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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원숭이 서문 중 발췌 - 무라카미 하루키

[] 안의 내용이 인용부분 입니다
.

[ 나는 실은, 이런 정도 길이의 짧은 스토리를 아주 즐겨 씁니다.
물론 긴긴 장편 소설을 쓰는 작업이, 내게는 가장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틈틈이 이렇게 짧고 재미있고 펑키한 스토리를 쓰다 보면, 마음이 상당히 가벼워집니다.

일이라기보다는 취미에 가까운지도 모르죠. 그래서 이번 달에는 무슨 얘기를 써야 하나 하고 고민을 한 기억은 없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생각나는 대로 술술 담숨에 써내려 가고, 이것으로 끝, 그런 식이었습니다. 조금도 고생스럽지 않았습니다.
........

하지만 만약 당신이 내게 "이런 얘기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 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이죠.
아니, '의미가 없다'고 하면, 오해를 부를지도 모르겠군요.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나는 그 의미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말이 맞을 겁니다.
의미는 아마도 - 깊은 수풀 속에 들쥐가 숨어 있는 것처럼 - 어딘가에 있을 테죠.
내가 그런 스토리를 문득 떠올렸고, 거기에는 내가 그런 스토리를 떠올릴 만한 '필연성'이 반드시 있었을 테니까요.
분명히 들쥐 정도 크기의 필연성이.

그러나 나는, 그 들쥐가 수풀 속에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른다, 는 말입니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이런 이야기를 술술 써내려갔다. - 그것도 신나게 썼다는 것 뿐입니다. 그러니까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우리는 우리들대로 즐기고, 들쥐는 들쥐 나름으로 재미있게 살면 되지 않을까요. ]


P.S  무라카미 하루키를 보고 싶으시다면 이 곳을 찾아가 보세요.

        오유미님 블로그 입니다.

        가셔서 Haruki 탭을 찾아가 보세요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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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키의 작품후기 중

* [] 안의 부분이 인용 부분 입니다.

[ 이
소설은 내게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했다.
일단 발을 들여놓게 되면 좀처럼 그곳에서 자신을 해방시킬 수가 없었다. 역시 가게를 운영하면서는 쓸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때, 소설은 누가 뭐라고 해도 폭력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소설이라는 것을 두들겨 패서 타고 넘거나, 아니면 그곳에서 발목을 잡혀 짓밟히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그곳에는 융화와 협조의 정신은 없다. 하양 아니면 검정, 승리 아니면 패배뿐인 것이다.

어쩌면 이런 식의 표현이 다소 과장되게 들릴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용서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쓰는 과정을 통해서, 나는 진짜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것은 눈이 떠지는 듯한 생각이었다.

이전의 두 작품은 다소의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나는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소설을 썼다. 물론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게임 같은 것이기도 했다. 마음에 든 조각을 바꿔 붙여서 머릿속에서 차츰차츰 선호하는 이미지를 부풀려가고, 그것을 문장으로 바꿔서 옮겼다.

하지만 이 <양을 둘러싼 모험>은 완전히 달랐다.
이 작품은 물론 내가 탄생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 작품은 나라는 존재와 격렬하게 대치하는 칼끝을 갖고 있다.

그것은 내게 어떤 종류의 변혁을 요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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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를 읽고 쓴 글 중에서
'하루키가 생각하는 이름'에 대해 끄적였었죠.

이 책 <양을 둘러싼 모험>에서 '이름' 에 대한 하루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인 듯한 대화에서, '이름'에 대한 하루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제 가정은 하루키의 웃음 하나로 바보가 되고 말겠지만 말입니다.

아래에 [ ] 안에 이름에 대한 재미있는 대화를 인용해 봅니다.
다소 길다 싶어서 중간 부분은 접어 놓았습니다.


[ 뿐만 아니라 놈에게는 이름조차 없었다.
나로서는, 고양이의 이름이 없는 게 놈의 비극성을 덜어주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부채질하고 있는 것인지는 쉽사리 깨달을 수 없었다.

"나비야." 하고 운전기사는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지만, 예상대로 손은 내밀지 않았다.

"어떤 이름이죠?"

"이름은 없습니다."

"그럼 평상시 어떻게 부르고 있죠?"

"부르지 않습니다. 다만 존재하고 있는 겁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그래도 꼼짝 않고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의지를 갖고 움직이지 않습니까?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데 이름이 없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군요."

"정어리 역시 의지를 갖고 움직이고 있지만, 아무도 이름 따위는 붙여주지 않죠."

"그건 정어리와 인간 사이에는 거의 감정의 교류가 없고, 무엇보다도 자기 이름을 누가 부른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하긴 붙이는 건 자유이지만."

"그럼 의지를 갖고 움직이며, 인간과 감정의 교류가 가능하고, 뿐만 아니라 청각을 지니고 있는 동물은 이름을 갖고 있을 자격이 있다는 건가요?"

"그런 셈이죠." 하고 운전기사는 스스로 납득했다는 듯이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떨까요, 내가 마음대로 이름을 붙여도 좋을까요?" ]





[ "왜 지금까지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양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틀림없이 이름이라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때문이겠지.
나는 나, 그대는 그대, 우리는 우리, 그들은 그들, 그것으로 좋은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드는 거야."  ]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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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양을 둘러싼 모험>을 읽으면서 밑줄 친 것을 옮겨 적어 봅니다.

# 다음은 제 생각을 짧게 적어 본 것일뿐, 제목은 아닙니다.
[] 안의 부분이 인용부분 입니다.

#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 "열
두살 때부터 귀를 내놓은 적은 한번도 없어요."
"그래도 모델 일을 할 때는 귀를 드러내잖소?"
"네에, 하지만 그건 진짜 귀가 아녜요." 하고 그 여자는 말했따.
"진짜 귀가 아니라고?"
"그건 폐쇄된 귀예요."
나는 수프를 두 번 떠먹고 나서 고개를 들어 그 여자의 얼굴을 보았다.
"폐쇄된 귀에 대해서도 좀더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겠소?"
"폐쇄된 귀는 죽은 귀예요. 내가 직접 귀를 죽였어요. 다시 말해서 의식적으로 통로를 분단시켜 버리는 일이지만 - 이해하시겠어요?"
나는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
"그대가 말하고 있는 걸 종합해보면 이런 게 된다고 생각하는데.
결론적으로 그대는 열두 살까지 귀를 드러냈었어. 그리고 어느 날 귀를 숨겼지. 그런 다음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번도 귀를 드러내지 않았어. 꼭 귀를 드러내야 할 때는 귀와 의식 사이의 통로를 폐쇄하는 거야. 그런 거요?"
그 여자는 빙긋 웃었다. "그런 거예요."  ]



#  하루키의 학교

[ 여기
에는 자신의 사이즈라는 게 없어. 자신의 사이즈에 맞춰서 다른 사람의 사이즈를 칭찬하거나 헐뜯으려는 무리도 없어.
시간은 투명한 강물처럼 있는 그대로 흐르고 있지. 이곳에 있으면이따금 자신의 원형질까지 해방돼 버린 듯한 느낌마저 드는 거야. ]


이 소설 속에서 쥐의 별장이 있는 곳을 말하고 있지만,
하루키의 다른 소설 속에서는 학교를 이렇게 말하고 있었죠.
예를 들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도 학교도 이런 모습이었다고 기억합니다.

다양성 보다는 표준화된 제품을 양산해내는 학교 말이죠.
개성 보다는 정답일 수 없는 정답을 요구하는 학교 말입니다.



# 혼자 해낼 수 없는 친구 - 사람은 혼자 살지 않아요!

[ "소용없어
. 틀림없이 잘 안 될 거야." 하고 그가 말했다.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찾았다.
찾고 있는 사이에 여종업원이 성냥을 그어서 불을 붙여주었다.
"걱정 없을 거야. 죽 함께 해온 내가 말하는 것이니까 틀림없어."

"너와 둘이니까 해낼 수 있었지. 지금까지 혼자서 뭔가를 해보려고 했어도 잘된 적이 없었어."하고 그가 말했다.

"야, 들어봐. 일을 벌이라고 말하는게 아니라니까. 축소하라고 말하고 있잖아. 예전에 해왔던 산업혁명 이전의 번역일 말이야. 너 한 사람과 여직원 하나, 바깥에서 일감을 맡아줄 아르바이트 대여섯 명과 프로페셔널 두 명. 못 해낼 게 없잖아."

"넌 날 잘 몰라."
10엔짜리가 잘깍하는 소리를 내고 떨어졌다. 나는 나머지 세 닢의 동전을 넣었다.

"난 너완 달라. 넌 혼자서 해낼 수 있어. 하지만 난 그러질 못해. 누군가에게 불평을 늘어놓거나 자문을 구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거야." 하고 그가 말했다.  ]

누구에게나 속상한 일 털어놓고, 화풀이 받아줄 친구는 있잖아요.
말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무덤 속으로는 혼자 들어가겠지만 말입니다.
걱장 마세요.
하루키 씨! 그리고 나 역시!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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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싱턴의 유령
-무라카미 하루키

  

 

이 책은 단편소설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단편소설이 장편소설보다 좋으냐고 물으시면, 답을 하긴 쉽지 않겠습니다만,

 

저는 이 책에 관한 한, 좋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듯한, 그래서 잡힐 듯 말 듯 한 이야기가 좋습니다.

다른 말로는, 명확한 메시지가 없어서 좋구요.(물론 제가 놓친 것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말로는, 여백이 많아서 좋습니다.

 

아래에는 이 책의 단편 중에서 저의 생각의 단편과 인용구들 입니다.

네모 안의 글이 책의 인용입니다.
 

1. 렉싱턴의 유령 잠과 상실감

 

아버지는 그녀를 사랑하고, 아주 소중하게 여기셨어.

아마 아들인 나보다 어머니를 훨씬 더 사랑하셨을 거네.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지. 자기 손으로 획득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어. 그에게 나란 존재는, 결과적으로 얻어진 것이었어. 그는 물론 나도 사랑해주셨어. 딱 하나뿐인 아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머니를 사랑하는 만큼은 아니었지. 그렇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네.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한 것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는 않으셨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재혼도 하지 않으셨으니까.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다음 3주일 동안, 아버지는 내내 잠만 자셨어. 과장이 아니라네. 말 그대로 내내 주무셨지.

…………..

 

그렇게 깊고, 그렇게 긴 잠을 나는 그때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네. 그는 마치 다른 세계로 가버린 사람처럼 보였어. 정말 무섭고 두려웠다네. 나는 그 넓은 저택 안에서, 그야말로 외톨이였지. 세상에로부터 버림받은 듯한 느낌이었다네.

………..

내가 지금 여기서 죽는다 해도, 이 세상 어느 누구 하나, 나를 위해 그렇게 깊은 잠을 자주지는 않을 거네.

 

뒤에 김난주씨가 옮긴이의 말에서 적은 것에서, 저는 위안을 삼을 수 있었습니다.

유령을 무서워 하는 옮긴이의 딸만큼, 혼자되는 것이 두려운 모양입니다.

 

2. 침묵

 

학생들도 3학년이 되면 온통 입시밖에 염두에 없어, 교실 분위기도 팽팽하게 긴장되었습니다. 나는 그 학교의 그런 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들어갈 때부터 좋아하지 않았고 6년을 다녔는데도 끝내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학교 친구는 끝내 한 명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그나마 사귀었다고 하는 상대는 체육관에서 만나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고 또 이미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과는 허물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연습이 끝나면 함께 맥주를 마시기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반 남자들과는 전혀 종류가 달랐고, 하는 얘기들도 내가 보통 교실에서 하는 내용들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함께 있는 편이 훨씬 편했습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여러 가지 중요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만약 내가 복싱을 하지 않았다면, 그 숙부의 체육관에 다니지 않았다면 난 참 고독하였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상을 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하는 말을 혹은 당신이 하는 말을, 누구 하나 믿어주지 않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런 일은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법이죠.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죠.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일은 여섯 달 만에 그럭저럭 끝났습니다만 이 다음에 그런 일이 다시 생긴다면, 그것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자신이 그것에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을지, 전혀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때로 정말 두려워집니다. 밤중에 그런 꿈을 꾸고 놀라 벌떡 일어나는 일도 있습니다. 아니 그런 일이 종종 있습니다.

 

<침묵>을 읽으면서, 학창시절 생각이 많이 납니다.

 

표준과 규격이 지배하는 학교를 생각하면 가슴이 꽉 막혀 옵니다.

다원화 시대, 다문화 시대, 그리고 창의와 다양성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학교는 여전히 정답표준 그리고 정상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3. 토니 다키타니

 

# 상실감 1

 

다키타니 쇼자부로가 홀쭉하게 야윈 몸 하나로 일본으로 돌아온 것은, 1946년 봄이었다.

돌아와 보니 도쿄의 집은 한 해 전 3월 도쿄 공습 때 불타버리고 없었다. 부모님도 그때 돌아가시고 안 계셨다.딱 한 명뿐인 형은 버마 전선에서 행방불명 된 채였다. 결국 다키타니 쇼자부로는 천애 고아의 몸이 된 셈이었다. 그러나 그는 별로 슬퍼하지도 안타까워 하지도 않았고, 그다지 충격도 받지 않았다. 물론 상실감 비슷한 것은 느꼈다. 그러나 어차피 인간은 언젠가는 혼자가 되는 법이다. 그는 그때 서른 살이었다. 외톨이가 되었다고 아무나 붙들고 하소연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다. 단번에 몇 살을 먹은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 이상의 감정은 그다지 일지 않았다.

 

# 상실감 2

 

다키타니 쇼자부로는 그녀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느껴야 좋을지 자기자신도 잘 몰랐다. 그는 그런 감정에는 서툴렀던 것이다. 무슨 평평한 원반 같은 것이 가슴속에 쏙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종류의 물체이고, 어떻게 거기에 있는지 그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그 물체는 내내 거기에 있으면서 그가 그 이상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지 않도록 저지하였다.

그 덕분에 다키타니 쇼자부로는 한 일주일 정도 거의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4. 일곱 번째 남자

 

# 두려움과 고통 1

 

나는, 나의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공포 그 자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자는 잠시 짬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공포는 물론 존재합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출현하고, 때로는 우리 존재를 압도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그 공포에 등을 돌리고, 외면하는 행위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을, 내가 아닌 다른 무엇에게 내어주게 됩니다.

내 경우에 그것은 파도였습니다.

 

 

5.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 두려움과 고통 2

 

제일 괴로운 것은 무서움이야. 실제의 통증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통증을 상상하는 쪽이 훨씬 무섭고,  싫어. 그런 기분 알겠어?

알 것 같애.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 하루키 소설 속 가족은 거의 등장하지 않아 보입니다.
적어도 제가 그간 읽었던 소설 속에서는 그렇습니다.

이 단편이 그간 읽었던 그의 책 중에서 가족이 가장 많이 등장하지 않나 싶어요.

 

그렇지만, 도쿄로 돌아가서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어.

나는 말했다. 사촌 동생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 않으면 안 될 일 따위, 그 어디에도 한 가지도 없다. 그렇지만 다른 데라면 몰라도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

 

하루키는 가족으로부터 불쾌한 기억이 있는가?

질식할 정도로 무거운 기대를 받으며 자라왔는가?

엄부 아래 엄한 규율밑에서 숨막힐 듯 자랐는가?

왠지 모르게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고,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려는 하루키가 보이는 듯 합니다.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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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싱턴의 유령> 책 말미에
- 옮긴이의 말 김난주

 

  

렉싱턴의 유령 가장 뒷부분에 옮긴이의 말이 있습니다.

옮긴이 김난주씨의 글이죠.

하루키 속의 따뜻함을 퍼올리는 글이라 생각할 정도로 좋아서 옮겨 봅니다.

 

옮긴이의 말 김난주

출처 렉싱턴의 유령(열림원)

 

며칠 전 늦은 밤이다. 둘째 딸아이가 잠이 안 온다면서 얘기를 해달라고 칭얼거렸다.

내가 예의 옛날에 어떤 소설가가 있었는데…….. 라고 서두를 꺼내자, 아이는 또 소설가야라며 시큰둥해 했다. 오늘은 재미있는 이야기야. 들어 봐 라고 달래자, 샐쭉한 표정으로 내 가슴에 기대는 딸.

 

밤마다 얘기를 해달라고 보채는 아이에게 늘 새로운 얘기를 들려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작업하고 있는 작품의 내용을 대충 각색하여 들려주는 기발한 방법을 생각한 것이다.

 

그날은, <렉싱턴의 유령>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소설가가 미국에 살았는데 미국 친구네 집을 봐주러 갔었대. 그런데 그 소설가는 너 같지 않아서 열한 시만 되면 잠을 잤다는 거야………”


얘기가, 혼자 잠자던 소설가가 느닷없이 한밤중에 깨어나 무슨 소리를 듣는 장면에 이르자, 아이의 표정은 반짝반짝 오히려 잠이 달아나는 모양이었다.


그 소리가 무슨 소린가 싶어서, 소설가는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대. 그랬더니…….


엄마, 유령이야?


갑자기 몸을 움츠리며 무섭다고 더욱 안겨 드는 딸.

나는 순간적으로 극적인 각색을 감행하여야 했다. 한밤에 유령이야기를 들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으응, 그게 아니고, 그 소설가는 꿈을 꾸고 있었던 거야. 잠에서 깨어나 무슨 소리를 듣는 꿈 말이야. 그 집은 아주 오래된 집이었거든. 소설가 아저씨 혼자 자니까 아주 심심하겠지. 그래서 그 집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소설가의 꿈 속에 나타나서 소설가가 혼자 자도 외롭고 심심하지 않게 파티를 열어 준거야. 술도 마시고, 춤도 추고,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면서 말이야.


, 그럼 그 소설가 아저씨, 아침까지 안 일어났어?


그럼, 아침까지 푹 자고 일어나서, 또 소설 썼지.


딸아이는 그제서야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러고 나서 잠시 생각했다.

적막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케이시. 자신의 죽음을 위해서 깊은 잠을 자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리란 외로움과 두려움에 마음이 늙어가고 있는 그, 그를 위해 이미 죽은 많은 자들이 파티를 열어 준다면, 그는 길고 긴 잠 같은 죽음에 편안히 빠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죽은 자들이 내미는 따스한 손길을 마주 잡을 수 있다면 말이다

 

1997년 깊어가는 가을

김난주

 

 

이 정도 따뜻함과 자기긍정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루키 소설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관찰자인 듯, 거리 두고, 외롭고, 건조하고, 때로는 괴기스럽고 차가운 하루키 소설 속의 따뜻함을 이해하고 퍼 올리려면 말이죠.

 

김난주 씨가 어떤 작품 활동을 하는지 새삼 궁금해 집니다.

소설을 써도, 아동문학을 써도, 읽어 보고 싶네요.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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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는 머리 속 얘기를 중얼거리듯 합니다.

뒤죽박죽, 한 달은 청소를 안 한 것 같은 방처럼 어질러진 그의 머리 속 얘기를 그냥 풀어 놓은 듯 하죠.

제가 하루키에게

거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요? 라고 물으면,

뭘 말이요? 하고 되물을 듯 합니다.

이 책에서도
현실적이고, 명확한 것은 언제나 나오는 노래제목 뿐 입니다.
그리고 그가 늘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 사이, 거리 두기, 인연 등등 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이름 ………

다음에 이름을 말씀 드리려 합니다.


2.
이름과 관계

하루키는 <>를 객관적 수치로 표현해 보고, 기호를 나열해 보는 등, 주관을 배제하고 철저히 객관적인 조각들로만 <>를 얘기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지고 싶어합니다.

결국,  이름 마저 주관의 요소로 보는 모양 입니다.

아니면, 이름을 알게 된 후 관계의 책임이 무거워 피하는 것일까요?

그의 소설 속에는 익명이나 가명의 인물이 많이 등장합니다.


<
댄스 댄스 댄스>키키 가 그랬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친구인지, 자신인지 모를 가 그랬고,
가 사귀는 여자 그리고 <>가 사귀는 쌍둥이 자매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모르는 사귐이 있습니다.

이름이 사람의 인생을 좌우 할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이름이 <>를 이루는 것들을 곡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이름은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사귐(관계)의 시작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하루키 소설 속의 <>는 시니컬 하고, 관조적이고, 인생에 달관한 듯,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의 외로움과 관계단절의 두려움, 소외에 대한 걱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상실감이나 단절의 두려움, 허무함 같은 감정들의 시작에는 익명 그리고 이름을 모르는 관계’가 있지 않을까요?.

 

저는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첫 단추는 이름 이 아닐까 합니다.

 

<어린왕자> 도 생각나구요.......

아래에는 김춘수 님의 시 을 인용해 봅니다.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3. 하루키, 시간의 세례 받을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이 상실의 시대에 나오는 말대로 <시간의 세례>를 받아 작가가 타계한 후에도 오래도록 사랑 받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관조적이고, 시니컬한 캐릭터의 매력을 보자면, 오래 가지 않을 것도 같구요.
이음, 매듭, 관계, 거리 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기에, 고전처럼 오래 남을 것도 같습니다.

하긴, <>에게 의미가 있고, 내가 의미를 찾으면 그만이지,
시간의 세례와 다수의 사랑을 받을지는 불필요한 호기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P.S. 서핑중에 소설 속의 <콜라+핫케익>을 만드신 블로그가 있어 링크 합니다
다인님 블로그 :  세계 명작 식당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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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쓰기-하트필드

"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책 속의 하트필드



이제 나는 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물론 문제는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았으며, 얘기를 끝낸 시점에서도 어쩌면 사태는 똑같다고 말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결국 글을 쓴다는 건 자기 요양의 수단이 아니라 자기 요양에 대한 사소한 시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직하게 자신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정직해지려고 하면 할수록 정확한 언어는 어둠 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버린다.

-하루키


"
글을 쓰는 작업은, 단적으로 말해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물과의 거리를 확인하는 일이다. 필요한 건 감성이 아니라, '잣대'" <기분이 좋아서 무엇이 나쁜가?>
-         책 속의 하트필드


2.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밑줄 긋기

 

"이따금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곤 해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전에 인간의 존재 이유를 테마로 한 짧은 소설을 쓰려고 했던 적이 있다.

결국 소설은 완성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 동안 줄곧 인간의 '레종 데르트'에 대해서 생각했고 덕분에 기묘한 버릇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모든 사물을 수치로 바꿔 놓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버릇이었다.

약 여덟 달 동안 나는 그런 충동에 시달렸다. 나는 전철에 타자마자 승객 수를 헤아렸고, 계단 수를 전부 헤아렸고, 시간만 나면 맥박 수를 쟀다.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1969년 8월 15부터 이듬해 4 3일 사이에 나는 강의에 358번 출석했고, 섹스를 54번 했고, 담배를 6,921개비 피운 것으로 되어 있다.

그때 나는 그런 식으로 모든 걸 수치로 바꿔 놓음으로써 타인에게 뭔가를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타인에게 전할 뭔가가 있는 한, 나는 확실히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연한 일이지만, 내가 피운 담배의 개비수나 올라간 계단의 수나 나의 페니스 사이즈에 대해서 누구 한 사람 흥미 같은 걸 갖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상실하고 외톨이가 되었다.



"
어째서 안 하는 걸까?"
"말하기가 어려워서 그렇겠지. 바보 취급당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말일세."
"바보 취급은 안 한다구."
"그렇게 보이는 거라구. 전부터 그런 느낌이 들었어. 자네는 다정하지만 뭐랄까, 모든 걸 달관한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겨...... 그다지
나쁜 뜻으로 말하는 건 아닐세."
"알아."
"다만 나는 자네보다 20년이나 연상이고 그만큼 여러 가지 일을 많이 겪었지. 그러니까 이건 뭐라고 할까......."
"노파심."
"그래."
나는 웃고 나서 맥주를 마셨다.
"쥐한테는 내가 먼저 말을 꺼내 보지."



3. 1973
년 핀볼 밑줄 긋기


 "
이름은?"

나는 두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숙취 탓으로 머리는 깨질 것만 같았다.


"
밝힐 수 있을 만한 이름이 아니에요."

오른쪽에 앉은 여자 아이가 말했다.


"
정말로 대단한 이름이 아니라구요, 알겠죠?"

왼쪽이 말했다.


"
알았어."

내가 대꾸했다.

우리는 식탁에 마주앉아서 토스트를 먹고 커피를 마셨다. 정말 맛있는 커피였다.


"
이름이 없으면 곤란해요?"

한 아이가 물었다.


"
글쎄?"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생각을 했다.


"
만약에 꼭 이름이 필요하다면 적당히 붙여 주면 되잖아요."

또 다른 아이가 제안했다.


"
당신 마음대로 부르면 된다구요."

쌍둥이는 언제나 번갈아 가며 얘기했다. 마치 FM 방송에서 스테레오를 점검하듯이. 그 때문에 머리가 한층 더 아팠다.


"
예를 들면?"

내가 물어 보았다.


"
오른쪽과 왼쪽."

한 명이 말했다.


"
세로와 가로."

또 다른 한 명이 말했다.


"
위와 아래."

"겉과 속."

"동쪽과 서쪽."


나는 지지 않으려고 가까스로 이렇게 덧붙였다.

"입구와 출구."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고 만족스러운 듯이 웃었다.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다.

대부분은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다.

우체통, 전기 청소기, 동물원, 소스 통. 물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쥐덫.



 
나는 우물을 좋아한다. 우물을 볼 때마다 돌멩이를 던져 넣어 본다.

싶은 우물의 수면을 때리는 돌멩이의 소리만큼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건 없다.



핀볼 기계와 히틀러의 발걸음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그들 둘은 어떤 종류의 저속함과 함께 시대의 거품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났고, 그리고 그 존재 자체보다는 진화의 속도에 의해서 신화적 후광을 얻었다고 하는 점에서 말이다. 진화는 물론 세 개의 바퀴 즉 테크놀러지와 자본 투자, 그리고 사람들의 근원적 욕망에 의해서 지탱되었다.



핀볼 연구서인 <<보너스 라이트>> 서문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다.

당신이 핀볼 기계에서 얻는 건 거의 아무것도 없다.

수치로 대치된 자존심 뿐이다. 잃는 건 정말 많다. 역대 대통령의 동상을 전부 세울 수 있을 만큼의 동전과 되찾을 길 없는 귀중한 시간이다.


당신이 핀볼 기계 앞에서 계속 고독한 소모전을 벌이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은 프루스트를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어떤 사람은 드라이브 인 극장에서 여자 친구와 <용기 있는 추적>을 보면서 진한 애무에 열중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시대를 통찰하는 작가가 되고 혹은 행복한 부부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핀볼 기계는 당신을 아무데도 데려가 주지 않는다.

리플레이 램프를 켤 뿐이다. 리플레이, 리플레이, 리플레이......,
마치 핀볼 게임 그 자체가 어떤 영겁성을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영겁성에 대해서 우리는 많은 걸 모른다. 그러나 그 그림자를 추측할 수 있다.
핀볼의 목적은 자기표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변혁에 있다.
에고의 확대가 아니라 축소에 있다. 분석이 아니라 포괄에 있다.
만일 당신이 자기 표현이나 에고의 확대, 분석을 지향한다면 당신은 반칙 램프에 의해서 가차없는 보복을 받게 될 것이다.

좋은 게임을 하길 빈다.



"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어떻게 하다니요.......다만 귀를 청소할 때 주의만 하면 되는 거예요. 주의요."

"귓구멍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심하게 구부러져 있어서 뭔가 달리 영향을 받지는 않습니까?"

"영향을 받다니요?"

"가령 ...... 정신적으로."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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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무라카미 하루키의 비교

 

 

친구의 오랜 추천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 위화를 추천해 보려고 합니다.

위화를 재미있게 읽은 이유도 있지만, 그 친구의 느낌을 듣고 싶어서가 큰 이유 입니다.

 

아래에는 지금의 제가 느낀 대로, 위화와 무라카미 하루키를 간단히 비교해 보았습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소감에 불과함을 먼저 말씀 드립니다.

1. 비교

위화의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

그들이 등장 합니다.

<> 가 주인공으로 등장 합니다.

똥구멍에 털 날 정도로 울다가 웃을 수 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고 하지 않습니까? 힘들고 애환 가득한 삶이라도 한 조각씩 한 무더기씩 웃음이 있습니다.

잔잔하고 관조적이다.

야미쿠로가 나오고, 칼에 찔리고, 살인사건이 일어나도 차분한 분위기 입니다.

현실만 존재합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만 해도 충분히 즐겁고, 고달프고, 바쁘면서 치열하기에 그럴 것입니다.

현실과 꿈 사이를 오갑니다.

<> 뿐 아니라, 다른 인물 들도 내면 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자신을 탓하고, 부정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자신의 언행을 이유로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일기나 수필을 보는 기분이 들 정도로 내면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2. 공통점

위화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기를 찾아가던지,
하루키 소설 속의 <나>처럼, 내면으로 침잠하던지,
둘 다 <나>를 찾고 <관계>를 이야기 하는 것이 공통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철저하게 현실 속에서 사람과 관계를 이야기 하고 있던지(위화),

몽환과 현실을 오가면서 이음매듭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던지(무라카미 하루키) 둘 다 '나' 또는 '관계'를 다룬다는 점을 공통점으로 뽑아 봤습니다.

저만의 생각이라 여러분의 공감을 얻지 못할 수도 있겠군요.

P.S. 공통점은 써놓고 보니, 억지스럽기도 합니다...;;;;;귀엽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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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합니다.
다른 분들은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말이죠.

저는 이 책을 읽고 나니, 4 개의 이야기가 흐름의 전부라고 생각 되더라구요.
눈길이 제법 오래가는 구절들도 있었지만,(그 구절들은 따로 담겠습니다.)
결국은 아래에 옮겨 적는 4개의 이야기가 뼈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이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 답지 않게, 도식적이고 메시지도 분명한 듯해서
좀 놀랐습니다.

그래서,
다행인 것은, 우울하지 않아 좋다는 것입니다.
불만인 것은, 헐리웃 영화의 해피엔딩 같다는 것과, '부부클리닉' 같은 교훈적 메시지라는 것 입니다.
어쩌면, 하루키도 좀 정상적(?)으로 살아 보고 싶다는 소망을 담은 결말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제 그 4 개의 이야기를 담아 보겠습니다.


첫째, 사막은 살아있다

"말이야. 세월이라는 것은 사람을 여러 모습으로 바꿔버리는 걸세. 당시 자네와 그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네만.
하지만 설사 무슨 일이 있었다 해도, 그건 자네 탓이 아니야. 정도의 차는 있어도, 누구에게라도 그런 경험은 있는 법이지. 내게도 물론 있어,
거짓말이 아닐세. 내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것은. 누군가의 인생은 결국 그 누군가의 인생인 것이야.
자네가 그 누군가를 대신해 책임질 수는 없어. 세상은 사막 같은 곳이고. 우리는 모두들 거기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거야.
저 초등학교 시절에 월트 디즈니의 <사막은 살아 있다>라는 영화 본 일 있지?"

"있지."

"그것과 마찬가지야. 이 세계는 그 영화와 마찬가지라구. 비가 내리면 꽃이 피고, 비가 오지 않으면 꽃은 말라 시들어 버리네, 벌레는 도마뱀에게 먹히고, 도마뱀은 새들에게 먹히고, 그러나 언젠가는 모두 죽어가지. 죽어서 바싹 말라버리고 말아. 한 세대가 죽으면,
그 다음 세대가 그 자리를 대신하네. 그게 정해진 이치일세. 모두들 제각기 다른 삶의 방식을 취하고 제각기 죽는 모습도 다르다네. 그러나 그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닌거야.
마지막에는 사막만이 남게 되네. 정말로 살아 있는 것은 사막 뿐이라구."


둘째,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

"옛날 어느 책에선가 그런 얘기를 읽은 일이 있어요.
중학생 시절이었던가. 무슨 책이었는지도 도무지 기억이 안 나지만.......
아무튼 그것은 시베리아에 사는 농부들이 걸리는 병이에요. 있잖아요. 상상해봐요.
당신이 농부고, 시베리아의 벌판에서 홀로 외로이 살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매일매일 밭을 갈아요.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죠. 북쪽에는 북쪽의 지평선이 있고, 동쪽에는 동쪽 지평선이 있고, 남쪽에는 남쪽 지평선이 있고, 서쪽에는 서쪽 지평선이 있어요. 그저 그것뿐, 당신은 매일동쪽 지평선에서 태양이 떠오르면 밭으로 나가 일을 하고, 그 태양이 머리 위로 올라와 있으면 일하던 손을 멈추고 점심을 먹고, 그리고 서쪽 지평선으로 해가 기울면 집으로 돌아가 자는 거예요."

"그런 생활은 아오야마에서 바를 경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생일 듯한데."

"그렇겠죠" 하고 말하고 그녀는 웃었다. 그리고는 아주 조금 고개를 기울였다.
"전혀 다르겠죠. 그런 생활이 몇 년이고 몇 년이고, 매일 계속돼요."
..........
"그리고 어느 날, 당신의 내면에서 무엇인가가 죽어버리고 말아요."

"죽다니, 어떤 것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무언가가요. 동쪽 지평선에서 떠올라, 높은 하늘을 질러서, 서쪽 지평선으로 기울어가는 태양을 매일매일 보고 있는 사이에, 당신 속에서 무언가가 뚝하고 끊어져 죽어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당신은 땅에다 괭이를 내던지고는, 그대로 태양의  서쪽을 향해서. 그리고는 무엇에 홀린 듯이 며칠이고 며칠이고 아무것도 마시지도 먹지도 않고 줄곧 걷다가, 그대로 땅에 쓰러져 죽고 말아요.
그게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

나는 대지에 엎드려 죽어가는 시베리아 농부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태양의 서쪽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데?" 하고 나는 물었다.

그녀는 또 고개를 저었다. "난 모르죠.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는지도 몰라요. 아니면 무엇인가가 있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아무튼, 그것은 국경의 남쪽과 좀 다른 곳이에요."


셋째, 하지메와 유키코

나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 말을 찾았다.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언제나 어떻게든 다른 인간이 되려고 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는 늘 어딘가 새로운 장소에 가서, 새로운 생활을 손에 넣고, 거기에서 새로운 인격을 갖추려고 해왔던 거야.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이고 그런 일을 되풀이 했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성장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퍼스너의 교환 같은 것이었지.
그러나 어찌됐든, 나는 자신이 아닌 다른 자신이 되어, 지금까지 자신이 껴안고 있던 무엇인가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던 거야.

나는 정말로, 진지하게, 현재와는 다른 나 자신을 추구하고 있었고, 노력만 하면 언젠가는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어. 하지만 결국, 나는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했어.
나는 어디까지 가도 나일 뿐이었어. 내가 껴안고 있는 결락은, 아무리 멀리 가도 변함없는 결락일 뿐이었어.

아무리 주위의 풍경이 변화해도, 사람들의 말소리가 아무리 변화해도. 나는 한 사람의 불완전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어.
내 안에는 어디를 가든 한결같은 치명적인 결락이 있어. 그 결락이 내게 격렬한 굶주림과 갈증을 갖다주었던 거야. 나는 줄곧 그 굶주림과 메마름에 혹사당해왔었고, 그것은 아마 앞으로도 마찬가지일거야. 어떤 의미에서는, 그 결락 자체가 바로 나 자신이니까 말이야. 나는 그걸 알 수 있어. 나는 지금, 당신을 위해 가능하다면 새로운 나 자신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아마도 난 그렇게 할 수 있겠지.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나는 노력해서 , 어떻게든 새로운 자신을 획득할 수 있겠지.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 비슷한 일이 다시 한번 일어난다면, 나는 또 똑같은 일을 반복할지도 몰라. 마찬가지로 당신에게도 상처를 입힐지도 모르고. 나는 당신에게, 아무런 약속도 할 수 없어. 내가 말하는 자격이란 그런 뜻이야. 나는 도저히 그 힘을 이겨내야 된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가 없어."



유키코는 가슴 위로 팔짱을 끼고, 잠시 내 얼굴을 보았다.

"내게도 옛날에는 꿈 같은 것이 있었고, 환상 같은 것도 있었어요.
하지만 언제인가, 어디에선가 그런 것들은 사라져버렸어요. 당신을 만나기 전의 일이에요.
나는 그런 것을 죽여버렸어요. 아마도 자신의 의지로 죽이고, 버린 걸 거예요.
필요가 없어진 육체의 한 기관처럼. 그것이 올바른 일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잘 몰라요.
하지만 나는 그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때로 꿈을 꾸어요.

누군가가 그것을 내게 전하러 오는 꿈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똑같은 꿈을 꾸어요.
누군가가 두 손으로 그것을 껴안고 와서는,
'부인, 잊으신 물건입니다.' 라고 말해요.
그런 꿈, 나는 당신과 같이 살면서, 내내 행복했어요. 불만이랄 만한 것도 없었고, 그 이상 갖고 싶은 것도 딱히 없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무엇인가가 늘 내 뒤를 쫓아오는 거예요.
한밤중에 나는 땀으로 푹 젖어서는 번쩍 눈을 떠요. 그, 내가 버린 것에 쫓겨서. 무엇엔가 쫓기는 것은 당신만이 아니에요. 무언가를 버리고,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은 당신만이 아니에요. 내가 하는 말 무슨 뜻인지 알아요?"

"알 것 같아" 라고 나는 말했다.

"당신은 또 언젠가 내게 상처를 줄지도 몰라요. 그때에 내가 어떻게 될지, 그것은 나도 몰라요.
어쩌면 이번에는 내가 당신에게 상처를 주게 될지도 모르죠. 무엇인가를 약속한다는 따위는 아무도 할 수 없는 거에요.
나도 할 수 없고, 당신도 할 수 없고. 하지만 여하튼, 나는 당신을 좋아해요. 그뿐이에요."


넷째, 사막 또는 바다

나는 그 어둠 속에서, 바다에 내리는 비를 생각했다.
광활한 바다에, 누구에게도 드러남 없이 은밀하게 내리는 비를 생각했다. 비는 소리도 없이 해면을 두드리고,
그것은 물고기들에게조차 전해지는 일이 없었다.
누군가가 다가와 내 등에다 살며시 손을 얹을 때까지, 나는 줄곧 그런 바다를 생각하고 있었다.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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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댄스 댄스
-무라카미 하루키를 추측해 본다

  

 

친구의 오래된 추천으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고 있습니다.

<상실의 시대><하드보일드.....> 에 이어 이번이 겨우 세 번째 하루키 와의 만남이지만, 이 책을 통해 제가 느낀 하루키에 대해 끄적여 보려고 합니다.

 

아래에서 <> 는 이 소설 속의 ''를 가리킵니다.

참! 웹서핑 중에 좋은 글을 찾았습니다. 아래에 링크해 둡니다.

제제님 블로그 -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 속 인물들의 패션
 

 

1. 나 좀 이해해줘, 난 달라

 

<>는 남들이 다 쉽게 하는 자기소개도 어려워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특별하고, 남들에게 이해 받기 힘든 사람일 거라는 생각을 하죠

물론, 자신은 평범하다고 겉으로는 말을 하지만 말입니다.

 

어떤 것이 <>의 속마음 일까요?

자신의 입으로 평범하다고 한 것이 사실일까요?

저는 자기소개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죽 늘어놓는 것이

좀 이해해 달라고, 난 다르다고 얘기하는 것으로 들립니다.

 

 

2. 하루키가 좋아하는 거리는?

 

사람이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 거리 또는 간격을 말함입니다.

저는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진 않더라도, 사귐에 거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혹은 그녀가 <>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양을 쫓는 모험은 아직 읽지 않았지만, <양 사나이> <>도 둘로 나누어 거리를 두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책 속의 <>는 사귐의 폭이 넓지 않음에도, 외로움을 많이 탐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사람을 밀어내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 는 사랑도 하고, 사랑도 받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긴 합니다.


그러나 아내와의 이별을 떠올리면서,

요구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거리를 두고 관조하기 보다는, 요구하고, 부딪치는 것이 사귐에도 사랑에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친절은 습관일 뿐이라고 하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속 대령의 말도 덧붙여 생각해 봅니다.



3.
하루키
나를 잊지 마세요

 

사람과의 거리를 두고, 관조적으로 생활하는 <>좋다 보다는 나쁘지 않아 라는 표현을 더 자주할 정도로 관조적으로 보입니다. 그와 동시에 <>는 잊혀질까, 묻힐까, 자기 안으로만 침잠할까 두려워합니다.

 

가엾고 우울하기도 합니다.

지금의 혹은 과거의 를 떠올리기도 하면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4.
하루키
일보전진, 그리고 속삭여! 소리치던지

 

하지만 아무튼, 무엇인가 지껄이기로 하자.

자신에 관해 무엇인가 지껄이는 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그것이 우선 제 1 보인 것이다.

올바른 것인지 올바르지 못한 것인지는 나중에 다시 판단하면 된다.

나 자신이 판단해도 되고 다른 누군가가 판단해도 된다.

 

<어린왕자> 에서 여우에게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춘수 시인의 <>에서의 이름 과 같이

하루키에게 지껄이는 것 그리고 속삭이는 것이 같은 의미이기를 바란다.

 

 목소리가 나올까?

내 메시지가 현실의 공기를 잘 흔들 수 있을까?

몇 가지 문구를 나는 입속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명료한 것을 골랐다.

 

유미요시, 아침이야. 하고 나는 속삭였다.

 


6.
마무리


앞에서 말씀 드렸듯,

저는 겨우 세번째 하루키와의 만났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의 개인적인 소감을 말씀드린 것에 불과합니다.

하루키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싫어하실 글을 쓴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우울함과 상실감에 하루키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저도 점점 하루키가 좋아지려 하고 있습니다.

다른 책들을 읽고 나면 지금의 생각이 바뀔 것도 같습니다.

Posted by 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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