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신화적인 인물이라 평가도 여러 갈래일거라 짐작만 할 뿐, 부정적 평가를 저는 알지는 못합니다. 자서전이라 좋은 얘기만 있겠거니 하면서 읽어도 반지의 제왕보다 판타스틱합니다. –반지의 제왕 팬 분들에게는 죄송합니다.
그저 정회장님의 인생이 판타지 그 자체입니다.
‘인생보다 더 한 드라마는 없다’는 말처럼 실화이기에 더 그런 듯 합니다.
그저 안다고 생각해왔는데, 이 책에 있는 일화들을 보니, 그 동안 ‘모르지 않았을 뿐’이었다는 것 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농사일 만큼의 노력이면, 무엇을 해도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에 장남이라는 멍에도 벗어버리고 4번이나 가출을 한 일화이며, 고려대학교 전신인 보성전문대학의 공사장에서 일한 일화이며, 쌀가게에서 인정받게 되기까지의 일화, 현대건설의 시작과 고령교 건설의 실패, 해외건설 진출의 득과 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일화들, 현대조선 건설의 일화, 올림픽 유치와, 일해재단에 관한 일화 등.....
여러분도 준비되셨으면, 그 신화 같은 인생 속으로 빠져보세요.
기업사적 평가나, 역사적 평가는 알지 못한다는 무책임한 저의 태도는 용서를 바랍니다. 저의 부족한 태도는 트랙백이나 댓글로 채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앤드루 카네기 자서전과의 비교 <성공한 CEO에서 위대한 인간으로>라는 강철왕 카네기 전기를 같이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비교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카네기 자서전 후반부에는 친구들과의 우정, 대화, 명언 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에는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이 외로워 보였습니다.
친구가 삶을 풍성하고 의미있게 해준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도 정주영 회장이 외로워 보인 것은 카네기 자서전을 읽은 후의 느낌입니다.
잠깐이나마, 멋들어진 풍류를 아는 카네기에 비해, 정주영 회장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자식들 키워내느라 허리 굽고, 어깨 좁아지면서 풍파 헤쳐 나오신 우리 아버지 세대들 모습이 겹치면서 조금은 위로가 됩니다.
생의 끝까지 왕성한 활동을 한 기업가!
멋진 잠언과 격식 있는 명언을 쏟아 내지 못했을 지라도,
“이봐! 해봤어?”정도면 충분합니다.
보는 눈이 있는 형님은 정회장님이 그리 말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해줍니다.
“야! 해봤어?”이 말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그의 온 삶을 붓 삼아 크게 그린 그림이 우리 세대 그리고 후대의 진취적 기업가 정신과 통일의 발판이 되리라 생각하고 또 기대해 봅니다.
아래에는 이 책의 여러 일화들 중에서 제가 담아두고 싶은 몇 가지들을 발췌해 봤습니다. # 이하 [] 부분이 발췌 부분 입니다.
# 1. 고령교 사업 적자의 교훈
[ 계약 금액 5천 4백 78만 환에 적자 금액 6천 5백만 환.
이것이 고령교 공사의 결산이다. 공사를 끝내니 현장 장비를 철수시킬 힘도 없을 정도로 탈진 상태였다.
빚쟁이들은 벌떼처럼 덤벼들었다.
나는 지금도 고령교 공사의 시련을 운(運)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공사를 따는 것에만 집착했지 다른 면에 대해서 치밀하게 계산하고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에 게을렀기 때문이다. 장기 공사는 연차적으로 분할 계약을 해야 인플레에 의한 손실을 막을 수 있다. 그때 이미 인플레의 기미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기껏 인플레가 된다고 해 보았자 두 배 정도가 아니겠는가' 하고, 내 마음대로 판단하고 일괄 계약을 한 것이 가장 큰 경솔함이었다.
낙동강 바닥의 토질도 모르는 채 공사에 뛰어들었던 것, 또 우리 나라 당시의 형편없는 장비로는 고령교 정도의 공사도 어렵다는 사실을 몰랐던 내 경험 부족도 실패의 이유가 된다.
결국 모든 실패의 원인은 내 탓이었다.
'채근담(菜根譚) 의 가르침대로 <득의지시(得意之時) 변생실의지비(便生失意之悲)-뜻을 이룰 때 실패의 뿌리가 생긴다>라는 말이 절실한 진리였다.
경쟁 건설업자들은 내 시련을 그다지 싫어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학교밖에 안 나온 친구니 인플레가 뭔지나 알았겠냐는 둥, 장기 공사에는 분할 계약하는 것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 건설업을 한다고 껍죽대다 망하는 거라는 둥......
그러나 나는 그대로 망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확실히 내가 부족하고 미숙하고 몰랐던 탓이었다.
모든 것이 내 탓이었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 공부한 셈치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니 상황만큼 절망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담담한 편이었다. ]
# 2. 불치하문(不恥下問) [ '불치하문'이라는 말이 있다.
나보다 어린 사람, 지위가 나보다 아래인 사람이라 해도 내가 모르는 것을 물어 배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두 공사를 하는 동안 우리는 정말 진지한 자세로, 배울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배우겠다는 자세로 미국인 기술자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에 이르는 동안 '현대'뿐만 아니라 모든 건설업체들이 미군 공사를 하면서 겪어야 했던 고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다 고통과 시련을 통해서 배우고 발전하고 성장한다.
그 후 모든 설계를 미국식 시방에 의해서 작성하고, 품질 관리에 보다 엄격해지고 하는 것 등등, 이런 것들은 모두 미군 공사를 하면서 그들에게 배운 것이다. ]
# 3. 500원 지폐 안의 거북선 [ 기술 협조 계약을 마무리 짓고는 차관 도입이라는 난제를 풀기 위해서 곧장 런던으로 가 A&P 애플도어 사의 롱바톰 회장을 만났다.
그리고 그에게 영국 버클레이즈 은행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도움을 청했다. 버클레이즈 은행은 정희영 상무가 앞서 교섭을 했으나 별무신통이던 은행이었다. "아직 선주도 나타나지 않고 한국의 상환 능력과 잠재력도 믿음직스럽지 않아 곤란하다"는 롱바톰 회장의 대답이 나를 맥 빠지게 했다.
나는 그때 문득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는 거북선이 그려져 있는 5백 원짜리 지폐가 생각났다.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거북선 그림을 앞면으로 테이블에 펴놓았다. "이것을 보시오. 이것이 우리의 거북선이오. 당신네 영국의 조선 역사는 1800년대부터라고 알고 있는데, 우리는 벌써 1500년대에 이런 철갑선을 만들어 일본을 혼낸 민족이오. 우리가 당신네보다 3백 년이나 조선 역사가 앞서 있었소. 다만 그 후 쇄국정책으로 산업화가 늦어져 국민의 능력과 아이디어가 녹슬었을 뿐 우리의 잠재력은 고스란히 그대로 있소."
롱바톰 회장이 빙그레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결국 한국의 '현대건설'은 현재 고리원자력을 시공하고 있고 발전 계통이나 정유 공장 건설에도 풍부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대형 조선소를 만들어 큰 배를 건조할 능력이 충분하다는 추천서를 버클레이즈 은행에 보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스코트 리스고우 조선소에서 선박 도면을 제작해서 버클레이즈 은행에 제출했다.
롱바톰 회장이 도움으로 버클레이즈 은행과 차관 도입 협의가 시작되었다. ]
# 4. 시베리아 개발론 [ 통일은 가까운 장래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고, 통일이 되면 우리가 아시아의 중심 국가가 되어야 한다.
나는 우리 한국인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로 보나 역사, 문화로 보나 아시아에서 우리 민족 이상으로 훌륭한 민족은 없다.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우리는 성실하고 어질고 착하고 그러면서 우수하다. 10년, 20년 노력하면 우리가 아시아의 중심 국가가 될 수 있고 세계의 모범 국가가 될 수 있다. 우리 민족이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
비록 현재는 기술도 자본력도 경험도 일본에 비해 뒤떨어지지만, 그러나 세계 어디서든, 무슨 일이든, 일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우리도 할 수 있는 저력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지난날 내가 조선소를 만들 때, 중동에 진출할 때,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나를 비웃었다. 술이 있나, 자본이 있나, 경험이 있나? 망하고 싶어서 멋모르고 설친다고 깔보았다. 정말로 경험도 자본도 전혀 없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로부터 30년, 시베리아를 개발하는 데 한국이 무슨 수로 영하 50 도, 70 도의 기후에 버틸 거냐고 일본이 또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이 홋카이도 위쪽의 섬 4개를 소련에서 되찾기 위해 애쓰고 있는 동안, 우리가 시베리아를 잡아놓아야지, 일본과 소련이 한 덩어리가 되면 그 많은 자원 가운데 우리 몫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추수하고 난 자리에 떨어진 이삭이나 주우러 다니는 형편이 될 수는 없다.
이것이 내가 시베리아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중요한 이유이다. ]
# 5.4가지 권유 [ 나는 우선 건강하기만 하면, 행복할 수 있는 첫째 조건은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운 속에 크게 발전하고, 나쁜 운도 탈없이 잘 넘겨 좋은 운으로 바꾸면서 살려면 우선 건강해야 한다.
건강을 잃고는 긍정적인 사고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게 가지고, 담백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보라는 권유를 하고 싶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주변의 사람들보다 더 나은 발전을 할 수도 있고 또 뒤떨어질 수도 있다.
항상 남보다 내가 더 나아야 한다는 오만을 가지면 나보다 나은 사람에 대한 질투나 시기 때문에 마음 편할 날이 없으니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
사회 각 분야에서 열심히 훌륭하게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솔직하게 찬사를 보낼 수 있는 '잘난 사람'들이 많아져야 우리도 '잘난 나라'로 발전할 수가 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고, 자신도 크게 발전할 수 있는 소질을 가진 사람이다.
세번째로, 나는 보다 나은 삶, 보다 나은 인간, 보다 나은 직장인, 보다 나은 발전에 대해서 항상 향상심을 갖고 '공부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받지 못했어도 날마다 열심히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교육은 받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이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는 법이다.
생각하는 사람과 생각 없는 사람은 일을 해보면 교육과 상관없이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나는 소학교 졸업밖에는 못한 사람이지만, 평생 '좋은 책 찾아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첫째가는 스승이 나의 부모님이셨다면 둘째 스승은 책 읽기였다고 할 수 있다. 하루하루가 모여서 일생이 되는 것인데, 사람은 흔히 자기 일생은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하루의 중요성은 망각하고 산다.
네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유지자사경성(有志者事竟成)' 이라는 말이다.
'뜻이 강하고 굳은 사람은 어떤 난관에 봉착해도 기어코 자신이 마음먹었던 일을 성취하고야 만다'는 뜻이다.
편안하고 쉽게 저절로 되는 일이란 별로 없다. 누구에게나 몇 차례의 호된 시련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좌절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나한테 더 큰 일을 감당하게 하려고 주어진 시련이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틀림없는 사실은 바람이 나무의 뿌리를 더 깊고 단단히 내리게 만드는 것처럼 시련은 우리를 보다 굳세고 현명하게 성장시킨다.
고령교 복구 공사의 시련이 그 좋은 예가 된다. ]
p.s
이승만 대통령부터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을 거쳐 김영삼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각 정권에 대한 정주영 회장의 생각을 엿볼수 있음은 보너스 입니다. 그의 정치적 견해에 동의 하시는지 와는 별개로 나름 재미가 있답니다.