 세상? 삶의 재부팅?
그런 방을 보고 있으면, 그녀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대학에 입학해 고향을 떠나 알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학교를 택한 건, 우리 고등학교에서 아무도 이 학교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야." 하고 나오코는 웃으면서 말했다.


3. 친구, 사귐, 대화

아마 내 마음 속에는 딱딱한 껍데기 같은 게 있어서, 그걸 뚫고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제한되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제대로 사랑할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내 팔이 아니라, '그 누군가'의 팔인 것이다.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나의 따스함이 아니라 '그 누군가'의 따스함인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이라는 데서 나는 어쩐지 꺼림칙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죽은 친구의 연인, 나를 알아줄 것 같은 사람, 오래 걸으며 대화할 수 있는 사람임에도 그런 나오코를 남으로 거리 두는 와타나베. 그 거리는 나오코가 만드는 것일까? 와타나베가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죽은 기즈키가 만드는 걸까?


4. 정상과 비정상 그리고 이방인 


"그런데 왜 넌 그런 사람들만 좋아하는거야?" 하고 나오코가 말했다. "우린 모두 어딘가 휘어지고, 비뚤어지고, 헤엄을 못 쳐서 자꾸만 물 속에 빠져 들어가기만 하는 인간들이야. 나도 기즈키도 레이코 언니도, 모두 그래 어째서 좀 더 정상적인 사람들을 좋아하지 못하는 거야?"


정상과 비정상은 무엇을 기준으로 나누는 것일까요?
정상인이 되려고, 평균인이 되기를 바라며 주위를 끊임없이 살피고, 맞춰가며, 동시에 특별한 사람이 되고, 다른 대우를 받기를 바라며, 또 주위를 살핀다. 이 과정에서 실패하면 레이코나 나오코, 기즈키 처럼 물 속에 빠져드는 걸까? 어쩌면 나(와타나베)는 이들과 소통함으로 물 속에 빠지지 않으려는 건 아닌지?


5. 소통-둘이 좋은 경우와 셋이 좋은 경우

"성장의 고통 같은 과정을 치러야 할 때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바람에 그 고지서가 이제야 돌아온 거야. 그래서 기즈키는 그렇게 되었고, 나는 이렇게 여기 있는 거야. 우린 무인도에서 자란 헐벗은 아이 같은 존재였어. 배가 고프면 바나나를 따먹고, 외로워지면 서로 품에 안겨 잠들었던 거야. 하지만 그런 게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겠어? 우린 자꾸만 자라나고, 사회로 진출도 해야 하고, 그러니까 너는 우리에게 중요한 존재였던 거야. 넌 우리 둘을 바깥 세상과 이어주는 고리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어. 결국엔 잘 안 되었지만."

"그런 식사라면 하쓰미씨와 둘이서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네가 가주는 게 편해, 내게도 하쓰미에게도" 하고 나가사와 선배가 말했다. 세상에, 이건 기즈키, 나오코의 경우와 똑같지 않은가.


6. 마무리

<스틱>에서 지은이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왜 우리와 친구는 그렇지 못한데, 친구의 친구의 삶은 그렇게 드라마틱한 것인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삶이 4차원이라 이런 소설을 써냈다고는 생각 못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많은 부분을 공감하면서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이쯤 되면 제가 '이상한 나라의 폴'이 되는 건가요?
http://lawcher.tistory.com2008-02-05T14:11:180.3610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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