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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살아간다는 것) - 위화

우리 마을에 처음으로 생긴 공립도서관, 그 곳 강당에서 접이식 간이의자 백여 개를 놓고 한 영화상연을 통해 처음 만났습니다. 영화 제목이 '인생'. 까까머리 코흘리개 중학생이 살면 얼마나 살았다고, '인생'이란 제목의 영화를 보기위해 거기에 앉아있었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영화를 접하기 어려운 때라, 공짜로 영화를 보기 위해서였겠죠.

영화 곳곳에 나오는 중국 근현대사를 몰라도(지금도 잘 모릅니다.) 참으로 재미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추억은, 불편한 접이식 의자에 앉아서 같이 영화를 보던 사람들과 같이 탄식하고, 웃으면서 호흡을 같이 한 기억입니다. 추억은 항상 아름다운 과장으로 범벅이 되는 것일지는 몰라도, 그 때의 추억은 제 머릿속에는 영화 '시네마 천국'의 마을극장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머리가 굵어진 후, 우연히 그 영화의 원작이 책이란 것을 알았어요.
작가는 '위화(여화)' 책 제목은 '인생(살아간다는 것)' 입니다. 영화와 책은 조금씩은 다릅니다. 아마도 그걸 각색이라고 하나 봅니다.

책이건 영화건 본론을 얘기해야죠. 너무 사담이 길었습니다.
처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제법 있어서, 도련님 소리를 듣는 철부지가 있습니다. 이름은 '푸구'. 결혼도 해서 딸까지 하나 있는 이 녀석은, 가족의 만류에도 도박과 기생에 빠져 삽니다. 결국 도박으로 모든 것을 잃습니다. 집도, 땅도, 도련님이라는 지위도, 곧이어 아버지, 어머니도 말이죠.

그나마 다행인 점은 푸구가 젊다는 것과 그의 아내 '자전'은 착하고 지혜롭다는 것 입니다.
'푸구'와 '자전' 그리고 사랑하는 딸 '펑샤'와 막내아들 '유칭' 이들이 가족이라는 것도 눈물나게 다행입니다.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풀처럼 사는 사람들. 이들의 행복을 빌어주실래요? 저도 여러분의 행복을 빌어드리겠습니다.


아래는 그냥 개인적인 기록입니다.

1. 나만 모르는 것

그가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는 사실을 주위가 다 알아도 정작 본인은 모릅니다.
'반만 잃었을 때 알아차렸다면.', '집만이라도 살렸다면.' 싶지만, 푸구는 파산을 할 때까지 알지 못합니다. 매일같이 외상장부에 지장을 찍으면서도, 아내 '자전'이 임신한 몸으로 걸어와서 하소연을 해도 알지 못합니다.
답답합니다. 책속으로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서 멱살을 잡고 한 대 때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책 밖으로 나와 봤는데 저 역시 뭔가를 계속 잃고 있네요. 시간, 금전,......을 말입니다. '푸구'와 같은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 잃고 있는 것과 버려야 할 것 그리고 새출발의 기초자산

푸구는 재산과 가족을 잃고 있었고, 도박과 기생을 버려야 했습니다.
책 속의 푸구 인생과 때때로 들려오는 다른 사람의 인생은 훤히 보이는 것 같은데, 막상 자신의 인생은 잘 모르겠습니다. 잃고 있는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알 것도 같으면서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끼적여 보면 버려야 할 것은 '같지 않은 학벌'과 '자존심', '주위의 시선이나 평가', '체면' 이런 것이 있네요.

푸구는 그림자극 소품(영화)과 농지(책),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로 다시 살아갑니다. 저는 무엇으로 다시 출발해야 할까요? 이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묵적도, 방향도......

써놓고 보니 일기인지 리뷰인지........
신세한탄을 공개하는 것도 같습니다만, 신세한탄이 아니라 반성하고자 함이니 좋게 봐주세요. 그리고 '무슨 짓을 하던지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이 책 머릿말에서 작가가 한 말에 영향을 받아서 제가 한 동안 읊조리고 다녔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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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허삼관매혈기>, <형제> 를 꽤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에게 두 작가의 우열을 가릴 권한도, 능력도 없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를 추천해준 친구에게

"하루키 얘기는 나하고는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얘기를 하면서 "난 위화가 좋더라."고 얘기했죠.

속된 말로 '위화빠' 정도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작 3편을 읽었지만요.
그랬기에 '위화 산문집'이라는 부제를 달고 출간된 <영혼의 식사>를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조금이라도 작가의 일상이나 생각들을 알고 싶어서였죠.

그런데 다 읽고 난 지금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왜 이리 허망한지요.
당혹스럽습니다.
이 허망함과 당혹감은 전염성이 있는지, 다른 책을 읽어도 아무것도 쓰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쓰는 글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끼적임에 불과했는데도 그것도 못하겠다니 환장할 노릇입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바라고 이 책을 집어 들었던가?"
"무얼 기대했던가?"

무엇엔가 쫓기듯, 읽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기계적으로 집어 들었던 것이 탈인가 봅니다.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꾸역꾸역 읽어 온 것이 체했나 봅니다.
어느 블로거의 말대로 '급조한 느낌'의 이 책에 대한 실망보다는, 저 스스로가 바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읽은 이유와 체한 머릿속의 헛헛함을 느끼는 이유로 이 책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 적어도 지금의 저에게는 말이죠.
그래서 작가의 서문을 모아놓은 3편은 읽지 않았습니다.
각 소설을 읽을 때는 너무나도 좋아했던 서문임에도 모아놓으니 싫어지네요.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어떤 것도 끼적일 수 없을 것 같더니 주절대고 있는 새에 두 가지 생각이 남네요.

그 하나는 '아이, 두려움과 마주치다.' (p. 37)

위화의 아들 로우로우(漏漏)는 자신의 똥과의 첫 만남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웁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지막으로 비행기 안에서 두려움을 느끼죠.
비행기 안에서는 이렇게 두려움을 표현합니다.

"사람 살려, 살려주세요."

귀엽죠? 위화는 이런 말을 하네요.

이런 형태의 두려움은 늘 혼자 극복할 수 있고, 그럴 때마다 내면의 성장을 얻을 수 있다.
세계에 대한 녀석의 이해, 그러니까 진정으로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들에 대한 이해는 부단한 공포와 극복을 통해 완성된다. 녀석이 어른이 될 때까지, 심지어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이런 두려움이 그와 동반할 것이다. 마치 어린 시절부터 나와 함께했던, 나뭇가지가 달빛에 모습을 드러내며 빛을 발할 때 느꼈던 공포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p. 39, 40)


지금 나와 함께하는 두려움은 무얼까 생각해 봅니다.
갑자기 떠 오르는 것은 없지만, 꽤나 많을 겁니다.
창피해서 여기에 적을 수는 없지만, 한 번 정리해 봐야겠습니다.


두 번째는, 길거리에서 울고 있는 노인의 모습 입니다.


하루는 아내 천홍과 함께 베이징의 왕푸징 거리를 걷고 있다가 갑작스런 광경에 경악하고 말았다. 왁자지껄한 인파속에서 갑자기 반듯한 복장을 한 노인이 눈물을 쏟으며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것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들뜬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불행을 그렇게 솔직하게 표출하는 그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가득했다. (p. 147)


내 마음은 눈물을 잊은 지 오래입니다.
김광석의 노래 <타는 목마름으로>의 첫 구절처럼 말이죠.

행복한 표정으로 가득한 거리에서 소리 내어 우는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당혹스러울까요.
신문과 기사는 불행의 표지로 가득하고, 거리는 행복한 얼굴로 가득합니다.
불행한 이들은 모두 숨어있는 건가요. 행복한 얼굴은 거리의 통행증인가요.

짐 캐리의 <YES 맨>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나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긍정의 힘> 같은 책들이 흩뿌려지고 있는 시대에 우리의 눈물은 겉으로 나오지 못하고, 맘속에서 고여 썩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니다.

눈물도 소통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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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무라카미 하루키의 비교

 

 

친구의 오랜 추천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 위화를 추천해 보려고 합니다.

위화를 재미있게 읽은 이유도 있지만, 그 친구의 느낌을 듣고 싶어서가 큰 이유 입니다.

 

아래에는 지금의 제가 느낀 대로, 위화와 무라카미 하루키를 간단히 비교해 보았습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소감에 불과함을 먼저 말씀 드립니다.

1. 비교

위화의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

그들이 등장 합니다.

<> 가 주인공으로 등장 합니다.

똥구멍에 털 날 정도로 울다가 웃을 수 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고 하지 않습니까? 힘들고 애환 가득한 삶이라도 한 조각씩 한 무더기씩 웃음이 있습니다.

잔잔하고 관조적이다.

야미쿠로가 나오고, 칼에 찔리고, 살인사건이 일어나도 차분한 분위기 입니다.

현실만 존재합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만 해도 충분히 즐겁고, 고달프고, 바쁘면서 치열하기에 그럴 것입니다.

현실과 꿈 사이를 오갑니다.

<> 뿐 아니라, 다른 인물 들도 내면 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자신을 탓하고, 부정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자신의 언행을 이유로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일기나 수필을 보는 기분이 들 정도로 내면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2. 공통점

위화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기를 찾아가던지,
하루키 소설 속의 <나>처럼, 내면으로 침잠하던지,
둘 다 <나>를 찾고 <관계>를 이야기 하는 것이 공통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철저하게 현실 속에서 사람과 관계를 이야기 하고 있던지(위화),

몽환과 현실을 오가면서 이음매듭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던지(무라카미 하루키) 둘 다 '나' 또는 '관계'를 다룬다는 점을 공통점으로 뽑아 봤습니다.

저만의 생각이라 여러분의 공감을 얻지 못할 수도 있겠군요.

P.S. 공통점은 써놓고 보니, 억지스럽기도 합니다...;;;;;귀엽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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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위화-위화가 그려내는 문화혁명 류진마을과 그 이후

이번에는 작가 위화가 문화혁명 시기와 그 이후의 중국 풍경을 어떻게 그려내는지
담아두려 합니다.
한국의 과거와도 비슷해서 공감을 자아내는 부분도 있습니다.

문화혁명 같은 일을 겪지는 않았지만, 연좌제의 부분에 있어서는 우리에겐 한국전쟁도 있었고, 아직도 레드컴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는 일면도 있기에, 두고 두고 곱씹어 보고자 이렇게 담아 둡니다.

<> 로 묶은 부분이 이 책 형제의 인용 부분 입니다.

문화혁명기 묘사
< 우리 류진의 대장장이 동 철장은 쇠망치를 높이 든 채 정의를 보면 용감히 나서는 혁명 대장장이가 되겠다면서 계급의 적들의 개머리와 개다리들을 짓이겨 호미나 낫처럼 납작하게 만들어서 작살을 내버리겠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우리 류진의 여 뽑치는 이 뽑는 집게를 높이 치켜든 채 자신의 애정과 증오를 분명히 하는 혁명적인 치과의사가 되겠다면서 계급의 적들은 멀쩡한 이를 뽑아버리고, 계급의 형제자매들은 썩은 이만 뽑겠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우리 류진의 옷을 만드는 장재봉은 목에 가죽 줄자를 건 채 자신은 통찰력 있는 재단사가 되겠다며 계급의 형제자매들에게는 세계 최신의, 최고로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줄 것이지만, 계급의 적들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후진 수의를 지어주겠다고 외쳤다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아니지! 내가 잘못 말했어!"
그러더니 가장 후진 시체보를 지어주겠다고 수정했다.

우리 류진의 아이스케키 장수 왕 케키는 아이스케키 상자를 등에 멘 채 자신은 영원히 녹지 않는 혁명적인 아이스케키 장수가 되겠다면서 아이스케키를 사라고, 자신은 계급의 형제자매들에게만 아이스케키를 팔지, 계급의 적에게는 절대 팔지  않겠다고 고함을 쳤다.
왕 케키의 장사는 날개 돋친 듯했다. 왜냐하면 그가 파는 아이스케키는 일종의 혁명증서였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 소리쳤다.
"빨리 사세요. 내 아이스케키를 사는 사람들은 계급의 형제자매요. 안 사는 사람들은 계급의 적 입니다요!" > 형제1 p. 115



< "전봇대에 대고 해도 감옥에 가고 총살당해요?"
"당연하지"

여 뽑치는 말투를 바꿔서 계속 말을 이었다.
"네 계급 입장을 봐야겠지만 말이다."

"무슨 계급 입장요?"
이광두는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여 뽑치는 맞은편 나무전봇대를 가리키면서 이광두에게 물었다.
"넌 저 전봇대를 계급의 적들인 여자로 보냐, 아님 형제자매 계급으로 보냐?"
이광두는 여전히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고,
여 뽑치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신나게 말을 이어갔다.

"네가 만약에 전봇대를 계급의 적들인 여자로 봤다면 너는 전봇대를 비판투쟁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고, 만약에 전봇대를 자매 계급으로 봤다면 넌 반드시 결혼 등기를 해야 한다 이 말씀이야. 결혼 등기를 안 하면 어떻게 되느냐? 그건 바로 강간이지. 성안 전봇대를 다 해버렸으니 동료 계급의 자매들을 전부 강간해버린 셈이니 어떻게 평생 감옥에 총살을 피하겠느냐?"  >  형제1 p. 158~159 중에서



< "당신 남편이 지주면, 당신은 지주 마누란가?"
"그렇습니다."

그 사내는 고개를 돌려 시위 대열의 혁명 군중을 보며 소리쳤다.
"봤소? 이렇게 날뜁니다....."

말을 마치자 마자 몸을 돌려 손을 들더니 그대로 이란의 뺨을 후려 쳤고. 그 바람에 이란의 머리가 크게 흔들렸다. 입에서 시뻘건 피가 흘러나왔지만, 그녀는 당찬 웃음을 지어 보이며 여전히 고개를 꼿꼿이 든 채로 그 사내를 쳐다보았다. 붉은 완장을 찬 사내가 또 한 방 날렸고, 그녀의 머리는 또 한 번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당찬 웃음을 지어 보였고, 고개를 꼿꼿이 세운 채 그 사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 때렸나요?" > 형제1 p. 251


< 이광두는 여자들 엉덩이를 훔쳐보다가 일거에 유명해진 후 더 이상 '새끼 지주'가 아닌 '새끼 엉덩이'가 되어버렸다.
사람들 머릿속에서 잊혀졌던 그의 친아버지의 악취 나는 명성이 마치 새로 발굴된 문화재처럼 출토된 것이다. 이광두의 동기들도 더 이상 그를 '새끼 지주'라고 부르지 않고 '새끼 엉덩이'라고 불렀다. 죽은 그의 친아버지가 '늙은 엉덩이'니까 말이다. 그이 선생님까지도 그렇게 불렀다.
"새끼 엉덩이, 청소해라." > 형제1 p. 296


그 시절 영구표 자전거

<행복에 겨워 갈팡질팡하던 송강이 이제까지 저축했던 돈 거의 전부를 털어 반짝반짝 빛나는 영구표 자전거를 샀다. 영구표 자전거가 어떤 물건이냐?

그 시절의 영구표 자전거는 지금의 벤츠나 BMW에 상당하는 가치로, 일 년에 고작 세 대 정도가 우리 현에 할당될 정도였으니, 돈 없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돈 있는 사람들도 반짝반짝 빛나는 영구표 자전거를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마침 임홍의 삼촌이 금속회사의 사장이었고, 매년 세 대만 배당되는 자전거를 누구에게 팔 것인가 결정할 권한을 가진 사람이었으니 그 위세가 대단해서 누구든지 그를 보면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혔는데, 임홍이 류진에서 송강을 돋보이게 하려는 마음에 종일토록 조르고 거의 울며불며 삼촌에게 매달리면서 송강이 한 대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떼를 썼고, 임홍의 부친도 동생에게 달라붙어서 난리를 쳤고, 임홍의 모친 역시 거의 삿대질을 하며 시동생을 윽박지르는지라 원래 현 전투경찰대장에게 갈 몫인 영구표 자전거를 어쩔 수 없이 임홍의 사랑 송강에게 할당해준 것이다....

그는 한 달에 목욕을 고작 네 번 하지만, 그의 영구표 자전거는 매일 닦아주었으니 말이다.>
형제2 p. 154-155


류진마을 남자들의 양복 붐
< 여 뽑치와 왕 케키는 껄껄 웃으며 아들 관 가새네 가게를 나와 동철장네 도착했다. 동 철장은 짙은 남색 양복을 입고 그 위에 그의 상징인, 불똥이 튀어 잔뜩 생긴 작은 구멍들을 기운 앞치마를 두른 채 쇠를 두들기고 있었다. 여 뽑치와 왕 케키는 멍한 눈길로 이를 바라보았고, 왕 케키가 여 뽑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양복도 작업복이 될 수 있나?"
"양복도 작업복이죠."

동 철장도 들었는지 큰 소리로 말하면서 들고 있던 망치를 내려놓았다.
"테레비에서 외국 사람들은 다 양복 입고 출근을 하더군요."

여 뽑치는 곧바로 왕 케키를 가르치려 들었다.
"그렇지, 양복은 외국 사람들 작업복이지."

왕 케키는 자신의 양복을 보며 약간 실망한 듯 혼잣말을 했다.
"원래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 다 작업복이었구먼." > 형제2 p.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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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위화-송강의 인물 됨됨이


이번에는 이광두의 형제 송강을 작가가 어떻게 그렸는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형제인 송강과 이강두는 자연스레 비교가 됩니다.
이 두 형제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 생각은 인용글을 마친 아래에 적겠습니다.
<> 안의 글이 인용글 입니다.





송강의 인물됨됨이

첫째, 송강은 진실된 사람이다.
사기꾼 주유가 언변좋은 조시인이 아닌 송강을 데려간 이유도 이것이고,
이광두가 송강에게 재무관련 직업을 제안한 이유도 이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진실된 사람' 이란 자기 스스로나 남에게 솔직하다는 의미가 아닌,
남을 속이지 못한다는 의미의 '진실함' 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송강의 비극이 시작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남을 속이지 못하는 진실과 자기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는 진실함이 결국에는 스스로를 기만하고 속이는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이타적이지 못한 송강
남을 속이지 못하고, 진실된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타적일 수도 있을 텐데....
오히려 이기적인 이광두 만큼이나 베풀지 못합니다.
그렇게 서로 사랑하던 임홍의 고민을 들어주지도 못할 정도로 말이죠.
누구를 위한 진실함이고, 선량함인지, 한숨이 나옵니다.

(제가 '이타적이다'와 '베풀다'를 같은 의미로 사용함을 이해해 주세요.
만약 차이가 크다면 댓글로 깨우쳐 주시기 바랍니다. )

송강이란 사람에 대한 제 결론은
남을 속이지 못해, 결국 스스로를 속이는 송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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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위화-이광두의 인물 됨됨이

전편에 말씀드린대로, 이 번에는 '이광두'의 인물됨됨이를 보여 드리려 합니다.
작가 위화가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몇 구절 인용해 봅니다.
<> 안에 있는 글이 인용글 입니다.




어떠세요?
이광두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느낌이 오시나요?
제가 느낀대로 한 번 적어 볼께요.

인물 이광두는

첫째,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고 충실한 사람입니다.
어린 송강이 캐러멜을 훔쳐먹는 걸 무서워 한 것에 비해, 어린 이광두는 어차피 엎지른 물이라는 생각에서인지, 먹던 캐러멜은 다 먹어치우고 무서워 합니다.

둘째,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칩니다.
이런 기질을 사업가인 이광두에게도, 사기꾼인 주유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새끼 엉덩이 -> 엉덩이 대왕 -> 복지공장장 -> 빛쟁이 -> 폐품대왕 -> 전 중국거지연합장
->류진의 최고 이총재에 이르기까지 넉살좋고 항상 당당한 이광두를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투자금을 다 날리고 쫄쫄 굶으면서 송강에게 굶었다고 얘기하는 모습에서도
실패자의 모습이나, 두려움, 비굴함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 입니다.

셋째, 항상 잠을 잘 잡니다.
첫째와, 둘째에 연관되는 성품일 것입니다.
임홍을 사이에 두고 송강과 그 난리를 치고도 잠을 푹 잡니다. 여덟시간이나
어머니 이란을 모시고 갈 방안을 찾자마자, 잠을 푹 잡니다.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인물일까? 하는 부러움이 생깁니다.

넷째, 사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솔직하고, 직설적인 말투, 낙천적인 대담함으로 만들어진 주변사람의 인식일 것입니다.
임홍은 그녀의 고통을 사랑하는 송강에게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리도 싫어하던 이광두에게는 털어놓습니다.
이광두의 사회적 지위와 능력이 한 몫 했겠지요, 그러나 저는 지위나 돈 보다는
이광두가 더 편했기에 고민을 털어놓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책의 인용과 제 생각은 여기까지 입니다.
전 이광두 성격의 많은 부분을 닮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람을 어떻게 보셨을지 궁금합니다.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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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위화

위화의 소설은 이번이 세 번째 입니다.
<인생-살아간다는 것>, <허삼관매혈기> 다음이 이 책 <형제>입니다.

세 권이나 되는 책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에 무리가 있지만,
한 마디로 '형제는 <인생>의 확장판'이라고 감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인생>에는 부귀와 그 가족의 평생이 우습고도 담담하게 드러나 있고요,
<형제>에는 송강과 이광두 외에 류진의 사람들의 인생역정이 해학넘치는 입담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저는 <인생>이 더 좋았지만, 이 책도 좋았기에
다음의 순서로 보여 드리려 합니다.

첫째, 송강의 인물됨
둘째, 이광두의 인물됨
셋째, 전반부 시대적 배경인 '문화대혁명'을 위화가 어떻게 그려내는지

이렇게 셋으로 나누어 이 책 <형제>와 위화를 소개하려 합니다.

위화가 서문에 쓴 글처럼,
'꿈마저 균형을 잃어버리는' 불행이 없기를 바랍니다.
아래에 서문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오늘날의 불균형한 삶입니다.
지역 간의 불균형, 경제적 발전의 불균형, 개인 삶의 불균형 등이 심리상의 불균형으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꿈마저 불균형하게 됩니다. 꿈은 모든 사람의 삶에 꼭 필요한 재산이며 최후의 희망입니다.

설사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도 꿈이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오늘날 우리는 꿈마저 균형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노르웨이의 작가 입센이 한 "모든 이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 책임이 있고,
그 사회의 온갖 폐해에 대해 일말의 책임이 있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내가 왜 <형제>를 쓰게 되었는지 답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병자이기 때문입니다.

PS 궁금한 점은, 최용만 님이 중국소설을 어떻게 이렇게 옮기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중국어를 하지 못하지만, 원어로 보면 같은 감상을 가질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배한성 님이 활약한 맥가이버를 원어로 보면 이상하게 느껴지는데, 그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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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위화

웃지 못할 자기 희생

‘허삼관매혈기’라고 한문이 아닌 한글로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한 눈에 매혈의 뜻을 알아차리는 분이 많지는 않겠죠?
-어린 독자시라면 더욱더….
이 책에는 해학이 넘치는 자기희생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선 매혈의 본보기를 말한 후에, 왜 눈물나게 웃긴 지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1. 매혈의 본보기(?)
 
피값으로 사는 인류의 역사가 꽤 전통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적어 봅니다.

우선, 예수는 피를 파셨죠.
경우에 따라서는 몸을 파셨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예수의 피를 산 이는 하나님, 그의 매혈 덕분에 산 사람은 인류입니다.

그 다음, 석가모니 역시 수 많은 수행 중에 인신공양을 하셨죠.
그 분 역시 피를 팔고, 몸을 파셨습니다. 그의 피를 산 이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매혈 덕분에 복받은 이는 온 중생입니다.

셋째, 이 책의 주인공 허삼관 또한 매혈을 합니다.
그의 피를 산 이는 이혈두와 병원, 그의 매혈 덕분에 산 사람은 그의 세아들

모두 피를 팔았습니다.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요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 의하면(아직 못 읽었지만), 허삼관의 매혈은 결국 자신의 유전자를 위한 행위라고 이해되겠지만, 본인을 위함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 눈물나게

허삼관은 집안에 큰 일이 있을 적마다 피를 팝니다.
땀흘리는 것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 피를 팝니다.
자기는 복을 받아 건강 하다고, 자랑을 하면서 피를 팝니다.
그 아비의 피값으로 가족이 살아갑니다. 나중에 아비가 늙어서, 피를 팔 수 없을 때, 자식이 그만큼 다 자라 있을 때도 아비는 피를 팔 생각을 합니다.

“이젠 늙어서 아무도 내 피를 거들떠 보지 않아…..., 앞으로 집에 일이 생기면 난 어떻게 하지?”

저 역시 어미 아비의 피 같은 땀으로 자랐습니다.
지금 아버지 어머니의 마디진 손과 자글자글한 주름은 세월의 남긴 상처만은 아닐 것입니다.
부모님의 주름을 보고 우는 것도 불효라 생각합니다.
눈물 그렁그렁 하더라도, 웃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3. 웃기다

허삼관이라는 세 아이의 아비는 그 위인됨이 우습습니다.
김유정 작가의 소설 ‘봄봄’, ‘동백꽃’에 나오는 캐릭터 만큼 우습습니다. 김동인 작가의 ‘발가락을 닮았다’ 처럼 우습습니다.

사람들이 채플린이나 영구 같은 바보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죠? 위험하지 않고, 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며, 자신보다 못하기 때문이라고 들은 듯 합니다.

허삼관은 바보는 아닌데도, 일상이 우습습니다.
아마도 저의 일상을 이리 옮겨놓아도 여럿을 웃길 것 같습니다.
허삼관의 황당한 위인됨을 들여다 보면 아래와 같아요.

“허삼관이 그 깨진 삼각형의 거울을 손에 들고 자신의 눈을 한 번 보고 다시 일락이의 눈을 보니, 그 눈이 그 눈이었다. 그는 다시 자신의 코를 비춰보고 다시 일락이의 코를 보니 역시 그 코가 그 코였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모두들 일락이가 날 안닮았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래도 닮은 구석이 있구만.'”


가뭄 때문에 온 가족이 굶을 때, 말과 상상으로 요리를 먹는 장면입니다.

"일락이는 뭘 먹을래?" "홍소육요." 허삼관은 기분이 약간 상했다. "세 놈이 죄다 홍소육을 먹겠다니.....,왜 좀더 일찍 말하지 않고, 일찍 말했으면 한꺼번에 만들잖아. 그러면 한 번에 끝나고...,자 그럼 일락이에게 고기 다섯 점을 썰어서....."

4. 해학이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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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들이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그 고단을 날려버리는 것이 해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있는 사람은 재기발랄한 위트는 있을 지 언정 해학은 모를 것입니다.
자본에도 국경이 없고
노동자에게도 국경이 없고
가난에도 국경이 없으니 해학에도 국경은 역시 없나 봅니다.
오늘 중국의 해학을 맘껏, 맛보고 갑니다.
http://lawcher.tistory.com2007-11-08T05:51:450.3810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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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살아간다는 것)


인생이라! 책 제목 한 번 거창하다.
제목부터 보자 치면, '너 인생 똑바로 살아라'하며 가르치려 드는 책 같이 오만방자해 보인다.
4대성인 외에 누군가 인생을 가르치려 든다면 누가 곧이 듣겠는가?
최고기업의 CEO?, 덕망있는 정치인?, 종교지도자?
그들이 자신의 삶을 발가벗겨 드러내놓고 낮아지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의 인생강의를 들을 의향이 없다.
세상에 귀천도 있고, 계층도 분명하지만, 스스로 귀하지 않은 인생이 없기에, 누구나 자신만의 삶이 있고, 각자에게는 스스로의 인생의 무게가 있기에 그렇게 난 자신만만하다.

저자 위화는 '인생'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발가벗긴다는 단어도 어울릴 정도로 말이다.
어떻게 자연스럽게 '인생'을 보여주는 지는 예비독자들이 해야할 일이다.
- 난 스포일러가 되어 여러분의 감상을 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최대한 줄거리는 배제하려 한다.


1. 유의점 -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털난다

방문해 주시는 분들의 얼굴을 붉히기 위해서 쓴 글이 아님을 밝혀둔다.
저속하다고 손가락질 하실 분은 하시라고 말씀 드린다.
동심으로 돌아가 보자고 가감없이 써 본 표현이다. ㅡㅡ;
그런데 책을 읽고 나시면 손가락질 자제하시게 될 것이다.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면서 책을 읽다보면 주위 사람을 의식하게 될 정도이니 말이다.

2. 책 제목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데 '푸구이'는 전통적인 우리의 아버지로 보였고, 불평없이 꿋꿋하고 한결같은 그리고 순종적이어서 더 슬픈 '자전'은 우리의 어머니로 보였다. 그래서 더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고, 울고 웃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 책의 제목은 '아버지'로 해도, '어머니'로 해도 또는 '가족'으로 해도 어색하지 않다.
그렇지만 역시 '인생'이 잘 어울린다.

읽은 후에는 아시리라, 책쓰는 이들이 흔히 말하는 잘난 척 하는 '인생'이 아님을,
눈물나고, 때론 우습기도 한 잔잔하고 속 깊은 인생임을 말이다.


3. 끝으로 영화이야기

사실, '인생'은 공리가 주연한 영화로 첫만남을 가졌다.
'인생'이라는 영화를 처음 본 것은 머리를 짧게 깎아 까까머리였던 중학시절 이었다.
마을의 도서관에서 백여명 남짓 되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같이 울고 웃으며 보았던 영화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은 그 내용도 떠오르진 않지만,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그리도 울다,웃다를 반복하며 본 기억만으로도,
인생 최고의 영화들 중 하나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http://lawcher.tistory.com2007-10-24T14:28:080.31010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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